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1화 〉 18. 소용돌이(8) (111/119)

〈 111화 〉 18. 소용돌이(8)

* * *

그동안 역시 많은 정보가 오고 갔으며 영생교와 왕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레온과 계속 정보를 주고받던 카심은 미간이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빠르군.”

왕실의 움직임 속에서 재미있는 게 포착되었다.

“확실하진 않으나 확실히 진 레이널은 영생교를 배척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왕실 기사단의 움직임 사이에서도 꽤 변화가 보입니다.

특히 엘룬 이 자의 움직임이 다소 강제적인 느낌이 듭니다.”

“예. 그자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입니다.”

이전 삶에서 엘룬은 특히 로드리게스를 마음에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로드리게스가 받는 관심에 특히 질투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아무래도 관심에 꽤 목마른 인물로 볼 수 있었다.

확실히 그의 수준은 당시 로드리게스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상당했음에도 로드리게스 영웅 취급받은, 반면 그는 그저 왕실 기사라는 직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를 유추했을 때 엘룬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 분명히 불만이 가득한 게 보였다.

허나 이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곳에 온 것은 계획이 있었다.

다만, 이렇게 되면 계획을 진행하는데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이 기세면 빠른 시간 내, 진 레이널을 살해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올 텐데, 문제는 진 레이널을 죽이기 위해선 본래의 계획이 필요했다.

“우선은 칸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만나러 가죠.”

칸과의 만남은 또 다른 레온의 보금자리였다.

그곳은 길거리의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는 작은 센터였다.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며 뒤뜰로 향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내려갔다.

작은 단칸방이 있었으며 칸이 있었다.

“형님.”

“오! 카심이냐!”

투구를 벗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칸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너... 이 괴물 같은 놈.”

단번에 카심의 성장을 눈치챈 것이다.

심지어 자신과 붙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성장에 칸은 믿을 수 없으면서도 어이없어했다.

“너 나쁜 짓 좀 해봐라.

내 특성 발휘한 상태로 붙어보게.”

“나쁜 짓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크하하! 그런 나쁜 짓이야 나도 많이 하지.

하지만 진짜 나쁜 놈들은 말이야 달라.”

“... 그러고 보니 형님 특성은 나쁜 놈들을 판단한다고 했는데 어떤 조건 같은 게 있습니까?”

“으음... 아니? 그런 건 모르는데?”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영생교를 보고 그는 특성을 발휘했다.

그렇다면 영생교는 악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점이 생긴다.

특성은 아벨리우스 세계에서 얻게 되는 효능이었는데 어째서 영생교를 악으로 볼까?

정말로 저들은 아벨리우스 세계와 관련이 있었다면 저 능력은 저들을 악으로 보면 안 된다.

아이렌의 말이 맞다면 아벨리우스 입장에서는 영생교는 악이어야만 했으니, 아벨리우스에서 받은 특성이 발동한다는 것은 그녀의 말이 맞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했다.

“...”

“왜?”

“아닙니다. 그리고 지하 수로가 필요합니다.”

“지하 수로?”

“예. 거기만큼 지금 당장은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저것들도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을 텐데?”

“그 미로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위치는 알아도 복잡한 미로는 알지 못하니.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미로를 이용한다면 손쉽게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흐음. 과연. 그런데 인원은?”

“지금 당장은 여기 있는 인원이 다입니다.”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이냐?”

카심은 잠시 뜸을 들였다.

“확실해지면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흐음... 재미는 있고?”

“잘 모르겠습니다.”

“네가 잘 모른다라... 그거 또 재미있네.

오케이. 우리 애들도 준비해주마.”

“감사합니다.”

“우리 중에 똘똘한 놈 하나 있으니 그놈이 거의 수로 전부를 외우고 있다.

그놈을 데려다 써. 쓸 만할 거다. 단!”

칸은 씩 웃었다.

“휘어잡아야만 할 것이야.”

“그거야 뭐.”

카심은 전혀 문제도 아니라는 듯 피식 웃었다.

***

진 레첼은 자신의 왕국 아래 이런 거대한 지하 수로가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곳이...”

“허... 저도 얼추 듣긴 했지만, 끽해야 몇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레온도 감탄을 금치 못했고 주웬과 드로얀도 역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구경하며 걷던 그들 앞으로 몇 사람이 서 있었다.

부랑자 길드로 가운데 칸이 없었기에 그들은 카심 일행을 적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가운데 있던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인물이 다가왔다.

“칸 형님에게 들었다.

너희들에게 협조를 하라더군.”

건방진 태도에 드로얀이 인상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아무리 자신들을 도우러 온 놈들이지만 겨우 부랑자 놈들.

감히 기사였던 자신과 심지어 왕녀인 진 레첼 앞에서 저런 태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감히 부랑자 주제에 죽고싶은 것이냐! 네 앞에 서 있는 이가 누구인 줄 알고!”

강한 기세에 그는 움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진 레첼을 바라보았다.

“너에게나 왕족이지 우리에게는 그저 우리 것을 빼앗아가는 도적이나 다름없다.”

“감히!”

“드로얀.”

드로얀이 칼을 뽑으려는 순간 진 레첼이 막았다.

그리고 진 레첼은 카심을 보며 자신이 말하고 싶다는 눈빛을 보냈고 카심도 끄덕였다.

“반가워요. 저는 왕녀... 아니, 진 레첼이라고 해요.”

“...”

그런데 막상 진 레첼과 마주하자 그는 역시나 본능적으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그녀의 신분 차이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이미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가 그대들까지 보살피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니, 저는 왕족으로써 남들과 특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저는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들과도 말입니다.

특별하기 위해 그대들 같은 사람을 만들고 평민들을 만들며 자신들은 귀족 그리고 왕족이라며 신분을 만들었겠지요.”

부랑자들은 진 레첼의 이야기에 서로 조금씩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는... 제가 왕이 된다면 이 신분이라는 것을 없애려 해요.

즉 그대들도 능력만 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충격적인 발언에 부랑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것은 자신들조차 상상한 적 없던 것이다.

그저 지금도 발악하며 싸운 이후 작은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었지 이렇게 신분을 철폐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이미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역사였기에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웃기지 마라!”

앞에 있던 이가 소리쳤다.

“그것을 핑계로 우리 목숨을 내놓아서 도와준다 한들!

당신이 약속을 지킬 것이란 믿음도 없다! 거기다 설사 그런다 한들! 다른 이들이 그럴까?

저 뼛속까지 살이 찐 더러운 놈들이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잖아!”

감히 왕녀에게 소리치는 모습에 드로얀이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서려 했지만 주웬이 이번엔 막았다.

“맞아요. 당장은 쉽지 않을 거예요.

제가 왕에 오른 뒤에도 아주 험난한 길이 되겠죠.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겠죠.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은 불가능할 거예요.”

부정적인 입장에 부랑자들의 얼굴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가 시작이 될 거예요.

저를 시작으로 한 번도 꿈꾸지 못했던 그 세계를 또 다른 이들이 꿈꾸게 될 것이고 앞으로 저처럼 이 불합리함에 싸우려 들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그 세상이 맞이하게 되겠죠.

우리 후세는, 우리 딸과 아들들은... 분명히 다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

결국 그 역시 입을 쩍 벌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흔들림 없는 눈빛.

그녀의 뒤로 황금색 빛이 흐르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느껴졌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꼭 그럴 거라 믿어요.”

부랑자로써 지옥 같던 삶.

자신이 아이를 나아도 똑같은 삶을 살아갔다.

그 삶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희망조차 꿈꾸지 못했는데 이제 그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너무도 큰 행복감이었기에 너도나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부랑자뿐만 아니었다.

주웬과 드로얀은 더욱 자신이 섬겨야 하는 사람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으며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칸이 사용했던 가장 넓은 방으로 초대되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만해도 상당히 복잡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 수로는 미로에 빠져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공간이었기에 숨어 있기에는 정말로 최고의 장소였다.

“제 이름은 웰터입니다.

이곳 수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다른 부분은 모르지만 기억 하나 만큼은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도가 제가 만든 것으로 바로 이 수로 길입니다.”

지도는 정말로 어마어마한 미로였다.

“이걸 정말 다 외웠습니까?”

레온은 부랑자이지만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원래 레온도 부랑자를 무시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방금 공주의 말을 듣고 그 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자신이 지금껏 호기심을 품은 것을 알았을 때 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

‘저게 진짜 왕이다.’

그 누구도 섬길 생각 없던 레온도 이제는 완전히 진 레첼을 왕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을 가진 상태였다.

그랬기에 부랑자를 함부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 웰터는 정말로 대단했다.

자신도 기억에 자신이 있었지만, 이 엄청난 미로를 기억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예. 구석까지도.”

“허허... 이런 인재가...”

레온은 진 레첼을 보았다.

정말로 부랑자들은 자신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이곳에도 엄청난 인재들이 있었다.

“웰터라고 했습니까?

혹시... 나와 함께 일할 생각 없습니까?

그렇다면 당장 평민 신분으로 제가 바꿔드릴 수 있습니다.”

“... 저, 정말 입니까?”

“예. 저 역시 그런 세상을 꿈꾸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지 않겠습니까?”

웰터는 감격하며 레온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레온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윽고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지하 수로에는 많은 부분이 바뀌기 시작했다.

레온과 주웬 드로얀은 각종 지식을 이용해 방어적인 부분을 만들기 시작했고 적이 왔을 때 대비 훈련과 동시에 그들이 헷갈릴 수 있는 장치와 함정까지 설치했다.

그리고 레온의 자본을 이용해 지낼 수 있는 공간은 훨씬 깔끔해졌고 음식도 풍족하게 들여왔다.

레온은 방랑자들을 이용해 좋은 정보를 가져오는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들어오는 정보의 양은 비약적으로 늘어가기 시작했고 상상 이상의 정보의 양에 오히려 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이들을 고용했다.

덕분에 레온이 운용하는 정보 단체는 유례없을 정도로 커졌으며 이 지하 수로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역시 저들의 움직임은 수배 외엔 없습니다.”

“아직 시간이 겨우 7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신경 쓸 거 없습니다.

지금 상황 정도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최소한의 방어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저들도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을 겁니다.

진 레첼님의 위치는 방랑자들에게도 알리지 않도록 하세요.”

“어딜 가실 계획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준비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카심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한참을 지하 수로 안을 움직여 도착한 또 다른 위치에 로드리게스가 방랑자들과 함께 무언가를 옮기고 있었다.

“로드리게스.”

“어?”

“가자.”

“잠깐만. 읏짜!”

아주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어 옮기자 방랑자들은 오오 하며 젊은 녀석이 힘이 장사라며 좋아했다.

“성님들 그럼 고생하시고 전 갑니다!”

친해졌는데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는 지나갔다.

“그런데 어디 가?”

“위험한 곳.”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