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회한(2) (43/94)



〈 43화 〉회한(2)

도시의 밤하늘에선 별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일반도시도 아닌 특히 서울에서는.

하지만 오늘은 운이 좋은 건지, 검은색의 바탕에 떠 있는 몇 개의 별들이 보인다.
나는 연기를 뱉으며 시야에서 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기분이 울적할 땐 종종 이렇게 풀곤 했으니. 하지만 그렇게 있기도 잠시.

"..씨발."

이러고 있는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으며 물고 있는 담배의 마지막  모금을 빨았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되네요. 엄마."

앞으로 잘 살겠다는 그날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난 또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렸다.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이, 가슴에 비밀 상자처럼 잠가뒀던 기억의 문을  탓이다.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이면 이렇게 궁상떨지도 않을 텐데. 하필 미나라서  이 지랄이다.

미나가 보여줬던 웃는 모습, 날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한 편으론 괘씸하기도 하다. 허락한 적도 없는데 언제 이렇게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

"아."

혀에서 텁텁한 맛이 느껴져 시선을 내렸다.
막대를 감싸고 있던 종이가 담배의 필터 끝까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살짝 혀를 내밀어 손가락으로 담배를 집은 뒤,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져버렸다. 발로 질근질근 밟아 살짝이나마 피어오르는 연기를 끈다.
흙이 묻어 더러워진 그것을 바라보다 저게 마지막 담배였단 생각에 바닥에 널려있는 꽁초들을 바라봤다.

"...."

그래도 이건 아니란 생각에 빛내던 눈을 접었다. 꽁초들을 주우려 허리를 숙이는 순간, 인간 류세화의 존엄성이 무너져내릴 거 같아서.
결국 미련을 거두고 이곳을 나가기 위해 내가 들어왔던 조그마한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 갔을 때쯤  끝에서 타다닥거리며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순간 눈을 찡그렸으나 누군가 있었겠지, 하며 멈칫했던 다리를 움직였다.

덜컹-.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선 나를  익숙한 풍경이 맞이했다.
현관문 앞에서 조용히 서서  비어버린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 신발을 벗었다.

달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에 커튼을 치고 침대에 몸을 뉘이며 눈을 감았다.
완전히 어둠으로 물든 시야엔 빛 한점 없는 이곳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

다음날.
평소와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토시에 팔을 집어넣었다.
할 일을 마친 손으로 가위를 집어 들어 테이프를 자르려다, 다시 가위를 내려놓았다.

더는 이럴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해서. 맨날 이러기도 귀찮고.

애초에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히기 싫어 이러고 있었던 건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조폭 쪽으로  이미지가 굳혀졌지 않은가.
문신이 가득한 혜민이나 수영도 어차피 안 가리고 다녔는데. 아마 그녀들의 배경 덕분이겠지만. 근데 그럼 공평하지가 않지.

어차피 이렇게 된  내가 딱히 가려야 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어차피 좆같은 똥통학교.
하지만 마지막 예의로 팔에 끼고 있는 토시는 벗지 않고, 집에서 나왔다.

택시를 타고 학교 정문 근처에서 내렸다.

"너! 일로 와봐. 복장 봐라 이거."
"아, 교감..헤헤. 선생님. 한 번만요.."

불독을 연상케 하는 얼굴의 큰 몸집의 여자가 남학생 하나를 붙들고 있었다.
사납게 성을 내는 여자 앞에서 남학생이 비굴한 웃음을 실실 흘렸다.

그 실랑이에서 시선을 거두며 그들 옆을 가로질렀다.

"너도 잠깐. 이야..이거 봐라. 아주 정신이 나갔네. 문신! 너 말 하는 거야!"

저 말에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리니 여자의 사나운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에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니 매서웠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여자의 두툼한 입술이 다물어졌다.

"혹시..이름이?"

"류세화입니다."

"아. 그, 그래요. 먼저 들어, 큼. 가요. 내가..잘 몰랐네. 허허."

급격히 쭈그러지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실수했다는 냥 굳어지는 표정을 보니 저 여자도 그날 있었던 일을 들은 모양이다.

"아니 쌤! 쟤는 왜 그냥 보내줘요!"

"...시끄러! 넌 여기 이름 적고가!"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해대는 남학생과, 다시 고함을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교실로 향했다.
반에 들어선 내가 책상에 앉자 교실이 조용해진다. 가라앉은 눈으로 흘깃 주변을 둘러보자 내게 향했던 시선들이 거둬진다.

서늘한 예기가 서린 몸짓  번으로 달갑지 않은 시선들을 떨쳐낸 뒤. 양팔로 책상에 베개를 만들어 머리를 뉘었다. 눈을 감으니 밀려오는 수마를 받아들였다.

***

목재로 이루어진 듯 사방이 갈색인 방. 저 끝의 큼지막한 문이 활짝 열리며 여자가 들어왔다. 흔하게   있는 색목인이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먼지 쌓인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는 서재가 보였다. 그 사이에 있는 내가 가만히 서서 묵묵히 여자를 바라본다.

무거워진 공기.  분위기 속, 벽난로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여자의 입에 금을 내었다.

"..보스."

"왔어?"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지만 고개를 돌려 확인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위치를 묵묵히 지킬 뿐이었다.

타닥-.

모닥불이 한 번 더 튀어 오른다.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만두려고 합니다. 가정이 생기니까..거기에 충실해지고 싶더군요."

"이해해. 그 마음. 그동안 고생했어."

상냥한 목소리에 여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그럼!"

"그래. 나가도 돼. 근데..대물림은 해야지."
"..보스. 남자앱니다. 심지어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괜찮아. 남자도 할  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특히 미인계를 쓸 수 있다는 게 아주 좋지. 나이는..문제 없어. 알잖아?"

여자의 눈에 핏발이 선다.

"옆에 계신..그분처럼 만들려는 겁니까? 너무..하십니다. 보스도 대물림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잖습니까. 그럼 이해를..조금이라도."
"미안. 나도 왜 그딴 걸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까 괜찮더라고. 그리고 나만 당할  없잖아."
"..결국 데려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응. 이해해줄  있지? 어차피 새로 낳으면 되잖아."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지만 여자에겐 악마의 목소리처럼 느껴진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덤덤하게 여자를 주시하던 내가 허리춤에 조용히 손을 올린다.

"그럴..순 없습니다. 첫 아이인데.."
"다 알고 들어왔으면서. 그래도 네가 해준 게 있으니까 이런 제안도 하는 거야."

가벼운 어조로 고저 없이 내뱉어진 말이 방안에 뻗어 나갔다.

 순간, 여자가 무서운 듯 떨던 손을 멈췄다. 다 연기였던가.

"이, 씨발년아ㅡ!"

타앙-!

욕설을 내뱉으며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려던 여자의 미간에 구멍이 뚫린다.
여자가 짚단처럼 허물어지는 걸 확인한 내가 허리춤에 차가운  뭉치를 집어넣는다.

"역시. 우리 샤샤. 오늘도 고마워."

"...."

여전히 내가 정면을 바라본다. 그러자 내 허리춤에 가느다란 팔이 파고들었다.

"..유일한 내 인생의 빛. 사랑해."

여자의 말이 신호가 되어 거울의 파편이 조각나버리는 것처럼, 이 장면 또한 이리저리 깨져버렸다.

그 조각들이 사방에 휘날리는 걸 멍하니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눈을 떴다.

비어버린 책상들이 보인다. 조금 전이 꿈이란  알아차렸다.

"허억ㅡ!"

"세, 세화야. 괜찮아?"

잠시 멍해있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옆에서 크게 놀란 미나의 어깨를 잡으며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개..씨발.."
"..세화야..안 좋은  꿨어?"
"..괜..찮아. 이제 가."

왜.

 씨발 이런 좆같은 꿈을 계속 꾸는 걸까. 식은땀으로 젖은 머리칼을 내가 거칠게 쓸어넘긴다.

감정의 급류에 휩쓸리기 전에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미나를 살짝 밀며 말했다.

"잠깐만..혼자 있고 싶네."

"정말..괜찮.."

"...가. 귀찮게 하지 말고 좀."

괴로운 느낌에 눈매를 한껏 찌푸리며 축객령을 내렸다. 미나는 살짝 상처받은 눈을 하면서도 조용히 뒤로 물러서며 반을 나갔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꾸욱 덮었다. 손가락이 내 눈을 짓눌렀다.

사람을 죽일 때의 느낌이 생생하지만, 그딴 하찮은 것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향한 애절함, 그리움, 복수심...애증.

한껏 심호흡하며 들끓었던 감정을 진정시켰다.

꿈일 뿐이다. 실제 있었던 일도 아닌, 그냥 악몽일 뿐이니까.

그러기를 반복하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내 후회가 밀려들어 와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미나의 슬퍼 보였던 눈이 생각나서. 걱정돼서 와준 사람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줘버렸다.
원래 오늘 사과하려 할 생각이었는데. 또.

그때 이후로 하나도 안 자랐구나. 결국에는 내 옆에 누가 남아있을까.

류세화, 이 병신새끼.

하교할 때까지 미나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미나가 슬금슬금 날 피했으니까.

미나와 걸었던 하굣길엔 나 혼자만이 걷고 있었다.

그 빈자리가 허전하고도 공허했으나 누군가 채워주길 감히 바라지 않았다.

***

습관처럼 골목에 나와 라이터를 켰지만 불을 붙일 대상이 없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봐도 머리를 채운 안개가 가시지 않는다.

털썩-.

아무렇게나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좆같아서.
그러던 도중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소리.

혹시 모를 기대를 품고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밤이니까.

그녀일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몸을 돌리려는 찰나, 밤인데도 찬란히 빛나는  같은 은발이, 비현실적이게도 내 앞에서 찰랑거렸다.

"아..안녕? 톡 보내려고 했는데..이미 나와 있었네.."
"....왜 왔어."

 마음과는 다르게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온다. 고쳐질 기미가 없다. 또 그때를 답습하려는 건지.

"아..밤에 찾아와서 미안. 네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그럴까 생각했는데..담배냄새가  나더라. 그래서 그런 거지?"

학교에 가기 전 항상 담배를 피웠었다. 오늘은 없으니  피웠고. 그 탓에 미나가 오해했는가 싶어 아니라고 말하려는 순간, 미나가 뭔가를 내밀었다.
작은 손에 들려있는 담뱃갑들을 보자 내 입에서 피식-미소가 지어졌다.

"이거 가져다주려고 온 거야?"
"응! 역시  생각이 맞았네. 완전 예리하지?"

칭찬해주듯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미나가 귀여웠다. 내가 웃으니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인 미나가 물어왔다.

"아, 그리고..격투기 배우는 거 있잖아."
"..뭐?"

설마 미련을 못 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순식간에 웃음기를 거뒀다. 그에 불구하고 미나는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해봤는데..나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야. 미나."
"..응?"
"왜 자꾸 고집이야? 내가  설명해줬잖아."

입매를 비틀며 천천히 다가가자 미나가 우물쭈물 말했다.

"아..알아. 네가 그렇게 한 이유도 이해하고 있고.."
"알고 있었어? 내가 일부러 그렇게  거?"
"..응."

하.

"알고 있었다니 다행이네. 그래, 일부러 그랬어. 그딴 좆같은 거 하지 말라고. 근데 내가 여기서 가르쳐주면, 그래서 싸움 같은 거 잘하게 되면."
"...."
"또 누구 구한답시고 뛰어들어서, 어디 박살 나 봐야 후회할 거야? 네가 알아? 그 느낌이 어떤지?"
"...세화야.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내 말은 그런 게 아니었어."

나는 미나에게 쌓였던 걸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다, 미나를 위한 거니까.

일부러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미나에게 차츰 다가갔다.

"날 지켜준다고?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제발..주제를 알아. 너랑 나는, 살아온 세계가 달랐다고."

한참 울분을 끄집어냈다. 그러나 이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건 미나의 눈을 보고 나서였다.

이런 바보 같은 눈을 또 어디서 봤더라. 분명, 봤었는데.

"...미안해. 다시는..안 그럴게."

물기가 서린 목소리엔 원망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물기로 촉촉했다.
심장이 덜컥였다. 이렇게 또, 잃어버리나 해서.

"밤늦게 찾아와서..미안. 일단 가볼게.."

미나가 고개를 숙이며 한 팔을  잡았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작은 몸을 보며 깨달아버렸다.

이대로 보내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구나. 미나가 보내오는 온기와 따뜻함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구나.

사실 외로웠던가.  세상에 떨어지고 의지할 사람 없이 버티던 내게 내려온 희망이 미나 아니었을까.
잡아야..했다. 또다시 그때처럼 상처를 주고, 혼자가 되는 건 싫었기에.

하지만 어떻게? 이미 온갖 말로 상처를 줘버렸는데?

미안하다며 사과하면 받아줄까. 다시 따스하던 눈을 내게 지어줄까. 다시 어린아이가  것 같았다.

망망대해 위에서 위태롭게 떠다니던 배가 구멍이 난다. 이대로면 콸콸 쏟아져 오는 바닷물에 가라앉을 게 분명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아래로.
그렇기에 내가 구멍을 막기 위해 선택한 것은.

스륵.

걸어가고 있던 미나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 가녀린 몸은 얇았으며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미나."

내 상냥함을 가장한 부름에 미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눈꼬리에 매달린 물방울에 달빛이 서려있었다.
살짝 붉어진 눈가로 바라보는 그 얼굴에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나의 뒷머리를 한 손으로 조심히 감싸 안으며, 입을 맞췄다.



"....!"


화들짝 놀란 미나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에 천천히 눈을 뜨며 무표정하게 미나를 바라봤다.

이걸로, 용서해 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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