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붉은 달-1
"얼마나걸어가야 해?"
"10분 정도 걸어가야 해요. 아무래도 고급 디저트 가게다 보니까. 도시 중심 쪽에 있거든요."
"너무 비싼 건 받아먹기 미안한데…."
"괜찮아요. 오라버니한테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은 걸요."
동생이 성공하니,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좋네.
응? 근데 저 멀리서 뭔가 불꽃이 보이는 것 같은….
-쾅!!!
멀찍이에 있는 건물이 쾅하고 터졌다.
강력한 폭탄을 쓴 건지, 아니면 A급 정도 되는 각성자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의 큰 폭발이었다.
웃긴 건 저렇게 커다란 건물이 폭발했는데도 충격파가 퍼지진 않았다. 주변의 건물은 모두 멀쩡했고 사람들이 날아가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것들이 도시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한 번 가볼까?"
자신이 살아왔던 도시의 건물이 폭파되는 걸 보고 화가 많이 난듯한 모습에 조심히 물어 봤는데 하연이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요. 데이트 중이었는 데."
"나는 괜찮아.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어떻게 데이트를 계속하니."
하연이와 같이 건물 근처로 가보니 건물 주변이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은 이미 전부 죽은 것 같았고, 잔해에 깔려 괴로워하는 사람,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사람 등 수없이 많은 사람이 고통에 빠져 있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솔 안에서 테러를 일으켜?!"
하연이가 권능을 발휘하자 모든 잔해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지는 못했지만 추가적인 피해는 막을 수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건물이 폭파하는 걸 본 경비대가 빠르게 출동해서 다친 사람들을 인솔했다.
건물이 터진 지 5분도 안 됐는데 이렇게 출발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시스템인가 싶었는데 경비대, 라고 쓰여 있는 건물에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실례지만, 하연 대장님이십니까?"
"그래, 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건물을 향해 다가온 경비대원 중 가장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하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저 사람과 친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위급상황이라 그런 것인지, 하연이의 어투는 내가 하연이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처럼 날카로웠다.
"붉은 달 놈들의 소행입니다."
"뭐? 붉은 달? 그놈들은 전부 소탕한 거 아니었어?"
"태양 길드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요 근래 계속 시끌시끌했는데, 이놈들이 미쳤는지 도시 한복판에서 테러를 일으켰네요."
남자는 진심으로 분노 했는지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히어로가 있다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은 이미지의남자였다.
`붉은 달이라….`
유명한 빌런 집단이다. 분명 강력한 각성자들이 모든 비각성자들을 지배하고 착취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성격의 단체였지?
기본적으로 각성자들의 권리를 확대하자는 입장이었기에 한창 잘 나가던 때엔 태양 길드 내의 몇몇 길드원들도 붉은 달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었다. 붉은 달과의 전면전쟁을 시작하자마자 퇴출당하긴 했지만….
하연이랑 태양길드장이 붉은 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완전히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잔당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붉은 달 놈들을 잡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으십니까? 길드장님이 게이트 공략 중이셔서 솔에 존재하는 S급 각성자는 하연님밖에 없습니다."
하연이가 나를 흘끔 바라봤다.
"괜찮아. 도시가 위험하잖아? S급 각성자로서 나보다는 도시를 지키는 게 먼저지."
하연이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다."
"네?"
"이분이 내오라버니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털끝 하나 안 다치게 지켜라, A급인 네가 직접 지키도록, 그렇지 않으면 도와 줄 수 없다."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나와 하연이를 번갈아 봤다.
"알겠습니다. 제가 움직이는 것 보다 하연님이 움직이시는 게 훨씬 더 도시에 도움이 되겠죠. 오라버니 분은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당장 내가 어디로 가면 되지?"
"제 무전기를 드리겠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경비대장님께 말씀하시면 아마 적당한 장소에 배치 해 주실겁니다."
하연이가 남자의 무전기를 뺏어들었다.
"어, 나다. 오랜만이지? 빨리 안내해, 내가 어디로 가야하지?"
몇번 무전을 하더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사라졌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수현님은 저랑 같이 계시죠. 하연님의 명령이니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겠습니다."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게 굉장히 믿음직한 모습이었다.
나를 그토록 아끼던 하연이가 나를 맡길 정도면 능력도 믿을만 하겠지?
"조장님! 지금 19구역에서 루시아가 날뛰고 있는 데 막을 수 있는 각성자가 없답니다."
"뭐? 그 년은 감옥에 갖혀 있는 거 아니었어?"
루시아, 아마 붉은달의 수장격 되는 인물이었지? 능력이 너무 특수해서 하연이랑 태양길드장 조차도 죽이기 힘들어서 감옥에 가둬놨다는 빌런.
S급으로 등급했다는 소식은 없었으니 아직 A급 각성자겠지. 아마 눈앞의 남성이 가면,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으리라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하연님과약속했는 데 지켜드려야죠."
"괜찮아요. 저보다는 다른 시민들 지키는 게 중요하죠. 저는 한 명이지만 그쪽은 여러 명이잖아요?"
내가 괜찮다고 했는 데도 하연이와의 약속이 걸리는 지 내 눈치만 보고 출발을 안하고 있다.
"하연이 한테는 제가 잘 말해 볼게요. 제가 필요 없다고 한거니까, 괜찮을 거에요."
"... 시민 대피소는 이쪽 길로 쭉 가면 있는 초등학교에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초등학교도 있구나?
"괜찮습니다. 그러면 빨리 가보세요."
남자가 19구역으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서 뛰어갔고 나는 시민 대피소로 향했다.
역시 수도는 수도라는 걸까? 위기 상황을 대비해서 대피소까지 만들어 두다니. 우리 도시랑은 비교도 안 되는 복지 시설이었다.
"죄송합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으신 분은 대피소에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아, 맞다. 여기 도시 중심부였지?
잘 사는 사람들만사는 곳이니만큼,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 입장할 수 있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적당히 주변에 숨어있어야 겠다.
적당히 숨을 곳을 찾고 있을 때, 아까 나를 막아섰던 직원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혹시 하연님 소개로 오신 분이십니까?"
"네, 그렇긴 한데요."
"저희가 못 알아 봐서 죄송합니다. 따라오세요."
아까 그 남자가 따로 언질을 준 모양이다. 솔직히 이런 곳 까지 위험에 처할 것 같진 않았지만 추운 밖에서 떠돌아 다니느니 실내에 있는 편이 확실히 낫겠지.
인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도시가 바쁜 건지대피소를 지키는 각성자는 E급 각성자 두 명이 전부였다.
비각성자 인력이 총을 들고있는 걸 보긴 했지만 아마 몬스터용 탄환일 게 분명했다.
몬스터가 침입했을 때는 충분히 효과가 있겠으나 지금처럼 빌런들이 날 뛰는 상황에선 크게 쓸모가 없을 거다.
체육관 처럼 보이는 내부를 훑어보니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입고 있는 옷의 재질을 보면 하나같이 잘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도시 외곽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 된건가?`
돈 없고 힘없으면 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왠지 입맛이 씁쓸했다.
그 뒤로는 딱히 별일은 없었다. 두려움에 빠진 시민들이 패닉상태에 빠지거나, F급에서 E급 사이로 보이는 빌런이 간간히 쳐 들왔지만 금세격퇴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위기도, 두려움도 없었다.
`확실히 잘 싸우긴 하나 보네.`
입구를 지키는 각성자는 E급 각성자 두 명이 전부였는 데, 동급 빌런도 꽤 손 쉽게 처리하는 걸 보니, 솔의 경비대는 하급 각성자여도 수준이 높은 모양이다.
덕분에 안전할 수 있었으니, 나중에 꼭 감사인사를 하도록 하자.
"아니 아무도 안 죽인다니까? 그냥 각성자의 두려움을 비각성자 새끼들한테 주입시키러 온 것 뿐이야."
입구 근처에 난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니, 지금까지의 빌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겉으로 풍기는 기세나, 경비대원들의 긴장을 보면 확실히 D급은 되어 보이는 빌런이었다.
왠지 불안해지는 기세에 나도 모르게 권총에 손이 갔다.
`제발 별일 없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