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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학교(3) (19/94)



〈 19화 〉학교(3)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주먹이 날라와서도 아니다. 격투기 선수는 그 상황에서 절대 눈을 감지 않는다.

그럼 왜 눈을 감았느냐.

보통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눈을 감고 인생을 돌아보지 않는가.
비유가 맞는진 모르겠지만 지금 나랑 아마 비슷한 심정일 것 같다.

다시 눈을 살짝 떠봤다.

 앞의 문신녀 둘은 키도 꼬마돌 만한 덕분에 나의 장신을 가려주지 못했다.
덕분에 저기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있는 소녀가 날 보곤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오빠....?"
"뭐, 오빠?"
"미나, 너 세화 알어?"

아하.  이름이 미나였구나.
나는 정혜민과 이수영이 미나를 닦달하는 소음을 들으며 내면의 심상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엔 말이다. 샤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어.

말만 들으면 개소리 같긴 한데 아마 물려가는 중에 부랄이라도 쥐고 터트리라는 소리일 거야.

'그래. 뻔뻔하게 가자. 여기서 당황하면 끝나는 거다.'

눈을 감아서 보이던 게  미래같이 짙은 어둠 뿐이었던 나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내 부들거리던 눈에게도 최대한 웃으라고 협박하면서.

"안녕하세요."
"어..네 안녕하세요? 근데 오빠가  여기..교복을 입고 있어요?"

미나는 내 인사를 받으며 답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에 싸움만 뒤지게 잘하던  돌쇠 같았던 인생 거의 최초로 뇌를 회전시키며  물음에 대한 답을 추려내려고 노력 중이었다.

"뭔소리야 니네?"
"쿡쿡. 아니, 얘 18살이야. 둘이 만났었던 거 같은데 서로 나이도 몰랐냐? 아, 이름은 류세화랜다."

'야이 시발년들아...좀..닥쳐.'

 문신 듀오가 나와 미나를 번갈아 보며 낄낄거렸다.
그러자 미나도 이상함을 느낀 듯 잠깐 생각에 잠기다 말했다.

"잉? 그럼 저번에.."

여유롭게 웃고 있는 내 포커페이스가 깨지려는 걸 간신히 붙잡았다.
그러나 미나가 곧이어 취한 행동에 속으로 절규가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풉!"

'씨발!씨발!씨발!씨발! 샤샤 씨발련아! 진짜 씨빨!'

 얼굴이 살짝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워낙 하얀 피부라 붉어지면 티도 잘날 거다.

미나는 눈을 곱게 휘며 손으로 자기 입가를 가리면서 귀엽게 웃었다.

"아니 씨발 그따구로 웃지 좀 마 제발."
"너 진짜 레즈 아니지? 나 가끔 니랑 있을 때마다 무서워."

둘이 타박하든 말든 미나는 반달같이 접힌 눈매를 풀지 않았다.

하.
차라리 나를 양아치로 봐주고 '역시 그럼 그렇지' 라는 반응을 기대했다.
근데 저러면 기껏 표정 관리한 의미가 없는데.

나는 웃던 표정을 풀고 한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걸어가 미나의 가녀린 어깨를 잡고서 귀에 대고 말했다.

"일단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조용히 있어요."

그러자 미나는 살짝 몸을 움찔거리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미나의 얼굴을 보니 싱글거리던 기색은 사라져 있었다.

'다행이네. 일단 넘어는 갔..'

"야 너네 뭐냐? 둘이 뭐 있어?"
"그렇게 남자가 다가와도 거절하더니..정실이 있었네. 부.럽.다. 킹갓엠페러미나!"

'니네는 왜 또 지랄이야..제발 닥치고  있어라.'

나는 어딘가 배알이 꼴린 듯한 얼굴의 두 명을 놔두고 내 자리로 가서 앉아 팔짱을 꼈다.
여전히 저 둘은 미나에게 뭔가를 캐묻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발만 위아래로 까딱였다.

'일단 미나가 내 옆자리면 오해를 풀 여유가 있다는 거네. 신이 아주 날 버리진 않았구나. 아닌가? 오히려 버린 건가?'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내가 술과 담배에 환장한 놈이라는 걸 애들이 알게 되면 영락없이 양아치로 찍혀버린다.
심지어 여기는 남자가 그러면  좆됀다. 지금은 저 문신충 여자애 둘뿐이지만 다른 양아치들까지 몰려와서 놀자고 귀찮게 할지 모른다.

전생엔 그런 애들이라도 친하게 지내는 건 상관없었다. 걔들은 나를 못 건드렸으니까. 노는 애들이라 그런지 사람이 재밌기도 했고.
물론 그 무리에 껴서 애들을 괴롭히거나 그런 병신 짓은 안 했다. 가끔 농담만 주고받던 정도였는데.

근데  세상의 기준으로 내가 막 나가고 다니면...말을 아낀다.

'심지어 22살 먹고 일진 놀이라니 쪽팔려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지.'

일단 미나에게 뭐라고 변명 해야 할까 혀를 살짝 차며 고민하던 중 휴식이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렸다.

'와, 이 엿같은 소리. 진짜 개 오랜만이네 이것도.'

저 끔찍한 리듬이 내 고막을 파고드는 걸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니 이리저리 퍼져있던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허겁지겁 돌아가고 있었다.
미나도 대화가 끝났는지 내 옆에 살포시 앉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킥, 아. 죄송해요. 다시 보니까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네에."
"..그러게요. 저도 기쁘네요. 잘 지냈어요?"

말꼬리를 늘리며 웃는 미나를 보니 이마에 힘줄이 돋는 걸 느꼈다.

"오.빠. 진짜 기쁜거 맞아요? 전이나 지금이나 표정이 너무 차가워요. 아 슬프다~"
"제 표정이 원래 그래서. 그리고 말놔도 되는 데."
"아뇨, 아뇨.  이게 편해요. 어떤 강.렬.한 기억이 나서."

그 기억이란 내가 생각하는 게 맞겠지. 아 좆같네.

그리고 예전의 나도. 괜히 학생 배려한답시고 지랄해서.

살짝씩 간을 보며 나를 놀리던 미나는 뭔가 궁금했는지 얼굴을 살짝 들이밀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어쩌다 여기로 온 거에요?"
"좀 착오가 있었나 봐요. 그니까..제 나이가 러시아에선 성인은 맞았어요. 근데  같은 한국 나이로 계산하니까 이 꼴이 됐네요."

내가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한숨을 뱉자 미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게 웃었다.

"풉. 진짜요? 그래도 교복 잘 어울리는 데요? 와! 문신도 다 가렸네요. 눈은 못 가렸지만."
"그렇죠. 학교는..가야하니까."
"아~그때의 멋지게 소주 원샷 하던 오빠라고는 보기 힘드넹. 담배도 아주 맛있게 피던데. 그때 뭐랬지..미성년자면 가랬나?"

미나는 진지하게 물어보는 척하다 또 나를 놀리는 거로 노선을 꺾어버렸다.
 조그맣고 예쁜 얼굴이 지금은 소악마로 보여 저절로 속이 탔다.

'그만 놀리라고 하는 것도 너무 찌질해 보이고.'

붉은 입술이 뻐끔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몸에 열이 올라 나도 모르게 상의를 벗었다.
그렇게 티 하나만 입은 상태가 되어 살짝 심호흡을 했다.

일단 어쩔 수 없다 치고 용건이라도 전해야 했다.

***

처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양호실 갔다가 반에 돌아오니 그 문신 오빠가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아닌가.
순간 몰카라도 찍는 건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번 봐도 그 오빠가 맞았다.

'뭐지..? 이 오빠 왜 여깄어?'

결국엔 여기 학생이 됐다는 걸 알고 얼마나 속으로 웃었는지 모르겠다.
아 겉으로도 살짝 웃었나?
킥.
그나저나 이름이 류세화 랬나.

아무튼 교복을 입고 있는 세화의 모습이 사나운 맹수가 사슬 같은 것에 묶여서 끌려온  같아 웃겼다.
예쁘고 날카롭게 뻗은 눈매가 자신을 보자마자 당황으로 흔들리는 것도 귀여웠다.

그렇게 세화가 끝까지 유지하던 냉소적인 표정을 깨트리고 싶어 계속 장난을 쳤다.

'아, 조금만 더하면 얼굴 빨개지는 거 볼 수 있을  같은데..조금만 더..'

그게 왜 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정복욕 때문이 아닐까? 저 얼굴을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이는 데 성공하면 그게 아마 미나 자신이 최초일 거다.

그래서 얼굴을 들이밀어도 보고, 계속 옛날 일을 상기시키니까 세화는 드디어 체념한 눈을 했다.
드디어 미나는 세화의 피처럼 붉은 입술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줄 알았다.

근데 갑자기 겉옷을..벗네.

반팔티만 입게  세화의 모습에 저절로 말문이 막히는 게 느껴졌다.

'이거 지금 반격하는 건가? 아니 그래도 남자가 무슨 옷까지 벗어가면서..아무리 지기 싫어도 그렇지..'

미나의 고개가 기름칠 안 한 로봇같이 삐꺽거리며 세화의 가슴 쪽으로 돌아갔다.

남자 특유의 일자로 된 가슴골 라인.

하필 세화가 입은 티도 박시하지 않고 꽤 달라붙는 사이즈라 세화의 탄탄한 가슴 모양이 드러나 너무 야했다.
관심이 없어도 남자 몸을 보게 되는 건 여자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행동이다.

미나는 급히 세화에게 속닥거렸다.

"오빠. 겉에 입어..모양 비치잖아..요."

세화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반팔정도는 괜찮지 않나? 그런 거로 알고 있는데.'

"왜요, 시원한데. 설마 여기 남자는  팔만 입어야 하고 그런 건가?"

미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하는 세화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제일 큰 문제는 자기 몸 때문인데.

이대로면 저 불여우에게 말려들어 갈 것 같았다.

'괜히 장난쳐가지고..와, 뼈도 못 추리겠다. 저런 거 어디서 배운 거지?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했어.'

미나는 허둥지둥 방법을 찾듯이 눈으로 세화를 훑어보고는 급히 말했다.

"아! 오빠 문신 보여요! 가리려던 거 아니었어요?"
"그렇네요. 고마워요."

세화는 다시 옷을 입어 쇄골에 드러나는 문신을 가렸다.

 느긋하게 이뤄지는 행위를 보면서 미나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할말 있지 않았어요? 세화 오빠."
"아 그랬죠. 그냥 제가 뭐..학생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 했던 거 비밀로 해줘요. 그렇다고 끊기엔 너무 멀리 와서."
"그건 당연히 비밀로 해야죠. 남자가 그러고 다니면 애들이 쉽게 봐요. 그리고 어차피 저도 다하기도 하니까 신경 쓰지 마요."

미나의 말에 세화는 입 모양으로 뭔가를 우물거렸다.
무슨 말인지 의아한 듯이 있던 미나는 갑자기 탄식하는 소리를 냈다.

"아! 오빠 지금 일하는거 있어요?"
"아니요. 백수에요."

학생인데 백수는 무슨 말일까. 미나는 고등학생이 자기 입으로 백수라 하는  웃긴  밝은 톤으로 말했다.

"그럼 혹시 싸움 잘해요?"

미나의 말을 들은 세화는 당연한 걸 묻냐는 듯 픽 웃었다.



"존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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