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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반란-4 + 사현이의 시점 (20/265)



〈 20화 〉반란-4 + 사현이의 시점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콱!


B급 각성자 한 명의 목에 칼을 박아 넣었다. 바로 다음 놈을 처리하러 움직이는 순간 놈들이 데려온 A급 각성자가 월하를 공격해 오는 걸 봤다.


아마 둘이 제대로 싸우기 시작하면 월하의 권능이 제대로 발휘되지는 못 하겠지. 동급 각성자를 상대하면서 다른 각성자들 까지 견제하는 건 아무리 월하라도 무리일 테니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물러서자마자 놈들의 기세가 강해지는게 느껴졌다.
월하가 어느 정도 권능을 유지하고 있는 듯 이전만큼의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강력한 모습이었다.


"너는 누구지? 내 구역에서 본 적 없는 놈인데?"
"내가 어디서  지가 그렇게 중요해?"


월하의 말에서 서려져 있는 긴장이 느껴졌다.
놈은 미친 것처럼 웃으며 월하에게 달려들었다.
오른손이 어두운 불꽃으로 휩싸여 있는  흑염룡이라도 각성한 듯한 모습이었다.


"기사님, 물러나 계세요."


흑염룡과 월하의 싸움은 월하의 우위처럼 보였다.
월하의 권능이 흑염룡을  막아 냈고 월하도 어두운 마나를 방출하며 천천히 놈을 압박해 갔다.
각성자간의 싸움은 잘 모르는 나였지만 대충 봐도 월하의 실력이 월등하다는  느꼈다. 아마 시간만 충분하면 금방 놈을 쓰러뜨리겠지.


여기 있으면 방해만 될 뿐일 테니 천천히 뒷걸음쳤다.

"저놈이다! 저놈을 인질로 잡으면 돼!"


놈들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어디서 우리 형님을 건드리려 해?"

월하의 권능으로 약화된 놈들은 온연한 B급 각성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C급 각성자가 한 명이 더 가세하니 승부는 금방 날 것으로 보였다.
월하의 부하들이 놈들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월하는 자신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을 테고 아마 금방 승리를 챙기겠지.

진정된 마음으로 놈들을 훑어 보니 월하를 상대하기 위한 총이 보였다. 이것저것 잡다한 기구들이 많이붙은 걸 보니 마탄을 장전한 총이 맞는 모양이었다.
근데 저게 왜 나를 노리고 있지?

-캉!!


총구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단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다행히 녀석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심장 부분을 막아낼 수 있었고 마침 녀석이 노린 부분도 심장이었기에 심장이 총알에 뚫리는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감히 기사님을 노려?!"

어두운 연기가 뭉쳐서 총을 들고 있던 놈을 후려쳤다. 놈은 단 일격에 벽에 날아가 부딪혔다. 벽은 완전히 박살 났지만, 몸이 꿈틀거리는  보면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찮은 잡것들이."

월하의 기세가 변했다. 어두운 연기가 1층 전부를 가득 메웠다.
월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마나가 소멸했다. 정확히 말하면 빼앗겼다는 표현이 맞겠지.
흑염룡이라 지칭했던 A급 각성자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두운 연기가 내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끔찍한 비명이 온 건물을 울렸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공포와 고통에 감각이 마비되는 듯싶었다.
비명은 5분간 끊임없이 이어지더니 뚝 하고 끊겼다.


어두운 연기가 거두어지고 보인 것은 미라처럼 말라 죽어있는 시체들과 S급으로 성장한 월하 뿐이었다.
월하의 부하들은 어디 있나 둘러 보니 어느새 건물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게 S급이란 걸까요? 하연씨가 왜 그렇게 당당했는지  것 같네요. 제 생각보다도 훨씬 압도적이에요."


월하는 기세를 정돈하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면 일도 끝났으니까 저희만의 시간을 가져볼까요?"

공허에 찬 눈빛으로 말하는 월하의 말을 나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암흑가에서 자라왔다.
부모라는 작자는 암흑가에서 애를 키운 걸까 키울 거면 잘 키우지 왜 멋대로 죽어버린 걸까?
암흑가라는 곳은 부모 없는 고아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구걸 같은 걸 하다가는 어디 조직에 끌려가서 평생 공장을 돌리는 노예가 되겠지.
그래도 나는 꽤 영특한 아이였다. 암흑가에 처음 와보는 샌님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지갑을 훔쳐가며 겨우 생존해 나갈 수 있었으니까.
아는 형님한테 상납급을 바치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성인이 되면 적당한 조직에 들어가서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겠지.


그때쯤이었다. 그 아이가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배고파요."

나보다 두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본능적으로 나와 비슷한 케이스라는 걸 느꼈다. 실제로 말을 섞어보니 나와 그렇게 다를  없었다.
암흑가에서 자랐고 부모님이 모두 죽었다는 것.
왜 내가 애한테 동정심을 느낀 걸까.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였다. 고맙다고 울먹거리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아리였다.
나는 아리를 데리고 내가 암흑가에서 살아오며 깨우친 걸 가르쳐 줬다. 호구 찾는 법, 지갑 터는 법, 안 아프게 맞는 법, 열심히 가르쳐서 아리가 드디어 1인분을 할 수 있을 때쯤 일이 터졌다.

"야, 그 꼬맹이 꽤 귀엽게 생겼는데 형한테 내놔."
"네?"

평소 상납금을 내는 형의 말이었다. 딱히 어린아이를 보고 욕망이 피어오르는 변태는 아닌  같으니 아마 홍등가에 팔아넘길 생각이겠지.
굴복하고 따라야 이치에 맞았지만 아리에게 정이 생겨버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형에게 반항하고 아리를 데리고 도망쳤다. 형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암흑가의 중심부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럭저럭 잠을  수 있던 집도 버리고 도망쳐 온 거라서 밤이면 길의 구석에서 서로를 꼭 끌어 앉고 자야 했다.


나는 아리를 지켜주겠노라 맹세했고 아리도 나를 잘 따랐다.


도망치고 천천히 작업을 시작할 때쯤 아리가 각성했다.
동생이 각성자라니, 기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각성하면 장래에 대단한 각성자가 된다는  마음 놓고 기뻐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소매치기 거지일 뿐이니까.
머리는 당장 달빛 아래의 여왕님께 데려가서 꽃길을 걷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러면 아리를 떠나 보내야 하니까.
하나뿐인 여동생을 떠나보내다니 그래도 되는 걸까?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아리가 각성하면서 혹시나 소매치기가 걸렸을 때의 해결도 간단해 지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오늘은 저 아저씨를 노리면 되겠네.`

복장이나 분위기가 암흑가 사람은 아니었다.


인파 속에 숨어서 그에게 다가갔고 깔끔하게 지갑을 훔쳤다.

"아, 죄송합니다."


사람 사이에 밀려 부딪힌 척 자연스럽게 사과를 하고 움직였다.

그런데 놈이 마치 내가 지갑을 훔친 걸 아는 듯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네가 알아채면 어쩔건데?`


능숙하게 인파 사이를 지나갔다.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이라 적당히 움직이다 보면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금방 나를 놓칠 것이다.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졌고, 나는 아리가 기다리고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내가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다. 골목까지 유인만 하면 아리가 처리할 테니까.

골목 깊숙한 곳 막다른 길, 아리가 숨어있는 곳까지 다다라서야 나는 뒤돌았다.



"왜 이렇게 끈질겨?! 아리야!! 쳐버려!!"
"응, 오빠!"

근처 상자에 숨어있던 아리가 튀어나와서 주먹을 휘둘렀다. 고사리 같은 주먹이었지만 마나가 휩싸여진 이상 일반적인 사람이 맞고 버틸  있는  아니었다.
궁금해서 한  때려 보라고 했는  일주일을 골골댔으니 얼마나 강한지는 내 몸이 체감하고 있었다.
녀석이 아리의 주먹에 맞고 쓰러지는 걸 예상했지만, 놈은 아리의 손목을 가볍게 잡고 땅에다가 메쳤다.

"꺄아아악!!"
"아리야!!"

비명을 지르는 아리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화가 나든 말든 녀석은 아리를 꾹 잡아 누른 후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야, 꼬맹아, 네가 훔쳐간  내놔."

각성자로 보이진 않았다.아마 아리가 제대로 공격하면 바로 쓰러지겠지.


"알았어요, 드릴게요. 대신 우리 아리 풀어줘요."
"눈깔 그렇게 뜨고 드린다고 하면 내가 믿겠다. 그치?"

남자의 눈에 동정의 감정이 담기는 게 느껴졌다.


"돈 먼저 던져. 여자애를 풀어주는  그다음이야."
"알았어요."


순순히 지갑을 던졌다. 이미 돈은 다 뺏기도 했고 일단 아리가 풀려나는  중요하니까.

"갑자기 공격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남자가 아리를 풀어주자마자 소리쳤다.


"아리야 쳐!"


아리에게 크게 소리쳤지만 아리는 움직이지 않고 나에게로 다가와 안겼다.

"아리야?"
"오빠,  사람은 못 이길  같아…."
"각성자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남자가 다가왔다. 아리를  뒤로 숨겼다.


"그 사이에 돈을 빼가? 참 독하다 너도."
"이렇게  살면 못 사니까요! 아저씬 잘사는 것 같으니까 우리 같은 거지한테 기부한 셈 치고 그냥 가요!"

실제로 이런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뺏긴 돈만 챙겨가지고 꺼지라는 속 뜻이 있는 거지.
재수가 없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냥 빨리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근데  아저씨는 생각보다 오지랍이 넓은 모양이었다.


"악! 왜 때려요?!"
"못 살긴 뭘 못살아?! 나 때는 말이야! 죽은 몬스터 뜯어먹고 살았어!"

죽은 몬스터를 뜯어먹어? 빈민가의 거지도 그렇게는 안 살겠다.

"거짓말! 요즘엔 빈민가의 빈민도 그렇게  살아요."
"다 시대가 좋아져서 그런 거지."


남자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일단 돈부터 돌려줘."

조금이라도 삥땅 치면 또 맞을 거 같아서 일단 전부 내놓았다.

"동생 쪽은 각성자야?"
"네,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마요. 비밀 무기에요."
"언제부터 이렇게 장사했어?"
"장사요?"
"언제부터 이렇게 소매치기질 했냐고."
"한 달 정도요."
"이미 암흑가엔 소문 다 났을 텐데 내가 입 닫는다고 되겠냐?"

남자가 내 머리를 톡톡 쳤다. 한 번 칠 때마다 내 머리가 이리저리 까딱거렸다.

"친남매야?"
"아니요, 길거리에서 만났어요."

그냥 빨리 가지.

"달빛 아래의 여왕한테 가봐, 저 나이에 E급이면  후하게 대해 줄걸? 그리고 너도 어디 도망치지 말고 여자애 옆에  붙어있고."

숨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한 달간 미뤄뒀던 고민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아리는 각성자니까 받아 주시더라도 저는 안 받아 주시지 않을까요?"

아리와 헤어지긴 싫었다. 못난 오빠 때문에 아리가 손해 보는 건 싫었지만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었다.


"무조건 너까지 같이 받아들이라는 조건을 걸어, 어린 나이에 가족 없이 자라면 성격 삐뚤어진다."


그걸 아니까 지금 같이 사는 거잖아. 여왕님이 이런 꼬맹이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만약 안 된다고 하면요?"
"그러면…."

남자가 잠시 뜸을 들였다.
말을 할 거면 끝까지 해야지 뭐하는 거야.

"그러면요? 아저씨가 추천해준 거니까 끝까지 말해요!"
"하아, 기사님이 부탁했다고 해."
"기사요? 아저씨가?"


기사? 이런 시대에 기사?

"그렇게 말하면 알 거야."

남자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뒤돌아서 떠났다.

"아무튼, 나는 간다. 앞으론 이런 짓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렴."


남자가 떠나가고 5분 정도, 생각을 마친 나는 아리의 손을 잡고 광장 중앙의 건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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