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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송곳니는 자신을 잊지 않는다(1) (58/94)



〈 58화 〉송곳니는 자신을 잊지 않는다(1)

····뭔가 잘못된 걸까.

이모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사람처럼 어깨를 들썩이길래, 혼란한 와중에도 웃음을 지어 보였더니.
이모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입은 코트 색과 비견 될 만큼 어두워졌다.

솔직히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거짓말쟁이로 오해하고 두다다 쏘아붙일 때가 방금 전인데.
지금은 이모 앞에서 '그냥 꼴 받아서 다 두들겨 팼는데, 샤샤도 저랑 똑같았나 보네요' 라고··직설적으로 말해도 무사할 느낌이 든다.

그만큼 이모는 내게 심각히 미안해하고 있는 듯했다. 아까 나를 몰아붙인 것을 후회라도 하는 건지.
그래도.

"살면서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억울함에 드는 짜증이라든지 그런 건 일절 남아있지 않았다. 나에게도 나만의 역린이 있듯, 이모도 그녀만의 역린이 있을 것이니까.
우연히 그게 터져버렸던 것 같았다.

의기소침해진 이모의 모습이 괜스레 마음에 걸린다. 잠깐 말이 없던 이모는 이어진 내 부름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어낸  말했다.

"일단··· 집으로 따라와라."

먼저 등을 돌린 이모의 뒤에서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누가 보면 내 집이 아니라 이모 집인 줄 알겠어요, 따위의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진지한 상황이란 걸 인지하는 와중에도.

제 집인 양 성큼 앞서가는 이모를 따라가 집에 들어섰다. 안에 있던 그녀들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여럿이 사느라 살짝 어지러웠던 집 안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


유리야 그렇다 치고, 항상 정갈하던 페챠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걸 보니 누가 청소했는지 알겠다.
진짜 떠나려고 했네. 행동력 한 번 대단했다.

"조카랑 긴히 할 얘기가 있다."

이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벌써 저만치 걸어간 그녀들이 문고리를 잡았다.
먼저 유리가 나가고, 페챠도 나가겠거니 하는 순간, 그녀가 뒤를 돌아 이모를 쳐다본다.
언뜻 본 페챠의 얼굴에 뿌듯해 하는 듯한 화색이 맴돌고 있었다. 이모는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듯 눈을 찡그리며 얼른 나가라 손짓했다.

"잘하셨습니다."

 말을 남긴 페챠는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집을 나갔다. 그에 의아한 눈빛을 띄우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 적막이 흐른다. 무거워진 공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에 일부러 태연히 탁자에 앉았다.

"일단 앉으실래요?"


말함과 동시에  앞을 공손하게 가리켰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모는 조용히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그렇게 둥그런 탁자를 사이에 둔 모양새가 되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죠?"
"····음."

눈을 내리깔아 내 시선을 피하던 이모는 침음을 내뱉었다.


'··· 날 밝기 전에 얘기할 수 있을까.'

도통 무슨 고민을 하시는 건지 감이  잡힌다.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아하니 그리 나쁜 얘기는 아닐 듯한데.
비록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이모였으나, 아무래도 내가 먼저 말문을 열어야 할 듯했다.

일단 천천히···농담 같은 얘기로.

"이모도  싫어하세요?"
"····?"

장난스레 웃으며 이모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들이 내 제안에 질색했던 이유를 인터넷으로 알고  후, 이마를 짚었었는데.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페챠랑 유리한테 한 번 권해봤는데, 다 싫어해서요. 이모도 그러나 해서 여쭤봤어요. 하나 타드릴까요?"
"····샤샤."

나지막하게 내 이름을 부른 이모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농담이 영 아니었나 보다.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던 건데.

"별로 재미가 없었나요?"
"····재미?"


손을 내린 이모의 시선이 내 얼굴로 향했다. 뭔가를 탐색하려는 듯이 집요한 시선이었다.
어떻게 이리 농담 센스가 극악인지 알아보려는 걸까. 멋쩍은 듯 살짝 웃으니 이모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말이군. 정말 하나도 몰라."
"뭘 몰라요?"
"···아니다. 그래··조카야. 요즘 하고 싶은 건 없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면 궁금하게 하지 마시던가.
 먹는 감 찔러보는 셈 치고 대답했다.

"제 과거가 알고 싶어요. 이를테면··"
"그건 절대 안 돼. 그거 빼고·· 원하는 거라도 있으면 말해라."


···살짝 손끝만 댔는데 손가락이 잘려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온다.
확실히 안 되는 품목은 알았고··


"·····"

내 돌덩이 같은 머리를 굴려가며 계산을 마친 뒤, 이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모는 이모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
"그냥 평범한 가족처럼 지내자는 거에요. 따로 살면서 가끔 연락도 주고받고 그런 일반적인 가족."
"···면목이 없다. 바로 러시아로 돌아가마. 그래도 애들은 남겨 놓고··"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그냥 한국에서 같이 살자는 얘기였어요."


죄인처럼 눈을 감고 있던 이모가 휘둥그레 눈을 떴다.

"제가 괜히 이모를 붙잡는 건 아니죠?"

그 말 이후, 오늘 처음으로 이모가 만족스레 웃는 걸 보았다.

*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나중에 봬요!"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페챠와 슈트케이스를  유리가 먼저 집을 나갔다.

"며칠 더 있다가 가시지 그러셨어요."
"됐다. 어차피 집은 이미 구했으니까 문단속이나 잘해라."


쿨하게 말한 이모는 집을 나서려 했다. 그러다 아차 했다는 듯 걸음을 멈춘 이모는 문을 등진 채 뒤를 돌아 말했다.

"만나는 여자 있냐? 그냥 친한 사이 말고."
"음··· 아니요."
"발랑 까져 가지고. 어장까진 뭐라 안 한 다만··괜히 기지배들 맘 울리지 말고, 잘 대해줘라. 그럼 간다."

이모가 떠나가고 방에 홀로 남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보신 적 없을 텐데.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네."


*


혼자 남은 내가 제일 먼저  일은 종이와 펜을 찾는 일이었다.
탁자에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끄적거렸다. 다 적고 난 후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진 것들을 읽어보았다.

[이 새끼 마피아가 맞았음. 이모는 과거에 대해 알려줄 생각 절대 X. 근데 난 알아야 함.]

"왜? 좆같으니까. 끌려다니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인생을 시작하나 했더니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지금이야 이모 하나지만, 이러다 삼촌 사촌 팔촌 형제까지 다 몰려와서 샤샤! 샤샤! 거리는  들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누가 날 죽이려는 건지 알고 싶었다. 어떤 씨발놈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겁이 나진 않았다. 오히려 깨부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야  마음 놓고 살지.


시선을 내려 밑에 적힌 걸 읽었다.

[몸의 제어권. 샤샤 이 새끼가 자꾸  정신 뺏으려 함. 사실 몸도 문제임. 모르는 이름에 몸이 반응함. 정신이 돌아와도 이건 똑같음.  외···]

···써 놓고 보니까 심각하다. 귀신 들린 것 같아서  섬뜩하기도 하고.
지금 제일 무서운 건 꿈이다. 꿈으로 나타나는 샤샤의 기억이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고, 꿈을 꾸지 않을 방법은 내가 알기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꿈은 꾸게 된다는 건데··정신이 멀쩡할까.


"아예 막을 순 없어도··완화는 시도해 봐야지."

나는 다쳤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벌써 붕대를 풀고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는 상처.
정신 차리려고 몸에  긋긴 싫으니, 빨리 새 부적을 새겨야 할 듯하다.
나인지 샤샤인지 깨달을 팽이로  문신.

'그럼 이제··경호도 다 떼어냈으니까 감시할 사람도 없고 기다릴 일만 남았다.'

보호가 사라진 먹잇감을 그쪽에서 지켜만  리가 없다.
어떻게든 내게 접촉을 시도할 때··먹잇감이 아니란 걸 알려줌과 동시에, 붙잡아 역으로 정보를 캐내야 한다.


"날 여기 남자로 생각했다면 오산이지. 오기만 해봐, 죽여줄 테니까."


손가락을 꺾자 뚜둑거리는 소리가 무섭게 울려 퍼졌다.

이모가 총 한 정만 두고 갔다면 좋았을 텐데. 비록 여기서 쓰기도 힘들고 지니고 있기 힘들어도.
최종병기만 있다면 집만큼은 방어가 가능하다. 예상치 못한 습격이라도 어떻게든····
검지를 까딱거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표출하던 나는, 슬쩍 웃었다.


"너나 나나, 별 차이는 없네. 나라서 다행이지?"


미친놈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

"··채민아. 나야.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해?"

하율은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마루를 쓰다듬으며 우울하게 말했다.


ㅡ어. 근데 어디 아프냐? 목소리가  그래.
"그냥···감기."
ㅡ뭔 여름에 감기야. 아무튼, 말해봐. 또 짝사랑 상담이면 죽인다.
"그런 거 아니라고···하아. 일단 이것 때문에 전화했는데··너네가 가기로  클럽 있잖아. 발키리."
ㅡ오! 마음 바꼈어? 그래, 시발. 좀 가자고.  와꾸면 진짜 남자 다 꼬신다니까!

침대에 걸터앉아 조용히 마루의 털을 빙빙 꼬던 하율은 확연히 밝아진 채민의 목소리에 꼬았던  뭉치를 스르륵 풀어버렸다.


"··일단 들어봐. 서윤이가 거기 남자 가드 예쁘댔잖아. 그니까···그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ㅡ당연히 모르지. 아니면 사이트  번 가보던가. 직원들 얼굴 같은 거 안 올려놓나?

···올려놓을 리가 없잖아 바보야.
한숨을 내쉰 하율이 말했다.


"일단 알았어. 서윤이한테 전화해볼게. 고마워."
ㅡ지금 남친이랑 데이트 중일 걸? 전화기 꺼놔서 못 받을 텐데.
"남친 있는데 클럽을 가···?"
ㅡ걔 원래 그렇잖아.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생각 좀 해보고··다시 연락할 게."


전화 너머로 매달리는 채민을 뿌리치고 통화를 끊은 하율은 스마트폰을 꾹 움켜쥐었다.


"그냥 세화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다 끝나는 건데··"

제일 빠르고 편한 방법이었지만 하율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세화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 클럽에서 일 하냐고 물어보면···자신이 오해해서 난리 쳤던  다시 한 번 되돌아보지 않을까.


'세화야. 너 혹시 거기서 일해?'
'누나  알고 있지 않았어요···? 그럼 지금까지 저 뭐 하는  알았어요 대체?'


그 때문에 생각을 거듭한 세화가···자신이 말했던 일이 뭔지 짐작해버린다면.

"···끔찍해. 절대 안 돼."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에 빠진 하율이 울상을 지으며 끙끙댔다.
그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채민이 말했던 것처럼 검색을 시도했다.

"어···?"

최근에 적힌 리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문신 많으시고 혼혈같이 생기신 남자 가드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그때 군인인데··정말 감사했습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고우십니다. 저 다시 휴가 나갈 때까지 계시면··번호··]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 하율은 창을 닫았다. 누가 봐도 세화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번호야··. 공개적인 데다가 저런 걸 올려놓으면 어떡해."

순간 짜증이 났지만, 이내 하율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세화가 그럴 리가 없지. 마루야! 언니가 오해한 거야!"

기뻐진 하율은 마루를 안아 들고 뒤로 드러누웠다.
모든 것이 기분 좋게 해결됐다 생각하고 세화에게 '지금 뭐 해' 라고 보내려는 순간, 허리가 짜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그 여자들은 뭐지···?"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면. 세화는 왜 여자 두 명이랑 집에 들어간 걸까. 그것도 사이좋게.


"아····."


하율은 다시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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