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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사현이의 시점-2 (21/265)



〈 21화 〉사현이의 시점-2

기사님?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여왕님이 저런 남자를 알고 계실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리를 데리고 여왕님께 향한 건 아리와 떨어질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작은 확률로 아리와 떨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작은 확률에 기대는 척 더 이상 아리의 인생에 방해되지 않게 마음먹을  있었다.

언젠간해야 할 일이었다.
아리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왔다. 평소엔 와글와글하던 광장의 사람들이 한곳에서 모여있는  보였다.
신경도 주지 않고 거대한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암흑가에 사는 사람은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가기를 꿈꾸는 건물, 입구에서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들어가니 안내 데스크에  있었던 여성이 다가왔다.


"이곳은 여왕님이 거주하는 곳이다. 너희 같은 꼬맹이가 여긴 웬일이지?"
"여왕님께 의탁하러 왔습니다."

여성이 나와 아리를 훑어봤다. 나를 보던 시선은 금방 지나갔지만 아리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쳐다봤다.


"일단 여왕님껜 보고 드리겠다."

데스크로 돌아간 여자가 몇  중얼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여성은 곧 돌아왔다. 얼굴을 보니 쫓아 낼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여왕님이 한 번 보자고 하시는군."

여성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꽤 오랜 시간 올라갔지만, 솔직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아리랑 떨어지겠구나. 정도? 괜히 아리의 손을 잡은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여성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방은 굉장히 어두웠다.
빛 하나 없는 공간에서 여왕님만이 빛을 발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왕님, 애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래, 애들은 두고 너는 가서 일하렴."

여왕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서늘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확실히 그 나이에 각성한 재능이면 충분히 내 밑으로 들어올 만하지."


여왕님이 시선이 나를향했다.

"근데 설마 너까지 받아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마른침을 삼켰다. 말 한 번 잘 못 하면 그대로 죽을 것 같은 분위기에 입이 말랐다.


"ㄱ…. 기사님이란 분이 저랑 아리를 둘 다 받아달라고 부탁하셨어요."
"흐음 기사님이라."

당장에라도 내 목이 날아갈 것처럼 차가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렸다.


`뭐야? 진짜 아는 사이였어?`


별거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여왕님과 친분이 있다니….

"그분의 부탁이라면 일단 들어드려야지. 너희 둘 다 내 밑으로 들이마."

긴장이 풀려갈 때쯤에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예지입니다."
"그래, 들어와."

여왕님의 경호대장님이신 예지님이셨다. 두 분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시는  같았지만 긴장해서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래, 기사님이 보내라고 했다고?"


반쯤 정신을 놓고 떨고 있을  두 분의 대화가 끝났는지 여왕님께서 물으셨다.
여왕님의 시선은 내가 아닌 아리를 향하고 있었지만 아리는 나보다 더 겁을 먹고 있었기에 내가 대신 대답했다.




"네, 여왕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알 거라고 하던데요."


"훈련은 너한테 맡겨도 되겠지?"
"네, 여왕님, 훌륭한요원으로 키우겠습니다."
"아, 그리고 잠깐 귀 좀 대봐."

여왕님께서 예지님께 소근 거리셨다.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쾌한 표정을 짓고 의자에 앉으시는 걸 보면 절대 나쁜 얘기는 아니겠지

우리는 예지님을 따라서 수련실로 보이는 방으로 이동했다. 꽤 넓은 방에 적당히 푹신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단단함은 있는 매트가 깔려 있는 좋은 곳이었다.


"여자아이 너, 이름이 뭐지?"

"아리입니다."


"너한테 물은 게 아니다."


내가 대신 대답하자 예지님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셨다.


"묻겠다. 네 이름이 뭐지?"
"ㅇ…. 아리에요."
"저기 뒤에 있는 남자 놈의 이름은?"
"ㅅ…. 사현이 오빠에요."


그때부터 뭔가 느낌이 쎄 했다.

"네가  일은 아리의 수발을 드는 것이다."

아리가 훈련을 하는 한 시간 동안 나는 수건 하나만 두고 멀뚱히 서 있었다.
보기만 해도 빡 세 보이는 훈련이었지만 아리는 그럭저럭 잘 따라했다.

"생각보다 자질이 있군."


 시간 동안열심히 훈련한 아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했다.

"뭐 해?  존재 이유를 잊은 건가?"
"죄송합니다!"

수건을 들고 아리의 땀을 닦아줬다. 어린애가 얼마나 열심히 훈련한 건지 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수건 하나가 금세 아리의 땀에 젖어들어 갔다.
더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오히려 동생이 이렇게 열심히 훈련하는 걸 보니, 기특한 느낌이 더 들었다.


"내가 닦아도 되는 데…."


아리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아. 이런 거라도 해야지."


훈련은 꽤 오랜 시간 진행됐다. 대략 7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났는데 아리는 예지님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가고 나는 작은 빵 하나를 배급받았다.
같이 가자고 떼를 쓰는 아리를 떼어놓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오랜만에 먹는 빵은 정말로 맛있었다. 빵의 크기가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애초에 적게 먹던 나는  정도 양이면 충분히 한 끼를 해결할수 있었다.

훈련실에서 멍하게 있으니 8시  되어서 예지님과 아리가 돌아왔다.
이후 10시까지 훈련을 진행했는데, 예지님은 9시쯤에 일이 있으시다면서 아리 혼자 훈련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신 후 훈련실 밖으로 나가셨다.

"하아, 하아,"

오늘 하루 훈련했을 뿐인데 아리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내가 약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말  싸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다. 재능이 있다는 예지님의 말을 생각해보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겠지.
그때가 되면 내가 덤벼도엄청나게 쉽게 제압당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우울해졌다.

"저, 오빠."
"응?  닦아 줄까?"

수건을 들고 아리에게 다가가자 아리는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부정의 의사를 표시했다.


"타격기나 자세 같은 건 혼자서 연습할 수 있는 데 잡기 기술은 누구랑 같이하는  좋을 것 같아서…."
"도와달라고?"


아리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도와주지 미안해 할 거 없어. 오빠는 항상  편이니까."


아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동생을 위해   몸 불사를 수 있다는 생각은 단 3분 만에 깨졌다.


"으으으윽!!!"
"오빠 괜찮아?"
"ㄱ…. 괜찮아아!!"

내가 대체 왜 한다고 했을까. 아리가 나에게 걸어오는 기술은 내 생각보다 훨씬 아팠다.
관절이 이리저리 꺾이고 몸에 강한 압박이 가해지자 버티기가 힘들었다.

"아흑!!"


하지만 아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괜히  때문에 아리가 훈련에 집중하지  하는 모습은 보기 싫었으니까.
몇 번이고 비명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오빠 괜찮아?"
"ㄱ…. 괜찮아."

예지님이 다시 돌아오시기 전까지, 무려  시간이나 진행된 훈련에 전신이 다 아팠다. 손목과 어깨 관절이  것처럼 뻐근했고  이곳저곳에 붉은 자국들이 남아있었다.
솔직히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아리한테 부담주기 싫다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아마 꼼짝도 못 했겠지.
다행히 아리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너희가 지낼 숙소를 안내해주지."


예지님을 따라 이동한 곳엔 2층 침대 하나와 옷장, 책상 등이 있는 굉장히 좋은 방이었다. 방안에 문도 있는  보니 화장실도 있는 모양이었다.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내가 깨우러 오겠다."
"알겠어요."

반나절 정도의 시간 동안 예지님과 어느 정도 친해졌는지 아리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오빠! 욕실도 있어! 같이 씻자!"
"아냐, 아리 먼저 씻어."

동생과 같이 씻기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내 몸에 있는 붉은 자국 들 때문에 아리가 걱정하지는 않을 까 싶어서 거절했다.
아리는 몇   같이 씻기를 권유했지만 내가 완고히 거절하니 결국 각자 씻었다.


욕실에서 확인한 내 몸은 상당히 보기 안 좋았다. 비쩍 마른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렇다 치고서라도 몸 이곳저곳에 있는 붉은 자국들은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아마 아리가 이런모습을 봤다면 미안하다고 울지 않았을까? 따로 씻기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목욕을 마치고 옷장을 살펴보니 아리 사이즈에 맞는 잠옷들이 있기에 입혀줬다.
내 사이즈에 맞는 건 없어서 그냥 평소에 있던 옷을 입었다.
허름하고 먼지가 많이 붙어있는 옷이라 씻은 게 하나도 의미 없어졌다.

"오빠!!"

아리가 나를 끌어안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2층 침대였지만 아리는 굳이 떨어져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를  끌어안은 채 눈을 바라봤다. 원래도 귀여웠던 아리지만 깨끗하게 씻고 좋은 옷을 입으니 인형같이 앙증맞고 귀여웠다.

"내가 꼭 오빠를 지켜줄게.엄청나게 쎄져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여 줄 거야."
"그래 고마워."

아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 감아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을 스치는 느낌이 좋았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한테 지킴 받던 애가 나를 지켜 주겠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했지만, 마음 어딘가가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리 곁에 있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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