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백하연-1
"그럼 오늘은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라, 가다가 몬스터한테 뒤지지 말고 게이트는 최대한 피해서 들어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게이트가 터지는 시대다. 주변에서 재수 없게 게이트가 터지면 그 길로 뒤지는 거다.
"절대 죽을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이나 조심하세요. 주변에 게이트 터지면 가게고 뭐고 두고 도망가시고요."
"흥! 몬스터 따위 이걸로 잡으면 그만이야!"
사장님은 커다란 총을 꺼내 보였다. 몬스터 용으로 특수 제작된 총은 묵직하게 분위기를 풍겨 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시내 구역이야, 게이트가 터져도 금방 각성자들이 올테고 그 정도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어."
"그래도 조심하세요. 죽으면 끝이잖아요."
"삶에 큰 미련은 없다."
하여간 저 노인네는 사람이 말을 해도 듣는 척도 안 해요.
"아무튼, 저는 진짜로 가봅니다."
가게 문을 나서자 우리 총포상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여기서 일 한지도 벌써 10년인가?`
오래도 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살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지금이 25살이니 인생의 5분의 2를 이 가게와 함께해온 것이다.
그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이 찾아와서 잡일이라도 시켜달라고 머리 박고 빌었을 때부터 각성자들이 깽판을 부린 것, 사장님이랑 같이 고기를 먹으면서 술을 마셨던 것 등 정말 사소로운 기억들이었다.
`이런 생각 하니까 어딘가로 떠날 사람 같네.`
정작 내일 아침이면 다시 출근할 거지만.
잡생각을 떨쳐내고 걸어가다 보니 시내 구역과 빈민가의 경계가 보였다.
건물 하나를 두고 구분되어 있는 두 구역의 사이에 익히 아는 얼굴이 보였다.
"명환이 형, 오늘은 형이 당번이에요?"
"그렇게 됐다."
빈민가와 시내 구역을 왕복하며 출퇴근 한지가 벌써 10년째 경계 구역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전부 꿰고 있었다.
명환이 형은 특히 더 친한 사이기도 하고,
"오늘은 너라도 못 봐준다. 몸수색하고 지나가야 해."
"평소에는 안 했잖아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내 물음에 명환이 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백하연이라고 알지?"
"이번에 경비 대장으로 도시에 부임한 각성자 아니에요?"
"맞아, 아직도 포기를 못 하셨는지 오빠 찾는다고 빈민가로 직접 들어가셨다."
"아직도 그 짓하고 다녀요?"
백하연은 꽤 유명한 각성자다. 아니, 꽤 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할지도 모르지, 23살의 나이에 S급 각성자라는 성취를 이룬 대단한 각성자니까 차세대를 이끌어갈 리더로서 태양 길드 내부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한다.
최소한 태양 길드의 영향권 안에 있는 도시에 있는 이들은 그녀를 모를 수가 없었는데 어릴 때 헤어진 오빠를 찾아다닌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는 것 또한 모든 시민이 공유하는 공동 지식이었다. 일단 어릴 때 살았던 도시인 우리 도시에 틈만 나면 찾아와서 수색하기도 하고, 뉴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도 했다.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헤어진 지 15년이 넘었다면서요?"
들어보니 오빠란 사람은 각성자도 아니었다는 데 이 정도로 안 나왔으면 당연히 죽은 거지. 살아있었으면 진작에 찾아가서 S급 각성자의 비호 하에 떵떵거리며 살았겠지.
'... 아닌가.'
설마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백하연의 정체가 내가 아는 그 아이라면….
'아니, 그럴 수는 없어.'
각성자 백하연이 찾는 것은 자신의 오빠라고 했다. 그 아이와 나는 혈연관계도 아니고 그리 오래 같이 지네지 않았다.
백하연은 자신의 오빠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을 정도로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아이는 나와 처음 만날 때부터 찬란했다. 각성조차 못 한 나와는 다르게 강력한 각성 능력을 보유했고 어린 나이임에도 굉장히 강했다. 분명 나 없이도 잘 컸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다. 이쯤 안나오면 포기해야지 요즘엔 사칭 들도 안 나타난다며?"
"나왔다 하면 바로 죽여버리니까요."
5년 전 A급 각성자였던 그녀가 처음 오빠를 찾는다. 입을 열었을 때만 해도 자신의 백하연의 오빠라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이 그녀를 찾아갔다.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열 명 정도는 됐었던 것 같은데지금은 생사가 확인된 사람이 아무도 없다.그 누구도 입에 올리진 않지만, 모두가 짐작하고 있다. 그녀가 감히 자신의 오빠를 사칭한 죄로 그들을 죽이거나, 최소한 사회에 나오지 못할 정도의 압박을 주었다는 것을.
"아무튼, 그래서 몸수색은 하고 지나가야 해."
"저 같은 소시민이 뭘 든다고 S급 각성자 님을 해할 수 있겠어요?"
아까 사장님이 드셨던 총을 1미터 안에서 쏜다 해도 몸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위에서 까라니까 까야지."
가벼운 몸수색을 마친 후 빈민가로 들어섰다.
빈민가는 시내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땅이 패여 있거나 깨져 있었고 멀쩡히 서 있는 건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네.'
평소의 고요한 빈민가의 모습과는 달랐다. 힘깨나 쓸 것 같이 생긴 형님들이 자주보였고 다들 불안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긴 경비 대장 나으리가 빈민가를 뒤진다는 데 발등 위에 불 떨어진 곳이 한두 곳이 아니겠지.
'나는 딱히 걸리는 게 없지만'
애초에 나는 시민권이 있는 데도 돈을 아끼려고 빈민가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뿐이었기에 기분이 나빠진 각성자 나으리에게 맞아 죽는 게 아니라면 법적으로 거슬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집으로 걸어갔다.
'이 아저씨 어디 갔어?'
평소에 앉아서 구걸하던 벙어리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에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뒤를 돌아서 골목을 빠져나가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호랑이의 입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 오늘은 시내에서 자자.'
늦은 밤이긴 하지만 웃돈을 얹어주면 잘 수 있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정 갈 곳이 없으면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가게에서 자자.
마음을 먹고 뒤로 돌았을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잠깐, 멈춰 보지?"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실체가 없는 목소리였지만 깨끗한 하얀색이란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그런 목소리에 강압적인 어투를 지니니 고결하다는 느낌 마저 들었다.
천천히 뒤를 돌았다. 몸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목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네가 이 근처에 산다는 이 수현이냐?"
키는 나보다 살짝 더 큰 정도였을까? 각성자 치고는 그리 큰 키는 아니었다.
어떻게 저렇게 깨끗할까 싶을 정도로 티 없이 빛나는 백색 머리카락,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듯 환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까지,
백하연이라는 존재의 사진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기사에서 묘사한 백하연, 그 자체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녀의 모습은 백하연이라는 S급 각성자 보다는 몬스터 밭에서 겨우 살아남아 울고 있던 여자아이로 먼저 다가왔다.
"네, 저는 왜 찾으셨나요?"
긴장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설마 알아듣진 않겠지? 헤어진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불과 1년 같이 지넨 사람의 목소리를, 그마저도 변성기가 지난 목소리를 알아들을 순 없을 것이다.
"이 근방이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인데, 주변 이들에게 물으니 이 수현이라는 남자가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고 해서 말이야."
그녀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S급의 기세는 굉장히 무거웠다. 나를 압박하기 위해 풍기는 기세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한 걸음걸음마다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긴장에 다리가 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내 오라버니에 대한 행방을 알고 있나?"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네가 찾는 사람이다. 하고 밝혀버려?
그럼 편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수많은 사칭들과는 다르다. 나는 그녀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말 몇 마디만 나누면 그녀도 내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왔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고나는 S급으로 성장한 여동생덕분에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릅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뇌에서 처리하지 않고 입이 먼저 내뱉은 말이었지만 어쩌면 이게 나의 진심일지 모르지, 괜히 고위 각성자랑 엮여서 불편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말이다.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백하연은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녀가 바로 옆으로 지나갈 때 상쾌한 박하 향이 코끝을 스쳤다.
"혹시라도 어릴 적 이곳에서 만났던 남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면 나에게 알려줬으면 좋겠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하연은 골목길에서 사라졌다.
혼자서도 골목길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백하연이 사라지니 골목길이 더욱 휑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털썩...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돌 바닥에찍어 좀 아프긴 했지만 별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