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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 내기(2) (69/94)

〈 69화 〉 내기(2)

* * *

"저, 저기 괜찮아요?"

"네?"

괜찮냐는물음에 태연한 어투로 되물었다. 질문한 여자,신하율의친구로 추정되는 이에게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그러니까 지금····아니하율이가 동생 분한테."

여자가 벌레 드나들기 딱 좋은 크기로 입을 벌린 채,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은 정확히신하율의뒤통수를 향하고 있었다.뿐만 아니라남자들의 뜻 모를 시선도 여자가 가리킨 곳에 따라와 꽂힌다.

저 몇 쌍의 탁한 동공 안에 든 것이 나를 향한 걱정인지,신하율에게보내는 질책인지구분할수 없었다. 해서 나는,신하율의머리를 조심스레 감싸 안았다.

"·····"

매섭게 날아드는여러 감정들사이에 뾰족한 가시가 숨어있음을 느껴서였다. 그 근원을 향해 노려보기도 전, 내게 말 걸었던 여자가 알아챘다는 듯 아­소리를 냈다.

"아,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네. 아까 저희 이름물어봤었죠? 저는 정채민이고, 옆에 얘는연서윤이에요. 와 둘이 사귈 줄은몰랐····"

"사귀진 않아요."

"?"

정채민은 고개를 한 번 기울인 뒤 자기 귀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음악이 시끄러워서 그런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다시 한 번 말해줄래요?"

"저랑 누나랑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럼 걔를 왜 받아주고있는 거예요? 기분 안 나빠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쁠 이유가 없죠. 귀엽기도 하고."

말 그대로다. 오히려 내가 좋아해야 정상이지.

물론 내가 생각한 것과 별개로 여기 모두는하나같이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오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는,연서윤이라불린 여자하나뿐이었다.

나를 뺀 세상 전부가 다른 생각을 한다면, 내가 비정상인 걸까.

아니.

나를 뺀, 세상 전부가비정상이다.

깨지지 않는 신념을 망막에 띄운 채 눈을내리깔았다.

신하율이내 품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더는 구름의 감촉을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되었다. 신하율이 몸으로 직접 알려주고 있었으니.

그녀의 싱그러운 샴푸향과 달콤함이가득한 살 냄새,주향이섞여 내 후각을 애무했다. 풍만한 가슴이 뭉클하게 와 닿는 것도, 힘을 주면바스러질 것만 같은허리를한 팔로꽉 안고 있는 것도.

그야말로굶주린 늑대의 아가리에 탐스러운 고기를 들이미는 꼴이라, 안쓰러움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내 송곳니가신하율의목덜미를파고들기전에.

"일단 누나 좀 집에 데려가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음····그건."

신하율을안전한 곳에뉘이고 싶었다.

본능에 따라 이대로 조금만 더있고 싶었으나그래선 안 됐다. 술 취한 사람, 심지어신하율을상대로 차오르는 욕심을 채우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그,하율이동생분?"

"류세화라고부르시면 됩니다."

정채민은 심히 곤란한 기색을 띄웠다. 연이어 주변을 둘러보고는,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세화씨. 저희가 지금 테이블도 잡은 상태고····걔데려다주려면··나가야 되는데. 음··"

"·····그렇네요."

일하면서 알게된바, 이 클럽발키리는다른 클럽보다 테이블 비용이 훨씬 비쌌다. 기껏큰돈쓰고 남자물어가러 왔는데, 당연히 나가기 싫겠지. 성별을 바꿔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할까. 일 중에 함부로 나갈 수도 없고, 여러모로 진퇴양난이었다. 눈썹을 찡그리며신하율의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잠깐 나갔다가 택시에 태워서 보내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여태껏 잠잠히 있던연서윤이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내재된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지금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데, 택시에 태워 보낸다해도집까지 제대로들어갈수나 있겠습니까. 보나 마나 길거리에 쓰러져 잘 게 뻔한데."

"뭐 어때요?"

연서윤은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취해 나자빠져 있는 여자를 누가 건든다고. 혹시 남자라면하율이도좋아할····농담이고요.그, 원래 저희는 길바닥에 친구 던져 놓고 가기도 해요. 그래야 다음부턴 안 그러지."

"·····그걸 지금."

이 누나 어떻게 입었는지 안 보여? 전혀 그럴 생각 없던 남자도 미치게 만드는 복장인데?

날 선 문장들이 나가게 해 달라고 혀를 거세게 찔러 대었다.

그러나 줄곧 비정상이라 치부해왔던 상식에 가로막히곤, 혀를 깨물었다.연서윤이한 말은짓궂었지만, 틀린 부분은 없었기에.

그래, 안 그래도 치안 좋은 이 한국에서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한 줌에 가깝다는 것을 아는데도.

그 티끌만큼 작은 한 줌에 당한 이를 본 나는 뭘까.양이 적든 많든 독은 독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

또한 그 독이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신하율에게 다가올지도 몰랐다.

욱씬.

또다시 어깨에 통증이 일었다.

이것에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셈인지 듣고 싶었다.

환상통에불과함에도 쉽사리 떨쳐낼 수 없는 이유 또한 말이다.

"실례 끼쳐 죄송했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제가 데려가야겠네요."

신하율의허리를 받치며 걸음을 떼려 하자,연서윤이어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 일하는 중 아니었어요? 아니 어떻게 하려고 마, 맞다. 하율이 집 주소는 알아요?"

"네, 알아요."

다 집어치우라지.이시아에게는미안했지만별수가 없었다. 자리를 함부로 비움으로써 그에 따라올 불이익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그 어떠한 것도 지금은,신하율을안전히 집에데려다주는것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자, 잠깐만요. 그냥 농담한 거에요 농담. 어떻게 친구를 버리고 가요, 당연히데려다줘야지."

"?"

연서윤이어색하게 웃었다.

"그니까 제 말은 저희가 돈도 많이 썼고, 그래서 부탁을 들어주려면 그에 맞는··"

횡설수설하는것도 모자라 말까지 빙빙 꼰다. 그래도 요점은 알아들었다.하기야 저들도 내가 아니었으면 즐겁게 놀 수 있었겠지. 너무 내 생각만 했던 것도 같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예? 진짜요···? 말 다 안 끝났는데····"

"그런데 돈을 돌려드리고 싶어도사정상그럴 수가 없네요."

수중에 지닌 돈을 되짚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테이블 비용을돌려주고서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되었다.

"아, 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따로 원하는 거라도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웬만하면 다 들어드릴게요."

"하!"

뭐지, 이 끔찍한 탄식 소리는.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아까신하율옆에 앉아 불만 가득해 보이던 남자였다.

나는 싸늘함을 내비치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말씀하세요. 돈 말고 어떤 걸 원하시는데요?"

"음···그냥 하루만 같이 놀아주면 돼요. 오락실도 가고, 술도 먹···어? 왜?"

연서윤은말을 잇다 말고정채민에게 귀를 가까이 댔다. 안색이어두워지는 거로보아 좋은 얘기가 오가진 않는 듯했다.

"···알았어. 그렇게 보지 마. 흠, 흠. 다시 말할게요. 여기 채민이랑,하율이도껴서 같이 노는 걸로. 어때요?"

언질이라도 받은 건지 말을 바꾸는연서윤이었다. 뭐가 됐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하루 놀아주기만 한다면리스크를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말 아닌가.

"그거야 어려울 거 없죠. 근데 죄송하지만·· 제 출근 때문에 주말은 안 될 것 같고, 다음 주평일이나 돼야가능해요."

연서윤은흔쾌히 수락하며 정채민에게 일어나자 손짓했다.

예상했던 반발이 이는 건그다음이었다.

"우리완전 꿔다놓은보릿자루네.사람 불러 놓고 뭐하는 거예요지금?"

불만을 표하던 그 남자였다. 역시 이럴 거 같더라. 안 좋은 예상은 왜 이렇게 잘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그쪽 여기 가드죠? 가드가 손님 노는 데 와서 이래도 돼요?"

"야, 그만해. 우리가 테이블 잡은 것도 아니잖아. 죄송해요, 저희는 괜찮으니까 가셔도 돼요."

남자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꿋꿋이주장을 이어나갔다.

"얼굴 믿고깝치는애들이 제일 싫어. 말도 안 하고, 혼자술만 들이키더니저러고 있네. 이럴 거면 여기 왜 온 거야?"

"·····누나요?"

"네, 그쪽 누나요!하, 아니네.오히려 다행이네. 계속 있었으면 그쪽이 아니라 나한테 그러고 있었을 테니까."

대충 윤곽이 보인다. 자기한테 관심도 주지 않고방치하던여자가, 나한텐 이러고 있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그랬겠지.

이해는 하는데,

"누나가 그쪽한테요? 아닐 것 같은데."

표정을 거둔 내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지금 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남자 대 남자로 정당하게스파링 함 뜨자고해서정신머리를고쳐 놨을 터인데. 물론실없는농담이었다. 단지 끓어오르는 화를 중화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일 뿐.

"····너 지금 뭐라 했어?"

"누나가알코올로 샤워를 해도, 그럴 일 없다고. 얼굴 화장 뜬 거나 좀 고쳐요. 목은 노란색인데 얼굴은 왜 달라요? 카멜레온도 아니고."

남자의 얼굴이 수치스러움으로달아올랐다.

"존,존나 걸레 같은게··· 오, 옷이나 제대로 입어! 노출해서관심받고다니니까 좋아?"

"그쪽도 입던가."

톡 건드니까 바로터지네 이새끼. 원래 세계였으면 신하율한테 말도 못 걸었을 새끼가.

"너 문신도존나싼티 나, 알아? 여기 일 하면서 괜찮은 여자 찾으면 몸 팔려는 거 다 보인다고."

이후로 소름 끼치는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남자의 욕은 내게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되려 이게 웃기려고 하는 건가 욕하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의, 그런 간지러운 수준.

화살의 방향을신하율에게서내게 돌렸다는 안도감에웃고만있을 무렵.

"봐봐, 대꾸도 못 하는 거. 취해서 사귀지도 않는 남자한테 안기는 여자나, 그걸 받아주는 남자나. 그렇게 끼리끼리 쳐 만나세요. 굳이 여기 나와서 물 먹이지 말고. 잡종 새끼가 한국말은 어디서 쳐 배워선···"

이 새끼 마약이라도 했나, 왜 이렇게급발진이야.

돌이켜보니 저 잡종이란 말 뱉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걔가 어떻게 됐더라.

나조차 내 눈동자가 얼어붙는 걸 느낄 때, 가녀린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살짝 고개를 비틀어 뒤를 보았다.

돌아본 곳엔 몹시 분해 보이는 고양이 한마리와 추가 근무를앞둔직장인처럼 울상지은주하나가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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