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늑대 새끼인 줄 알았는데(1)
* * *
1.
사각형으로 뻥 뚫린 유리창 너머,검은색표적이 줄에대롱대롱매달려 있다.
인간의 상반신 모양을 취한 표적.
둥그런 머리, 널따란 가슴, 배가 선명히 보인다. 그게 보인다는 건, 직원이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매만져보던 권총에서 손을 뗐다.
귀마개를 벗으며 직원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표적 좀 제일 끝으로 움직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0m 거리에서 쏘시겠다고요?"
"예."
황당한 얼굴의 직원은 귀마개를 벗더니 나를 만류했다.
"내기 때문에 너무 무리하시는 거 같은데, 솔직히 30m 거리에 있는 표적은맨눈으로잘 보이지도 않아요."
지금은 훤히 보이는 표적의 점들이 안 보인단 말이겠지만, 괜찮다.
"끝까지 움직여주세요."
다시 귀마개를 차고 조용히 표적을 바라보았다. 더할 나위 없는 완고한 태도에 직원도 포기한 듯 기계를작동시켰다.
위이잉··.
나풀나풀 흔들리며 멀어지던 표적은 벽 끝자락에 닿고 나서야 멈추었다.
덜컥!
"····"
30m 거리의 표적.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표적의 머리통 중앙에서 보이던 하얀 점은, 지평선 너머로 숨고 없는 해 같았다. 그 뜻은 정말로··
"안 보이는 게 사실이었네."
"네에··말씀드렸잖아요. 지금이라도 10m로 해드릴까··"
"괜찮습니다."
그렇게 딱 잘라 일축하니더는괜한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그제야권총으로 손을 가져갔다.
스륵.
오른손 검지를 방아쇠에 건다. 손바닥은 천천히 하부를 감싸고 왼손은 자연스레 오른손 위를 덮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지켜보던 직원이 옆에서 부산을 떨었다.
"어? 그러고 보니까 아직 자세를 안 알려드린 거 같은데. 총알만 넣어드리고··"
그랬었나.
분명 탄창을 끼워주며 주의 사항 같은 것만 읊어주긴 한 거 같은데, 죄다 기억이 안 나네.
"··혹시 어떻게 쏘는지 설명 필요하실까요?"
내게 흠이 없었던 걸까. 자세에 대해선 더 거론하지 않고, 뭔가 확인하듯이 물어온다.
가볍게 거절한 뒤, 손안의 권총에 신경을 집중했다.
이 몸으로 빙의해서, 두 번째로 쥐어보는 실제권총.
손가락 한 번에 생사를결정짓는무기인데도 그저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가만히ㅡ 있었다.
"왜 안쏘시지?"
"하율이때문에 약간현타오신 거 같은데. 에이, 그냥 무리수 두지 말고 즐기기나 하시지. 돈 낼 사람은 따로 있는데."
거슬리는 소음이 귀마개를 뚫고 들어왔으나,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그저 까마득한 거리에 있는, 희끄무레한 형체를 바라보았다.
"··· 하."
헛웃음이 나온다. 몸의 일부, 아니 어쩌면 전체가.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묘하고, 기괴했다.
어떻게 쏘아야 미간을 뚫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뇌 주름 한결 마다 스며든 것 같았고.
안구에 연결된 시신경은 그 한계 속에서도 내게 목표를 보여주었다.
"아, 어떡해. 화나신거 아냐?"
"한숨 쉬실 정도로 짜증 많이 나셨나 봐.승부욕엄청세신가보다."
애매한 걱정, 꽃 안에 숨긴 가시가 지나간 후에야 물기 어린 목소리가 모습을 내비쳤다.
"·· 이따가사과할게세화야·· 미안."
전부터 사과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었는데, 기어코 또다시 해버린다.
바보 같고, 어리석고, 멍청할 정도로 착해 빠진 성품에.
"그래서 네 얼굴 안 본 거야.흔들릴까 봐."
허공에 대고 속삭이며 시야를 검게 물들였다.
그 안에서, 따스한 빛 한 점 받지 못한 망막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서서히. 내 것이었던 금안(?)은 누군가의 것으로 변모해갔다.
안구의 표면에 차디찬 서리가 맺힌다.
추위는 자연스레 얼음이 되어 내 눈을 온전히 덮었다.
그 안에 잠든 수많은 인명을 보고 나서야, 눈을 떴다.
시야가 개이고 바라본 곳엔.
망자의 피로 물든밧줄들이 어지럽게 엉켜표적을 향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아마도 샤샤의 내면일 것이었다.
"··이게 네가 보는 세상이구나."
"세화 씨? 그냥 10m로···"
타앙ㅡ!
첫 한 발. 직원의 말은 격렬한 총성으로 덮었다.
그녀도 이 거리에선 표적을 확인할 수 없었는지, 한숨을 쉬며 사로 옆에 달린 소형 전광판을 보았다.
"그 거리에서 절대 못맞추신다니까요··· 자 보세요·· 어? 이거 뭐야."
직원은 뭐라 중얼거렸고, 나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보이지도 않은 점을 향해서.
타앙ㅡ!타앙ㅡ!
귀마개를 찢고 들어오는 총성 속, 나는 러시아어로 샤샤에게 물었다.
"나는 다르게 생각했지."
타앙ㅡ! 네 발.
"마피아인 줄은 알았어. 꿈으로 봤으니까."
타앙ㅡ! 다섯 발.
"비록 비서 역할이나 하는 놈이긴 했지만. 총으로 사람 하나 죽여봤으니."
타앙ㅡ! 여섯 발.
"그래도 늑대 새끼 정도는 되나 했는데."
타앙ㅡ! 일곱 발.
"아니 늑대 새끼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세 발이 남았을 때, 웃었다.명백히 따지자면 실소에 가까운.
오직 연습으로만 이 실력을 이루어낸 게 아니다.
도대체 몇 명의생목숨을끊어봤길래, 저 표적이 사람으로 보일까.
사실 표적 따위로 연습한 적이 없던 건 아닐까?
"넌 알아?"
샤샤는 이렇게답할지도 몰랐다.
넌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일일이기억하냐고.
타앙ㅡ!타앙ㅡ!타앙ㅡ! 찰칵ㅡ!
마지막 연사, 열 발.
탄창이 비워짐과 함께 내 공허한 물음도 끝났다.
조용히 권총에서 손을 떼려는 찰나, 어떤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바로 내 앞. 쇠사슬에 꽁꽁 묶여 앞으로밖에 쏠 수 없는 권총을.
그다음, 예전 이모와 나눴던 대화가 뇌리를 관통했다.
'애들을 좀 팼어요. 그래서 제가 대응을··'
'··샤샤. 일단 그대로 가만히 있어. 제발 참아라. 걔들한테 바로 들킬 수 있어. 내가 한국 갈 때까지만··'
그때 이모는 뭘 걱정했던 걸까.
내가 돌발 행동을벌일까 봐? 아니면 모습도 드러내지 않는 그들에게 내가 당할까 봐?
많은 생각이오가며 만들어낸 인고의 시간은, 불과 1초도 안 되어 끝났다.
머리가 아파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탁ㅡ!
총을 놓아버리며 귀마개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방탄복은 제자리에 걸어두면 되죠."
"·····"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적을 당겨 확인할 정신도 없는 듯 복잡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대로 돌아 방탄복을 찢듯이 벗으며 발을 내디뎠다.
"계산하고 나오세요."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들이 움찔거렸다. 아직 눈에 서린 한기가 녹지 않았던 탓일까. 내가 표정을 짓지 않고 있는 건 확실한데, 어떠한 눈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딱히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ㅡ
"하아··."
시선이 닿은 곳엔 잔뜩 움츠러든신하율이있었다. 가슴이 쓰리고 뒤틀렸다.뒤따라오는감정도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종류였다.
겁이 나 앞머리를움켜쥔 채로 발걸음을빨리했다.
"안 따라오고 뭐 해요."
결국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엉거주춤 움직이는연서윤과정채민이 한 마디씩 뱉었다.
"아, 네, 네·· 가야죠.하율아계산 부탁해··"
"일단 화나신 거 같으니까 잘 달··"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뭐 하는 거야.
"하율누나 나오라는 소리였어요. 나머지 분들은 제가 쏜 거 확인하고,계산하셔야하니까."
"···?"
"그게 뭔··"
내 말에축 처져있던신하율이고개를 들었다. 짙은 미안함이 번졌던 눈동자가 당황으로 바뀌어있었다.
"표적 당겨주세요."
"아, 예."
직원은 군말 없이 기계를 조작했다. 이내 다가온 표적을 받더니 그녀들에게 보여준다.
머리 정 중앙에 아주 정확히 뚫린 구멍 하나.
그녀들은 표적을번갈아 보며궁시렁거렸다.
"머리 중앙에 한 발··? 아니 대단하긴 한데 이러면30점이잖아요?"
"우리가 이겼는데?"
"30점이 아니라 300점이죠. 열 발 다 맞췄으니까."
"에?"
"아니 그럼 저 구멍 하나에 열 발이 다 들어갔단 거에요?"
연서윤이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표적의 구멍을 가리켰다. 손가락도 넣었다 빼며콩알만 한크기를 확인하곤 헛웃음을 뱉는다.
"·· 이건 아니죠, 세화 씨.하율이때문에 기분 상하신 건 이해하는데. 아니,승부욕세신 건 이해하는데··"
"그··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듣고 있던 직원이 끼어드려 하자연서윤은도리어 직원을 볶았다.
"아, 이 분이 아시겠네. 계속 전광판 보고 계셨죠? 세화 씨 몇 점이에요?"
직원은 쩔쩔매다 답했다.
"300점·· 입니다. 저도 믿을 수 없어서 재차 확인했는데··. 그, 그러니까 제 말은, 저 구멍 사이로 총알을 다 맞추셨다는 거에요."
·····.
이후, 주변이 고요해졌다.
어떤 이는 귀를 툭툭 건들고, 어떤 이는 기계 고장 난 거아니죠?ㅡ네아닙니다ㅡ따위의 만담을주고받았다.
그중 제일충격 받은 얼굴은 다름 아닌신하율이었다. 그에 나는 전전긍긍하며 표정을 관리했다.
혹시 내가무서워졌을까. 고작 총 좀 잘쏘는 거로그럴 리가·····
덥썩.
정체 모를, 아니 이상하게 익숙한 두려움이 치밀어 저도 모르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와요. 바람 좀쐬야할 거 같아. 그러니까 빨리··"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동공이 흔들리며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녀 안에 담긴 내가 불안하게 일렁이던 순간,
"··괜찮아, 세화야."
그 목소리 하나에 뭉쳤던 것들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더하여신하율에게담긴 내 싸늘했던 눈도 다시 돌아가 있었다.
"나도 좀 답답했는데 잘 됐다. 아, 그리고 있잖아."
신하율이작게 웃었다.
"진짜, 진짜! 고마워, 세화야! 오늘 돈 다 굳었다.그치?"
솜사탕 같은웃음에 홀린나는 생각했다.
위험한 것 같아.
신하율너나, 나나.
2.
"어우, 진짜 달래느라혼났네. 왜 그렇게 못 믿지. 다 맞춘 거맞다니까."
직원은 사격장 데스크에 앉으며 툴툴댔다. 그녀들이 얼마나 떠들었는지 아직도 귀가 아프다.
하지만 자신도 정말 의문이긴 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기교를 부릴 수 있을까.
또각,또각.
선명한 구두 소리가 가까워지며 가게에 한 여인이 발을 들였다.
직원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훑으며 내심 감탄했다.
길고 가늘게 쭉 뻗은 다리, 운동을 많이 한 듯군살없이 탄탄한 몸매.
그리고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차갑고도 아름다운 얼굴.
"어서 오세요. 오늘 예쁘게 생긴분들이참 많이 오시네."
칭찬에도, 여인은 무뚝뚝하게 묵례하며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벽 한쪽에, 나란히 걸려있는 표적들을 보며 물었다.
"이 표적이 왜 1등 자리에 걸려있죠?"
머리에 구멍 하나만 뻥 뚫린 표적, 그 밑에큼지막이쓰인 이름.
류세화.
그걸 바라보는 여인의 눈엔 작은온기와 의아함이담겨 있었다.
"아, 구멍이 한 개라 오해하셨구나. 거기에 열 발 다들어간거에요. 심지어30m 거리에서요!남자분이신데 대단하죠?"
"대단하네요."
그 후로 한참이나 표적을 응시한 그녀는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저·· 손님?"
"혼란스러워서요. 내가알기엔이럴 수가 없는데."
직감적으로 불안해진 직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쏘실 건가요?"
"··아. 여기 사격장이었지. 그러죠, 오랜만에."
오랜만이라고말하는걸 보니,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 신분증 검사부터 할게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시아."
3.
그날 직원은 둘이나 보았다.
그 거리서 총알 열 발을 머리에 다 맞추는 사람을.
"그래도 남자 분이 진짜 잘 쏘긴 했구나. 여자 분도 잘 쏘긴 했는데 붙여 놓으니까 비교가 안 되네."
직원은류세화라적힌 표적 옆에,이시아라고쓰인 표적을 붙이며조금 전이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그래도 2등이라 1등 옆에 붙여줄 거였는데."
왜 그리 자기 표적이 1등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그토록! 졸라 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 생각하니까 웃기네."
직원의 입을 비집고 웃음이 터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과, 살짝 붉어진 그녀의 얼굴이 심각하게 안 어울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