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9. 전사의 탑(3)
* * *
“난 그저...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란 말이다.”
***
어느새 10만이 쌓였다.
로드리게스는 아직 7만이었기에 카심은 바로 51층을 도전할 수 있는 권리를 구매했다.
[51층 도전]
3일 뒤 진행됩니다.
본래 51층은 도전자가 많아 최소 한 달은 뒤에 진행되어야 했는데 3일이라 해서 의아했다.
그래서 알아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51층을 지배하고 있는 이 지배자가 아주 괴짜라는 소문이 가득했다.
참고로 각 층을 지배하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의 전투가 있었다.
그 말은 각층마다 단순히 싸우는 게 아닌, 지배자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지배자는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룰을 정했다.
이 틀은 단순히 칼을 맞대고 싸우는 게 아니라 누가 먼저 미로를 지나는 것도 있었으며 속도 대결. 심지어 지식 대결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지배자를 밀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51층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지배자가 너무도 독특한 형태의 대결을 벌였기 때문이다.
3일 뒤.
카심은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사의 탑]
51층 도전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되자 떠오른 창을 보며 카심이 끄덕이는 순간 빛이 번쩍였다.
화악!
다시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보이는 곳은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고 온갖 약재가 보이는 방이었다.
“...”
끝에 문이 하나 있었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더 넓은 실험실이 나왔는데 온갖 괴상한 액체와 물건들이 즐비했고 아주 큰 단지를 휘젓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키키키. 오랜만에 도전자네?”
굉장히 불쾌한 느낌의 남자였다.
“...”
“아아~ 쓸데없는 생각 하지마 키키키.
공격하는 순간 패배가 될 테니까.”
[51층 지배자 클루키]
51층 조건.
지배자를 공격하는 순간 패배.
지배자가 내어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키키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재미있는 결과가 나와서 실험체가 필요했는데 키키.
자~ 내가 내주는 건 이거야.”
국자를 들어 올린 그 내용물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붉은색의 액체였다.
“이걸 먹고 10분 버티면 네가 이기는 거지. 키키키키.”
“포이즌 마법사 클루키.”
“키키. 나를 아나?
그렇다면 네놈은 절대 여기를 통과할 수 없음을 알겠군!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야 안 그래? 키키키키키.”
카심은 다가가더니 주저 없이 놈의 들고 있는 액체를 그대로 마셨다.
마시자마자 목젖부터 시작해서 타오르는 극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카심은 마력을 이용해 그 모든 것을 막아냈다.
그런데 워낙 독이 강렬한 탓에 순식간에 마나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지독할 정도의 극독.
마력을 이용하더라도 10분은커녕 1분조차도 버틸 수 없는 수준이었다.
“키키. 꽤 고통을 잘 참는데?”
“지배자가 유리하나 절대적인 조건을 내세울 수 없지.”
원래라면 당장에 비명을 지르며 죽어야 하는데 10초가 지나도 반응이 없자 클루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움직이면서 벽에 놓여 있는 수십 개의 시험관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아직도 버티는 거지!? 그거는 먹는 즉시...”
“제법... 맵긴 하네.
나라도 쉽지 않겠어.”
이제는 진짜 마력이 거의 바닥을 보였지만 여전히 카심은 여유로웠다.
시험관 중 보이는 검은색 액체.
그것을 집어 그대로 집어삼켰다.
51층 지배자의 조건을 클리어 했습니다.
“뭐, 쉽네.”
“이, 이익!!”
클루키는 실제로 굉장히 까다로운 놈이었다.
이전 삶에서 지금부터 3년은 더 클루키가 51층에서 지배했었을 만큼 지독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클루키는 지독한 악명을 얻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카심으로 인해 지독한 악명을 얻기도 전에 끝나 버렸다.
손쉽게 51층을 클리어했고 한순간 그가 만들어 놓은 이 모든 공간이 사라지며 넓은 들판으로 변했다.
51층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곤 온갖 기능이 있는 창 하나가 떠올랐다.
집을 만들 수 있었으며 아예 공간도 바꿀 수 있었고 환경과 모든 게 가능한 곳이었다.
여기는 정말로 신기하며 재미있는 무한의 공간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지배자가 되는 게 아니었다.
신.
이곳에선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 수많은 카테고리 중에 다음 층 도전이 있었다.
처음에 기회는 한 번 얻게 되며 실패할 경우 도전자를 이길 때마다 다시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카심은 바로 도전을 눌렀으며 이번에도 3일이란 시간이 경과 되었다.
***
52층의 지배자 역시 단순한 대결이 아니었다.
500미터나 되는 곳에 누가 정확히 타격을 하나였다.
상대는 아주 유명한 궁수.
“굳이 활로 할 필요는 없지?”
“으하하! 활로 하지 않고 저 거리를 맞춘다?
재미있네. 그래. 할 수 있다면!”
그는 아주 큰 활을 당겼다.
유니크급 아티팩트.
바람의 활.
푸슉!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너무도 조용했다.
마치 바람처럼 작은 미풍과도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은 너무도 거대한 태풍과도 같았고 그 속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풍의 눈이라는 그의 기술이었다.
날아간 화살은 잠시 후, 500미터에 이르는 과녁에 박혔다.
콰아아앙!!!
폭발하는 것처럼 소리가 들렸고 500미터 밖에서도 먼지구름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럼에도 과녁은 이 지배자층의 특수한 상태였기에 부서지지 않았다.
그리고 창이 떠올랐는데 그곳에는 정확히 가운데에서 아주 살짝 옆에 박힌 화살이 보였다.
“이런이런,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데?
자네는 맞추기라도 할 수 있을까?”
씩 웃는 그를 보던 카심은 창을 가볍게 쥐고는 가볍게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창을 날렸다.
쐐에에엑!!!
“...”
52층 지배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잠시 후, 터져 나오는 굉음은 방금 자신이 한 것보다 두 배는 컸다.
당연히 표적지에는 너무도 정확하게 가운데 창이 박혀서 아직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대결이었으면 저게 당신의 얼굴에 박혔겠지.”
“...”
***
53층은 속도 대결이었다.
“이 신발이 뭔 줄 알아? 전설의 암살자가 신던 신발이야.
특정한 곳에서 더 속도를 낼 수 있게 해주지.
거기다가 내가... 특화 레벨 8의 스피드 강화야.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너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거...”
엄청난 속도로 앞을 달리던 그는 자신이 계속 말하고 있음에도 옆에서 달리는 카심을 보며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흥 내 속도는 이 정도가...”
후아아아앙!
하지만 이윽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카심을 보며 멍하니 다리를 멈추고는 멈춰서야만 했다.
“...”
54층 그리고 55층까지 순식간에 돌파하자 소문이 확 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도전자는 당연히 위층에서도,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은 곧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올라온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빠르게 각 지배자는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57층에 올라왔을 때 아주 높은 단상에 설치된 마치 왕좌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내가 있었다.
확실히 밑에 층 지배자들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크크크. 네가 그 소문의 놈이구나? 뭐 대단하다고는 생각한다.
병신놈들이 한다는 짓이 괴상한 룰이나 제안하고 말이야.”
화아악!
한순간에 그에게서 나오는 기세가 사방으로 가득찼다.
어마어마한 압력.
“여기는 간단하다. 내가 내려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를 쓰러뜨리는 것.
지금까지는 괴상한 룰로 인해 운이 좋았겠지만, 이제부터는 네놈이 절대 올라갈 가능성이 없다는 소리다. 크크크.”
천천히 내려오는 그는 점점 압박감을 내뿜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지배자층과는 확실히 달랐다.
내려오는 그를 바라보던 카심을 보며 더욱 히죽 웃고 있던 그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조금 짜증이 나던 상황이었다.
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알지도 못하는 개소리를 짓거리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좀 풀고 싶었거든.”
“뭐?”
어차피 다음 층으로 향하는 순간 모든 게 회복된다.
즉,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어?”
비웃으며 계단을 내려오던 놈은 갑자기 멈칫했다.
자신이 내뿜던 기세가 삽시간에 집어 삼켜졌고 그 무시무시할 정도로 엄청난 기세는 마치 거대하고 흉포한 괴물의 아가리처럼 계단 밑에서 쩍 벌리고 있었다.
“어, 어어...”
“뭐해? 안 내려오고.”
***
초고속으로 층을 독식하는 카심의 유명세는 이미 왕국 전역을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에도 언급될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저평가가 있었다.
어리기도 했고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사의 탑을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니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강자의 출현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주 맛있는 안주나 마찬가지였다.
“야! 그래 봐야 아직 젖도 못 뗀 애인데.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해?”
“미친놈. 벌써 60층을 지배했는데 그 말이 나오냐?
그리고 57층 지배자였던 카트락우스도 그렇게 강자라고 소문났는데 이번에 패배하고 자기가 직접 말했잖아.
카심 그자는 괴물이라고.”
이렇듯 술집에서는 카심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그러한 이야기는 당연히 엘룬의 귀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카심...”
이전에 수배를 걸었던 놈이다.
영생교에서 했다가 영생교에서 없앴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뭔가 관련이 있었다.
거기다가 순식간에 전사의 탑에 오르는 걸 보면 실력도 있다.
저 정도 실력이 있으니 영생교에서 수배까지 걸었을 것이다.
적의 적은 아군.
이 정도 전력이라면 제법 쓸만할 것이라 여겼기에 엘룬은 자리를 마련해볼 생각이었다.
그 전에 먼저 왕과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카심 그자와 한 번 만나볼까 생각합니다.”
“카심...”
진 레이널은 카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하게 거부감이 드는 놈이었다.
그때 당시 자신을 완전히 압도했던 인간이었다.
이제는 자신은 이 대단한 왕국의 왕이었기에 그런 놈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겼다.
오히려 진 레첼보다도 놈을 생각하면 그런 느낌이 더 심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왕이다.
그 누구도 두려울 게 없는 왕.
그렇지 않아도 영생교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상태인데 그따위 놈에게 이런 거부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웠다.
“내가 직접 이야기하지.”
설마 진 레이널이 직접 대면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왕은 귀족이 아닌 일개 평민과 대면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전사의 탑에만 있는 카심에게 연락을 주는 건 사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지배자층에만 있었기에 그 방법이 쉬운 게 아니었지만 자신은 왕.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