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5화 〉 18. 소용돌이(2) (105/119)

〈 105화 〉 18. 소용돌이(2)

* * *

“저와 주웬님이 공주님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좋지 않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사실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저희 둘은 죽었을 겁니다.”

진 레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그것을 알고 카심님께서 저흴 빼오신 겁니다.”

주웬의 말에 놀라, 카심을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다.

너는 죽지 않았으니 너와 관련된 이들과 어떻게든 내통할 가능성이 있을 테니 살려둘 리 없지.

이것은 아마 영생교가 아닌, 진 레이널이 행했을 것이다.

이미 실행한 이상 완벽하게 모든 흔적을 지우려 할 것이다.”

그나마 진정시켰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참으로 잔혹했다.

남들 부럽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여겼거늘 사실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잔혹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참... 특별한 사람은 없군요.

귀족... 참으로 덧 없네요.

그들이 하는 행동도 결국 사람일 뿐이고.”

허무한 표정을 짓는 진 레첼은 자신도 모르게 아주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만약 왕이 된다면... 이 덧없는 인간을 나누는 계급을 없애버리고 싶어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

그것도 귀족도 아닌 왕족에게서 나올 수 없는 말과 생각이었기에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놀랐다.

“고, 공주님.”

“...”

드로얀과 주웬은 경악하고 있었다.

그 말이 가지는 무게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계급은 이 세계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흔들겠다는 의미는 얼마나 큰 반동이 있을지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드로얀과 주웬과도 제가 친구가 되겠죠?

하긴, 지금도 이제는 공주도 아닌데.

우리 친구 할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공주님은 영원히 공주님이십니다.”

“맞습니다.”

진 레첼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무능력한 저를 믿으셨다가...”

“아닙니다!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 말은 저희를 더 비참하게 하는 말입니다.”

“주웬 기사님의 말이 맞습니다!

오히려 아직도 저희는 공주님을 믿습니다.”

진 레첼은 그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는 저보다는... 카심 오... 씨를 위해서 움직여주세요.”

드로얀과 주웬은 카심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리곤 드로얀과 주웬은 서로 바라보며 끄덕였고 진 레첼을 보았다.

진 레첼 역시 끄덕이더니 이내 두 사람은 카심을 향해 칼을 들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드로얀. 앞으로 카심님을 모실 것을 기사의 맹세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주웬. 앞으로 카심님을 모실 것을 기사의 맹세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그때 카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도 아닌 것들이 기사 명을 어떻게 믿지?”

순간 싸해지는 분위기에 로드리게스가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야이 매정한 놈아.

꼭 이 상황에서 그렇게 해야 해?”

“날 위해 목숨 걸지 말라는 소리다.

계속해서 진 레첼을 지켜.

당신들이 해야 할 역할은 그거니까.

머지 않아 진 레첼이 왕이 되었을 때 그때 다시 번복한다면 기사의 맹세가 우습잖아.”

다시 한번 충격이 감돌았다.

“그게 무슨...”

진 레첼은 입을 벌린 채 카심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다. 아직 기회는 있다.”

“카심 진짜야? 어떻게?”

카심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진 레이널은 왕족이다.

아무리 영생교와 힘을 합쳐다고 한들 자존심이 있지 완전히 그들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다. 영생교 또한 그것을 알고 존중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고.

무엇보다 왕실 기사단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특히 그 중 엘룬의 실력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하다.”

드로얀과 주웬은 놀란 얼굴로 카심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실제 저희도 본 적이 없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카심님께서 아는 게 신기하군요.”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린 영생교와 진 레이널의 사이를 건드릴 거다.”

가장 궁금한 것이 진 레첼이었기에 카심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말이에요?”

“생각보다 간단하다.”

모두 빨리 말해보라는 시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 카심은 진 레첼을 바라보았다.

“진 레이널을 죽인다.”

정적이 흘렀다.

너무 놀랄만한 이야기기도 했지만, 이해를 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러면 오히려 영생교가 차지하는 거 아냐?”

“그 부분 때문이다.”

“응? 뭔 말이야?”

카심은 다시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영생교가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위해 진 레이널을 암살했다고 생각할 거다.

그렇게 되면 왕실 기사단과 왕족 그리고 귀족들의 분노가 한순간 영생교에게 향할 거라는 말이다.”

그 말에 모두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끄덕였다.

“영생교가 깊이 파고든 것처럼 보이지만 귀족들과 왕족들 사이에서 표면적인 게 아닐 거다. 아직까지는.

그들은 아직 자존심이 강한 상태이니 지금이 기회겠지.”

“분명히 놀랄만한 생각입니다.

보스를 쳐서 오히려 그 의심을 심는다는 게.

정말 누구나 쉽게 생각할만한 게 아니죠.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실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웬의 날카로운 지적에 카심도 끄덕였다.

“맞다. 진 레이널을 죽이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니지.”

그러던 와중 진 레첼의 눈이 부릅떠졌다.

얼마 전에 했던 대화가 떠오른 것이다.

왕국에 가야 하는 일이 있다고 했고 그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과 딱 어울리는 말이었기에 진 레첼은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설마... 왕국에 들어간다는 게 그런 의미였어요?

절대 안 돼요!

너무 무모하고 위험하단 말이에요!”

“아니, 그 왕국 방문은 그런 의미가 아니긴한데... 연관이 없다고도 할 수는 없네.

어쨌든 진 레이널을 암살하는 건 내가 할 거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다른 게 있으면 말해라.

그것으로 따를 테니까.”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 인원으로 그 거대한 세력을 흔들 수 있는 것이.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카심은 다시 진 레첼을 보았다.

“미안하지만 너의 허락도 받지 않는다.”

그녀의 오빠를 죽이는 행위였다.

그러나 진 레첼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요.

왕족에게 있어서 가족 같은 건 없다는 것.

그리고 이 더러운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어졌어요.

예전의 전은 그때 죽었고 카심 오빠가 살려준 이후 저는 다시 태어난 거예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확실히 눈빛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카심은 그 결의에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하려 했는데 어째서인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방금... 카심님에게...”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드로얀과 주웬의 말에 진 레첼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주위를 보는데 순간 눈이 번쩍 떠지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이 순간 오빠라고 해버린 것 때문이다.

왕족의 입에서 나올만한 게 아니었고 그 의미가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 알았기에 당장이라도 숨고 싶어졌다.

“아, 아... 그, 그게...”

당환한 진 레첼을 보며 로드리게스는 카심을 보며 씩 웃었고 카심은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라며 어깨를 툭 쳤다.

대충 상황이 다시 마무리 되면서 문에 기대서 대화를 듣고 있던 마리엘이 다가왔다.

“이야 오빠 나 진짜 대화하는 거 지켜보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어.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몰랐는데 뭐랄까... 달랐어.

너무 다른 세상의 일인 것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엄~청 멋있더라.”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다.

그걸 너도 휘말리게 했으니.”

“괜찮아! 오빠라면 무조건 잘 될 거고 그렇게 되면 공주님께서도 우리를 잊지 않으실 거 아니야.”

마리엘의 긍정적인 해석에 카심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 이러지 마. 지금 나 마음 겨우 먹었는데! 흔들린단 말이야.”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이긴.

상대가 너무 쎄잖아.”

마리엘이 진 레첼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확 덮쳐버리는 건데. 아야!”

“헛소리는.”

마리엘의 머리를 한 대 쥐어 박고 있을 때 갑자기 로드리게스는 다급히 나가려고 했다.

“카심! 나는 지금 바쁘니까 간다?”

“어디가는데?”

“비밀이야.”

마리엘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안나 언니 만나러 가.”

그래도 잊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에 끄덕이고 있던 찰나였다.

갑자기 카심의 고개가 휙 돌아가더니 소리쳤다.

“로드리게스!”

“어, 어?”

갑작스러운 카심의 외침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카심은 절대 저렇게 소리 높여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래?”

“뭔가... 좋지 않은 게 온다.”

불길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

골드 파편.

블랙 파편.

전설급 아티팩트로 그 위력은 알려진 게 없지만, 그것을 들고만 있어도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인다고 한다.

골드 파편은 검이었고 블랙 파편은 도끼였다.

“키햐~ 진짜 장난 아니네.”

데니안은 블랙 파편을 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할버드 형태로 디자인이 너무나도 멋있었으며 심지어 자연스럽게 검은색 오로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쥐는 것만으로도 몸속에서 끊임없이 힘이 솟아올라 거대한 산마저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게 골드 파편...”

소니아의 경우엔 흰색과 금색으로 된 아름다운 롱 소드 형태였으며 아름다움을 넘어 고귀하기까지 했다.

골드 파편 역시 금색의 오로라가 흘러나왔으며 역시 그것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어떠한 상대도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아아. 이거 당장 휘두르고 싶은데.

이걸 몬스터 따위에 휘두를 순 없잖아.

너무 아까워.”

그들 앞에는 몇 마리 몬스터가 죽어 있었다.

몬스터의 크기만 해도 10미터가 훌쩍 넘었다.

소니아 역시 골드 파편이 아닌 자신의 무기로 몬스터를 죽인 상태였다.

“저기야.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아 데니안.”

높은 산에서 보이는 거의 점과 가까운 수준의 영지.

아직도 엄청 멀었지만 데니안과 소니아는 특화를 사용했다.

데니안에게서는 노란색이 소니아에게서는 붉은색이 흐르더니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폭발하듯 앞으로 달려나갔다.

두 개의 빛은 엄청난 속도로 그 멀었던 영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고 있던 그들은 갑자기 천천히 속도를 줄여나갔고 이내 평야에서 멈춰섰다.

그들 앞으로 네 사람이 서 있었다.

데니안과 소니아는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이 녀석들인가? 진짜 별거 없잖아?”

“으흥흥? 그러게? 아박투님이 그렇게 대단하다는데 역시 소문에 불과했네?”

“내가 말했잖아.

옛날에 받던 혜택과 지금은 다르다고~ 게다가 지금 우리는 이것 봐.

이것도 있고 말이야.”

“어라? 저놈 인가 본데?

아박투님이 가지고 있던 장비 입고 있는 걸 보니.”

데니안도 그것을 보고는 다시 웃으며 한 걸음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편,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카심과 로드리게스 그리고 주웬과 드로얀이 있었다.

“뭐야 어린 것들이네?”

카심이 보기에도 확실히 어려 보였지만 무기를 보고는 인상을 미간이 좁혀졌다.

“방심하지 마라.

보아하니 두 놈이 들고 있는 무기도 상당해 보이니까.”

“확실히... 저게 뭐야? 내 무기도 멋있긴 한데... 저게 훨씬 멋있는데?

심지어 뭔가 자꾸 흘러 나와.”

저건 카심도 본 적 없었기에 주웬과 드로얀을 보며 혹시 아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두 사람 역시 처음 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보이니 두 분도 조심하세요.”

경고를 하는 사이에 위험해 보이는 도끼를 들고 다가오는 놈을 보았다.

“어이! 네놈이 카심이란 놈이냐?”

그는 로드리게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드리게스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가 자신이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해하고는 씩 웃었다.

“그래 내가 카심이다.”

“그래?”

데니안은 위아래 훑어보더니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죽어.”

양손으로 도끼를 잡는 순간 데니안에게서 너무도 위험한 기운이 풍겼다.

“피해!!!”

놈이 휘두르기도 전 카심의 외침과 함께 네 사람은 거의 동시에 그곳에서 뛰어올랐다.

슈악! 콰아아앙!!!!

뛰어오른 네 사람은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건 이능도 아니었다.

그저 힘껏 휘둘렀을 뿐이다.

뒤이어 착지한 넷은 땅이 갈려 있는 것을 보면서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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