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18. 소용돌이(1)
* * *
소용돌이
높은 단상 위.
하늘하늘거리는 천에 가려진 곳에서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여성이 앉아 있었다.
“...”
그렇게 눈을 뜬 그녀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또 계시와는 다른 일이라.”
처음이 아니었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 한 사람 때문에.
“카심. 그자는 도대체...”
그녀의 눈이 잠시 감겼다가 떠졌다.
그것은 너무도 매혹적인 눈이었지만 그 안에는 혼란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
문득 자신이 느낀 이 생소한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궁금증.
그녀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자신이 그런 걸 느낄 이유조차 없었다.
그랬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인물에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알베이안을 부르도록.”
그녀의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려 왔고 하늘하늘거리는 천을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
알베이안은 아박투의 죽음을 들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 아박투가...”
아박투는 자신과 함께 길러진 수호자 중 한 명이었다.
수많은 인물 중에서 선정되고 선정된 인물.
역대 수호자 중에서도 강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거기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유니크급 아티팩트만 해도 엄청난 능력치를 자랑했다.
그 장비들만 껴도 레벨 7 특화가 레벨 8특화와 싸울 수 있을 정도라 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아박투는 전설적인 존재인 특화 MAX와도 싸울 수 있다는 평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내가 죽었다.
“도대체... 어떻게...”
카심.
그는 분명히 정말로 대단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그때 보았던 어마어마한 공격은 아직도 생생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설마 그 사이에 또 성장했다고?”
분명히 특화 레벨 7에서 8로 되는 시간이 충격적일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박투와 차이는 엄청나야 할 게 분명했다.
절대 그 간격이 겨우 그 시간 안에 절대 이루어질 간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놈은 해냈다.
대단하다고는 생각했고 위험한 인물이라고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두렵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얼마나 괴물이 될까?
역시 빠른 시간 내 죽여야 했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영생교 본부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숲을 지나고 있던 알베이안은 갑자기 멈춰서 더니 순식간에 검을 뽑아 무언가를 막았다.
캉!
검을 들어 막아내자 그 존재는 옆으로 뛰어 피했고 또 다른 존재가 다가와 공격해 알베이안은 다시 검을 들어야 했다.
챙!!
잠시 힘겨루기가 이루어지면서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았다.
“너희들은...”
붉은색 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아~ 역시 선배님이시네.”
“그러니까. 뭐 가볍게 공격했지만.”
이들은 차세대 수호자들로 그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저들 역시 아직 3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특화 레벨 8에 올랐다.
이들에게 쏘아 붙은 자원과 숨겨진 아벨리우스 사냥터를 모두 제공해서 만든 비밀 병기였다.
특히 이번에 제공된 사냥터에는 자신과 아박투 그리고 다른 수호자들이 경험했던 것보다 몇 배는 좋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니 저 나이에 저런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더 카심이 대단했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혼자서 이루어 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들도 부름을 받으셨습니까?”
“예~ 그런데 솔직히 우리들만 있어도 되는 문제 같은데. 쿡쿡.”
“선배님은 이제 쉬세요~ 거 보세요.
아박투 선배님도 괜히 늙은 몸으로 움직이다 그렇게 되신 거 아니에요?
듣자 하니 상대는 듣도 보도 못한 놈이던데~”
그들의 비웃음에 알베이안은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후배님들처럼 실력이 있다면 우리가 든든하지요.”
“푸흡. 아하하!”
“쿡쿡.”
“아이 진짜 이제 늙었으면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소리입니다 예?
솔직히 제가 선배한테 질 거 같지도 않은데?”
씩 웃는 그들을 보며 알베이안은 끄덕였다.
“당연히 훌륭한 후배님들이 있으면 선배인 제가 자리를 비켜드려야지요.”
“뭐야? 그럼 지금 안 비켜준다는 건 우리가 훌륭하지 않다는 거네?”
“어? 그런 소리야?”
여전히 비웃음을 간직한 두 후배를 보며 알베이안은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움직이시죠. 예언자께서 오라고 하셨으니 늦지 말아야 합니다.”
“아아~ 어쩌지? 사실 우린 이미 지령을 받아서 말이야.”
“쿡쿡. 늙은 선배님께서나 빨리 가세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걸어가는 알베이안 뒤로 그들의 비웃음이 더해졌다.
“늙어서 아직도 모르나.
지령을 먼저 받은 우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건데 말이야.”
“우후후.
그런 걸 알면 아직도 저러겠어?”
당연히 들리도록 말했지만 알베이안은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원래 젊을 때 뛰어난 능력을 얻으면 들뜨고 자랑하고 싶기 마련이었다.
잠시 후, 알베이안은 예언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언자님을 뵙습니다.”
“알베이안.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예.”
“데니안과 소니아가 그를 찾아갈 것이다.”
“예.”
“두 사람의 실력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알베이안과 아박투를 넘을 거라고 하더구나.”
“예.”
“그리 생각하느냐?”
“둘의 실력은 분명히 뛰어나나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훗날엔 저와 이제는 별이 된 아박투를 뛰어넘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높은 단상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것을 안 알베이안은 한쪽 무릎에서 양쪽으로 꿇었다.
“두 사람에게 골드와 블랙 파편을 주었다.”
“...”
흔들림 없던 알베이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대도 가지고 싶어하던 거라는 걸 안다.
섭섭해하지 말도록.”
“아닙니다.”
“그대가 가지게 된다면 분명히 그것으로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테지.”
“...”
“그래서 주지 않은 것이다.
아박투를 잃었는데 그대도 잃을 순 없으니까.”
“... 배려에 감사합니다.”
전설급 아티팩트.
그 하나만으로도 영웅으로 추대될 수 있다는 책에서만 존재한다는 물건.
굴욕이다.
그 장비를 받았음에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정말로 큰 굴욕이었다.
허나 반박하지 못했다.
놈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먹어치우는 괴물 중에 괴물이었다.
아박투와 전투 이후 또 얼마나 성장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 있던 알베이안은 이어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갈 것이다.”
그 순간 알베이안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이곳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것은 크나큰 중죄이나 지금은 너무 놀라 어쩔 수 없었다.
“예, 예언자님 그건...”
“그자는 나를 죽이지 않을 거다.”
“그래도 위험합니다.”
“내 죽음은 아직 멀었느니라.”
순간 알베이안은 하지만이라고 말할 뻔했다.
그녀의 말은 절대적인데 방금 그것을 부정하려 했다.
카심은 절대 예언대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었기에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지만 이런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큰 불경인지 알았기에 빨리 머릿속에서 지웠따.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
카심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팔에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움직이지 마요!”
“아니 나 이제 괜찮...”
“안 괜찮아요!”
“이것 봐. 팔도 움직...”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아요!”
“...”
진 레첼의 성화에 결국 그대로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리곤 이리저리 움직이는 진 레첼은 어째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레첼.”
“네?”
“로드리게스는?”
“로드리게스는 지금 칼라리스 길드와 이번에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를 처리하러 갔어요.”
“왕국 쪽은?”
“... 잘 모르겠어요.
알고 싶지도 않고.”
“겨울 일주일뿐이긴 하나 결국엔 네가 돌아가야 할 곳이다.”
“날 죽이려고 한 곳을 제가 어떻게 가요?
갈 생각 없어요.”
“평생 여기 있게?”
“오빠랑 같이 돌아다닐 거예요.”
순간 진 레첼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고는 스스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 그러니까...”
“진 레첼.”
“나도 알아요. 아니까.
그렇게 성까지 붙여가며 부르지 마요.”
입술을 질끈 깨무는 진 레첼을 수건에 물을 적셔 다가오더니 이내 퍽퍽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삐진 얼굴로 아프라며 힘껏 주무르는 모습을 보며 카심은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난 잠시 왕국에 갈 생각이다.”
“예? 거기는 왜요? 무슨 일 하려구요?”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왕국과 관련된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 빨리 돌아오는 거죠?”
“모른다.”
“돌아오기는... 하는 거죠?”
“그것도 몰라.”
언제나 이렇게 매정한 대답뿐이었기에 진 레첼의 표정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 근래 일주일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이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적어도 이 팔이 제대로 움직일 때 가는 거예요.
안 그러면 절대 안 보내줄 거에요.”
“알았다. 그래.”
억지를 부리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을 받아주는 카심을 보며 다시, 진 레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로드리게스가 방문했다.
“카심! 괜찮냐?”
“훨씬.”
“그런데 너는 인마 여기에 공주님 모시라고 만들었는데 왜 네가 하루 종일 누어 있어 어? 빨리 일어나!”
“그런 소리 마세요! 로드리게스!”
장난치며 위로한 것인데 엄청 화난 표정으로 소리 지르는 진 레첼에 로드리게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넵.”
그 모습에 카심은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 또 던전 브레이크가 생겼다고?”
“조금 먼 거리긴 했는데 처리하고 왔어.”
“몬스터는?”
“리자드맨 킹.”
“오 쉽지 않을 텐데?”
“으흐흐흐. 이것들이 있잖냐. 이거 진짜 성능 미쳤다니까?”
“뭔데?”
“안 가르쳐 줘.
가르쳐주면 달라고 할 게 뻔해.”
“내놔.”
“싫어! 내꺼야 이제!”
진 레첼은 오랜만에 웃고 떠드는 카심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뒤늦게 들어온 마리엘이 진 레첼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공주님.”
“마리엘.”
“그게...”
“무슨 일 있으신가요?”
“누군가 공주님을 찾아왔습니다.”
“...”
이곳에 있는 것을 아는 이는 단 네 명.
그런데도 찾아왔다는 것은 대단한 정보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었다.
놀란 진 레첼이 카심을 보았다.
“내가 불렀다.”
“예?”
“너도 아는 사람이다.”
“아!”
그때야 진 레첼도 누구인지 알았기에 내려가 보았다.
그곳엔 후두를 쓰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주웬과 드로얀이었다.
“공주님.”
“공주님.”
“얼른 들어오세요.”
두 사람을 비밀 저택 방까지 안내했고 카심과 로드리게스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 이렇게 움직이면 위험할 텐데...”
“그게...”
드로얀은 머뭇거리더니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몰래 도망쳐 왔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와 주웬님이 공주님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좋지 않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사실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아마 저희 둘은 죽었을 겁니다.”
진 레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