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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화 〉 20. 시작되는 싸움(2) (119/119)

〈 119화 〉 20. 시작되는 싸움(2)

* * *

“명분이 확실하지 않나!? 왕족인 진 레첼을 납치한 반역자들!”

***

카심은 섬에서 지내면서 사람들을 살폈다.

이들의 행복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해변에서 웃고 떠들며 물고기를 잡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던 카심은 문득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예언자님께서 기다리셔요.”

머리를 가린 그녀는 마치 지구에서는 인도의 여성과도 흡사한 외모와 복장이었다.

그녀는 카심을 보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만도 했다.

시골과도 가까운 이곳에서 카심은 굉장히 세련되었다.

무엇보다 뛰어나고 감각적인 이 장비는 멋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그 특유의 분위기아 강인한 눈빛은 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여성들은 카심 일행에 대해 굉장히 호기심이 많았으며 특히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칸이었다.

이들은 강인한 육체를 지닌 남성을 아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아직 아이렌이 없었고 잠시 후, 텔레포트 장치가 있는 쪽에 큰 빛이 생기더니 잠시 후, 걸어왔다.

그런데 그녀의 옆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바로 데미안과 소니아였다.

데미안은 카심을 보자마자 흠칫하더니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블랙 파편을 들고도 압도적으로 밀렸었으니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소니아는 그런 거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이었다.

카심이 아이렌이 왔음에도 앉아서 있었기 때문이다.

“건방진.”

“그만해. 골드 파편 있어도 못 이겨.”

“흥, 그건 너지. 난 아니야.”

그 사이에 아리렌은 앉았다.

“저들이 움직였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진 레이널은 우리가 진 레첼을 인질로 삼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그러면서 영생교를 탄압하고 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을 것이야.

우린 그동안 신자들을 통해 은근히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라는 생각을 심어뒀거든.”

카심은 설마 그녀가 저런 방식을 뒀다는 생각에 조금 놀랐다.

정확히 놀란 것보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기묘했기 때문이다.

아이렌은 이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 설치해놓은 일종의 함정이었다.

즉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불가능이라 여겼던 진 레첼이 하고자 했던 이 세계의 변화에 희망이 생긴 것이다.

신분 제도의 철폐.

마치, 이루어져야 되는 역사처럼 아주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왜 그러지?”

“아니다.

그래서... 진 레첼이 아님을 말하고 동시에 부모님을 죽인 게 오히려 진 레이널이다라고 말해서 또 흠집을 내겠군.”

이번에는 아이렌이 놀란 표정이었다.

“놀라워. 역시. 단번에 모든 걸 파악해버리네?”

“이전 왕이 죽었다는 증거도 있다는 소리군.”

“물론.”

카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해 줄거라고 믿는다.”

갑작스런 행동에 아이렌은 다소 당황했다.

“뭐하려고?”

“갈 곳이 있어서.”

순간 아이렌의 표정이 굳었다.

전사의 탑에 가려는 것임을 알았기에 다급하게 말했다.

“그대가 함께하지 않으면 이 일은 진행되지 않을 텐데?”

“...?”

카심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아직 우리를 신뢰하는 것도 아니지 않아?

그런데 우리가 뭘 믿고 이 일을 진행할까?”

“...”

아이렌의 요구가 당연해서 거슬리는 건 없었지만 이상하게 아주 작은 위화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충분히 타당했기에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

수많은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영생교 주변을 감쌌다.

“절대 물러날 수 없다! 이곳은 우리가 수호한다!”

“모두 바짝 붙어! 죽어도 겁먹지 마!

결국 우리는 신의 곁으로 가는 거라구!

이렇게 죽으면 축복 받아!”

수백 명이 둘러싸 있는 것을 본 병사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비켜라. 영생교의 고위 인사들은 모두 체포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못 비킨다!”

“영생교는 공주님을 납치한 이단이다.

네놈들이 죽을 수 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평민이라지만 수많은 평민이 보는 이곳에서 이 많은 인원을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거기다 병사들도 평민이었고 저들 중에서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거짓말 하지 마! 영생교가 납치 했을 리가 없어!

그리고 애초에 이전 왕의 죽음에 지금 현 왕이 죽였다는 소리가 있다고!

우리가 모를 줄 알아!?”

“맞아!”

“나쁜 건 영생교가 아니라고!”

“일부로 우리를 탄압하기 위해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지 마라!”

여기저기서 더 소리가 커지면서 소란스러워졌다.

당장 죽이라는 명이 없었기에 당황하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기사 한 명이 나왔다.

왕실 기사단 린이었다.

“비키지 않으면 그 목이 더 이상 붙어있지 못할 거야. 난 분명히 경고 했어.”

웃으며 다가온 린에 그들은 움찔 했지만 그래도 비키지 않았다.

그러자 린은 눈매가 가늘게 변하더니 움직였다.

팟!

툭.

“아, 아아악!”

“꺄악!”

“으악!!”

바로 옆에 있던 이의 목이 떨어지며 피를 쏟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난 경고했다니까?”

잊었던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

저들에게 있어 자신들은 그저 벌레와도 다를 바 없었다.

“자 한 번 더 간다?”

가볍게 한 걸음 내딛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영생교 건물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는데 둘의 옷은 장비를 잘 갖추고 있었는데 예사롭지 않은 복장이었다.

“수, 수호자들이다!”

걸어오는 수호자 한 명이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영생교의 수호자들은 당신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여러분들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물러서세요.

저희가 막겠습니다.”

그들을 본 린은 피식 웃었고 두 수호자 역시 린을 보고는 살며시 눈을 마주쳤다.

수호자는 순식간에 특화를 사용하며 달려들었고 린 역시 그들을 향해 달려들며 공격했다.

콰아앙!!

시작된 싸움은 삽시간에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누구는 영생교를 누구는 왕국을 향했다.

“이런 멍청한!!”

그로 인해서 순식간에 자신에 대한 평판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 진 레이널은 린의 행동에 분노했다.

그러나 엘룬은 그런 린의 행동을 두둔했다.

“린의 행동은 오히려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록 영생교를 제대로 탄압하지 못했으나 놈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진 레이널의 분노는 쉽게 가라 앉지 않은 듯 했다.

무엇보다 최근에 돌고 있는 소문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소문.

“그래...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이렇게 된 이상 당장 놈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것이다.”

점점 진 레이널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눈은 점점 충혈되었다.

“놈들의 영향이 꽤 크고 내부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습...”

“그런 놈들도 모조리 죽여!

반항하는 것들은 전부 다 죽이라고!”

언제 이 자리를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함.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

동생을 죽이려 했던 죄까지 진 레이널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동생인 진 레첼이 아직 살아 있고 그 영생교가 돕는다고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머지 않아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자신도 아버지처럼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이 가세했다지만 영생교가 움직인 것이다.

놈들은 위험했다.

그렇기에 당장이라도 죽여야만 했다.

“네가... 네가 이 왕국을 정화하면 진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모두 죽여란 말이다!”

진 레이널의 말에 엘룬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악명.

그것도 결국엔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영웅이 아닌 그저 이 세상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유명해지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쪽이 더 편하고 마음에 들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영생교와 관련된 것들은... 모조리 죽이겠습니다.”

엘룬은 기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

귀족의 저택에 들이닥친 병사에 나이든 이가 소리쳤다.

“감히 이게 무슨 짓이냐!”

그의 호통에도 병사들은 자리를 잡고 위협하듯 창을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엘룬이 들어왔다.

“엘룬 경?”

“톰프너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다른 분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영생교를 설파하며 왕국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흘렸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난 그런 적 없어! 그저 영생교가 하는 일이 올바르다고...”

“그거면 됐다.”

저벅저벅 걸어간 엘룬에 톰프너는 뒷걸음질 쳤다.

“자, 잠시만 나를 잡는다 하더라도...”

“잡아? 무슨... 죽일 건데.”

“뭐...?”

스윽.

뭔가 지나가는 소리가 울리는 순간 톰프너의 얼굴이 그대로 떨어졌다.

병사들도 설마 저렇게 죽일 줄은 몰랐기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톰프너. 그는 오랫동안 왕국에서 일했던 귀족으로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귀족이었다.

그런 귀족을 저렇게 주저 없이 죽였으니 병사들 사이에서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감지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영생교와 관련된 왕국 내 귀족과 심지어 왕족까지 모조리 죽이거나 잡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영생교 신자들은 더 이상 이전 같은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귀족조차 죽이는데 일개 평민인 자신들은 벌레와도 다름이 없었다.

어느 정도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끔 만들었던 아이렌도 이 정도의 일은 예상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설마 왕국에서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아주 조금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한번 영생교 주위로 병사들이 둘러싸았고 영생교 신자들이 막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영생교 신자들은 불안한 눈빛이 가득했다.

“거, 겁먹지 마라!”

“어, 어차피 사람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면 왕국의 민심도 흔들리기에 할 수 없어!”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영생교 신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고 있던 그때 가운데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좌우로 움직이더니 길을 열었고 그 사이로 황금색 갑옷을 입은 이가 걸어왔다.

“너희들 말이 맞다.”

엘룬이 다가오자 그들의 공포는 한 층 더 커졌다.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지.”

엘룬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더욱 주춤거렸고 마주하는 순간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보던 엘룬은 주변을 보며 말했다.

“자, 보고 있는 평민들에게 보여주어라.”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단을 믿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숙청.

보고 있던 평민들은 그 참혹한 현장에 차마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평범한 신자들은 결국 공포에 못 이겨 살기 위해 도망치려 했지만 도망갈 수 있는 곳은 겨우 영생교 건물의 안이었다.

안으로 도망가지 못한 이들은 밖에서 계속 죽임을 당했다.

“어, 어떻게 합니까.”

­끄악!

­살려줘!

영생교 신부는 밖에서 일어나는 참상에 두려움을 떨고 있었다.

피칠갑을 하고 들어온 신자들은 소리치거나 혹은 기도하기도 했고 그저 벽에 박혀서 귀를 막은 채 떨었다.

“수, 수호자들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겠죠!? 저번처럼...”

“수호자께서는 지금 일이 있어서 여기에... 없네.”

그러나 수호자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하루 전 갑자기 일이 있다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점점 줄어가는 밖에서 들리는 비명이 줄어가기 시작하면서 이내 몇 병사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저벅, 저벅.

왕국에 지어진 영생교 건물 안에 들리는 발자국 소리.

엘룬이 들어오자 단상에 있던 신부는 조심히 말했다.

“이, 이곳은 신께서 보살펴주시는 곳이요!”

“아~ 그래? 그럼 내가 여기서 너희들 죽이면... 천벌 받겠네?”

엘룬은 고개를 돌려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잡더니 그대로 돌렸다.

“사, 살려...”

우드득!

그 모습에 신부는 기겁했고 신부와 신자들은 더욱 두려움에 떨었다.

엘룬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었다.

“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네?

그렇다면... 너희들이 말하는 신이 있는 건가?

아니면... 버린 건가?”

신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엘룬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아~ 아니면... 조금 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다른가?

가령... 네놈을 죽이면?”

“히, 히익.”

엘룬의 검이 움직이는 게 그들의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자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죽은 신부를 보며 엘룬은 다시 한번 위를 보았다.

그러나 역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또 어깨를 으쓱이고는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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