〈 100화 〉 17. 대격변(3)
* * *
그들은 그 사이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며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
카심은 조용해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바에 앉고 주문했다.
“푸른 수염이 그려진 스테이크.”
“시간이 걸릴 거 같으니 안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안쪽 문으로 들어가니 테이블 하나에 촛불이 놓여 있었고 그곳엔 레온이 있었다.
“오셨군요.”
“이곳에도 장소가 있었습니까?”
“하하.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공주님께서 살해당한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진 레첼은 분명하게 왕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보내는 거 아닙니까?”
“진짜 그리 생각합니까?”
레온은 씩 웃었다.
“과연, 사실 저도 의아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확신할 수 없어서 말은 못 했습니다.
그런데 확신하시니 놀랍군요.”
확실히 레온 입장에서는 왕족과의 일이었기에 섣부른 판단으로 잘못이라도 된다면 정말로 큰일이 날 수 있으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어찌 저렇게 확신하는지.
“진 레첼은 왕이 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진 레이널은 그런 진 레첼에게 위기감을 느꼈고, 조급했습니다.
거기다 제대로 진 레첼과 승부에서 이기지도 못한 채 왕이 되었습니다.”
“과연, 불안할 수 있겠군요.”
“거기다 영생교. 진 레이널은 이번에 영생교의 힘을 제대로 느꼈을 겁니다.
그들과 힘을 합친다고 하나, 대처할 수 있는 이, 즉 진 레첼이 있다면 영생교는 분명히 협박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여길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영생교에게 완전히 휘둘리게 되는 꼴이겠죠.
그렇다면 대체가 없다면? 그런 위험성은 확실히 줄어들 겁니다.
영생교에서 아무리 힘이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왕이 아니면 나라가 움직일 수 없게 될 테니.”
“...”
레온은 아무런 말 없이 끄덕였다.
“확실히... 정말로 놀랍습니다.
정보를 다루는 저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계시니.”
카심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찌하실 예정이십니까? 제가 준비해야 할 것은?”
레온은 스스로 이런 말을 하면서도 어색했다.
자신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
준비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있었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히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이후로 저는 아마 왕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될 겁니다. 지명수배가 걸릴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달라는 거군요.”
“아닙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레온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나중에 가르쳐드리죠.
레온님께서는 확실한 시간과 위치를 알아주셔야 합니다.”
“그거야 뭐.”
레온이 꺼내든 종이에는 상세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카심은 역시나라며 끄덕였다.
“그런데 공주님을 살해하려면 꽤 많은 인원이 올 텐데... 저희쪽에서도 전투인원들이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시면...”
“괜찮습니다.”
***
진 레첼은 다른 왕국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고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정말 순식간에 상황이 이렇게 변해 있었다.
영생교의 힘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컸기에 두려웠다.
“아바마마의 죽음도...”
그들의 짓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나 정정했던 분이 어느 순간부터 쇠약해졌던 것도 의아했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정해진 일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영생교와 싸우려 했던 것은 거대한 바위에 작은 계란을 던져서 깨부수려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카심씨...”
본 적도 없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슬펐다.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카심을 생각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더니 이내 슬픔이 가득했다.
마지막 얻은 정보.
이제는 진 레이널 때문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정보 조직에게 받았던 그 정보를 받는 순간 쩔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가려던 와중 갑작스러웠던 아바마마의 죽음 때문에 마지막 던전 브레이크를 가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바마마가 죽으면서 3대 길드도 모두 돌아오게 됐던 것도, 모든 게 영생교의 계략이었고 그곳에 먼저 간 카심을 죽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들었었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다 여겼겠지만, 그들이 최근 보인 모습으로는 충분히 가능성 있었기에 불안하고 우울했다.
아무리 카심이라지만 왕국의 왕마저 죽이는 영생교였다.
“공주님.”
불안함과 공포 그리고 카심이 죽었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오려던 찰나 시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잠시 후, 내려가 마차에 올라탔다.
화려한 마차와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고 축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꽃길 속에서 100여명이 넘는 기사들과 200명 가량의 병사들.
그리고 100명이 넘는 시녀와 짐꾼 그리고 요리사 등이 행렬을 따랐다.
이제 다른 왕국으로 가기 때문에 몇 영지를 들려 인사를 나눈 뒤에 마지막 종착지에서 텔레포트 장치를 이용하는 게 이번 행렬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영지를 지나치고 다음 날 바로 다음 영지로 지나치고 세 번째 영지로 향하던 길이었다.
한편, 행렬 가장 뒤편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짐꾼들이었다.
그들은 저~ 멀리 말을 탄 기사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며칠 보고 있지만, 진짜 멋있지 않냐?”
“내 말이. 하아, 난 언제 저런 멋진 갑옷을 입어 보나?”
“우리도 저런 거 입으면 태는 나겠지?”
“에이~ 형님은 존나 멋있지요~”
“으하하. 새끼. 하여간 말은 잘해.
너 같은 놈만 좀 오면 좋은데 하여간 저런 새끼도 개나 소나 짐꾼이랍시고 하고 있으니.”
그들의 시선에는 혼자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오고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년을 보았다.
체구가 작은데 다른 이들에 비해 더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고 힘들어 보였는지 고개도 푹 숙인 상태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다른 짐꾼의 표정은 비웃음이 가득했다.
잠시 후, 잠깐 쉬며 식사를 하기 위해 일제히 멈추고 각자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이 콘트! 빨리 빨리 움직여 이 새끼야!”
“아, 알았어.”
콘트는 다급하게 음식용 마차로 달려가 음식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어떤 표시를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었다.
그렇게 콘트가 시간이 지나도 음식 마차에서 나오지 않자 짐꾼들의 얼굴엔 짜증이 그려졌다.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씨발 또 처맞아야 정신 차리겠네.”
“하아...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음식 마차에 다가갔는데 콘트가 있었다.
그런데 콘트는 앉아서 여유롭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순식간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야이 개새끼야! 뭐해 씨발!”
“흐음~ 처음은 넌가?”
“뭐? 처음은 넌가? 이 새끼가 도랐구나?
안 그래도 씨발 개인적으로 존나 패고 싶었는데.
내가 씨발럼아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
푹.
말을 하던 짐꾼은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박힌 검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내 밀려 들어오는 끔찍한 고통에 소리쳤다.
“으아악!”
그 외침에 주변에 있던 짐꾼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다른 이들도 무슨 일인가 싶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짐꾼들은 다급히 다가가자 콘트를 부르러 갔던 이가 피를 흘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헉!”
“왜 그래!”
“혀, 형님... 코, 콘트 저 미친 새끼가...”
“콘트가 뭐 이 새꺄!”
“카, 칼로 저를...”
그때 음식 마차에서 콘트가 검을 들고 가볍게 뛰어내렸다.
“너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도라이 새끼 씨발 진짜. 이제 미쳤구나?”
“씨발 무기는 또 어디서 가져온 거야!”
그중 덩치 큰 이가 성큼성큼 다가와 콘트를 향해 당연하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콘트는 다가오는 주먹을 보더니 씩 웃고는 가볍게 고개를 피했다.
그러자 덩치 큰 이는 순간 당혹하다가 더욱 화가 났다.
맨날 자신에게 맞고 빌빌 길던 놈이 자신의 주먹을 피했으니 쪽팔린 것이다.
“이, 이 새끼가 피해!?”
다시 손을 들어 주먹을 뻗으려는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아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솟아 오른 피가 얼굴을 적셨다.
“푸학! 뭐, 뭐야 갑자기... 어?”
그는 자신의 손이 잘려 있는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역시나 밀려오는 통증에 소리쳤다.
“아악!! 내, 내 손! 내 손!!!”
그때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네 명의 짐꾼은 흠칫했고 콘트는 그것을 보면서 웃었다.
“푸하하. 뭐야 표정들? 왜? 그동안 괴롭히던 놈에게 당하니까 이상해?”
히죽이죽 웃는 콘트는 이전과는 너무 달랐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어?”
“왜 그래? 와~ 네가 할 말이야?
그간 마음에 안 든다고 패.
물건 제대로 못 옮긴다고 패.
그냥 지나가다가 기분 나쁘다고 나를 패고 그랬잖아?”
웃으며 다가오는 콘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 그들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미, 미친놈이 뒤지기 싫으면...”
촤악!
그 순간 팔을 잡고 괴로워하고 있던 덩치 큰 짐꾼의 목을 날렸다.
목이 떨어져 자신들 앞으로 떨어진 것을 보자 그들은 이 상황이 이제 심각함을 깨닫고는 공포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본 콘트의 얼굴은 더욱 미소가 짙어졌다.
콘트.
원래의 이름은 ‘포’ 로 알베이안의 밑에 있는 수호자 중 한 명이었다.
평소 짐꾼 역할로 움직이며 이런 식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을 좋아했다.
정체를 밝혀야 할 때 그들을 죽이면서 얻는 쾌감이 짜릿했기 때문이다.
“으, 으아아악!!”
“히이이익!”
비명에 병사들이 달려왔고 짐꾼들은 다급히 병사 뒤로 숨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저 새끼예요! 저 미친 새끼가...”
“응? 너희들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포는 웃으면서 말했고 그들은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짓던 와중 짐꾼 중 한 명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 비명과 함께 짐꾼들도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가왔던 병사 다섯 명의 머리가 사라져 있음을 알았다.
“어, 어떻게...”
그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에 포는 더욱 즐거워했다.
천천히 다가가려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 나타났다.
카앙!!
황금색 갑옷을 입고 매서운 눈빛을 지닌 기사였다.
그는 잠깐 볼일이 있어 뒤쪽에 왔다가, 이 상황을 보자마자 난입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공격을 너무도 가볍게 막은 포를 보며 기사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너는 누구냐?”
“나? 으음. 그건 일단 저놈들 죽이고 말해주고 싶은데?”
“... 죽어야 할 놈이군.”
기사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색 빛.
그것은 몸을 감싸 올라 신체 강화였고 이능은 자신의 몸 주위로 감싸는 실드였다.
짐꾼들은 다시 안도했다.
기사가 왔으니 이제는 진짜 살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순간 움직인 포의 손에 들려있는 검.
툭.
그 기사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목이 그대로 떨어졌다.
“응? 뭐라고 했어?
아, 이제 말을 못 하겠네.”
짐꾼의 표정은 완전히 절망으로 바뀌었다.
포는 그런 그들을 보며 더욱 즐거워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