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백하연-2 (2/265)



〈 2화 〉백하연-2

`그 꼬맹이가 저렇게 컸구나….`

어릴 때와는 꽤나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먼지와 때로 덮여있던 머리카락은 그녀의 재능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났고, 과거에도 반짝였던 눈빛에는 스스로 얻어낸 강함이 깃들어 있었다.


`왜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기사 속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뉴스에서 그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백하연이 어렸을 때 만났던 그 아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 했을 리가 없다.

`사실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일부러 그녀를 직시하지 않았다. 뉴스에서 그녀의 얼굴이 비칠 때면 채널을 돌렸다.
채널을 돌릴 수 없을 땐 나의 눈을 돌렸다. 저 사람은 내가 아는 그 아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여왔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 이미 내 머릿속엔 멋지게 성장한 그 아이의 모습이 각인됐다.
나 하나를 바라보며 세상의 무게를 버텨내던 눈동자는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아래에  수 있다는 듯 고고하게 빛났고 먼지로 덮여있던 머리카락은  없이 하얗게 빛을 발했다.


오빠로서 참으로 뿌듯했다. 잘 성장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에 푸근한 미소가 지어졌다.
15년 전 헤어졌을 때 오라버니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울부짖던 아이가 떠올랐다.


`나 없이 아무것도 못 하긴, 이렇게 멋지게 컸잖아.`


나 없이도 잘 성장한 그녀다. 굳이 그 옆에 내가 있을 필요는없겠지.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떠나 온 거잖아?`

재능 없는 내가 그녀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 각성조차 하지 못한 내가 그녀의 약점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도망쳤다. 그저살기 위해 배운 잔재주 외엔 아무것도 없던 나니까. 그녀의 곁에 있어 봤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녀의 곁에 있어 봤자 그녀의 약점이 뿐이다. 태양 길드 안에도 파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벌에 인질로 끌려갈 수도 있고 그녀가 나에게 집중하면서 해야 할 일을 못 할 수도 있다.

`일단 집부터 옮겨야겠다.`


그녀와 접점이 생기지 않도록,
혼란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된 기분이다. 요즘 너무 편하게 살아서 물러진 걸까? 잠시라도 여동생한테 기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내가 혐오스러워졌다.

그래, 그녀는 완전히 잊자, 어차피 나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니 시내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조용히 살면  일이다.
빈민가에서 생활하는 것보단 돈이 더  테지만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으니 한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돌 바닥에 깨져 피가 흐르는 무릎을 잡고 일어섰다.

아무도 없는 골목을 터덜터덜 걸었다. 밤이 늦어 부동산은 열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집에서 자고 싶진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빈민가와 시내의 경계구역을 통과했고 우리 총포상에 도착했다.


-띠링

"누구쇼?"

총기를 손질하고 계시는 사장님이 문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서오쇼도 아니고 누구쇼라니…. 대부분 손님일 텐데.`

속으로 가볍게 웃으며입을 열었다.

"저에요. 이수현."
"응? 퇴근한  얼마나 됐다고 왔어? 손님으로 왔냐? 탄환  떨어졌…. 무슨 일 있었냐?"

그렇게 티가 났나?
10년을 같이 일하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별일 없어요. 그냥 오늘은 등 따시게 자고 싶어서요. 여기서 자도 되죠?"
"자는 건 상관 없다만 진짜 괜찮은 거냐?"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사장님의 눈은 까칠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조금 거칠긴 하지만 좋으신 분이라니까.`

아직 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게 오히려 죄송할 뿐이다.

"소파에서 자면 되죠?"
"그래, 푹 자라."

손님용 소파에 풀썩 드러누웠다.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올 리는 없고혹여 찾아온다 해도 깨면 될 일이다.
S급 각성자의 기세를 받아내느라 힘이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옛 인연을 만나 심력 소모가 컸던 것인지 나는 금세 잠에 빠졌다.



***
"우와,  엄청 쎄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자신을 덮쳐오는 괴물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울고 있을 때 오라버니만이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


"이 부분은 못 먹어, 질겨서 삼킬 수가 없거든."

힘만 쎄고 무식한 나와는 달랐다. 오라버니도 10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그는 굉장히 어른스러웠고 아는 것도 많았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괜찮아?"


오라버니는 각성하지 못 했지만 각성을  자신보다 생존하는데 훨씬 능통했다. 어떨 땐 싸움도 나보다 잘했다. 그가 가는 데로 따라가기만 해도 나는 살아남을  있었다.


"오늘은 식량을 구해서 다행이다. 그치?"

힘만 쎌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 오롯이 오라버니의 덕분이었다.

"너는 크게 성공할 거야. 내가 보장할게."

오라버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였다. 오라버니의 확신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내가  사람이 될 거라느니, 성공할 거라 말하는 오라버니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나에게 격려의 말을 해줄 때마다 크게 성공해서 오라버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상상하곤 했다.


"이름? 글쎄? 꼭 알 필요 없지 않을까? 오라버니 정도면 충분히 좋은 호칭이잖아?"


오라버니는 자신의 이름을 끝까지 숨겼다. 아무리 간절하게 부탁해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름을 들었어야 했는데….


"안녕? 우리는 태양 길드 소속인데, 너를 우리 길드에 영입하고 싶어"

그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오라버니가 이건 기회라고, 꼭 잡아야 한다고 해서 태양 길드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다신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할 줄 알았으면 절대 안 들어갔을 거라고!!`


태양 길드에 들어간 이후 오라버니를 만날 없었다. 나는 너에게 방해가 될 뿐이라면서, 오라버니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라버니를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한 도시의 경비 대장이라는 높은 위치에 올랐다. 한반도에 10명도 채 존재하지 않는다는 S급 각성자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동안의 내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오라버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태현, 나와봐."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검은색 일색인 인영이 솟아오르기시작했다.


"방금 만난 이수현이라는 사람, 철저하게 감시해, 절대로 도망가지 못하게 확실하게."

인영이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밤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나의 충직한심복, 오라버니가 어딜 가든 따라가서 나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림자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내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찾았어…. 찾았다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못 알아차릴 리가 없다. 오라버니는 나의 은인이며 나 스스로를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으니 알아채지 못한다면 막대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니까.

15년 만에 만난 오라버니는 어릴 때의 모습을 간직하면서도 멋있게 성장해 있었다. 어릴 때에 비해 진지해지긴 했지만, 얼굴 한구석에 장난기가자리 잡아있었고, 방향성이 뚜렷한 눈빛은, 사람 자체가 강하다는 느낌을 줬다.
키는…. 나보다는 작아 보이긴 했지만, 오라버니가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하고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었다. 오히려 작아서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오라버니가 내 부름에 뒤를 돌아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오라버니를 껴안고  뻔했다.
하지만 참았다. 그의 입으로 그가 오라버니임을 확신시켜 주길 바랐다.


내가 너의 오빠라고, 지금까지 혼자 잘 해왔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모릅니다.`


 네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에 내 기대는 산산이 깨져버렸다.
오라버니는 분명 나를 알아봤을 것이다. 그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고위 각성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당혹감과 놀라움이었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하신 거에요?!`

내가 네가 찾던 사람이다. 그 한 마디면 모두 행복했을 텐데….
그녀의 오라버니가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자신을 알아보고도 모르는 척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늘 같은 오라버니의 의도를 그녀는   없었다.


`오라버니가 무슨 생각으로 절 부정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오라버니의 뜻에 따라드릴게요….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 드릴 순 없어요.`


그녀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지난 5년 동안 필사적으로 오라버니를 찾아다녔다. 감히 오라버니를 사칭하는 쓰레기들은 사지를 잘라서 몬스터의 먹이로 줬다. 더 일찍 찾고 싶었지만,  이전엔 내가 힘이 없었다.
모두가 죽었다고 말해도 신경도쓰지 않았다. 내 오라버니는 고작 몬스터 따위에게 죽을 사람이 아니다. 반드시 어딘가엔 살아있을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오라버니를 찾아왔다.


`겨우…. 겨우 찾아냈는데.`

근데 뭐? 모른다고? 오라버니가? 나를?
순간적으로 열이 확 올랐다가, 지금 내가 오라버니한테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딱 일주일만 드릴게요.  안에 오라버니가 정체를 밝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문득 울면서 잘  했다고 비는 오라버니의 모습도, 꽤나 귀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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