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20. 시작되는 싸움(1)
* * *
시작되는 싸움
“카심님이 과연 잘 도착할까요?”
이름 모를 한 작은 영지.
진 레첼은 아주 평범한 복장과 머리 스타일까지 바꾼 상태였다.
옆에 있는 레온 역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서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고 둘은 자연스럽게 영지의 상점을 오가며 음식을 사서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최대한 조심스러운 위치를 안내해주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위험합니다.
카심님께서 전사의 탑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왕국에서는 당연히 눈치를 채고 움직일 겁니다.
저들의 정보력은 저보다 뛰어나기에... 그저 그 상황에서 카심님의 뛰어난 힘으로 인해 돌파할 수 있기를 바래야 합니다.”
“그래도 카심님이 온다면...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겠죠?”
“... 그라면. 어떻게든...”
레온의 표정은 어두웠다.
제법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패배를 몰랐으며 하는 일은 전부 성공했다.
지하 수로에서 왕국 기사단을 몰아냈을 때는 그 자신감이 완전히 하늘을 치솟았다.
그러나 시작된 진짜 그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부랑자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만들고 막대한 돈을 이용해 순식간에 큰 피해를 입었다.
부랑자 길드는 신뢰로 묶인 길드가 아니었으니 단번에 무너졌고 지하 수로의 비밀까지 파헤쳐졌다.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왕국은 압박했고 결국 도망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이곳은 레온이 지니고 있는 대피처 중 한 곳이었는데 사실 이미 여기도 벌써 다섯 번째 이동한 상태였다.
왕국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변방의 오지의 영지나 심지어 아주 자그마한 마을까지도 그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다가오는 그들의 속도에 레온은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이곳도 머지않아 발각될 정도로 압박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정말로 잡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다행히 카심과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카심이 이곳까지 오는 데, 정말로 쉽지 않았다.
다음 날.
“벌써 냄새를 맡았다고?”
레온은 쪽지를 보자마자 왈칵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여기만큼은 그래도 한 달은 버틸 거라, 생각했는데 한 달은커녕 이대로라면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이었다.
이곳에서 카심과 만나기로 했기에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흔적을 다른 곳으로 뿌려야 했다.
카심이 오기까지는 자신의 루트대로라면 아무리 빨라도 보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3일이 되었을 때 레온은 입을 쩍 벌렸다.
“카, 카심님?”
놀랍게도 카심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빨라야 보름.
그 시간은 왕국이 움직이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들을 모조리 뚫고 직선으로 움직였을 때의 일이었기에 불가능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3일만에 이곳에 나타났다.
그 순간 레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아벨리우스 세계를 이용하신 겁니까!”
“예.”
“허, 과연... 제게 말씀해주지 않은 곳도 있었군요.”
“그렇긴한데 그것은 딱히 돈이 되지 않는 위치였습니다.”
“하하. 정말... 엄청나군요 카심님께서는. 사실 왕국과 싸우면서 후회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갑자기 다시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심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저라고 해서 당장 상황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예. 일단 안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비밀 창고를 이용해 지하로 내려가자 그곳엔 진 레첼과 주웬, 드로얀과 칸도 있었다.
“카심 오빠!”
진 레첼은 카심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달려와 안겼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 행동을 이상하게 보는 이가 없었다.
진 레첼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카심을 보자마자 그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이 동상. 로드리게스는?”
“두고 왔습니다. 녀석은 해야 할 게 있어서.”
“그건 그렇고 상황은 알고 있고?”
“예 형님.”
“어찌할 건가?
우리 부랑자 길드도 거의 해체 수순이여.
씨벌 것들. 애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그나마 레온이 빨리 대처해서 제대로 된 녀석들은 살았지만.”
카심에게 시선이 쏠렸다.
“방법 있기는 합니다.”
“오!”
“뭡니까?”
“역시 동상! 빨리 말해봐.”
“영생교.”
카심의 대답에 레온이 가장 먼저 물었다.
“그들이 도와주겠습니까?
왕과 그래도 더 가까울 텐데. 우리를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척을 진다는 의미 아닙니까?”
“도와줄 겁니다.”
이미 약속한 게 있었으니 절대 거부할리 없었다.
쾅!
“어이 동상. 진심이야?”
그러나 칸은 테이블을 부술 정도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형님.”
“놈들은 악이다. 너도 알잖아? 그런데 그 놈들에게 손을 빌리다니?”
“그럼 형님이 왕국 기사단을 막을 수 있습니까?”
“... 그래도 인마! 그놈들은 아니지!”
“그럼 무엇 때문에 악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내 특성이 정의라고!
이게 반응한다는 건 그 놈들이 악이라는 소리잖아!”
“확실합니까?”
“뭐?”
“그 정의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아벨리우스 세계에서 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하고 있습니까?
왕국? 영생교?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세계의 변화를 보세요. 던전 브레이크.
이 세계에 몬스터가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그저 다른 세상의 일이라 여겼던 그 일이 실제로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 던전 브레이크가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아벨리우스.
그렇다면... 그 정의가 진짜 정의가 맞습니까?”
카심의 말에 칸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생교 쪽에서 제안을 걸어왔습니다.”
다시 카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 레첼을...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뭐!?”
“지, 진짜입니까!?”
“...”
깜짝 놀란 그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거짓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진 레이널도 지금 영생교와 급격히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왕이 된 이후 영생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애초부터 왕이 될 때 까지만 손을 잡았던 거겠죠.”
희소식이었다.
영생교처럼 큰 단체라면 확실히 엄청난 전력이 생기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꼭두각시 아닌가요?”
그러나 진 레첼은 그렇게 반기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왕은 그런 왕이 아니었다.
“아니. 저들은 왕에 관심이 크게 없게 될 거다.”
“예?”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영생교는... 이 세상이 망한다고 보고 있으니까.”
이어진 카심의 설명에 순식간에 다시 분위기가 절망적으로 변했다.
그들도 이제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해야만 했다.
“그래서 영생교는 편이란 소리냐 아니란 소리냐?”
“모릅니다.”
“뭐?”
“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
아이렌은 카심이 전사의 탑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그자도 내 아래에서 움직이게 되었구나.”
카심.
지금까지 한 번도 원하는 데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드디어 그렇게 움직였다.
진 레이널에게 일부러 정보를 줘서 지하 수로를 공격하게 만들었고 알게 모르게 부랑자 청소를 할 때 도움을 주었으며 카심에게 이 상황이 귀에 들어갈 수 있게도 조치했다.
그리고 카심은 결국 전사의 탑에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끝이 아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을 주며 신뢰를 쌓았다.
왕.
그것은 더 이상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영생교는 충분히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진 레이널이 괜히 영생교를 밀어내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 신자는 너무도 많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들은 영생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올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모든 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후후후.”
거기다 며칠이 지나고 역시 예상대로 카심에게 연락이 왔다.
***
신자들이 들고 있는 마차 위에서 아이렌은 카심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진 레첼이 나서서 고개를 숙이자 아이렌은 가볍게 끄덕였다.
물론 주웬과 드로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지만 공주에게 저런 식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큰 중죄였다.
하지만 아이렌은 여전히 내려올 생각은 없었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군요, 공주님.”
그 말을 하면서 다시 카심을 보았다.
“그대는 나와 이야기를 해야겠지?”
카심이 끄덕이자 잠시 후, 두 사람은 단 둘이 마주 앉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는?”
“이곳 대륙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지.
왕국은 이곳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야.
애초에 올 때 텔레포트를 타고 왔으니.”
이곳은 섬이었다.
주변으로 꽤 많은 주민이 살고 있었고 모두가 영생교에서 보살펴주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하기로 마음은 먹은 거겠지?”
“글쎄.”
“흐음?”
아이렌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닌,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은 제법 큰 조건이라 생각이 드는데?”
“그게 당신들에게는 큰 게 아니니까.”
“무슨 말이지?”
“이 세상이 망한다고 생각하는 너희들이 왕 따위는 관심 없지 않나?”
아이렌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나에겐 관심 없는 일이나 그대에게는 관심이 있지 않나?
이 세상이 망할지 아닐지도 믿지 않을 터이니.”
카심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끄덕였다.
“제법이군.”
이것을 빌미로 다른 것을 요구할 생각이었지만 너무도 제대로 받아쳤다.
역시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
아이렌은 그 칭찬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카심은 이 모든 계획에 아이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 영생교는 자신을 위로 향하게 만드려고 했으니 이번엔 막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기도 했고 왕국이 충분히 이 상황을 이끌 만한 전력도 되었고 아주 당연한 흐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살짝 의심도 있었지만, 부랑자 청소를 들었을 때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주 미묘한 감이 뭔가 이 상황에 대한 위화감이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약속을 지킬 건데?”
“그거야 다 생각이 있다.
아마 곧... 알게 될 것이니라.”
***
진 레이널의 이가 갈렸다.
까드득!
“그게 말이 돼!? 갑자기 사라지다니!”
카심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잡을 생각으로 주변으로 모든 위치를 잡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사라질 수가 있냐고!”
“저도 불가능하다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그놈은 공주님에게 향할 겁니다.
나누었던 인원을 다시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진 레첼 일행을 쫓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진 레첼 일행조차 확 사라지고 말았다.
콰앙!
“저놈들마저 이렇게 사라졌다고!
이것은 무조건 누군가 도움을 준 게 아닌 이상 있을 수 없어!”
엘룬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사를 했습니다.
누군가와 접촉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정확히는 알지 못했지만... 정황상 유추할 수는 있었습니다.”
“빨리 말하라!”
“... 아마 영생교 쪽이 아닐까 의심이 됩니다.”
“뭐!?”
진 레이널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아마 저들은 공주님을 이용할 생각인 거 같습니다.”
“감히, 감히!!”
진 레이널은 이제 평정심을 참지 못했다.
“영생교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들을 탄압해라! 놈들은 오늘부터 이단이다!”
“하지만 워낙 신자가 많아 반발이 심할 겁니다.”
“명분이 확실하지 않나!? 왕족인 진 레첼을 납치한 반역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