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입학통지서(1)
중세와 르네상스, 세계대전을 거친 세계.
그 많은 시대를 보내는 중에도 현대적인 교육제도가 마련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 아이러니함.
그러나 이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문명국이라면 갖춰야 할 필수 건물이 되었다.
국가에서 아이들을 유능한 인재로 길러내고 사회에 보탬을 할 수 있게 만든 학교라는 존재.
그러나 처음엔 그 기능을 잘 하는듯했으나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한 게 많았다.
평화로운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자라나야 할 초식동물 중에 돌연변이가 나타난 것이다.
풀을 먹으며 살아가는 동물, 아니면 녹색의 잡초를 소화하지 못해서 꽃을 먹어야 하는 초식동물들 사이에 이빨이 길어지고 발톱을 세우는 동물들이 생겼다.
그들은 풀 대신 그걸 먹는 동물을 잡아먹었고, 꽃을 짓밞아 먹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는 법일까.
초식동물 중에도 코뿔소처럼 강한 개체가 나왔다.
하이에나들의 얄팍한 이빨론 그의 가죽을 뚫을 수 없었고 그에 점점 기세가 시들어가는 듯했으나 그들은 방법을 찾았다.
1대1이 안 되면 쪽수로 하면 된다고.
오만가지 잡종 육식동물을 불러들여 하나하나씩 코뿔소를 사냥하면서도 어미가 지키고 있는 새끼 코끼리는 피해갔다.
그중에서 하이에나들은 제일 강한 육식동물 옆에 몰려들어 그가 먹고 남긴 살을 물어뜯는 게 지금의 초원이었다.
물론 수백개의 광활한 초원 중에서 그런 일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미나가 다니는 학교는 살짝 그런 야생의 면이 있었다.
그리고 미나는 지금 자신의 코뿔소에 하이에나의 줄무늬를 그리고 하교 종이 치자마자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른 하이에나들과 함께.
"찍ㅡ. 아 학교 존나 재미없어서 뒤질 뻔 했네. 피방 갈 사람?"
딱 봐도 건들거리는 여자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병신. 이 년 티어도 낮으면서 틈만 가면 피방 가재."
"뭐 시발. 실버면 잘하는 거지. 엄마 잘 살아계시지?"
품격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여학생 사이에서 미나는 묵묵히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야 미나. 너 피방 갈 거냐?"
"아닝? 나 공부해야 해서 못 갈듯?"
"아니 씨발 크핰핰, 말투 좀 고치라고 미친련아. 언제봐도 씹레즈 같네."
"아니 저년은 시발, 맨날 뭐하자 하면 공부한대. 친구 빠꾸치고 혼자 전교 순위권 들어가면 좋냐?"
'당연히 좋지. 내가 니네처럼 집안이 빵빵하면 공부하겠니?'
미나는 저 둘에게 한심함을 느끼고는 연기를 뿜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건수를 발견했다는 듯 장난치듯 비꼬아댔다.
"그러게. 와 이년 할 거 다 하면서 어떻게 공부까지 하는 거지? 배신감 뒤지네 미나."
"설마 미나.. 너 요즘 아랫도리로 밤에 이사장 죽여버린다는 소문이 있어."
그녀들은 그렇게 서로 주고받더니 발까지 구르며 웃음을 터트려 댔다.
한 명이 웃던 중에 담배 연기가 목에 걸렸는지 기침을 토해냈다.
"야, 너 근데 걔랑 아직도 사귀냐?"
"누구? 아, 윤성이? 아니 먹다가 질려서 버렸어."
"와 이 년 개쓰레기네. 그렇게 함 먹어볼라고 들이댈 때는 언제고. 그럴 거면 나 주지."
자기들끼리 또 한참을 주고받다가 미나에게 권유했다.
"야 미나. 오늘 남자애들이랑 자파 있거든? 걔네 존나 걸레야. 니가 오면 아무나 다 따먹을 수 있는데 올래?"
"와 존나 부럽다 미나. 솔직히 내가 너였으면 진작에 동정폭격기 전직했다. 애미 씹. 안 가진 게 뭐냐? 도대체가 왜 아직도 아다인지 이해가 안 가네 이년은."
미나는 그때의 일을 살짝 후회했다.
조용히 공부만 하다 졸업하려 했는데 얘들이 말 걸어서 어느 순간 미나도 술담배를 같이 하고 있었다.
공부하는 데 방해되기 싫어 무리에 꼈는데 이제는 본래 목적까지 위협당할 지경.
최대한 해맑게 거절하려고 안면근육을 움직인 순간 미나에게 전화가 왔다.
ㅡ띠리링! 띠리링!
미나는 발신자를 확인한 후 둘에게 조용하라는 듯이 검지를 입술 위에 올렸다.
"쉿. 그 언니당."
"그 언니가 누구..아. 이시아 언니?"
"너 그 언니랑도 연락하냐? 개 잘 나가네."
미나는 다시 쉿쉿거리는 뱀소리를 낸 뒤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시끄럽게 떠들던 그녀들은 침묵에 빠졌다.
"네~시아언니."
"엉 미나야. 언니가 저번에 말한 사람 찾아봤니?"
미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 언니가 뭘 말하는지 깨달았다.
'아니 제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구해요.'
"넹..찾아봤는데영. 진짜 없어서 연락 못 드렸어요."
"그래? 하..점점 남자들이 미쳐가서 큰일이다. 맨날 일 터지면 나와보는데 다 남자야."
"넴..이해해요 언니. 그래도 계속 찾아는 볼게요."
"알았어. 언니가 말한 수준까진 안돼도 되니까, 같은 남자 정도만 이기고, 멘탈 좀 쎈사람. 오키?"
'이 언니 고등학생한테까지 연락하는 거 보면 진짜 절박한가 보다.'
"네, 언니."
"그래, 공부 열심히 해라. 너무 부담 갖진 말고."
이미 부담 다 줘놓고 무슨.
일단 미나는 전화를 끊고 다 핀 담배를 껐다.
"야, 그 언니가 뭐래?"
미나는 귀찮아서 대충 말했다.
그걸 듣더니 그녀들은 자기가 낄 급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또 담배를 꺼내 들며 줄담배를 피웠다.
"야 혜민. 이번에 우리 반으로 전학생 오는 거 들음?"
"어 그거 내가 담임한테 몰래 듣고 니한테 말해준 거 같은데. 암튼 알지. 남자라던데. 담임이 나한테 걔 오면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
"킼킼 아 시발 개 웃기네. 잘 부탁하긴 뭘 시발. 바로 니가 따먹을 텐데."
미나는 더 이상 대화에 영양 가치도 못 느껴 가방을 멨다.
전학생이 남자든 말든 알게 뭐야.
"야. 이제 공부하러 가냐?"
"와 친구버려? 친구버려? 배신 지리네."
"아 먄먄. 나중에 부르면 진짜 갈게."
미나는 하이에나들을 내버려두고 그 장소에서 벗어났다.
역시 자신은 풀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 초원의 초식동물은 다른 땅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하이에나들은 아무도 없는 황폐한 초원에서 굶어 죽어갈 거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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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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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 나온 내 신분증을 만지작거리며 회상에 빠졌다.
이 쪼만한거 얻자고 얼마나 많은 인내와 시련을 겪어야 했는가.
'그나저나 이젠 진짜 한국인이다.'
나는 다시 얻은 국적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지금 어머니의 신분증을 꺼냈다.
그렇게 처음 본 나이든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매우 아름다웠다.
이 얼굴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특히 눈을 아주 쏙 빼닮았네.'
금발에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눈.
이 몸이 이제 내 거라 그런지 진짜 어머니 같은 느낌이 문득문득 들기도 하고.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다가 서랍 안에 고이 집어넣었다.
'아들 눈앞에서 그렇게 떠나고 싶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까지 고생하셨습니다. 푹 쉬세요 이제.'
잠깐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찾았다.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 집 근처 골목으로 가서 한 까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내 붕대 감긴 손가락을 봤다.
'맞다 씨발..아 담배 피면 안 되는데. 근데 못 참겠다.'
항생제도 꼬박꼬박 먹고 있고 별일 있겠는가.
술만 안 먹으면 되지 뭐.
그렇게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구름을 들이마셨다.
'하..살 거 같다. 이게 인생이지. 절대 못 끊겠다 이젠.'
그렇게 한 반쯤 피우면서 인생을 맛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가방을 멘 한 여학생이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선이 내가 있는 곳과 겹칠 것 같아서 일단 담배를 끄려고 했다.
"아~오늘 공부할 시간 다 뺏겼네."
그 학생이 혼잣말하는걸 듣는 순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 같은데..?
나는 담배 끄는 것도 잊고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나같이 새하얀 피부에 오뚝한 콧날.
은은한 호수같이 푸른 눈동자에 찬란한 은발의 단발머리.
여자치고 꽤 큰 키인 170 정도 돼 보이는 슬랜더 체형의 미녀.
그런 그녀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도도해 보이는 인상과 맞지 않게 입을 삐죽이면서.
세화는 긴가민가 하며 다른 생각에 빠져 걸어오는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미나도 그걸 느낀 듯 세화를 보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러면서 갑자기 기억난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물음표를 띄웠다.
"어...?"
세화도 뭔가 알아낸 듯 한숨과 함께 왼손으로 앞머리를 넘겼다.
미나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때 그 편의점! 그 사람 맞죠?"
"네.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근데..그 교복은?"
미나는 아차 했다.
'나 지금 교복 입고 있었지.'
세화도 미나의 옷차림을 보곤 생각했다.
'얘 많이 노는 애인가 보네.'
미나의 복장을 보니 팬티가 보이지 않을까 걱정 될 정도로 짧게 줄인 치마가 우유같이 하얀 미나의 허벅지 라인을 타고 예쁘게 달라붙어 있었다.
세화는 피식 웃으며 피고 있던 담배를 껐다.
"뭐..고등학생 이신가 보네요."
미나는 그때 성인이라고 구라친게 생각나 멋쩍어서 애꿎은 바닥만 발로 긁었다.
"넹..그렇긴 한데 어! 아 담배 안 꺼도 되는데. 저도 펴서 괜찮다니까요? 잉..아까운 장초를."
세화는 이곳으로 오고 오랜만에 듣는 정상적인 여자의 귀여운 말투에 친숙함을 느꼈다.
그렇게 세화가 피곤한 눈매를 살짝 웃는 것 같이 휘었을 때 미나가 다시 말했다.
"그때 그렇게 가서 살짝 걱정했어요. 와 근데 이렇게 보니까 문신 진짜 많네. 뭔 남자가 이렇게 많이 했어요?"
미나는 나시만 입은 그의 상체를 보며 감탄했다.
"그냥요. 하고 싶어서. 딱히 여자든 남자든 이유는 없잖아요?"
'음..역시 노는 오빠구나.'
"킥ㅡ그렇긴 해요. 근데 오빠도 이 근처 사는구나."
"네. 그쪽도?"
"네 저도 이 근처 살죠. 헐! 이런 우연이! 다음에 보면 친하게 지내요 오빠."
미나는 그렇게 실실 웃으며 떠나갔다.
세화는 혼자 남아 담배를 또 꺼내 물었다.
'여기서 저 애를 또 만나네. 그때 그러고 가서 미친놈인 줄 알 텐데.'
그때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번개처럼 세화의 뇌를 지나갔다.
'잠깐만 씨발..생각해보니까 나도 지금 18살이잖아. 이거 쟤한테 들키면..'
'자살할겁니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