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류세화(1) (3/94)



〈 3화 〉류세화(1)

내가 편의점에서의 실랑이를 겨우 끝마치고 파라솔 의자에 앉아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을  뒤에서 누군가가 한 손으로  어깨를 잡았다.

나는 어깨가 잡히는 느낌이 들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어떤 새끼의 것일지 모를 손목을 잡고 꺾으려 했다.

이 밤에 혼자 청승 떨면서 술 먹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뒤에서 잡는다? 술 거하게 취한놈이거나 아니면 시비 걸러  양아치 새끼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느 쪽이든 곱게 돌려 보내줄 마음은 없었다.

사실 진짜 용건이 있어서 날 잡은 걸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제압하고 물어보기로 했다. 먼저 사람 놀라게 한 게 잘못 아닌가.

‘시비 걸려고 온 새끼면 대충 뼈 안 부러질 정도로만 패고 아니면 놀라서 그랬다고 사과하면 되지.’

그리 생각하며 뇌에서 몸을 움직이라는 명령이 내려오기 직전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여자 특유의 얇고 고운 목소리. 변성기 소년 같은 애매한 소리도 아니고 누가 들어도 여자 같았다.

‘시발 좆 될뻔 했네.’

좀만 더 늦게 말했으면 그 얇을법한 손목을 꺾어버려 이 조용한 밤거리를 여자 비명으로 채울 뻔했다.
아니 왜 여자가 밤늦게 혼자 술 마시고 있는 폐인 같은 남자한테 뒤에서 손을 대는 거지?

덕분에 하마터면  집 주소가 씨발 저 지방 어딘가에 쳐박혀있는 교도소로 변경될뻔했다.

물론 그리되면 이사(당)하기 전에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을 그따위로 추하게 장식하긴 싫었기에 이 거지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 사람에게 짜증이 났다.
그래서 좀 꼴받아 시선도 안 주고 담배 연기와 한숨을 같이 내뱉으며 뭐라고 하려고 했는데 또 그년이 말했다.

“혹시 혼자시면 저도 합석해서 같이 얘기해도 될까요? 아, 함부로 몸에 손대서 죄송해요.”

..?

뭔데 이거.  지금 여자한테 헌팅 당하고 있는 건가?

그것도 어디 헌팅포차가 아니라 동네 편의점 파라솔에서?

'살다 보니 별일이  있네.'

원래 평소였으면 나를 걱정 끼치게 했단 이유로 짜증 나서 꺼지라는 말과 비슷하게 말했을 테지만 슬슬 취기도 돌아 살짝 풀어지기도 하고 동네 편의점에서 헌팅 당하는 상황이 너무 웃겨서 고개를 끄덕이며 합석을 허락했다.
아. 그전에 짚고 넘어갈게 있지.

나는 머릿속으로 집중한  한국어로 천천히 말했다.

“미성년자면 돌아가요. 괜히 그쪽 때문에 잘피고 있던 담배 끄기 싫으니까.”

가시 돋친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내 옆을 지나 앞에 앉으려던 찰나 살짝 흠칫하더니 그대로 앉아버리고선 후드 주머니에서 자기 담배를 꺼내 보여줬다.

“아아 걱정 마세요, 저도 흡연자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으며 다시 담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뒤집어쓴 후드 때문에 많이 가려진 얼굴을 보기엔 글쎄..미성년자 맞는 거 같은데.

얼핏 보이는 피부도 어린아기 같이 뽀얗고 오밀조밀 예쁘게 모인 이목구비에서 학생 같은 싱글스러움이 풍겼다.

그래도 나는 민증까지 확인하면서 성인인지 보려고 하는 착한 어른은 아니었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빠는  이 밤에 위험하게 남자 혼자 술 마시고 있는 거예요? 헐, 심지어 안주도 없이 반병이나 먹었네.”

..나이도 안 알려줬는데 언제 봤다고 오빠라고 불러. 어쨌든 간 나는 괜히 트집 잡고 싶진 않았기에 적당히 대답해 줬다.

“그러는 그쪽도 여자 혼자서 밤늦게 돌아다녀요? 위험하게.”

그녀는 내 말을 듣자 살짝 벙쪄있더니 다시 킥킥 웃었다.

‘도대체 웃음 포인트가 뭐지. 내 말에서 윗길만 한  있었나?’

“오빠 농담 같은  안할 거 같더니 은근히 웃기네요. 그럼 당연히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죠 킥킥.”

'얘도 정신 나갔나?'

아직 어려서 밤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는  어린 소녀한테 나답지 않게 설교가 마려운 걸 참고 다 핀 담배를 끄고선 테이블 위에  정도 있는 소주를 전부 들이킨 뒤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걸 본 그녀는 아마도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후드 때문에 표정도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일단 나는  껄끄러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요?  자신 있나 보네요.”

“당연하죠 오빠. 제 키가 169에서 170 왔다 갔다 하는데  정도면 웬만해서 다 깔고 다니죠. 아까 제   보셨나 보네, 바로 옆으로 지나갔었는데. 사실 합석하자고  것도 오빠가 좀 위험해 보여서 그랬어요 히히.”

진짜 당장이라도 저 앞의 작달막해 보이는 머리통에 꿀밤을 먹이고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었다.

‘나는 10명이 와도 다 이길 자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위험해 보여?  내가 직업이 뭐였는지 알기나 하냐? 

 옛날 그 일이 생각나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그리고 아까  보고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착각한 알바생이나 이 자신감에 차있는 어린 소녀나.

하나같이 제정신인 여자가 없었다.

내가 사람이랑 오랫동안 대화를 단절한 동안 세상이 미쳐 돌아가기라도  건지.


아님 얘가 미쳐 가지고 자기 머리를 벽에 대고 박아대기라도 해서 뇌어딘가에 구멍이 났는지, 물리치료라도 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 진지하게 설교와 함께 꿀밤을 먹일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였다.

“근데 오빠.  궁금한  있음.”

“말하세요.”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려나.

테이블 위에 남아있는 나머지 소주  병을 한 번에  비워버렸다. 괜히 합석을 허락한 거 같다고 후회하며 그냥 빨리 이 대화나 끝내고 집에 가서 쓰러지고 싶었다.

“아니 실연이라도 당했어요? 생긴 것만 보면 오빠가 울렸으면 울렸지 울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

내가 여자를 울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네.

난 스스로 내 몸이 좋긴 하지만 얼굴이  정도는 아니라는걸  알았다. 저렇게 빨아봐야 나올 거 없는데.

“빨리 말하세요. 이제 피곤해서 가봐야  거 같으니까.”

“아..아직 저 궁금한 거 많은데 진짜 생긴 것같이 도도하시네. 일단 오키. 그럼  러시아어 할 줄 아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후드 때문에 얼굴도 잘 안 보일 텐뎅.”

..뭐라는거야. 알긴 뭘 알아. 지금 자기 러시아어  줄 안다고 자랑하는 건가?
점점 취기가 올라와 내 머리가 핑도는게 느껴진다. 슬슬 가봐야 할  같은데. 길거리에 쓰러져 자다가 경찰이 깨우러 와주는 모닝콜 서비스는 받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여자한테 대충 장단 맞춰주고 적당히 대화를 끝낸 뒤에 집에 가 내 좆만한 원룸 안의 낡은 침대에 쓰러져 자려고 다시  번 마음먹었다.

“..러시아어도  줄 알아요? 재주가 많네요.”

“네! 어머니가 러시아 분이시라. 아니 근데 왜 이제 안척해요 오빠는. 계속 내가 오빠 말하는  알아들으면서 한국어로 대답해주고 있는데?”

내가 러시아어로 말하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처음에 집중해서 한국어로 말한 뒤로는 말할 때 신경 쓴다는 걸 까먹었다.
혼란스러웠다. 아니 나는 술 퍼먹다가 내 뇌에 문제 생겨서 이상한 소리가 나가는 줄 알았다.

근데 내가 말하는 이상한 소리가 러시아어 였다라.

내가 평소에 러시아어랑 접점이라도 있었나 생각하던 중 문득..내 미친 사례를 알게 된 학생들이 날 따라 한답시고 술 퍼먹고 번화가 길거리에 토를 뿜어놓은 뒤 길거리 여기저기에 누워있을게 상상이 됐다.
아마 이어폰으로 수능영어 듣기 같은 걸 들으면서 쓰러져 있지 않을까.

갑자기 떠오른 웃기지도 않을 상상.
취기 때문에 정상적 사고가  되는 걸 느꼈다.
왜냐면 원래 여기서  상황에 극도의 혼란함을 느껴야 정상이거든.

병신같은 상상이나 하고있는 걸 보니  뇌를 알코올이 지배하고있는 걸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대화가 이상하면서도 재밌어짐을 느껴 태연하게 말했다.

필터링 안 거치고 말해도 다 상대가 알아들으니 편하기도 했고.

“그래요? 그럼 그쪽 아버지가 한국분?”

“네. 와, 오빠 얼굴 보면서 혼혈일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저랑 똑같이 러시아 혼혈이실  몰랐네. 그럼 오빠는 어느 쪽이 한국분이에요??”

오늘따라 나를 외국인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벌써 2명이네.

“부모님 두 분 다 한국분이에요.”

“킥킥, 아 오빠 이제 농담 그만해요. 한국인이라기엔 오빠 눈 색깔은 의견이 다른 거 같은데? 게다가  얼굴로 토종한국인이라 하면 누가 믿어요. 보니까 피부도 새-하얀데.”

아니 난 그렇게 안 생겼다니까. 얘도 사람 보는 눈이 어딘가 맛 갔구나 하며 일단 진실대로 말했다.

“..진짜  분 다 한국분 맞아요. 밤이라 주변이 좀 어두워서  잘못 보신 거 같은데..”

“와, 그 드립 이제 좀 뇌절이에요. 평소에 거울  보고 다니는 건 아니죠? 아, 잠시만요. 오빠 이거 보고도 계속  드립칠수 있는지 보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셀카모드 카메라를 키곤 핸드폰 화면을  쪽으로 세웠다.

‘뇌절은 자기가 더 치고 있는 거 같은데..어디까지 우기려 하는 거지 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살짝 뱉고 그녀가 테이블 위에 세워놓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당당하게 세워놓고 있는 핸드폰 화면 안을 본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할  밖에 없었다.

'...씨발 뭔데 저건..'

내 죽은듯한 검은 눈동자가 아닌 바로 옆 편의점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아 형형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
내 눈이 그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눈동자도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마치 메두사를  것 마냥 온몸이 굳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눈이 크게 띄어졌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내 이성은 저게 네 모습이라고, 받아들이라고 말하지만 내 본능은,  류세화는 저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의 주인이 나라는걸 인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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