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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한국인이 되었다(2) (12/94)



〈 12화 〉한국인이 되었다(2)

건물안에 들어가자 넓은 홀이 보였다.

 가운데에 있는 안내데스크를 보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한국인도, 그렇다고 러시아인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이 이제 자리를 찾는걸 기대하면서.

나는 데스크에서 어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남직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엇..아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컴퓨터화면에 얼굴을 묻을 듯이 있던 직원은 갑자기 내가 인사를 건네자 놀라며 용건을 물었다.

"신분증 받으러 왔습니다."
"네, 나이랑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직원이 이름을 물어보자 살짝 헷갈렸다. 러시아이름을 묻는 건지 한국이름을 묻는건지.

그냥 두개  말하기로 했다.

"22살, 한국 이름 류세화. 그리고 러시아 이름은 나탈리아 샤샤 입니다."
"아~찾았어요. 15층에서 국적과 찾으시구, 이신철 주무관님 찾으시면 될 것 같아요."

두개  말하는게 정답이었는지 한개만 정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직원에게선 정확한 안내가 튀어나왔다.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호감어린 눈 으로 바라보는 직원을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니 이거 정부건물 맞아? 뭐가 이렇게 호화스럽냐."

사방이 금색이었다. 지금 내가 기대고 있는 엘리베이터안의 손잡이는 빨간천으로 둘러쌓여 호텔을 연상케했다.

일단 층수 버튼을 누르고 거울이나 보다가 15층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온 난 고요한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국적과라고 쓰인 작은 안내판을 발견하고는 문을 열어 들어갔다.

'이 넓은 방에 아무도 없네. 여기가 아닌가? 아니구나. 여기가 맞다.'

잘못 찾아왔나 생각하던 나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아 의자만 덜렁있는 책상의 명패를 봤다.

잘 찾아온  같다.

<이신철 주무관>


'공무원이라는 양반이 자릴 비우고 어딜 간거지.'

아무도 없어 순간 당황했지만 그냥 앉아있기로 했다. 저 책상앞의 손님용 의자에.

털썩-

"이제 좀 살겠네. 밖은 덥고, 거리는 멀고. 시선은 몰리고. 시발 것 진짜."

그렇게 앉아서 피로를 풀던 나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끼익-

"아이고 죄송해요. 잠깐 화장실 갔다오느라."

노화때문인지 조금 변색된 흰머리가 있는 남성을 보았다.
사람 좋아 보이네.  중년남자가 이신철 이겠지.

"아닙니다. 오는 길에 일이  있어서 마침 쉬던 중 이였습니다."
"아이구, 직접 보니 그럴 만도 하네요. 여자들이 가만히 안놔두죠?"


직접 봤다는 건..날 처음 봤다는 소리인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다 안다는 듯이 웃더니 자기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래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내게 건넸다.

"이건.."
"나탈리아 샤샤 씨에서, 세화씨로 바뀐 신분증이에요. 고생 많았어요."

그는  봉투를 내게 쥐어주고 격려의 말을 보냈다.
그리고 아직 할말이 많이 남아있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이네요. 한국어는 언제 배웠어요? 되게 잘하네."
"러시아에 살때 조금 배워뒀습니다."

아 그것 때문에 안내해 준 직원이 신기하게 본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하네. 외국인이 한국말 기똥차게 하는데 안놀라고 배기나.

"그래요? 조금 배운 것 치고는 한국인이라 해도 믿겠는데.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이렇게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 둬서."

저 마지막 말에 살짝 호기심이 들었다.

여자한테는 예쁘다는 말을 쓰는데 남자는 두  섞어서 쓰는 사람들이 가끔 보이네.

핸드폰으로 대충 찾아보긴 했는데 아직 완벽히 이 곳을 이해한게 아니라 가끔 의문스러운게 튀어나왔다.

"주무관님. 제가 아직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그러는데 왜 남자한텐 예쁘다는 말과 잘생겼다는 말을 동시에 쓰죠?"
"아~세화씨가 모를만도 하네요. 보통 나이많은 사람들은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 써요.
뭐 요즘 젊은 남자들은 예쁘다는 말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그냥 한국어의 살짝 옛말 정도로 보면 된답니다"

'아 그런거였나. 그냥 둘다 잘생겼단 소리네.'

나는 답을 듣고난 뒤에 슬슬 집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가봐도 될까요?"
"잠깐만 있어줄래요? 굳이 아픈 상처 꺼내긴 싫지만 알려는 줘야 할  같아서."

그는 날 상처입은 짐승을 보는 듯 하더니  아래서 봉투를 꺼냈다.

"또 제가 받을게 있나요?"
"네..이건 세화씨 어머니의 신분증이에요. 사실 일단 만들어만 둔거고 효력은 없어요. 그냥 음..사진이라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제 어머니의 신분증이요?"

뭘까. 이 몸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일단 봉투를 받고 혼란에 차서 물었다.

"좀 더 얘기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모르고 있는 것도 전부 다."

이신철은 생각했다. 역시 모르고 있었다고.

'그런일 겪은  치고 너무 담담하다 했지..'

세화가 그렇게 묻자 신철은 모든 걸 알려주기로 했다.
그게 세화에게 불행을 불러올수 있어도.

"세화씨 한국온지 얼마나 됐죠?"
"한..몇달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화는 정답을 찍듯이 애매하게 답했다.

"세화씨. 보통 몇달 정도로는 이민허가가 안돼요. 특수한 경우 아니면. 근데 세화씨 같은 경우는 특별한 케이스였어요."

이신철이 여느때처럼 평범하게 출근한 날.

한 금발의 여성이 사무실의 문을 박살내듯 들어와 낯선 외국의 언어로 사정했다.
무슨말인지 못 알아들었던 신철은 겨우겨우 대화해가며 여자가  하고 싶은건지 알수 있었다.

자기아들과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한국 국민이 되어 영원히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그래서 천천히 설명해주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니 자기는 돈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다했다.
자신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고, 기부하면 바로 되지 않냐 하며 평생 모아온  같은 돈을 한국에 냈다.

그녀는..어딘가 많이 아파 보였다. 겁에 질린듯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라 특이하게 이민을 신청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들었다.

아들과 같이 살던 집에서.

그렇게 이민은 흐지부지 되려다가 그녀의 아들한테라도 국적이 돌아가게 된거다.
새로운 땅에서 아들과 살아가려던 그녀가 기껏 다 와놓고 죽은게 안타까워서 신철이 조금 도와준거고.

세화는 신철의 말을 다 듣고는 충격에 빠져 까딱거리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아니 씨발..뭔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그게 전부 사실입니까?"
"네. 원래라면 세화씨도 이렇게 빨리는 신분이  나왔을거에요. 어머님이 자기 아들은 집에서  나오고 있다고 통사정을 했거든요.
세화씨를 실제로 본 적도 없고..신청한 본인도 사망하고. 어쩌면 국적이 인정 될 때까지 세화씬 아무 것도 못하고 있었을 거에요.
근데 그렇게 되면..세화씨가 러시아로 안돌아가고 못배겼겠죠?"

 말에 앞의 사람이 편의를 봐줬다는걸 알아챈 나는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하하. 그런데 학교는 아직 안 다니죠?"

"예? 아..대학교는 아직.."

"네? 하하, 아니요. 고등학교요. 세화씨 한국 나이로는 이제 18살이니까. 음..보자."


?

'뭔소리야 저게. 아니 왜 나이는 22살에서 18살로 하락했냐. 샤샤야..왜 나이는 나보다 어리고 지랄일까?'

얼빠진 듯 있는 나를 두고 신철은 뭔가를 검색하더니 말했다.

"아. 세화씨 나이가 18살이니까 고등학교는 의무적으로 나와야해요. 이건 어쩔수 없는 부분이고 학비는 지원될꺼니까 걱정말구요.
그 다음에..세화씨 사는곳이..강남? 아 이래서 어머니가 그쪽에 집을 구하셨구나."
.
.
.
그러니까 전부 다 정리하자면 나는 18살이니까 고등학교를 가야한다. 내가 사는 곳 근처의 학교에 의무적으로.

 다음에 특수이민지원금으로 한달에 100만원은 내 통장에 꽂힌다. 이건 좋은데..

'22살 쳐먹고 고등학교를 다시 가게 생겼다. 너 덕분이다. 정말 고맙다 나탈리아 샤샤. 이 씨발아.'

나는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채 있다가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신철이 드디어 말을 끊었다.

"일단 입학통지서는 집으로 갈거에요. 아시겠죠?"
"예.."

멘탈이 터진 나는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정작 중요한 건  들은 것 같으니 이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요, 어서 가봐요. 나중에 또 궁금한  있으면 전화주고."

그렇게 건물에서 나와 길가에 세워져있는 택시에 탔다.
운전석에 앉아 자고있던 기사는 문이 갑자기 열려 놀랐는지 나를 보다가 진정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스쳐지나가는 풍경만 보며 복잡한 심경을 달랬다.
네가 무슨 삶을 살았는지 오늘 따라 궁금해지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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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은 세화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때 보였나요?"

통화너머의 사람은 다짜고짜 알수없는 물음을 던졌다.

"..많이 충격받았었나 봐요. 자기 어머니가 눈 앞에서 돌아가셨는데 기억도  하더라구요.
근데 당신..이렇게까지 세화군을 도와주는 이유가 뭐죠? 사실 이민 지원금같은 건.."

질문을 들은 그녀는 어딘가에 물어보는 듯 잠깐 음소거를 했다가 신철에게 대답했다.

"전에도 말했었잖아요. 저는 샤샤가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마음 같아선 몇억이라도 주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네요."

도무지  말을 이해할수가 없는 신철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일단...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약속 지키길 바랄게요, 당신."



"걱정마세요. 곧 볼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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