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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화 〉 17. 대격변(4) (101/119)

〈 101화 〉 17. 대격변(4)

* * *

“응? 뭐라고 했어? 아, 이제 말을 못 하겠네.”

짐꾼의 표정은 완전히 절망으로 바뀌었다.

포는 그런 그들을 보며 더욱 즐거워했다.

한편, 이곳 행렬을 이끄는 기사 중 총책임자인 디그롭은 뒤쪽에서 들리는 소란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그게... 고,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뭣!? 습격이라고?”

“스, 습격이라고 하기엔... 한 명이고 심지어 짐꾼이었다고 합니다.”

“... 그게 무슨 소리지?”

짐꾼이라는 말에 뭔가 싸움이 일어났나 싶었지만 잠시 후, 예비 기사 중 한 명이 죽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이들이 자신처럼 왕실 기사단이 아니라 예비라 하더라도 특화 레벨 7.

절대 약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런 기사가 겨우 짐꾼이었던 놈에게 죽는다?

이것은 계획적으로 접근한 놈이라는 뜻이었다.

“모두 전투 태세를 갖춘다!”

쉬고 있던 기사들은 그 한 마디에 순식간에 전투태세로 바뀌면서 공기 흐름이 달라졌다.

아무리 예비라지만 이들은 그 어느 영지의 기사들보다도 훨씬 강했다.

디그룹은 기사 70명 정도를 공주 주변에 남겨두고 30명이 움직여 뒤로 갔다.

그곳엔 이미 병사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가운데에는 질질 짜고 있는 짐꾼들과 그들의 보며 웃고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년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잠깐 디그룹은 당황했지만, 주변에 죽은 수십 명의 병사과 그 소년에게서 나오는 위험한 기세에 미간이 좁혀졌다.

“네놈은 누구냐!”

“흐아~ 뭐야 기사들이 이렇게까지 벌써 움직였어?

아무리 나라도 이건 좀 힘든데?

거기다 왕실 기사단 내 하위권이긴 하지만 디그룹이라면 일대일로도 조금 귀찮을 테고.”

“나를 아는가?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허나 감히 혼자서 이런 짓을 저지르려는 것을 보면 어리석기도 하다.”

“아니지~ 그만큼 자신 있다는 것일 수 있지 안 그래?”

포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는 짐꾼들의 머리를 잡았다.

“야야야 정신 차려들.

너희들을 구하러 저기 그 대단한 기사들이 왔다고.”

포의 말에 짐꾼들의 눈빛이 어느 정도 돌아오는 듯했다.

기사 중에서도 디그롭을 보는 순간 다시 희망이 생기려는 순간이었다.

“사, 살려 주...”

푸왁!

그러나 그중 한 명의 목이 그대로 베었다.

포의 진짜 악취미.

절망에 빠진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절망에 빠졌다가 마지막 희망을 느끼려는 순간 목숨을 빼앗는 것이었다.

이윽고 굴러떨어진 그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동자였고 그것을 본 포는 이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하하!!!”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은 짐꾼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 너희들은 이제 됐어.

재미는 충분하니까.”

동시에 짐꾼 네 명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디그룹은 그것을 보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바로 목을 베어버리는 동작 때문이었다.

가벼운 동작이었음에도 경계를 만들 만큼 빠르고 깔끔해 그 실력의 단면을 볼 수 있었기에 디그롭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주변에 둘러싸여 있는 기사는 무려 30명이 넘었고 저쪽 뒤에는 또 70명 가까이 되는 기사가 있었다.

병사들도 200명가까이 되었기에 충분히 막을 자신이 있었다.

포도 디그롭과 함께 기사들만 덤벼도 자신 혼자 이길 수 없음을 알았기에 갑자기 손을 올리곤 말했다.

“아! 혹시 내가 혼자 왔다고 말했던가?”

그때 숲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굉장한 큰 덩치를 지닌 이였고 그는 전신의 붉은색 갑옷과 투구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한 명 더 있어~”

웃으며 말하는 포를 보며 기사 한 명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미친놈이군. 감히 우리 상대로 겨우 둘이서?

디그롭님 당장 저 미친 놈들을... 디그룹님?”

디그룹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그의 눈은 다가오고 있는 덩치 큰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당장... 당장! 공주님을 데리고 도망쳐라!”

“예?”

다가오고 있는 덩치 큰 사내를 보며 더욱 디그롭은 화를 냈다.

“당장!!!!”

***

진 레첼은 갑자기 소란스러움에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 그게 뒤쪽에 무슨 일이 생긴 거 같기는 한데 디그롭님께서 가셨으니 곧 해결될 겁니다.”

“그런가요?”

디그롭은 왕실 기사단 중 한 명이었다.

다른 기사들 역시 예비 기사이기는 하나 최소 특화 레벨 7에 해당하는 이들.

절대 약한 이들이 아니었기에 별 거 아니라 생각하려 했다.

콰아앙!!

“!?”

“헉! 뭐, 뭐야!”

“무슨 일이...”

뒤에서 울리는 굉음에 진 레첼은 화들짝 놀랐고 그때 한 예비 기사가 달려왔다.

“고, 공주님을!! 공주님을 데리고 피해라!!!!”

다급한 그 외침에 진 레첼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꼈다.

“스, 습격입니다.

공주님! 당장 도망가셔야 합니다!”

“...”

진 레첼은 그 말에 멍해졌다.

습격?

공주인 자신을?

감히 누가 한단 말인가.

심지어 이곳엔 특화 레벨 7에 해당하는 예비 기사가 100에 가까웠고 병사도 200명이 있었으며 왕실 기사단인 디그롭도 있었다.

그렇기에 충격이었다.

단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오라버니...”

그리고 저들은 영생교의 인원일 것이다.

영생교의 단독 행동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진 레이널의 동의도 있었을 것이다.

원래 왕족은 잔인하다.

역사로 배워왔지만 그렇지만 평화로운 이 시기에는 더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오라버니도 그렇게 잔혹한 이가 아닐 거라 믿었다.

왕이 된 이후 오라버니는 온화한 표정과 목소리로 걱정 말라며 자신이 제대로 이 나라를 운영하겠다며 말을 했었는데 모든 게 거짓이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살아남을 거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하지만 살아남아서 뭘 할 수 있을까?

카심도 생사불명인 상황.

진 레이널이 왕이 된 이후 자신이 운용하던 정보 단체를 더는 활용할 수 없게 되어서 그 이후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영생교는 자신의 아버지도 그리고 그토록 믿음직스러웠던 카심마저 죽였으니 자신이 과연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순식간에 희망이 사라졌다.

***

타다다닥!

숲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 레첼은 특화 7 레벨의 실력자였기에 기사들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는 없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으아악!

그러다 뒤에서 들리는 비명에 다시금 생기가 잠깐 돌아왔다.

생존의 본능이 그녀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젠장! 공주님을 부탁한다!”

70명이 넘던 예비 기사가 어느새 30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진 레첼은 줄어드는 예비 기사를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눈을 번쩍 떴다.

“그로니아!”

“예!”

“미안해.”

그 말에 그로니아는 고개를 젓고는 웃었다.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그녀는 예비 기사 중 여자로 그녀와 진 레첼은 빠르게 복장을 바꿔 입고는 다섯만 진 레첼을 따르게 했고 나머지 인원은 반대쪽으로 그로니아와 함께 달려나갔다.

멀어져가는 그로니아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던 진 레첼은 굳은 의지로 몸을 돌렸다.

“가자.”

“예! 공주님.”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녀는 역시 뛰어난 판단력을 지니고 있었고 예비 기사들은 그런 공주의 판단에 놀라워하면서 감탄했다.

진 레첼은 어느새 다시 눈에 삶의 의지가 가득했다.

어느 극적인 상황에서도 카심은 해결해왔었다.

자신도 그 사람처럼 어떻게 해서든 난관을 헤쳐나갈 것이다.

“나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거야!”

그렇게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쾅!

자신의 앞에 떨어진 거대한 남자.

붉은색 갑옷을 입고 있는 그의 손에는 누군가의 잘린 얼굴이 있었는데 바로 왕실 기사단 디그롭이었다.

“공주.”

한순간 온몸을 감싸는 공포.

그에게서는 생전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중압감이 흘러나왔다.

“아...”

진 레첼의 눈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

이 자에게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이 자는 아니, 이 괴물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고, 공주님을 지켜!”

“흐아압!”

그들은 일제히 달려들었는데 진 레첼은 멍한 얼굴로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걸음씩 달려가고 있는 예비 기사의 모습들.

이윽고 저 붉은 괴물에게 닿으려는 순간 그 붉은 괴물의 몸이 흐릿해졌다가 돌아왔다.

콰아앙!!

“악!”

진 레첼은 갑자기 일어난 풍압과 충격에 몸이 뒤로 굴러 그대로 나무에 부딪혔다.

퍽!

“윽...”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심각하다는 것.

달려들었던 다섯 명의 예비 기사의 몸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이윽고 천천히 다가오는 붉은 괴물을 보며 진 레첼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이러는 건가요. 세상을 지배하려는 건가요?”

“그것은 너희들이 알 게 아니다.”

“제가 죽는 게 세상을 지배하는 데 의미가 있는 건가요? 겨우 제가?”

“죽는 게 두렵나?”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그는 끄덕이곤 말했다.

“머지않아 이 세상은 변할 것이다.”

“아벨리우스... 세계처럼요?”

“그렇다.

그곳에서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된다.

너희는 선택받지 못한 것이지.”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당신들도 어쩌면 이용 당하고...”

쿠우웅!

“감히. 잠깐 시간을 주었더니 올려선 안 될 말을 하려는 구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기세에 진 레첼의 표정은 더욱 사색이 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건틀렛의 모양은 굉장히 독특했다.

동물을 현상화한 듯한 디자인으로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있었다.

유니크급 아티팩트로 그의 손이 움직이는 순간 진 레첼의 몸이 움직이더니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헙! 커, 커억...”

“수호자 아박투다.

뭐 너와는 만난 적도 있으니 내 얼굴을 알겠지.”

“여, 영생교... 간부...”

“그래. 그게 너를 인도한 이다. 기억하고 죽어라.”

손에 힘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진 레첼의 핏기가 점점 사라져갔다.

“아, 아아...”

왕의 자리에 욕심 낸 말로가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과 함께 주마등이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그 짧았던 시간이 그간 살아왔던 시간보다 더욱 즐거웠으니까.

비로소 나라는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정신이 끊어지려던 찰나였다.

쒜엑! 빠악!

진 레첼은 갑자기 막혔던 호흡이 들어오면서 몸이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커헉, 컥. 허억, 헉...”

다급히 숨을 내쉬며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올리자 어느새 투구가 벗겨진 아박투를 볼 수 있었고 그의 이마에서 피가 살며시 흐르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싶어 자연스럽게 다시 시선이 바뀌었을 때 원인을 볼 수 있었다.

“창...?”

그런데 창을 보자마자 진 레첼의 입과 눈이 커져갔다.

그리곤 다급히 뒤를 돌았을 때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아아...”

아박투 역시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지도 않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네놈이 카심인가?”

아박투의 물음에도 카심은 무시하고 걸어오더니 진 레첼을 보며 말했다.

“늦었나?”

“... 늦었잖아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진 레첼을 보며 카심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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