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하연이와의 데이트-3
"누구십니까? 신원을 밝혀 주십쇼!"
"나다, 이것들아. 잠깐 없었다고 너희 대장 얼굴까지 까먹은 거야?"
"다른 도시로 가셔 놓고 대장 취급해 드리길 바라시는 겁니까?"
"한 번 대장은 영원한 대장인 거 몰라?"
살갑게 얘기하는 걸 보니 꽤친한 사람들인가 싶었다.
아마 이 도시에서 일할 때의 부하직원들 아니었을까? 뉴스를 잘 확인하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여기서 일할 때도 경비대장역을 맡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다.
"그래도 신원은 밝히셔야 합니다. 요즘 도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요. 아무리 대장님이라도 그냥은 못 보네 드립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안다고? 그런데 왜 나한테 보고 안했어."
"옆 도시 경비대장님께 저희 도시 얘기를 왜 보고합니까? 대장님이 꼭 아셔야 하는 내용이면 길드장님께서 연락을 해주셨겠죠."
이 여자 대단한 사람이다.
하연이의 말을 자연스럽게 맞받아치는 걸 보니 하루 이틀 갈굼 당한 솜씨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도시 건너가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제 일을 해야 하고 휴식도 취해야 하는데 그걸 왜 보고 하러 갑니까?"
"이게 한 마디를 안 져요. 근데 왜 네가 왜 문 경비나 보고 있는 거야? 설마 나 없는 사이에 다른 놈 한테 밀려서 좌천 당한건 아니지?
"아까 말했잖습니까, 요즘 도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요. 혹시 모를 외부의 침입을 대비해서 제가 나와 있는 겁니다."
"이야, 솔도 많이 성장했나보다? A급 각성자를 한 낯 문 경비에 배치할 정도로 인력이 널널한 걸 보니까."
차가운 말투였다.
절대로 눈 앞의 여성의 말을 밑고 있는 어투가 아니었다.
"진짜입니다. 지금 문 3개에 전부 A급 각성자가 하나씩 파견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인데 나한테 알리지도 않았다고?"
"그쪽 도시도 만만치 않은 상황아닙니까? 암흑가를 지배하던 년이 S급으로 승급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쪽 감시하기도 바쁠 대장님께 굳이 연락을 하지 않을 걸 수도 있습니다."
월하 얘긴가 보구나. 하긴 태양길드 입장에선 급한 일이겠지 적당히 도시의 어두운 부분만 모아서 관리하게 하려 했던 존재가 한반도에 10명도 안 된다는 S급으로 승급했으니까.
"그런데 일 얘기 계속하실 겁니까? 대장님 성격에 연인을 사귀신 건 아닐테고, 아마 그토록 찾아다니시던 오라버니를 찾으신 모양인데, 일하러 데려온 건 아니실 거 아닙니까?"
"밥 먹으러 왔지."
"계속 이렇게 얘기하고 계시면 오라버니 분 기분은 어떠시겠습니까. 오늘은 밥만 먹고 돌아가시고 나중에 길드장님께 항의하십쇼."
이 사람, 하연이에게 대처하는 법을 매우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만날일 있으면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보자.
"하아,알았다. 그래서 신원 확인은 어떻게 할 건데? 따로 신분증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대장님은 S급 각성자시니까 권능을 보여주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우리오라버니는?"
"못 들어가시죠."
"뭐 이 새끼야?"
나 한테 향한 게 아닌데도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강한 기세가 하연이한테서 방출됐지만 정작 그 기세를 받아내는 여성은 익숙하다는 웃고 있을 뿐이었다.
"장난입니다 장난. 대장님께서 증인이 되어주시면 모시고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대신 대장님 오라버니 분께서 사고를 치시면 대장님도 같이 책임을 물어야 할 겁니다."
"이 새... 년 장난 치는 건 여전하네."
이제 와서 내 눈치를 보고 욕을 줄인다고 달라지는게 있을까 하연아?
"그래서 권능은 어떻게 보여주면 되는데? 그냥 잘 자른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자르는 거 관련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잠시만요. 야, 가서 나뭇가지 4개만 주워와."
그녀의 명령에 지금까지 굳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운데 것만 깔끔하게 잘라 주시면 됩니다."
나뭇가지 세개를 세로로 겹쳐서 든채 다른 나뭇가지를 하연이에게 내밀었다.
"별거 없네."
하연이는 그녀가 건넨 나뭇가지를 자연스럽게 쥐고 다른 나뭇가지를 향해 휘둘렀다.
뭉퉁한 나뭇거지였지만 하연이의 권능이 확실히 베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지 휘두른 나뭇가지는 자연스럽게 다른 나뭇가지들을 통과했다.
-딸그닥
"네, 대장님 맞으십니다."
"이런 걸로 확인 되는 거 맞아?"
"네, 길드장님도 이건 못하십니다."
`아니 저게 말이 되나?`
땅으로 떨어진 나뭇가지는 중간에 있던 것 하나 뿐이었다.
분명히 세 개의 나뭇가지를 전부 지나쳐 가는 걸 봤는데...
"시시하네. 이제 들어가도 되지?"
"네, 괜히 문 열기 귀찮으니까 뛰어 넘어가십쇼."
"뛰어넘어가려고 하면 결계에 알림 울리잖아. 설마 내가 그것도 기억 못 할 줄 알았냐?"
"마지막 테스트였습니다. 열어드릴 테니 편하게 지나가시면 됩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니 금방 문이 열렸다.
"오라버니분이랑 즐거운 시간 보네십쇼. 대장님."
"그래, 나는 간다. 이따가 나올 때 보자."
"알겠습니다."
"오라버니, 오래기다리셨죠? 이제 들어가요."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빨리 바뀔 수도 있는 거구나. 조금 전까지 자기 부하를 대하던 어투랑 완전히 다른 어투였다.
저기 뒤에 여성 분 표정 좀 봐. 입 떡 벌리고 있는 게 `우리 대장님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는 표정이잖아.
"그래."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지만 이따가 밥 먹으면서 해도 늦지 않겠지.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풍경은 역시나 빈민가였다.
도시의 외곽은 중심부보다 상대적으로 위험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살 수 밖에 없는 건 우리 도시나 솔이나 똑같은 것 같았다.
우리 도시랑 다른 점 있다면 빈민가의 크기가 우리 도시보다 작았다는 거? 그리 오래 걷지 않았는데 빈민가를 빠져나온 걸 보면 전체적으로 우리 도시보다 잘 사는 곳으로 보였다.
`하긴 수도니까.`
태양 길드의 수도인데 우리 도시랑 차이가 없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있는 거지.
"여기에요."
하연이가 얘기한 것 처럼 고급스러운 곳은 아니었다. 중심부로 오래 걸어가지도 않았고 가게의 겉모습도 상당히 허름했으니까. 심지어 위치도 구석진 곳이라서 근처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세가 비싼가 보네 이런데에서 장사를 하고."
"사장 말로는 한 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오는 걸 바라지 않아서 이렇게 작은데에 몰래 만들어 뒀다고 해요. 단골 몇 명이 꾸준히 들러주는 걸 원하셨나봐요. 맛은 충분히 끝내주니까, 오라버니도맛있게 드실 수 있으실 거에요."
-라면
정말 드럽게도 간단한 이름이었다. 내가 다니던 총포상도 우리 총포상으로 약간의 꾸밈을 더 했는데 여기는 파는 음식 두 글자만 표시해뒀다.
이름을 짓기가 귀찮았던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던 걸까?
어느쪽이든 정상은 아니겠지.
일단 하연이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겉에서 보기에도 작은만큼 내부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4인용으로 보이는 테이블이 6개가 끝인 작은 가게였다.
점심이라고 하기엔 살짝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3개의 테이블에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빈 자리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메뉴판으로 보이는 게 없었다. 어디 숨겨져 있나 하고 테이블을 뒤져봐도 메뉴판은 없었다.
"여기 주문은 어떻게 해?"
"여긴 메뉴 하나 밖에 없어요. 여기 사장이 매일 다른 라면을 내놓는 데 따로 말 안 하면 그냥 인원수 만큼 라면을 줘요."
"장사 참 희안하게 하네."
"그렇죠? 저도 처음 여기 왔을 때 소개해 준 사람이고 뭐고 다 박살 내버릴까 싶었다니까요? 한 입 먹어보니까 너무 맛있어서 참았지만요."
저렇게 극찬을 하다니, 라면이 라면이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그래?
대격변 이후 대부분의 공장이 망했지만 라면 정도는 먹어본 적 있다. 면도 단단하고 이상한 맛이 나고 국물은 아무 맛도 안 나던데.
"오라버니도 먹어보시면 알 거에요."
"그래?"
카운터 쪽을 살짝 바라보니 아직 음식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싶었다.
"하연아."
"네, 왜 부르세요?"
"슬슬 편하게 부를 때도 되지 않았어?"
지금까지 하연이 옆에 붙어 다니면서 하연이가 나를 제외한 존재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태양 길드의 길드장 조차 님자를 안 붙이고 그냥 길드장이라고 말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 반말을 사용하겠지.
유일하게 존댓말을 쓰는 대상이 된다는 건 하연이가 그만큼 나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이긴 하겠지만 그만큼 어려운 대상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니까.
당장 아까 하연이의 부하로 추정되는 여성과 둘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살짝 부러웠다.
"아니요. 그럴 수는 없어요."
하연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는 오라버니한테 너무 큰 은혜를 입었는 걸요. 오라버니가 없으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에요. 이미 시체인 몸이었겠죠."
글쌔? 은인을 대한다고 치기엔 너무 거칠게 다루지 않니?
"그러니까 오라버니 한텐 말을 놓을 수 없어요. 제나름의 존경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세요."
"근데 가끔 반말하..."
하연이의 검지가 내 입을 막았다.
그래, 하연이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