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백하연-3
"사장님, 제가 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데,"
"갔다 와라, 혼자서도 가게는 볼 수 있으니까."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너무 쉽게 허락을 맡아버렸다.
사장님은 내가 왜 새집을 구해야 하는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시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오늘은 할 일이 많다. 새집도 구해야 하고 이전 집에 두었던 짐들도 옮겨야 했다.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아직도 집 근처에 있진 않겠지.`
그녀에게 나는 빈민가에 사는 시민일 뿐이었으니 아직 까지 집 근처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집부터 구하자는 마음으로 도시 외곽에 있는 부동산으로 찾아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부동산 거리겠지 말이 도시 외곽이지 시내보다 더 큰 구역의건물은 워낙 소유주가 다양한 편이라 도시 외곽 근처에 부동산 거리가 따로 있었다.
도시 외곽의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나 겨우겨우돈을 모아 도시 안으로 들어서려는 사람은 눈탱이 맞기 쉬운 곳이기도 했지만다행히 나에겐 아는 사람이 있었다.
"어서옵, 뭐야? 이수현이 아니야? 이게 얼마 만이야, 설마 집 구하러 왔냐?"
반갑다는 표정으로 소파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하는 남자, 본명은 최시현으로 나랑은 꽤나 친분이 있는 편이다.
'좋은 일 하면서 쌓은 친분은 아니지만'
"네, 이제 돈도 충분히 모은 것 같아서요."
"그래, 제대로 일하는 데도 있는 애가 빈민가에서 계속 지내면 안 되지. 잘 생각했어, 나만 믿으라고 이 주변에서 제일 좋은곳으로 알아 줄 테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집이란 곳은 잠만 자는 곳인데 굳이 좋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요, 그냥 제일 싼 데로 알려주세요. 되도록이면 총포상 근처에 있는 데로요."
"하아,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찾아볼게."
형이 추천한 빌라는 빈말로도 썩 좋다고 할 수없었다.
다 쓰러져 가는 빌라에 벽지엔 잔뜩 곰팡이가 끼어있었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치 자신들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듯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무리도보였다. 위층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리는 거 보니 방음도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외곽의 빌라에 좋은 시설을 바라는 것도 무리지.`
창문으로 다가서니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이 명확하게 보였다. 창문이 깨져서 가리는 게없으니 풍경이 그렇게 깨끗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어때? 그냥 다른 데가 낫겠,"
"좋네요. 여기, 총포상이랑도 가깝고 바람도 시원하고요."
내 말에서 나의 의지를 읽은 것일까, 시현이 형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하아, 알았다. 이 건물 내 소유니까, 월말에 30만 원씩 입금해,"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이렇게 엉망인데."
"야, 주변 빌라 뒤져봐라. 이렇게 싼 곳이 또 있나. 30만 원이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라고."
"조금만 깎아줘요."
"안돼! 절대 안 돼!"
눈에 불을 켜고 말하는 모습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까짓거 조금 깎아주면 안 되나."
"어허, 아는 사이라도 거래는 철저히 해야 하는 거야."
잠시 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표정을 풀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본다? 부동산을 너무 오래 비워둘 순 없으니까."
"계약서 같은 건 안 써도 돼요?"
"설마 내가 너를 상대로 사기를치겠냐? 난 오래 살고 싶다고."
"제가 무슨 살인마라도 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는 모습이 `맞잖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손 씻은 지가 언젠데….'
"아무튼, 나는 간다. 문제 생기면 스스로 처리하고."
형이 떠나간 원룸엔 적막만이 존재했다.
`잘 한 거겠지?`
내가 오빠인지도 모르는 그녀를 피해 집을 옮겼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쓸 곳 없이 모아만 두던 돈이었으니까.
`불안했던 걸까?`
나를 알아보고도 모른 척 한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언제든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에 잠시의 자유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닐까?
옛 귀족들이 사냥의 기쁨 위해 토끼를 풀어놨던 것처럼, 그녀도 나를 풀어놓고 있는 게 아닐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떠오르는 잡생각을 지우고 문밖으로 나섰다.
되도록 오전 안엔 가게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빨리 짐을 옮겨야 했다.
익숙지 않은 거리의 모습이긴 했다. 도시의 외곽이긴 해도 환경이 훨씬 깨끗했고 길거리에서 나뒹구는 사람 또한 보이지 않았다. 좀 더럽긴 해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드는 거리였다.
-후우우우욱... 후우우우욱
아무래도 사람만 사는 거리는 아닌 모양이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원숭이 한 마리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데빌 몽키인가?`
F급게이트가 터지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녀석, 방금 막 각성한 각성자가 아니라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였지만 일반인이 상대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몬스터용 화기를 사용하거나 어지간히 단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3분도 채 되지 않아 녀석의 먹잇감이 되겠지.
각성자들이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몬스터들을 꼼꼼히 찾아 죽이는 게 아니라서 이런 외곽 구역에선 몬스터를 만나 죽는 건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총알 아까운데.`
총포상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몬스터용 권총 한 자루 정도는 들고 다녔다. 꽤나 비싼 가격이었지만 직원 특혜로100개월 할부로 샀다 보니 크게 부담은되지 않았다.
문제는 총알 가격, 한 번 쓰면 다신 쓰지 못 하는 주제에 더럽게 비싸다.
-우끼이이이이이이이!!
데빌 몽키 놈이 이성을 잃은 것 마냥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몬스터는 원래 이성이 없었나?
"형 생각 할 시간 좀 줘라."
두꺼운 가죽에 휩싸인 주먹이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필 돈도 안 되는 놈이라….'
고기는 질겨서 못 먹고 가죽은 역한 냄새가 풍겨서 쓰지 못한다. 각성자가 아닌 내가 몬스터를 잡는다고 상여금이 나오지도 않을 것이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보는 장사였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지.`
어릴 때야 주변에 몬스터가 넘쳐 나서 적당히싸움을 붙이고 튀면 됐지만, 요즘은 몬스터를 보려면 던전 게이트가 터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대다.
-우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쥐 새끼처럼 피하기만 하는 나를 보고 빡이 쳤는지 데빌 몽키가 크게 소리쳤다.
하긴 갑자기 타지로 쫓겨나서 배도 고프고 힘든데 먹잇감이란 놈이 잡히질 않으니 빡이 치겠지.
`근데 내가 더 빡치거든?`
허리춤에 걸어 놨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스르릉
사용한 지 오래 되긴 했지만, 여전히 날카롭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푹! 콰직!!
-우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입 냄새 나니까 닥쳐."
-콰직!!
입에 칼을 꽃아 버리니 좀 조용해졌다. 괜히 옷에 피가 튀지 않게 조심해서 단검을 뽑았다.
너무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인지 어깨가 살짝 뻐근했다.
"그냥 총 쓸 걸 그랬나…."
단검에 끈떡하게 묻어있는 데빌 몽키의 피를 보니 이걸 어떻게 닦아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몇 번털어낸 뒤 검집에 집어넣었다.
퇴근하고 나서 바로 닦아야지.
데빌 몽키의 시체를 버려두고 빈민가로 향했다. 원래 몬스터의 사체를 발견했으면 경비대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굳이 내가 신고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신고할 건데 시간 아깝게 신고하러 갈 필요가 없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경계구역까지는 금방이었다.
"수현씨 아니세요? 지금 시간에 여긴 웬일이세요? 평소엔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셨잖아요?"
"잠깐일 있어서요."
경계구역을 지나서 다섯 발자국 정도 걸었을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내 몸을 급습했다.
`지금 몇 시지?`
태양을 보니 아직 정오가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뻣뻣하게 몸을 돌려 경계구역으로돌아갔다.
"일있으시다니, 벌써 끝나신 거에요?"
"오전 근무는 명현이 형 아니었어요?!"
경계구역 근무는 오전과 오후 두 타임으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오전 근무는 자정과 정오 사이, 오후 근무는 정오와 자정 사이다.
내가 퇴근한 시간이 12시가 넘은 시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지금 경계구역에서 근무를 보고 있는 사람은 명현이 형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아, 원래 명현씨가 맞는데 경비대에서 불러서 그쪽으로 갔어요."
내가 말없이 서 있자 그는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는 걸 밝히기 위해입을 열었다.
"저도 갑자기 불려 온 거라 자세한 건 잘 몰라요."
뒷목이 시큰 해지는 기분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불안함이 차올랐다.
뇌가 경종을 울렸다. 나의 모든 감각이 소리쳤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사장님!`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사장님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망상과도 같은 생각이었다.
명현이 형이 뭔가 잘 못 한 게 있어서 경비대로 간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일을 잘해서 경비대로 발령이 난 걸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은 떠오르는 순간 지워버렸다. 최악을 가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뛰었다. 뛰고 뛰다 보니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우리 총포상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지.`
괜히 불안해져서 짐도 못 옮겼다.
입구까지 와서 짐 옮기러 다시 가는 건 시간 낭비니까 이따가 퇴근 시간에 옮기자.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서 들려선 안 되는 미성이 울려 퍼졌다.
"흠, 생각보다 빨리 왔군."
문을 열자 보인 풍경은 소파에 여왕처럼 앉아있는 백하연과 카운터에서 총기를 손질하며 백하연을 경계하는 사장님의 모습이었다
"뭐 하나? 앉지 않고?"
씨익하고 웃는 그녀의 모습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장난기가 가득 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