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병원(2)
나는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 류세화한테 이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나이도 꽤 있다. 직업도 의사다. 처음 봤는데도 성격이 온화하고 진지해 보인다.
저 모든 게 종합적으로 갖춰진 사람이 피부 꿰매다가 나한테 말하더니 자기 딸이 징집병으로 갔단다. 그것도 20살에.
..일단 질문 하나. 저 앞의 사람은 정신병자인가?
아니. 애초에 의사인데 그럴 리가 없다. 정신병자가 의사 하는 거 본 적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없다.
그럼 질문 둘. 그럼 나 재밌으라고하신 농담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재미없는데. 애초에 누가 저런 걸 농담으로 말할까. 아무리 끔찍한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저런 건 안 쓴다. 픽업아티스트도 한 수 울고 갈 드립 같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여성 징병제가 시행됐지?’
몸 바뀐 것만 아니었으면 하하 참 재밌으시네요 선생님, 하고 장난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하늘이 뒤집히는 경험을 한 나는 또 뭔가 개같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참 좆같네...어째 처음부터 이상하다 했다. 몸만 바뀌고 그냥 넘어가면 섭하지. 신님은 재밌으신지 모르겠네요. 당신의 어린양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물론 난 무교긴 하지만 어쨌든 한번 빌어봤다. 보통 이럴 때 영화 같은 거 보면 신에게 호소 한 번쯤은 하던데. 나는 몇 초간 조용히 있다가 혹시 몰라 의사의 표정을 봤다.
...역시 딸을 걱정하는 듯한 부모의 눈이다. 많이 봤었다. 저런 눈.
“딸을많이 아끼시나 보네요.”
“하하, 예. 아무래도 자식 가진 부모는 걱정이 될 수밖에요. 이렇게 젊고 잘생긴 청년이 다쳐서 오니까 그만. 딸 가진 어머니답지 않게 괜한 주책을 부렸습니다 이거. 허허.”
의사가 내 손가락을 꿰매면서 살짝 부끄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와 그나저나씨발, 저 말 농담 아닌 거 같네 진짜로. 미치겠네 이거. 뭔 갑자기 여자가 군대를 가.’
당장에라도 뛰쳐나가서 뭐가 또 바뀐 건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참고 조용히 의사가 손을 놔주기만을 기다렸다. 여기서 상처 꿰매고 있는 손을 갑자기 훅 뺐다간 대참사가 일어날 테니까.
일단 조용히 있기로 했다. 여기서 갑자기 편의점 때처럼 일어나서 호들갑 떨면 나만 또 이상한 사람 될 거 같다.
‘하율씨도 아무 반응이 없네. 마치 당연한 사실을 들은 사람같이. 그럼 저게 일반적이라는 건데 도대체 어디까지 세계 상식이 뒤틀린 거지?’
그렇게 내 상처 부위 봉합이 끝나자 의사가 알코올 솜으로 닦아주고 손가락에 붕대를 감아준 뒤에 다 됐다고 말했다. 앞으론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나는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응급실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하율이 따라 나오지 않고 내가있던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율씨?”
“아,넵! 잠시만요, 세화 씨. 선생님이 잠깐 부르셔서 나가 계시면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선생님이 불렀다고? 뭐 주의사항이나 그런 거 알려주는 건가. 하율 씨가 내 보호자인 줄 아셨나 보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밖으로 나오자마자 또 날 찌르는 시선들을 느끼며 하율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하율은 벌써 볼일이 끝났는지 안에서 나오더니 나에게 쏘아지는 시선들을 보며 또 표정을 굳히며 사과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죄송할 건 하율 씨가 아니라 저죠. 근데 선생님이 왜 부르신 거예요?”
“아..그게. 음. 아..주의사항 이요! 그냥 뭐하지 마라 이런 거 들었어요. 제가 세화 씨 보호자인 줄 아셨나 봐요.”
하율은 어딘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그나저나 하율의 말을 듣고 역시 선생님이 뭐 상처 관리법 같은 걸 알려주셨구나 생각하다가 의아함을 느꼈다.
‘그런 거라면 굳이 따로 말할 필요 없지 않나? 하율 씨가 뭘 따로 들은 거 같은데..’
“그런가요? 의사 선생님이 저보고뭐하지 말라 하세요?”
그냥 궁금해서 살짝 캐내듯이 하율 한테 물어봤다. 뭐 다른 말했어도 별 관심은 없지만. 그냥 의아해서. 정작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아..그게요. 뭐라 하셨냐면요..”
“네. 뭐라 하셨는데요?”
하율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내 집 안에선 얼굴이 불난 듯이 빨간색이더니. 참 얼굴색이 많은 여자였다. 색이 쉽게 휙휙 바뀌는 걸 보니 카멜레온 같기도 하고. 하율은 기어가는 목소리를 쥐어짜 말했다.
“..손 잘 씻고. 술 담배 하지 말고..격렬한 운동 하지 마시래요. 네. 그게 답니다.”
그중에 한 개 이상한 게 껴있지만 상식적인 말만 하는 거 보니 따로 들을만한 주의사항 같은 건 듣지도 않은 거 같은데.
게다가 손가락이 이런데 손을 씻으라니. 누가 봐도 그녀가 지어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뒤에서 선생님이 하율한테 나 몰래 뭐라 말한 거 같지만, 그녀가 애써 거짓말하는 게 귀여워서 살짝 웃음을 짓고는 붕대 감은 손을 들어 올리며 조금 놀렸다.
“흐음..손가락이 이런데 손을 씻으라고 하셨다고요? 상처에 물들어가서 덧나지 않을까요?”
오랜 선수 생활로 손을 많이 다친 사례를 본 나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사실 알고 있었다. 내 말을 듣자 그녀는 얼굴색이 사색이 됐다가 또 붉어졌다가 하면서 이리저리 말을 돌렸다.
'오. 저러니까 경극하는 것 같네. 얼굴색이 가면 바꾸는 거 같아.'
“네! 네! 세화씨가 말한게 맞아요! 제가 잘못 들었었네요! 하,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요.”
그러면서 고개를 숙이는 하율이 점점 불쌍해져서 놀리는 걸 그만두고 같이 접수처에 치료비를 계산하러 갔다. 나 대신 직원에게 카드를 내미는 하율의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고 마음에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감사하기도 하고. 치료비가 적은 돈은 아닐 텐데 택시비에 병원비까지 내주다니. 언젠간 제대로 밥이나 사드리기로 했다.
계산을 마친 우리는 응급실을 나와 하율의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고 차가 올 때까지 병원 안 정원 같은 곳의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앉자마자 더운 공기가 밀려왔다. 햇빛이 쨍쨍하면 좋긴 한데 사람 말려 죽이듯 찌는 더위가 문제다.
나는 부산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다가 옆의 하율이 조용히 있더니나를 불렀다.
“음..세화씨.”
“네.”
“요즘 심적으로 뭔가 힘든..가 아니라요. 전부터 타투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부분은 너무 작게 말해서 못 알아들었는데 뒤에는 확실히 알아들었다.
흠, 다시 보니 꽤 퀄리티 높긴 하네. 확실히 칭찬해 줄 만은 해. 나는 내 가슴팍과 왼쪽 팔을 흘끔 보며 인정했다.
“감사합니다. 새길 때 많이 아프긴했죠.”
‘사실 뭐 아팠는지 안 아팠는지 알게뭐야.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넵. 많이 예쁘세요. 보통 남자분들은 문신 같은 거 많이 안 하시던데 정말 취향..음 개성적이십니다. 앗! 그렇다고 남자가 문신하는 거 나쁘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그런데 세화 씨는 역시 문신 하시는 게 좋으신 거겠죠?"
‘좋아했겠지? 이렇게 많이도 지 몸에 그려놓은 걸 보면. 음..아마 좋아했을 거야. 근데 남자가 문신하는 게 왜? 설마 이것도 뭔가 상식이 바뀐 건가?’
나는 살짝 긴가민가하면서 의문을 던졌다. 그냥 대충 대답하면 되지. 일단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좀 알고.
“네. 제가 좀 독특하긴 하죠. 하는 거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데 남자는 문신 같은 거 별로 하는 사람 없나 보죠?”
하율이 뭔가 말 실수했다는 듯 표정이 살짝 침울해졌다. 내 말이 살짝 비꼬는 투였나?
“네..아무래도 그렇죠? 좀 그런 쪽 남자거나 아니면..아니, 이건 아니고. 보통 여자보다 남자분들이 하시는 게 많이 적긴 한데 요즘은 뭐 패션이다, 하면서 다 하는 그런 게 있죠.”
하율은 자기도 남자면서 왜 여자인 자기한테 물어보냐는 듯 표정에 의아함을 띄웠지만 최선을 다해 대답해줬다.
그럼 일단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여자가 군대를 가는 세상인가. 그리고 남자가 문신하는 게 여자보다 꽤나 드문 경우. 생각해보니 아까 봤던 남자들도 여자 같은 말투를 쓰고 여자 마냥 행동했는데. 비록 그게 2명이긴 하지만 우연이라기엔 그동안 겪은 일들이 너무 말도 안 됐다.
‘시발 이거 설마..일단 집에 가서 좀 알아봐야겠는데. 하긴, 이제 와서 더 놀랄 것도 없다.’
뭐가 됐든 몸 바뀐 것보다 더하겠는가. 시발 이젠 뭘 들어도 그러려니 할 거 같다.
이미 난 반쯤 체념한지 오래였다.
그렇게 하율이랑 대화하다가 내 눈 밑의 레터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율의 눈망울은 정말 알고싶다는 듯 내 눈밑만 쳐다봤다.
“전부터 궁금 했던 건데 세화 씨 눈 밑에 그거 있잖아요. 그 ADONIS? 뜻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사실 처음 세화 씨 만날 때부터 궁금했는데.”
‘그러게 뭘까. 무슨 뜻인진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뭐 아무거나 대충 적어놓은 거 아닐까? 야, 아직 안 갔으면 니 눈밑에 끄적인 거 뭔 뜻인지 알려주고 가라.’
일단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티 내기 싫었다. 자기 몸에 새겨진 문신 뜻도 모르는 건 좀 멍청해 보일까 봐.
“음..그건 비밀로 할게요. 사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그래도 나중엔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
하율은 뭔가 흥분한 듯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애써 안 웃으려고 힘써보지만 난 벌써 산책 소리를 듣고 꼬리를 줄기차게 흔들어대는 강아지가 보였다.
‘제일 먼저 알려준다는 게 뭐라고 저렇게 좋을까..’
“아 제게 처음으로..감사합니다.아 근데 세화 씨는 혹시 원래는 어디 나라 사람이세..”
-우우웅.
하율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뭔가를 물어보려 할 때 하율의 핸드폰에서 택시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하율은 뭔가 더 대화하지 못해 아쉬운 듯했지만 조용히 나랑 택시를 타러 갔다. 그렇게 택시 앞까지 섰을 때 하율이 나를 잠깐 멈춰 세웠다.
“세화 씨. 혹시오늘 저랑 같이 커피라도 잠깐 하실래요? 아. 아니다..제가 세화 씨 다친 것도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하..이 여자 왜 이렇게 착한지 모르겠다. 저러다 나중에 사기 같은 거 당하는 건 아닐까? 오늘 하율 한테 들은 사과가 벌써 귀에 내려앉았다.
나는 갑갑함을 느끼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하율이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돼서였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하지만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네요.”
“이런, 역시 아직 많이 아프신가 봅니다. 음..그럼 다음에라도 혹시 가능할까요?”
다음에 같이 커피 마시자는 건가. 하긴 이렇게까지 도와주셨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아까부터 느낀 건데 여자치고 말투가 상당히 딱딱하다.
그래도 공을 던져주기를 기다리는 하율에게 내 짜증 난 듯한 눈매를 풀고 살짝 곱게 휘어진 눈으로 바라봤다. 바보같이 착한 것도 자기 마음이고 말투 딱딱한 거야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하율이 그런 사람이기에 정이 가기도 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나중에 메시지 보낼 테니까 답장 안하시면 안돼요!”
나는 흔쾌히 허락했고 하율은 그에 기쁜듯이 차 문을 벌컥 열더니 나보고 먼저 타라고 안쪽에 손을 뻗었다. 숙녀를 에스코트하는 신사 같은 손짓이었다. 참 한결같이 씩씩한사람이다 생각하며 차에 탔다.
그리곤 택시 안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당장 집에 가서 해야할 일 만 생각했다.
문득 너무 조용해서 옆을 보니 하율은 창밖을 보며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 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 없이 내 집 앞까지 도착했다. 집 정문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섰다가 내가 먼저 인사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율씨.”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에 하율은 기분이 매우 좋은 듯 해맑게 말했다. 아까 차 안에선 또 진지하더니.
“아니 이렇게 가까이서 하루 종일 본 저야..그게 아니라 별거 아닙니다. 나중에 커피 한 잔만 사주시면 돼요.”
“그럴 수는 없죠.”
내 단칼 같이 튀어나오는 말에 그녀는 갑자기 충격받은 표정으로 울상 지었다. 내 의도가 뭔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 너무 짧게 끊어 말했나 본데.
“그럴 수는 없고. 커피랑 오늘 택시비에 병원비까지 다 보내드릴게요.”
그녀는 내 말에 바로 표정이 실실 풀어져 버렸다.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 갑자기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세화 씨.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시면 저한테 언제든지 전화하셔도 돼요. 혼자 품고 계시지 마세요. 어떤 일이든지요.”
하율이 대체 뭘 걱정하는질 몰라서 그냥 멋쩍은 듯 웃음만 지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이런저런 얘기할 사람이 생겼다. 인연이란 참 바람 같다고 생각하며 하율과 헤어졌고 집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