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달빛 아래의 여왕-5
그녀들의 싸움은 굉장했다.
둘은 마나 없이 싸우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 줬는데 인간의 몸이 저렇게 까지 꺽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비 정상적인 각도로몸을 꺾으며 상대의 공격을 피해내기도 하고 타격기가 제대로 들어갈 때 마다 바닥이 울릴정도로 타격감이 굉장했다.
내가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생생하게 느껴지는 격한 싸움에 광장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저 로브도 대단한데? 예지님이랑 거의 호각으로 겨루고 있잖아?"
"아니지, 분명 예지님이 봐주시는 걸 거라고 전초전이기도 하고영입하고 싶은 인재니까 실력을 보기 위해서 봐주시는 걸 거야."
"그렇겠지?"
주변에 있는 형님들 말 과는 다르게 싸움은 하연이가 훨씬 유리했다. 마나를 쓰지 않아도 기술 자체가 압도적이어서 몇 번이고승부를 끝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하연이가 싸움을 끝내지 못 하는 이유는...
-째릿
'아니 싸움 구경하는 거 가지고 질투를 하고 그러냐.'
시선이 예지라는 여자를 향할 때마다 나를 노려보는 하연이의 시선이 명확히 느껴졌다.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싸움 중에 한눈 파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퍽!!
봐봐 저러다 한대 맞았잖아.
턱에 제대로 들어간 펀치였다. 아무리 하연이라도 정통으로 들어간 펀치는 쉽게 버틸 수 없었는지 비틀거리는 게 보였다.
'이러다 지는 거 아니야?'
끝이 날 것만 같은 모습에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예지님!! 끝내 버려요!!"
자신의 패배를 확정한 주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연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걸 멈추고 눈앞의 상대에 모든 걸 집중했다. 비틀거리면서도천천히 공격을 막아 냈고 어느 정도 회복 되자 복날에 개패 듯 상대를 패기 시작했다.
암흑가 사람이 처음보는 놈 한테 쳐 맞고 있으니 분위기가 가라 앉을 법도 했는데 이 미친놈들은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로브! 로브! 로브!"
하긴 예지라는 여자가 월하도 아니고 여기 모인 모두가 월하의 직속 부하는 아닐 테니 이런 이례적인 상황이 일어나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걸 테지.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울리자 하연이의 폭력이 멈췄다. 광장 바닥이 흙바닥도 아니고 나름 콘크리트 바닥이었음에도 몸이 완전히 먼지 투성이가 된 게 보였다.
"와, 진짜 세시네요."
삐걱 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게 진짜 아파보였다.
'감정 담아서 때렸나 본데?'
"아레나에 참여 하실 거죠?"
"당연, 그러려고, 왔다."
정체를 숨기고 싶었는지 이상한 말투로 대답했다. 심지어 억양과 말의 높낮이 까지 이상하게 해서, 여자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번 우승자는 정해졌네요. 나중에 봬요."
"나, 우승, 불가, 더, 강한, 사람, 있음"
"당신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장난기가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하연이는 말없이 팔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고, 그와 동시에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 에게로 집중됐다.
"응?"
갑자기 집중된 시선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으니 하연이가 다가와 내 옆에 섰다.
"강하다, 나보다, 훨씬."
나를 보는 시선이 더 따가워졌다.
시선을 피하고 예지라는 여자 쪽을 바라보자 급한 연락이라도 왔는지 핸드폰을 들고 전화 중이었다. 저 자세로 통화를 하는 거 보니 누구랑 통화 하는 건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음, 일단 아저씨? 내기에서 딴 돈이나 내 놓으시죠?"
빨리 돈이나 받고 튀어야지, 다수의 시선엔 익숙하지가 않다.
"잠시만 기다려 보슈 우리끼리 집계를 해야 하니까."
아저씨들 여러 명이 모여서 배당이 어떻네, 총 금액이 어떻네 하는 걸 기다리고있다 보니 하연이의 상대가 나에게 다가왔다.
"말, 나에게."
하연이가 내 앞을 막아섰다.
"긴 얘기는 아니에요. 어차피 둘 이서 우승이랑 준우승 할 거 같으니까, 나중에 보자고요. 저는여왕님이 부르셔서 이만 가봐야 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남성분 쪽이랑도 붙고 싶군요."
"저 싸움 안 좋아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자가 뒤로 돌자마자 하연이가 나를 잡아끌었다.
"잠깐만, 돈 받아야 하는데,"
"지금 돈, 중요 해?"
무력하게 골목길로 끌려가자 아저씨들이 소리쳤다.
"이봐 형씨?! 돈 안 받을겨?"
"안, 받는다."
방금 전 말은 굳이 끊어 말할 필요가 있던 걸까?
하연이는 인적이 없는 작은 골목길 까지 나를 끌고 온 다음에야 멈췄다.
"하연아, 돈..."
"돈은 제가 많거든요?! 지금 돈이 중요해요? 왜 그 여자쳐다봤어요? 몸매는 제가 더 좋은데, 왜 그 여자를 쳐다봤냐고요!"
확실히 하연이의 몸매가 좋긴 하다. 키가 크고 탄탄한 몸매에 기세도 대단하고, 어디가서 꿇릴 거 같은 몸매는 아니다.
여동생 몸에 관심을 갖는 변태는 아니라서 신경 안 써서 그렇지 지나가는 사람 열이면 열 다 돌아볼 정도로 매력적인 몸이었다.
"몸매 본거 아니거든? 애초에 둘이서 싸우는데 어떻게 한 명만 봐?"
"저만 보셨어야죠!"
눈이 아주 이글이글 타오른다. 이 집착과 질투심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번엔 확실하게 벌 드릴거에요! 무릎 꿇고 앉으세요."
"넵."
저항 없이 무릎을 꿇었다. 내가 무릎을 꿇자 마자 하연이는 허벅지 위에 앉았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앉으니 굉장히 아팠지만 꾸욱 참았다.
몸과 몸이 맞닿으니 하연이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오빠는 어디에도 안 가니까."
애초에 나라는 사람은 여자를 사랑할 자격도 여자에게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니까.
하연이가 걱정하는 것 처럼 다른 여자한테 한눈 팔 일 따위는 없다.
물론 하연이 너도 마찬가지고,
그저 오빠로서의 마음을 담아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래서 찾은 거 같다고?"
"네, 확신은 못 드리겠지만 아마 그 분일 겁니다."
광장 분위기 좀 살피고 오라고 시켰더니 굳이 할 필요까지 없는 일을 한 부하를 칭찬해 줘야 할까?
"그래서, 너랑 싸웠다는 애는 어떤거 같아?"
"굉장한 실력자였지만 싸우는 방식이 비각성자 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머릿 속에서 떠올르던 수많은 인원 이 단 한명만 남고 사라졌다. 마나는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싸우는 방식 자체는 비각성자가 아니다?
이는 힘을 숨기고 있는 각성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도시에 자신의 힘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경비대장년인가 본데? 근데 왜 우리 기사님이랑 같이 있는 걸까?"
기사님, 참으로 오래된 애칭이다. 아마 저 아이들이 없었다면 서서히 잊혀져 기억해내지 못 했을지도 모르지.
"그래, 기사님이 보내라고 했다고?"
거대한 방 한 귀퉁이에서 덜덜 떨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남자아이야 크게 쓸모 없지만 여자아이는 확실히 가치가 있었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데, 어릴 때 각성한 사람은 대부분 B급 이상의 각성자가 되니까, 아주귀한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릴 때 부터 키우면 충성도도 확실히 높겠지. 지금 부하들은 최측근들을 제외하곤 자신의 힘에 굴복해서 밑에 있을 뿐 언제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놈들 뿐이었다.
요즘 길거리에서 능력가지고 소매치기를 하는 애들이 있다고 해서 언제 한 번 만나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찾아올진 몰랐다.
"네, 여왕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알 거라고 하던데요."
여자아이 한테 물었건만 대답하는 건 남자아이였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 뒤에 꽁꽁 숨어 있을 뿐 그녀와 대화를 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재능에 비해 성격은 소심하군.'
지 오라비한테 의지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기 좋진 않았다.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니 자라면서 괜찮아 지겠지.
"훈련은 너한테 맡겨도 되겠지?"
"네, 여왕님, 훌륭한 요원으로 키우겠습니다."
"아, 그리고 잠깐 귀 좀대봐."
예지가 가까이 다가오자 애들한테는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지 오라비한테 의지하는 꼴이마음에 들지 않아, 솔직히 어느 정도 키운 다음에 남자아이 쪽은 버려버리려 했지만 더 재밌는 생각이 났어."
그녀가 씨익하고 미소 지었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만들어, 여자애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듣게 완전히 그녀의 손아귀에 쥐어지게 해."
"알겠습니다."
그녀는 상쾌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부하와 아이들이 떠나가자 방금 전의 행동에 의문이 생겼다.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나는 이루지 못 한 걸 저 아이들을 통해서 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한 순간의 변덕일까?
뭐든 좋았다. 어차피 이제 '기사님'이 내 손 안에 들어올 거니까.
'경비대장이 옆에 붙어있는 게 문제긴 하네.'
대놓고 침입한게 아니라 실력을 숨긴 걸 보면 아레나를 이용해 잠입하려나 본데 아마 그의 뛰어난 실력을 알아보고 고용해서 같이 들어 온 것이 분명하다. 마나를 제외한 그의 능력은 이 도시에서 제일이니까. 아마 적절한 보상을 주면 알아서 물러갈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환한 바깥과는 대비되는 어두운 방에서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