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류세화(3) (5/94)



〈 5화 〉류세화(3)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일어났다.
숙취에 뇌가 가득 절여진 내 머리에선 도끼로 찍는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두 팔을 내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하얬다. 햇빛을 평생 받지 않고  사람처럼.
나는 내 팔을 바라보다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니 알겠더라.

어젯밤은 꿈이 아니었다는걸.

평생 문신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내 몸에 그림들이 가득했다.
윗가슴에서부터 왼쪽 목 중앙까지 있는 여우가 내 턱에 입 맞추려는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고 그 주변엔 검은 꽃들이 여우를 감싸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왼쪽 어깨선을 따라 어깨 끝까지 이어지더니 그 아래로는 또 다른 그림들이 있었다.
내 왼쪽 팔을 완전히 덮고 손목 바깥 뼈까지 그려진 늑대의 얼굴과 또 그 주위에 있는 구름들 사이에 몇 개씩 꼬부랑 지게 새겨진 알파벳 같은 것들.

내 몸에 새겨진 문신을 만져보다 내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겨먹은 얼굴과 황금색 눈.

‘야. 이래선 엄마랑 아빠가  못 알아 보잖아. 아직..못한게 있는데.’

난  날카로운 턱선을 매만지며 실소하다가 멍청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 저 새끼의 얼굴에 왼팔을 뻗어 주먹을 날렸다.

ㅡ쾅! 쩌저적.

내 얼굴이 산산조각남을 봄과 동시에 유리의 파편이 내 주먹을 날린 손가락 단면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렇게 거울을 부수고 난 뒤에 나는 내 씹창난 손가락을 바라봤다.
손에 박혀있는 알맹이 같은 유리조각들 사이로 붉은 피가 내 하얀 손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광경과 내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머리를 식혀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이 비현실적인 일이 나한테만 일어났다고 확신 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손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어디다 뒀었는지 기억도  나는 핸드폰을 집안을 헤집듯이 찾다가 겨우 발견하고 전화번호를 누르기 전 심장이 쾅쾅 울리는 걸 느꼈다.

내 짐작이 맞아서 엄마나 아빠  아무도 내 전화를 받지 않을 끔찍한 상상이 떠올라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이 휴대폰을 잡고 있는 내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액정을 붉게 덮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 했다. 나를 위해서라도, 내 바보같이 착했던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어느새 액정을 흥건히 덮고 있는 피를 대충 문질러 닦아내고 나는 엄마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아줘..아니 받으세요 제발..”

초조해 하면서 기다렸다. 하지만 내 기대를 무참히 배신하고 핸드폰에서는 믿고 싶지 않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하니 내가 찍은 전화번호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우리 엄마 번호가 맞는데. 엄마 언제 번호 바꿨어. 말도 없이.

정신이 나가려고 했지만 현실부정을 하며 내가 미치기 전에 기계적으로 아빠한테 전화했다. 없는 번호였다.

나는 전화가 알아서 끊길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

류세화. 그에겐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 싸우는 것.  덕분에 중학교 때까지 골목대장을 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어쩌다 격투기에 입문하고는 세상을 꿈꿨다.

그렇게 괴물이라고 찬사를 받으며 만나는 상대마다 박살 내며 올라온 22살 최유망주.
세화는 미국 이종격투기 대회진출까지 앞둔 직전 밤까지 운동하고 아들 고생한다고 엄마가 만들어둔 김치찌개를 기대하면서 집에 돌아가던 길에 4명의 남자들에게 강간당하려는 여자를 보았다.

사람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 늦은 밤에 좁고 어두운 골목 안에서 여자는 울부짖고 있었고 세화는 바로 달려가 개새끼들을 바닥에 전부 눕혀버린 후 축 늘어진 여자를 부축하려던 중에 뒤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어깨에 뭔가를 맞아 뼈가 부서진 듯했다.

세화는 바로 몸을 돌려 발로 자기를 공격한 새끼의 대가리를 박살 내듯이 후려 차버렸다.
남자는  떨어진 연처럼 쓰러져 손에서 흉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세화는 여자를 경찰서에 데려다준 후 바로 병원에 가서 어깨를 긴급수술 받았지만 더 이상의 선수생활은 힘들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걸 들은 세화는  까라는  어깨가 나은 뒤에 다시 선수로 복귀했지만 다시는 예전의 위치로 돌아갈  없었다. 이제  날아오르려던 용은 날개가 잘린 채 이무기가 되어 추락했다.

세화의 장래를 보고 다가온 사람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고 그가 짓밟아버렸던 경쟁자들은 상처 입은 사자를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물어뜯어 댔다.
경외라는 감정은 무시로 돌아왔고 질투였었던 감정들은 비웃음으로 바뀌어 세화를 찔러댔다.

세화는 어깨가 한번 박살 났던 몸으론 그의 세계에서  수 없음을 날이 갈수록 느껴갔다.
격투기는 그의 인생의 전부였는데 그게 사라진 세화는 뭘해야 할지 몰랐다.
세화는 점점 술과 담배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몸이 망가진 세화는 결국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피기도 전에 밟혀버린 꽃.

세화는 생각했다. 누가 그랬지. 박수칠  떠나라고.

근데 씨발 나는 박수를 받지도 못하고 떠나버렸네.

나날이 쌓여가는 감정은 분노로 바뀌어 터져버렸고 세화는 결국 부모님 앞에서 하지 못 할 짓을 저질렀다.

와장창-!

'그 걸레 같은 년이 뒤지든 말든! 그냥 지나가야 했는데 씨이바알!! 왜 나만 이렇게 됐냐고!'

사실 세화는  여자의 잘못이 아닌걸 알고 있었다.

눈이 뒤집힌 세화가 부숴버린 물건 잔해 때문에 엉망이 된 집안에서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세화를 보며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차라리 부모님이 너 왜이러냐고, 미쳤냐고 혼내줬으면 했다.
하지만 눈물이 흘러내리는 부모님의 눈에선 걱정과 미안함,차라리 자식 대신 자기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보였다.
바보 같았다. 나도. 저 멍청할 정도로 착한 당신들도.
부모님의 눈물을 본 세화는 자기혐오와 죄책감에 사로잡혀 집을 뛰쳐나왔다.

도저히 부모님을 다시 볼 면목이 없었다.

구해준 여자한테 감사인사를 받고 나서 처음엔 뿌듯해 했다.
옳은 일 했다고 병신마냥 자위하며 버텼지만 정작 세화에게 다가온  보상이 아닌 그의 파멸이었다.

세화는 죄책감으로 나날을 보내며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사과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정작 그의 휴대폰엔 매일 마다 부모님의 걱정어린 문자가 쌓여갔는데도.

***

멍하니 핸드폰을 잡은  내 눈에선 무언가 울컥하고 새어나왔다.
그건 어느새 내 얼굴을 따라 뜨겁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사과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해서 죄송하다고 용서해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내 용서를 구할 대상이 사라졌는데 어디다 얘기할  있을까.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내 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나는 헛된 기대를 품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

“안녕하세요. 외국인 정책 본부 소속 국적과 이신철 주무관이에요. 그..세화씨 어머니가 전에 신청하셨던 모자(母子) 이민 신청이 통과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며칠 안에 이쪽으로 오셔서 신분증 받으시면 되시고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신가요?..혹시 제말 들리시나요?”

“푸하하..네.”

그렇게 당하고도 또 멍청하게 기대한 내가 병신같아 웃음이 나왔다.
나를 세화라고 부른 것도 몰랐다.
내가 대답하고  사람은 여러 가지 얘기하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네네 그럼 알아들으신 걸로 알고..전화 끊겠습니다 다음에 뵐게요.

뚝.

타오르는 불길이 내 감정을 소용돌이처럼 휘감아가는 걸 느꼈다.

끝까지 엄마일지 모른다고 기대한 병신같은 나.

정작 우리 부모님은 사라지고 이 새끼는 이제 행복하게 살아가려 하네.

눈이 싸늘하게 식으며 절로 웃음이 새어나온다.

“..남의 부모님은 없애놓고 지 엄마랑 알콩달콩 살려 해?  꼴은  보지.”

핸드폰을 내려놓고 피가 흥건한 바닥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나는 싱크대 옆 통에 꽂혀 잊는 식칼을 꺼낸  거꾸로 쥐고 찔러  몸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네가  부모님도, 내 원래 몸도 없애버린 거야. 그러니까 너도..당해봐야지.’

핏줄이 터질 듯이 튀어나온 양손으로 잡고 있는 칼의 끝이  목을 파고들기 직전 다시 한 번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이제 더이상 기대 따위는 집어치운 지 오래였다.

운명이 나한테 장난치는 것 같아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다시 칼을 쥔 손에 힘을 주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내려놓았다.
이 몸에 대한 마지막 자비로 전화 정도는 받아주려 했다.

전화 받고 죽으나 이대로 죽으나 변함은 없으니까.

칼을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뒤 바닥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전화를 받았다. 이번엔 또 누굴까.

“오 우리 조카! 나 이모다. 우리 이쁜이 잘 지냈지?”

나는 내 진짜 이모가 아닌 걸 듣자마자 알아차렸다. 아마도 이 새끼의 이모겠지.
 그럼 러시아어로 말할 리가 없으니까.
이 좆 같은 언어는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좀만 더 정보를 캐보기로 했다.

 새끼가 앞으로 얼마나 행복하게 살 건지 알면 복수의 쾌감이 더 높아질 테니.

“예 이모.  있어요. 근데  이민 허가 났다고 연락 왔었는데...”
“아..그래? 언니가 너랑 같이 신청해두고   말하는 거냐..? 축하한다..세화야.”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지만 분명 들렸다. 방금 날 세화라고 부른 건가? 나는 잘못 들었을까 봐 다시   물어봤다.

“이모 방금 저 세화라고 불렀어요?”

“어 세화 너 이제 한국인이니까  한국식 이름으로 불러야지 류..세화? 맞지?”

참..하필이면 만든 이름도 나랑 똑같아? 기가 막히는 우연이긴 한데 그렇다고 동질감에 널 살려둘 생각은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나저나 이제 엄마랑 둘이 잘 살게 돼서 다행이네요.”

분명 내 말을 들었을 텐데 이모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다 대답이 들려왔다.

“너 무슨 소리냐 그게..언니 이미 장례식하고 화장까지 마친 게 언젠데.”
“..예?”

 엄마가 이미 죽었다고?

내 말을 들은 자칭 '이모'는  걱정하며 당장에라도 이쪽으로 올 듯이 전화 너머에서 소란을 떨었다.

“야 류세화! 너 약은 먹고 있어? 이모가 당장 한국으로 갈까?”
“아..아뇨 괜찮아요. 약 먹는걸 깜빡했네요.”
"후..그래. 일단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이모한테 당장 연락하고."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이모를 몇 번이나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성이 돌아온 나는 이 몸을 죽여서 얘한테 복수를 한다는 생각은 접었다. 사실 누가 나를 바꿔버린 건지도 이젠 모르겠다.

익숙했다. 이 집도, 안에 있는 가구들도. 여긴 분명 내가 살던 집이 맞고 어제 일어날 때 입고 있던 옷도 내가 입던 게 맞는데.
문득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났다.

진짜 몸만 바뀌었다?  주변의 모든 것은 그대로  채? 아니 그렇다기엔..우리 부모님도 사라졌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핸드폰."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몸에 찌릿하고 전류가 흘렀다.
곧바로 내가 방금까지 전화 받았던 핸드폰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걸려있지 않았다.

안에 어플의 이름들은 한글이 아니라 전부 다 러시아의 키릴 문자로 되어있었다. 날짜와 날씨까지도.  몸은 그게 익숙하다는  저절로 읽혀졌다.

내가 쓰던 기종과 똑같은 핸드폰이지만 내용물이 다른 걸 확인했다.
 가설에 확신을 더해가며 나는 침대 옆으로가 내 속옷들을 보관하던 서랍을 열어봤다.

역시나..내 속옷이 있던 자리엔 약 성분과 정신과 이름이 적힌 흰 봉투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봉투 겉면에 쓰여진걸 보니 우울증약인  알았다.

다시 약 봉투가 있는 서랍을 닫고 바로  서랍도 열어본 순간 충격을 받아 손도 대지 않고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뒤지려고 그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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