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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 17. 대격변(6) (103/119)

〈 103화 〉 17. 대격변(6)

* * *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지면이 무너져 내려 떨어진 동굴 속에서 아박투는 꿈틀거리며 돌 하나를 치웠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도 않았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저것은 절대 평범한 몸으로 낼 수 있는 스피드와 힘이 아니었다.

이전의 공격도 마찬가지였는데 이것은 필시 몸에 큰 부담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움직이려는 순간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아찔한 통증에 입을 쩍 벌려야 했다.

“끄, 끄윽.”

상대 몸 이전에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였다.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지만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앞으로 쓰러지며 땅을 집어야 했다.

“하, 하아. 하아...”

“그걸 맞고도 정신이 있다고?

내 팔을 내줬는데.”

위쪽에서 앉아 있는 카심의 오른쪽 팔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아박투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능이군.”

“이능과 특성을 이용해 만든 기술이지.”

“허... 괴물인가”

어느새 몸을 일으킨 아박투를 보며 카심도 고개를 저었다.

“그 몸뚱아리도 어마어마하네.”

아박투는 투구를 벗어 던졌고 머리에는 피가 흥건히 흘러 털어냈다.

그리곤 카심의 어깨를 보며 말했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대단한 공격이었다.

인정하지. 허나... 역시 안타깝군.

네놈이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정말로 내 목은 진작에 떨어져 있었겠지.”

“...”

카심은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몸이 정상이 아니나... 그 팔로 이제 뭘 할 수 있지?”

“그래도 너한테 죽을 거 같지는 않은데?”

아박투는 끄덕였다.

“네 말대로다.

솔직히 당장이라도 눕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도 간신히 서 있는 상태지.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하늘 위로 날렸다.

카심은 날아 올라가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이내 하늘 위에서 펑 하고 터졌다.

“나 혼자 온 게 아니다.”

카심은 어깨를 으쓱이고 바라보고 있을 때 숲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야?

그 아박투가! 수호자의 전설 중 한 명이 도움을 청하다니?”

“위험한 놈이다.”

“아~ 쟤구나. 알베이안이 그토록 칭찬하던 놈이?

와. 그나저나 진짜 놀랍네.

아박투를 이긴 거야?”

포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아박투와 싸웠다면 절대 상대도 무사할 수 없었고 박살 난 어깨를 보면서 여유롭게 걸어왔다.

“그런 몸으로 이제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 할 텐데.

어떻게? 도망치는 게 좋지 않을까?”

포 입장에서 아박투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설사 싸운다 하더라도 저런 몸 상태면 자신 있었다.

카심은 왼손으로 창을 잡았다.

“넌 저놈보다 강한가?”

“아니. 그런데 지금 너는...”

“그런데... 왜 그렇게 여유롭지?”

갑자기 바뀐 분위기.

포의 표정이 굳어갔다.

자신이 보기에도 그 분위기는 정말로 심상치 않아서 침을 꿀꺽 삼켰다.

무엇보다 그 대단한 아박투를 저렇게 만든 놈이다.

“새끼가 긴장하게 만드네.

너 그 손으로 가능은 해?”

“궁금해?”

먼저 카심이 다가가기 시작하자 포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포! 겁먹지 마라! 놈은 지쳤다!”

아박투의 외침에 포는 정신을 차리고는 기세를 내뿜었다.

“새끼가 허세는!”

“...”

카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점점 더 강해지는 압박감에 포는 기세를 내뿜고 있음에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아박투는 그것을 바라보며 다시 소리쳤다.

“네놈 거기서 더 힘을 사용했다가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 재능을 여기서 묻힐 것이냐!?”

“상관없어.”

“...”

일말의 고민도 없는 단호한 대답.

아박투마저 움찔했다.

그 말에 오히려 자극을 받은 아박투는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고 포 앞에 섰다.

“멋진 말이다.

나 역시 신경 쓰지 않겠다.”

솟아오른 그의 기세는 마지막 목숨을 다할 것처럼 하늘 위로 솟아올랐고 포 역시 모든 힘을 끌어냈다.

그리고 카심 역시 초록빛과 푸른빛이 휘감기기 시작하면서 세 사람은 부딪혔다.

***

진 레첼은 다급히 달려갔고 그곳에는 로드리게스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공주님! 빨리 이쪽으로!”

“로, 로드리게스! 카심씨께서 지금...”

“믿으...”

콰아아앙!!!

멀리서 울리는 소리에 로드리게스는 어색하게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 거예요. 하하하. 불사신 같은 놈이잖아요.”

“그렇죠.”

“오히려 공주님께서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저놈이 더 잘 싸울 겁니다.”

진 레첼은 분하지만 그게 맞았기에 끄덕이며 뒤따라 달려갔고 몰래 준비된 곳에서 영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준비했던 마리엘은 진 레첼과 마주하자마자 귀족의 예를 다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마리엘이라 합니다.”

“고마워요.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데.”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선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 말해줘서 고마워요.”

마리엘과 함께 저택 지하로 들어가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갔다.

진 레첼은 자신이 살던 곳과는 수준이 있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애쓴 모습이 보였다.

애초에 허물어진 집이라 하더라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신경 써주니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목숨을 내던지고 지금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고마워요.”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씀해주세요.

연락하고 싶으시면 문 앞에 이 고리를 걸어 놓아주시면 됩니다.”

“네.”

마리엘이 나가고 홀로 남겨진 진 레첼은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다.

“흑, 흑흑.”

살았다.

자신은 죽는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겪은 죽음이랑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강하다 여겼지만 스스로 나약함을 알게 되었기에 그렇게 한동안 쓰러져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

로드리게스는 진 레첼을 데려다주고나서 곧바로 다시 싸우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어지는 전투 소리에도 그곳에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아 젠장...”

그것은 카심이 말해놓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끼어들지 않는 것.

하지만 굉음과 치열해지는 전투에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저쪽도 두 명이잖아. 젠장!”

하지만 무슨 상황에서도 절대 끼어들지 말라고 했기에 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카심이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정확했기에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터라 로드리게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또 30분 정도가 흐른 뒤에 소리가 멈췄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와 달리 대인전의 경우에는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에 로드리게스는 멈춘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제발.”

부디 카심이 무사하기를 바랐고 찾기 위해 안으로 난입했다.

“허...”

안으로 들어가니 완전히 달라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형이 바뀌어 있을 정도였다.

울창했던 숲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고 절벽은 사라져 있었으며 사방으로 온갖 크고 작은 바위가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미친...”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기에 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크기가 얼마나 컸던지 계속 움직여도 전투 흔적이 있었다.

그렇게 차츰 지형의 변화가 다시 숲의 모습이 보일 때 쯤, 저 멀리 널브러져 있는 카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태는 너무도 심각했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야 했다.

“카, 카심!!”

로드리게스는 다급하게 달려갔고 바위에 축 쓰러져 있는 카심을 부축했다.

“아, 안 돼 인마!!!”

마치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었으며 피가 흥건했다.

“시끄러 인마.”

“사, 살았냐! 놀랬잖아!!”

카심은 고통스러움에 인상을 찌푸리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결국, 왼팔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했다.

마음 같아선 왼팔로 소닉붐을 사용하려 했지만 파워는 낮아졌고 위험도는 커졌다.

잘못 사용했다가는 왼팔마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하게 되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몸도 최악인 상황에서 1:2 싸움은 정말로 위험했다.

얼굴과 장비 곳곳이 찢어지고 피를 잔뜩 흘린 상태만 보아도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다가 두 팔은 감각조차 없었다.

“하아, 죽을 뻔했다. 이번엔 정말로.”

“미친놈. 그러니까 왜 그렇게 무리 하냐고! 어!?”

“상황이 그러니까.”

“그걸 왜 혼자서 하냐고! 나는 인마!”

“오버하지 마라.

너는 네 역할이 있다.

이건 내 역할일 뿐이다.”

로드리게스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결국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말싸움으론 자신이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적은?”

“한 놈은 저쪽 한 놈은 저쪽에 있다. 둘 다 시체 챙겨.

입고 있는 장비가 유니크급 아티팩트라 챙겨야 하니까.

무기랑 방패 빼고 형편 없잖아. 저놈 입고 있는 갑옷이 유니크급 아티팩트니 너 써라.”

“알았으니까 우선 너부터 가서 치료받자.”

“아니. 혹 우리가 모르는 놈들에 의해 저걸 뺏길 수 있으니 시체부터 가지고 와.”

“미친놈. 이 상황에서도 어휴.”

질린다는 얼굴로 시체를 가지고 온 로드리게스는 아박투가 입은 장비를 보더니 눈을 빛냈다.

“이, 이거야?”

“그래.”

“조, 존나 멋있다!”

그리곤 당장 뜯어 벗기더니 착용했다.

“우와아.”

방금까지 걱정하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의 반응이었다.

“... 내가 그러라고 했지만.

뭔가 복잡미묘한 느낌이네.”

“으흐흐흐.”

로드리게스는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카심의 말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리곤 자신의 무기와 방패까지 꺼내서 보더니 특화까지 사용하며 좋아했다.

그 모습에 카심은 왠지 너무 얄미웠다.

죽을 뻔할 정도로 고생했는데 저 좋은 장비들을 가지고 좋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 팔만 움직였으면 당장 날려버리고 싶다.”

“으헤헤헤헤.”

그러거나 말거나 로드리게스의 웃음을 갈수록 커질 뿐이었다.

잠시 후, 로드리게스의 등에 업혀서 진 레첼이 있는 곳으로 몰래 들어갔다.

“헉! 카, 카심씨!”

진 레첼은 그런 카심을 보고 너무 놀라 다가왔고 눈물을 글썽였다.

“빨리 이쪽 침대로!”

“더럽혀지니까 저쪽 쇼파로...”

“무슨소리에요 로드리게스! 그런 건 상관 없다구요!”

“아, 예.”

로드리게스 입장에선 공주가 자야하는 곳에 눕힐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침대에 눕혔을 때 카심은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에요?

왜 카심씨가 반응이 없어요? 설마...”

“...”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드리게스에 진 레첼은 그만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찰나였다.

“자고 있어요.”

“예?”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숨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로드리게스를 노려보았다.

“아, 하하... 걱정 마세요.

팔만 조금 상태가 안 좋을 뿐.

운이 없으면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는 하던데...”

“뭐, 뭐라구요?”

다시 눈물을 글썽이던 진 레첼은 당장이라도 손을 만지려고 할 때였다.

“오빠!!!”

문이 벌컥 열리더니 마리엘이 찾아왔다.

놀란 얼굴로 다가와 쓰러져 있는 카심을 보더니 그대로 안으며 심장에 귀를 대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진 레첼은 그런 마리엘을 보며 눈동자가 급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도 행동이었지만 오빠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일이 흘렀을 때 카심은 눈을 떴다.

“...”

눈을 뜨자마자 한 것은 손의 감각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꿈틀.

역시나 지금도 완전히 움직이지는 않지만, 다행히 감각은 있었다.

다만 오른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니 진 레첼이 자신의 오른손을 꽉 잡은 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지났을 때, 진 레첼도 천천히 눈을 떴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헙! 카, 카심씨! 괜찮아요?”

“괜찮다. 계속 이러고 있었어?”

“아... 네. 듣기로는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매일 주물렀어요.”

“덕분에 감각이 돌아왔다.”

“정말요!? 다행이에요.

진짜 얼마나 걱정했는데.

저 때문에...”

“너 때문이 아니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그런데 손을 잡고 있던 진 레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곤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했다.

“죄책감 가질 거예요.”

“뭐?”

“저를... 구하기 위해 왔잖아요.

어떻게 저 때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죄책감을 가질 거예요.”

카심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그녀의 입장에서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서운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주물렀는지 그 곱던 손이 부은 게 보였기에 카심은 피식 웃었다.

“그래 알았다.

너 때문이다.

내 몸이 이렇게 된 건.”

진 레첼은 그때야 웃음을 지었고 더욱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침 창문을 통해 들어온 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쳤다.

“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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