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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달빛 아래의 여왕-7 (12/265)



〈 12화 〉달빛 아래의 여왕-7

저녁을 같이 먹고 나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렸다.
나를 믿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이니 최소한 생각이라도 해보겠지.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나왔네요. 암흑가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 걸까요?"
"암흑가 중심지니까 그렇지, 그리고 소문이 퍼져서 우리인  알아봐서 그렇지 그냥 갔으면 바가지 씌워서 더 비싸게먹었을걸?"


천천히 걸어 빌딩 쪽으로 걸어갔다. 정문이  하게 있긴 했지만, 아레나 참가자는 별도의 문으로 들어가는 듯 정문은 횅하게 비어있고 지하로 들어가는  같은 통로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당연히 우리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줄을 섰다.


"네가 예지님을 쓰러뜨렸다는 놈이냐?"

키가 2m도 넘어 보이는 거한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키만 큰 게 아니라 근육이  잡혀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확실히 강하다는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아레나 참가자인 걸까? 풍기는 분위기만 보면 어디 조직의 행동 대장 정도로 보였는데 아레나쯤 되는 이벤트면 다른 조직에서도 참여를 하는구나 싶었다.

"난 못 믿겠는데?"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못 믿나, 하연이에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명복을 빌어줬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헉!!"


-빠아악!! 빠아악!!


하연이는 남자를 가볍게 때려서 눕히고는 꽤 강한 힘으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조금 심한가 싶긴 했지만,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건 거니까 굳이 말리지 않아도 되겠지.

-빠아악!!


그렇게 시작된 폭력은 3분이 지나서야 끝났고, 하연이는 너덜너덜해진 남자를 내버려  채  옆에 섰다.

"너무 심하게 한  아니야?"
"상대, 각성자, 빈틈, 노림."
"상대가 각성자라서 능력을 발휘하기 전에 패버렸다고?"

하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건  심한데?
완전히 피떡이 돼버렸잖아. 죽은  아니야?

그렇게 남자를 명복을 빌어주고 있을 때 빌딩의 정문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남자의 지인인 듯한 그녀는 남자를  번 걷어차며 말했다.

"제가 모셔오랬지 누가 처맞고 자고 있으랬어요?"


그렇게  대를 더 때리자 남자의 몸에서 핏빛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멀쩡해진 상태로 일어났다.

"나도 한번 붙고 싶어서 그랬지, 이렇게까지 강할지는 몰랐지만."
"각성자가 비각성자한테 맞아서  좋으시겠어요."

남자의 능력인가? 그렇게 많던 상처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부 나아 있었다.

"아까 예지님과 붙었던 분들이시죠? 따라오세요. 특별 대기실로 모실게요."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오자 하연이가 움찔거리며 내 앞을 막으려다가 멈춰 섰다.
신경은써주는구나? 나중에 상이라도 줘야겠다.

`강아지 키우는 느낌이네.`


잘 하면 상주고 칭찬해주고,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줘야 조금씩 나아지겠지.


"특별 대기실이요?"
"우승 후보자들을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기다리게 할  없잖아요. 그리고 강한 사람은 후반에 나와야 대회의 열기가 뜨거워지기도 하고요."

그녀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아레나가 진행될 원형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방이었다.


`잘 만들어 놨네.`

지하에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엔 모래가 깔려 있었고 조명도 밝으면서도 시야에 거슬리지 않았다.

"여기가 아레나를 볼  있는  번째로 높은 곳이에요."
"두 번째?"


하긴 가장 높은 곳은 월하의 자리겠지, 시선을 돌려 위쪽을 둘러보니 굉장히 어두운색의 커다란 의자가 보였다.


`얘가 아직도 중2병을 앓고 있나 보네.`


저건 너무 어둡잖아. 옛날에도 어두운  엄청나게 좋아하더니만 아직도 저러고 있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따가 홍보할 때 써먹어야 해서요."
"나는 이수현."
"나, 로브, 소개."
"수현님이랑 로브님은 19번째, 20번째 경기에 나가실 거에요.  경기당 20분 정도 걸리니까 푹 쉬고 있으시면 돼요."
"잠이라도 둬야 하는  아닌가?"


방 안에 있는 시계로 확인한 시간은 8시 49분, 9시에 아레나가 시작한다고 쳐도 3시가 넘어야 내 차례가 온다는 소리다. 아마 저쪽 사람들이 깨워줄 테니 한숨 자도 상관없겠지.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하연이가 붙어오는 게 느껴졌다.

"너도 한숨 자둬.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어깨에 기대어 오는 하연이의 머리가 느껴졌다. 나보다 더 큰 애가 기대고 있는 꼴이라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잠들고자 하니 못 잘건 없었다.
하연이가 있으니까 잘 때 갑자기 공격한다고 해도 별문제 없겠지.
천천히 수마에 빠져들었다.


*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익숙한 냄새긴 하지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악취에 그냥 화가 났다.


-터벅터벅

그저 걸었다. 어디로 이어진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서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5분쯤 걸었을까? 환한 빛이 나를 맞이했다.
*


"일어나세요!"
"으으, 뭐야."

기분 나쁜 꿈을 꿔서 그런지 기분이 매우 나빴다. 사나운 표정으로 주변을 훑어보자 아까의 그 여자와 남자가 흠칫 굳는  보였다.

"무슨 일인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제 9시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3시쯤에야 싸운다고 하지 않았나?

"왜 깨웠어?"


기분이 나쁘면 말이 사납게 나가는 건 인간의 종족 특성인가 보다. 굳이 상냥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한 번 더 재촉했다.


"왜 깨웠냐고."
"ㄱ…. 그게요, 생각보다 일찍 출전해야  것 같아서요."

그렇게 떨지마 내가 잘못 한 거 같잖아. 아니면 네가 잘못 했어?

"언제?"
"ㅈ…. 지금이요."
"쯧."

가볍게 혀를 차자 여자가 남자의 뒤로 숨는 게 보였다.
기분도 나쁜데아레나고 뭐고 때려칠까.


`아니야,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

샌드백 치듯 몸 좀 풀고 나면 기분도 괜찮아  거다.

"안내해."


하연이가 깨지 않게 주의하며 일어났다. 아무리 화나도 동생은 챙겨야지.


"그게…."
"무기는 전부 여기에 두고 가야 해, 그게 규칙이야."


남자의 말에 권총  자루와 단검  자루를 꺼내 자리에 내려놨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온 나의 애병들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필요가 없다.
총으로  죽이거나 칼로 써는 것보단 주먹으로 패는 게 스트레스가 더 잘 풀린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건들면 죽는다."

여자는 완전히 겁에 질려 주저앉아 버렸기에 남자를 따라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올려 보니 유치한 의자에 앉아있는 월하가 보였다.
가볍게 인사라도 해줄까 했지만, 어차피 내가 보일 거리도 아니었고 그럴 기분도 아니어서 하지 않기로 했다.


20명 정도의 인원이 경기장안에 들어서자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룰은 간단합니다. 5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시면 됩니다."

그리곤 관객석 쪽으로 퇴장했다.


`이러고 바로 시작인건가?`

주변을 훑어 보니, 나를 제외한 19명이 뭉치는 게 보였다.


`일단 나부터 담구고 보자는 걸까?`


바보 같긴, 19명 가지고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천천히 다가갔다. 조금이라도 멀리 있기 위해 떨어지는   벌레들 같았다.


"병신새끼들."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면 녀석들은 한 발자국씩 물러갔다.

관객석의 야유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한테 겁먹어 도망 다니는 겁쟁이들,뭉쳐놓고도  덤비는 머저리들.
저렇게 말하는 이들도 결국 내 앞에 서면 이놈들이랑 다를  없겠지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을 때 한 놈이 무리에서 뛰쳐나와 내 쪽으로 덤벼왔다.

그놈을 보고 다른 놈들도 용기가 생긴 것인지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퍽!!!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어서 다행이다. 너무 가까웠다면 녀석들이 다가올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명치를 가격한 일격에 저 멀리 날아간 약골을 두고 다시 걸었다.
어때? 다시 도망칠 거야?
다행히 놈들은 도망치기보다는 덤비기를 선택한 모양이다.

18명쯤 되는 인원을 상대하다 보면 꽤 번거로운 법이다. 옷에 먼지가 안 묻게 하기 위해 일일  모든 공격을 피하는 게 힘든 것도 분명 힘들지만 한 명 한  따라가서 패는  귀찮으니까.

인원수는 많아도  놈은 없는 모양인지 피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근데 이놈들은 약해도 너무 약했다.

-빠아아아악!!

주먹도 아니고 손바닥으로 친 거 가지고 실핏줄이 터져서 쓰러지는 놈,


-쾅!!

발로 한번 내려찍은 걸로 뼈가 부러지는 놈,
콘크리트도 아니고 모래, 바닥에 메쳐졌다고 피를 흘리는 놈,
목 좀 조였을 뿐인데 기절하는 년까지 아주 약골들투성이였다.

`이런 걸로는 스트레스  푸는데.`


그래도 수가 많으니까 어떻게든 되려나?
그렇게 실컷 패다 보니 서 있는 놈이 4명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 아쉬운데?`


남아있는 놈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 마이크 소리가 삐이이이이이 하고 울렸다.

`뭐야?`

시선을 돌려 사회자 쪽을 바라보니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넘어져 있었다.


"ㄲ... 끝났습니다! 남아있는 5명의 참가자들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됩니다."
"재미없게."


걸음을 옮겨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또 악몽을 꿀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냥 잠이나 자는  나아 보였다.

*
수현이 경기장을 완전히 나서고 나서야 커다란 환호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수현!!! 이수현!!! 이수현!!!!!"

혼자서 십수 명의 사람을 벌레 잡듯 잡는 압도적인 무력, 경기장을 완전히 짓누르는 압도적인 존재감.
관객석의 모든 사람이 이수현에게 취해 소리를 질렀다.

`멋져. 사람 손을 오래 안 타서 그런지 좀 거칠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까칠한걸?`


이수현에게 취한 건 비단 관객들뿐만이 아니었다. 암흑가의 지배자인 달빛 아래의 여왕도 잔뜩 취한 표정으로 이수현이 들어간 입구를 빤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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