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입학통지서(2) (14/94)



〈 14화 〉입학통지서(2)

***

"다녀왔습니덩!"

미나는 힘차게 외치며 집에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있는 미나를 엄마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 우리 딸 왔어? 얼렁 밥 먹어. 엄마가 너 좋아하는 삼겹살 해놨응게."

진짜다.

미나가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 냄새가 집안에 은은하게 퍼져있었다.

"푸핫ㅡ엄마 말투가 항상  그래 진짜?  너무 웃겨."
"요 년은, 엄마처럼 택시기사 하다 보면 저절로 이렇게 돼. 일단  씻고 밥 먹어."

흰 피부의 색목인답지 않게 한국어가 구수해진 엄마였다.

미나는 깔깔거리며 옷을 갈아입고는 식탁 위에 앉았다.
그걸 본 엄마가 큰 눈을 부라리며 미나에게 말했다.

"너,   씻고 왔지?"
"몰랑. 밥 먹고 샤워할 때 다 할 거야."

미나의 말에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참내. 아무리 여자애라도 그렇지. 그렇게 더러우면 남자들이 다가오다가도 말아요 요것아."
"아~갠차나. 엄마 닮아서 아무나  꼬실 수 있어. 물론 정상적인 애."

엄마는 그 말을 듣더니 웃기다는 듯 손사래를 치다 표정을 굳혔다.
그에 미나는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말로 말했다.

"걱정마. 아빠 같은 남자는 절대 안 만날 거니까. 아빠 때문에 엄마 혼자서 고생했잖아."
"미나야.."

미나의 아빠가 바람 피는  본 날.
그 날 미나는 어려서 몰랐지만 아빠가 다른 여자를 데려와서 뒹굴고 있는 걸 봤다.

사방엔 그 여자랑 아빠가 핀 담배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차있었는데 미나는  악취를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미나는 문득 아까 만난 남자를 떠올렸다.

문신에, 담배에, 술까지 전부 다하는 오빠.

그리고 손엔 뭐 누구랑 싸웠는지 붕대까지 감겨있었다.

원래라면 미나가 딱 싫어했을 타입이지만 왠지 모르게 차분하면서도 날티나지 않는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양아치같이 건들거리는 눈이 아니라 깊은 생각을 가진 듯 고요하게 잠겨있는 달빛 같은 눈.

'친구 정도면 아주 괜찮겠네. 아 혹시 싸움도 잘할려나? 음..겉모습만 보면 늑대 같기도 하고. 일하는  없으면 시아언니가 부탁했던  물어봐야겠당.'

미나는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다 한 뒤에야 공부를 시작했다.

***

 시각.

나는 베개에다가 대고 강펀치를 내리꽂고 있었다.

물론 다친 왼손은 제외하고.

"ㅡ팡, ㅡ팡!"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어느새 베개를 걸레 짝으로 만들어놓은 나는 얼굴을 붉혔다.

'진짜 이제 하율씨 얼굴 어떻게 보냐..아 존나 창피해 뒤지겠네.'

아니 다른 건 다 그대로면서 나이만 왜 바꾸느냐  말이다.

그 덕분에 파릇파릇한 고딩새끼가 22살이라고 깝치고 다닌 꼴이 됐다.

"잠깐만..그럼 앞으로 담배 어떻게 사지?"

죽고 싶었을 때 어쩔  없이 피게 된 담배였지만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나와 같이 걷고 있었다.

하루에 두 갑도 폈었던 난 이제 그거 없인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시작하는  아니었는데. 망할.

일단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키고 핸드폰을 켰다.

나 때문에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게  하율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다.

ㅡ딸깍.

"여보세요?"

통화가 연결되자 그녀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내 귀에 스며들었다.

"안녕하세요, 하율씨.  지내셨어요?"
"아,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묘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세화씨. 먼저 사과드릴 게 있습니다."
"..네?"
"저번엔 제가 실수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가 함부로 다가간 것 같아서요. 앞으로는 조심하면서.."
"아니, 아니. 잠깐만요."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시네.

"하율씨.  들으세요. 전 지금 하율씨한테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은인이라고도 여기구요.  여기 와서 친구 사귄 거, 하율씨가 처음입니다."

하율은 잠깐 말이 없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혹시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요? 제가 21살이고 세화씨가 22살이니까.."
"아..그건..음."
"..역시 안될까요."

아니 씨발 하..미치겠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안되는게 아니라..음. 화내지 말고 들어주세요."
"네? 어떤 걸?"

후우.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이제 쪽팔림의 늪으로 빠져들 때가 왔다.

"제가 이번에 신분증을 받았습니다. 제가 성인인 줄 알았는데..한국나이로 18살이더라고요. 그래서 하..일단 죄송합니다. 저번에 담배랑 술..산거요."
"음..세화씨, 근데 한국 나이를 러시아 나이보다 더 많이 쳐주지 않나요? 그럼 원래는  어리다는.."
"...."

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건 나탈리아 샤샤 이 새끼 때문이에요.

사실 몸이 바뀌기 전엔 22살이었는데 갑자기 18살이 됐어요 씨발.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바위처럼 굳어있자 하율이 차분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세화씨. 전 다 이해해요. 무슨 심정으로 그랬는지. 버틸 게 필요했겠죠. 세화씨 성격상 거짓말까지 해가며 그러기 힘들었을 텐데."

날 약한 어린아이로 보는 말이 지금은 마음에 들었다.
근데 저게 뭔 말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저 용서의 밧줄을 잡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근데 세화씨. 제가 용서는 했는데 벌은 받아야겠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역시..아직 앙금이  안 풀리셨나.

하긴 내가 자칫하면 하율씨 직업을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최악에는 편의점이 영업정지까지 당했을  하율씨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  없었겠지.

 잘못을 반성하며 무슨 벌이든 받기로 했다.

"달게 받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큰 벌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느껴졌다.

돈일까.

내 몸은..아닌  같고. 하율씨가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사람은 아니다.

'그럼 대체 뭐지?'

마침내 하율이 입을 열었다.

"....라고 불러봐요."
"네?"
"누나....라고 불러봐요 한번."
"..그게 벌인가요?"

황당해서 내가 잘못 들은 건지 다시 물어봤다.

"아..역시 너무 그런가요?"

'아니 뭔소리야. 그 딴게 벌이라고? 100번도 넘게 하겠네요.'

괜히 긴장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툭 뱉었다.

"누나. 이렇게요?"
"핫..핫. 네. 네! 그렇게요!"
"풋, 아니 이게 뭐라고..그리고 이제  놔요 누나도."
"네? 아..그, 그래."

귀엽네.

원래로 치면 여자한테 오빠 소리 듣는 거 정도뿐일 텐데 반응이 격하다.

"그럼 세화야. 18살이면..고등학교도 가겠네?"
"네 그렇죠."
"교복은 맞췄어?"

'아 교복. 깜빡하고 있었다. 근데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데.'

"아뇨, 아직 입학통지서도 안 날라와서요. 어디 고등학교인지도 몰라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그럼 알게 되면 누나랑 같이 교복 맞추러 갈래?"
"그럴게요. 어차피 누나한테 갚을 것도 있으니까."
"....이스. 나중에 꼭 연락해줘!"

저 마지막 말을 끝으로 하율과의 전화가 끊겼다.

"아 교복..교복이 문제네. 한 수십만 원 하지 않나? 강남쪽 학교라 더 비쌀 텐데."

옛날에 다닌 듯 만듯한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도 비싼  주고 교복을 산 기억이 났다.

뭔 놈의 옷 쪼가리가 그렇게 비싼지 너무 아까웠었다.

겉에다가 금이라도 처발라 놨나.

아무튼 수중에 있는 돈을 계산해보기로 했다.

통장에 있는 거 400만 원에 이번 달 빠질  50…. 350.

"핸드폰 요금이랑  이것저것 다합쳐도..300은 남네. 다행이다."

의자에 앉아 통장을 촤르륵 펼치던 와중에 생각났다.
그때 신분증을 가지러 갈 때 주무관이랑 나눴던 얘기.

"뭐..이민지원금인지 뭐시기가 한 달에 100만 원? 숨통  트이네."

좋았다.

자금에 여유가 생기니 마음마저 덩달아 편안해지는 기분이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딱하고 좆같던 침대가 갑자기 아늑하고 편안한 잠자리로 보였다.

불을 꺼놔서 어두컴컴한 집안에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광경도 멋졌다.

얼마 전까지 병원 갈 돈도 없어 벌벌 떨던 나는 이제 없었다.

생각했다.

나는 누구?



"여전히 거지새끼지.  나는 누구야."

생각해보니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된다.
이 집 월세랑 생활비, 잡다한  때문에 언젠간 풍족해 보이는  잔고도 바닥을 드러내겠지.

사람이 가끔 맛있는 것도 먹고, 옷도  입고 그래야지.
그런데 일을 아무것도 안 하면 사육되는 짐승처럼 편의점 음식만 먹고, 잠만 자면서 사는 거다.

"앞으로 씨발, 2년을 학교 다녀야 하는데.."

비록 어깨가 박살 났던 몸뚱이지만 그것 마저도 그리워졌다.

경력이나 기술은 여전하니까 격투기 학원 같은데라도 가서 코치라도   있을 텐데.
머리로는 아는데 이 몸을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전직 최상위권 프로가 가르쳐주는 강습? 그것도 류세화가 지도해주는? 나 같으면 안 배우고 못 배기지."

이제 멀쩡한 몸을 가지게 됐지만, 하필 남녀역전 세계라는 게 조금 아쉬워진다.
아직 이 신체의 힘을 제대로 테스트해보진 않았지만 아까 베개에 펀치를 꽂을  느껴졌다.

확실히 예전 나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이 상태로 프로도전은 무리다. 해봤자 남자 쪽에선  클래스 먹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싶다."

보통 사람들은 뱀의 대가리와 용의 꼬리 중 하나를 택하던데, 난 그럴 수 없었다.

무조건 용, 그중에서도 무조건 용의 대가리다. 뱀의 대가리 같은 걸 할 바에 안 하고 말지.

그래서 앞이 뻔히 보이는 모험은 안 하기로 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체급 차이는 절대 무시할  있는 게 아니니.

괜히 격투기 대회에서 체급으로 선수를 나누는게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남자들보단 훨씬   같은 느낌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기방어 할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 아직  모르니까. 어디 격투쪽에서 코치라도 할  있으면 다행인 거고."

그렇게 내가 잡생각을 접으며 샤워나 하려고 할 때 문 쪽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류세화씨 본인 계신가요?"

"뭐야, 벌써 왔어?"

나는 벗어 던지려던 옷을 황급히 다시 입고는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입학통지서 전해드리러 왔는데요."

문을 열자 유니폼을 입은 여자 집배원이 보였다.

영업용 미소를 짓고 있던 집배원이었지만 나를 보더니 그 해맑은 웃음은 어디 팔아먹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또,  저거  돌아간다. 아주 웃통 까면 덮치기라도 하겠네 썅.'

집에선 그냥 편하게 나시만 입고 싶은데 여기 여자들은 그것도 너무 야하다고 저 지랄들이다.
어차피 난 내 좆대로 입을 거라 신경  쓰기로 했다.

내가 뭐하냐는 듯 집배원을 바라보자 그나마 조금 성숙한 나이의 여자라 그런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내게 말했다.

"이거 입학통지서 드려야 하는데..혹시 본인 되십니까?"
"예  맞습니다."
"음..18살 류세화씨 본인 맞으시죠?"
"네."

집배원은 매우 의심스럽다는 듯 또 내 몸을 스캔했다. 아까랑은  다른 눈빛으로.

"죄송합니다. 문신이 많으셔서 학생 본인 아니신 줄 알았어요.
학생 형이나 오빠분이 대신 받으러 나오신 줄 알았습니다. 여기 받았다고 서명한 번만 해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아하. 그렇구나.'

나는 무표정으로 집배원이 내민 종이에 싸인까지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참았던 한숨을 내쉬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상태로 학교가면 지랄나겠네 씨발."

아주 예술가처럼 제 몸에다 그림 쳐 그려놓은 나탈리아 샤샤를 원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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