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우리의 방식(5)
-민우 어머니!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마피아 같은 소린 집어치우세요! 전화 끊습니다!"
뜨거운 콧김을 뿜어낸 여자가 수화기를 부술 듯 내려놓았다.
여자의 몸에 두툼하게 붙어있는 살집이 그녀가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은 검사니까.
주변에서 다 알아서 이것저것 해주는 데 뭐하러 몸을 움직인단 말인가. 그 정도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났던 그녀는 연신 콧김을 뿜었다.
그 정도의 기업을 운영하는 년이 고작 마피아에 겁먹은 꼴이란.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니까 고소를 그만두라고? 나를 뭘로 보는거야. 나 검사라고..대한민국 검사.."
안 그래도 라인 잘못 타서 춘천 구석에 박혀있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그녀에게 혜민 어머니의 전화는 기폭제가 되어 그녀의 화를 터트렸다.
"예, 접니다! 저 믿고 일단 나오세요!"
"마피아요? 누누이 설명드렸지만 그런 년들, 여기서 힘도 못 씁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어느새 수화기를 집어 든 그녀가 연신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한참을 설득했다.
이 겁대가리들을 설득하는 건 살짝 힘에 부치긴 했지만 그녀의 절절한 호소 덕에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전화를 마친 그녀는 고급스러운 의자에 무거운 몸을 앉혔다. 그제야 진정한 그녀가 울분에 차 말했다.
"후. 아들이 그렇게 됐는데도, 뭘 그리 사려대는지 원."
그녀는 학부모들을 원망하는 듯했으나 한 편으로는 왜들 그러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등 따신 곳에서 자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면 그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게 사람이다.
심지어 그들의 직업이면 남은 인생을 꽤나 풍족하게 살 수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제일 무서운 건 그 행복한 삶이 깨져버리는 것.
아무리 귀한 아들이 죽어간다 하더라도 그 복수를 하려다가 칼 맞고 뒤지거나 가족 전체가 위험해지고 싶진 않겠지.
아니 어쩌면 권총이려나.
"멍청한 년들. 시대가 어느 땐데, 심지어 러시아 마피아? 참나."
적색 마피아야 잠깐 반짝이고 말았지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단합도 안 되는 약골이다.
그리고 고딩 남자애가 마피아? 개뿔이.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다 문득 든 불안한 생각에 입술을 오므렸다.
몇 년 전. 러시아 마피아 중에 두각을 드러낸 조직이 생겨났다고 얼핏 소문으로 들은 기억이 나서.
죽어가던 조직 하나가 여자 한 명이 보스로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의 밤을 차지했다고.
그녀가 권력에 가까웠을 때 지나가듯 들은 정보였다. 그게 사실인 진 모르겠지만 말이 되나.
그 넓은 땅덩어리를 조직 하나가 어떻게 지배한다고.
피식-
그녀는 김빠진 웃음을 뱉었다. 그런 조직 도련님이면 실권도 잃은 이시아랑 왜 만나겠나.
일 그만둔 이시아가 파릇파릇한 백마 좆 맛 좀 보고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갔겠지. 성유진 일가의 비호가 없는 이시아는 그냥 종이호랑이일 뿐.
"반드시 깜빵 보내주마.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절대 못 나오게 될 거다. 내가 그리 만들 거니까."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입술을 짓씹으며 말하는 그녀의 기세가 살벌했다.
덜컥-
"여보! 이제 자요."
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의 말에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침실로 가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내일을 위해서.
***
"그럼 갔다 올게."
남편에게 인사를 한 그녀는 곧바로 차에 올라타 연정고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을 확인하며 운전하다 인적 드문 산길 도로로 접어들자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운전에 집중했다.
곡선으로 휘어지는 2차선 도로라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오른쪽은 가드레일만 있는 낭떠러지라 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살살 운전하며 도로를 달리던 도중 반대편에서 오는 트럭이 보였다.
그 차가 쌍라이트를 켜대며 다가오자 그녀는 욕을 내지르다 기겁했다.
"미친년이야? 낮에 쌍라이트를 켜대고 지랄..뭐, 뭐하는 거야!"
그 트럭이 갑자기 그녀의 차로 방향을 틀어 돌진해왔다. 살짝 움직여 피하기도 힘든 각도로 달려왔기에 그녀는 최대한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차를 피했다.
콰앙-!
왼쪽으로 꺾인 그녀의 차가 산에 충돌하며 굉음을 냈다. 차 위로 흙 같은 게 떨어졌는지 투두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으, 으윽. 개..씨발. 어떤 미친년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그녀가 욕을 읊조리며 고개를 들었다.
차 보닛은 척 보기에도 심하게 찌그러져 있는데다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혼란스런 와중에도 이대로 있으면 차가 곧 터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가 급히 조수석 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엉금엉금 기어 나오자마자 온통 검은색으로 몸을 둘러싼 년이 눈웃음을 지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쓴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보이는 건 오직 눈.
"안녕. 검사님."
"너..이 씨발년이..내가 누군지..아악!"
괴한의 인사에 눈을 부라리던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에 뾰족한 게 따끔-하며 파고들어 와 저절로 몸이 털썩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기 때문에.
그러자 괴한이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일으키며 말했다.
"개 무겁네 진짜. 운동 좀 하시지."
그녀는 떨리는 동공으로 괴한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무저갱 같은 검은색에 공포에 질린 자신과 허물어져 가는 늙은 몸이 보인다.
읏차-
괴한이 조수석에 자신을 싣는 동안 그녀는 반항 비스무리 한 것도 할 수 없었다.
서서히.
몸이 힘이 빠지며 시야가 흐려진다.
조수석에 앉아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괴한이 안타까움을 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쯧쯧..보스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요?"
"보스..?"
그녀가 뭔가 알아챈 듯 몸을 움찔거렸지만 그에 괴한은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기 눈에 그분이 안 보이는 거에요. 뭔 깡으로 감옥에 보내려 했대."
괴한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자 그녀가 뿌연 시야로 손을 더듬거리며 괴한의 손목을 잡았다.
"우리..가족, 은. 건들지 마.."
마지막 유언을 내뱉은 그녀는 괴한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원하는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에 고개를 들어 괴한의 얼굴을 봤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알 수 있었다.
괴한이 웃고 있다는 걸.
그 의미를 깨달은 그녀가 몸부림치며 더 말하려 해도 몸이 허락지 않는다.
그녀의 시야가 끊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건 조수석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거였다.
관에 갇힌 그녀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 그녀가 탄 차를 멀찍이서 바라보던 괴한은 혹시 몰라 챙겨온 블랙박스를 주머니에 넣으며 푸념했다.
"그렇게 좋아하면 다시 데려가지..에휴. 참, 그분 한텐 너무 관대하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기한테 그런 일까지 벌였는데."
하긴.
같은 피로 이어졌는데. 이해는 돼.
콰아앙-!
검사가 탄 차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불씨가 사방에 휘날리며 하늘 높게 불기둥이 치솟았다.
활활 타오르던 차를 조용히 바라보던 괴한은 손을 흔들며 누군가에게 말했다.
"가족은 걱정 노. 다 죽여버리면 그분이 의심할 수도 있잖아. 기껏 기억도 잃으셨는데 다시 시작해야지."
그렇게 말한 괴한은 트럭에 올라타 아예 없었던 사람처럼 이 장소를 벗어났다.
***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방안에 적막이 흘렀다.
똑, 딱. 똑, 딱.
시계의 초침이 6시 10분을 넘겼다.
"저런. 왜 늦게 오시나 했더니.."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적막을 깨트리자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혜민은 시퍼렇게 변한 안색으로 덜덜 떨며 세화를 바라봤다.
자기도 몰랐다는 듯 얼떨떨해하는 척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도 안타까운 기색을 내비치는 가증스런 미모의 얼굴.
저 가면 안엔 필시 만족스러운 미소와 사이다를 들이킨 듯 시원한 미소가 숨겨져 있을 터.
우연. 우연일까.
하필 오늘. 그것도 시간까지 맞춰서 검사가 죽어버린 게?
혜민의 시야에 마치 주마등처럼 세화가 행했던 몸짓, 행동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도 여유로운 듯 다리를 꼬고 이 자리가 전혀 걱정 따윈 안 된다는 듯 자기 집처럼 편하게 있던 것.
'나 혼자 가도 돼.'
'이제 슬슬 용서할 마음이 드네.'
허세라 치부했던 말.
'세화야.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지.'
'이제 지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잖아요?'
시계가 5시 30분을 넘겼을 때 세화가 저렇게 말했었지.
사실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미 검사가 죽어버렸다는 걸.
이 한국에서 검사를 이틀도 안 돼서 죽여버리고 시간까지 통제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너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 씨발..진짜.'
죽기 싫어.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절대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
세화가 자기 발이라도 핥으라면 백 번이라도 그럴 수 있었다.
'..나, 나 잘못한 거 있었나? 용서해 준다 했으니까..제발.'
진실을 확인하니 저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공포심이 피어올랐다.
그 감정이 담배의 연기처럼 변해 눈으로 들어가 따끔거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제자리를 벗어나려는 눈물을 참으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꽉 주먹을 쥐며 버텨냈다.
후들거리는 손을 치마에 문질러 피를 살짝 닦던 도중 또다시 가라앉은 세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긴 하지만..이제 다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짜증스레 말한 세화에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의 뜻이 뭘까.
자기가 어떻게 응징하는지 보여줬는데도 멀뚱거리는 사람들이 짜증이 난 걸까.
자신이라도 말라 비틀어진 입술을 열고 여기서 그만하자고 말해야 했는데 입에 접착제가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방안의 전부도 혜민과 같은 생각을 한듯했다. 저 흔들리는 눈동자들을 보면. 씨발.
"..사실 저희는 이미 덮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동자가 사라졌으니 더 할 이유도 없죠."
어머니가 다행히 정신을 차린 듯 말꼬를 트자 곧바로 호응이 돌아왔다.
"마, 맞습니다. 듣기로 저희 아들이 먼저 잘못 했다 해서 사과드리려 한 겁니다."
"예, 맞아요! 그 검사가 기어코 자리에만 있어달라고..하하."
그렇게 살얼음판 위에 애써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깔며 학부모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화에게 사과를 건넸다.
자기보다 한참은 어린 남자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그들은 세화가 됐다는 듯 손을 내젓자 허겁지겁 물러섰다. 그에 선생들은 어리둥절해다가 곧바로 뭔가를 짐작한 듯 입을 꾹 다물며 할 일이 있다고 먼저 나가버렸다.
그 뒤를 따라 학부모들도 도망치듯 나가고 선생들도 전부 나간 뒤. 수영이 년도 먼저 도망쳐버려서 오직 남아있는 건 혜민의 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민호였다.
"세화..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괜찮아요. 원래도 힘들었는데 딱히? 의외네요 선생님.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바뀌어버린 민호의 태도에 세화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민호의 안색이 못 봐줄 정도로 검게 물들었다.
혜민도 세화의 말 안에 담긴 가시를 알아챌 정도였는데 당사자인 민호는 어떻겠는가.
빛이 사라져 어두워진 금색 눈동자는 민호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음은 너라고.
그에 민호가 살짝 울먹거리며 세화에게 다시 달라붙자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찌푸려 지려는 찰나, 혜민의 어머니가 민호를 만류했다.
"일단..먼저 나가시죠."
"하, 하지만.."
"...."
민호는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끝까지 세화를 바라보다 어머니의 매서운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나가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세화에게 혜민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고, 고생했어."
"아. 너도 고생했어. 사실 너한테 준비한 것도 있었는데.."
"...응? 준비한 거? 에, 에이."
의미심장한 세화의 말에 혜민은 농담하지 말라는 듯 애처롭게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농담이 아닌 듯한 세화의 눈이 그녀를 덤덤히 직시하자 다시금 날서린 분위기가 그들 사이에 흘렀다.
혜민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려 노력했지만 눈만은 웃을 수 없었다. 눈을 접었다간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삐져나올 거 같아서.
그러지마.
제발. 열심히, 열심히 했잖아.
당장이라도 쓰러질 거 같던 혜민을 바라보던 세화가 이제 됐다는 듯 살짝 웃었다.
"이제 필요 없겠네."
세화가 덧붙인 말에 혜민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었다. 힘이 풀려 서 있기도 힘든 다리를 채찍질해가며 넘어지지 않게 노력했다.
그 사이 혜민의 어머니가 세화에게 다가가 그간 수고하셨다며 조심스럽게 위로하자 세화는 눈매를 예쁘게 접으며 웃기만 했다.
"그럼 가볼게요."
문앞에 선 세화가 인사를 건네도 멀뚱거리며 서 있는 혜민의 고개를 어머니가 푹 누르며 그녀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에 자신도 살짝 고개를 숙여보인 세화는 이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혜민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자 생전 처음 듣는 노기에 찬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집가서 보자."
"어, 어머니.."
그날 어머니가 아끼던 골프채의 끝에 금이 갈 뻔했다. 분명 공을 치진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단단한 거라도 쳤나 보다.
혜민의 뼈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