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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붉은 달-2 (31/265)



〈 31화 〉붉은 달-2

이전에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각성자의 등급이 다르는 다는  `격`이 다르다는  의미한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아니라면, 등급이 높은 쪽이 월등히 강하다.
마력의 양, 질, 능력의 강력함, 모든 면에서 압도할  있으니까.

아무리 경비대원들이  훈련되었다고 해도 D급 각성자를 이길 수 있을까?
절대 못 이길 거라고 본다.
빌런으로 보이는 저 아저씨가 어제 각성을 한 게 아닌 이상, E급 각성자 둘 정도 해치우는 건 시간 문제겠지.

 이후는? 글쌔? 본인 입으로는 안 죽인다고 했지만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죽이지 않고 공포를 새겨 넣는다고 했는데 그런  가만히 보고 있어야만 하나?


일단 권총을 꺼내 들고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수 있게 준비만 했다.
혹시 알아? 상위등급 각성자를 잡아낼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도 있을지?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매일 떠들어대는 태양길드조차 이런 대피소에 E등급 각성자  밖에 배치해 두지 않았잖아? 너희는 버림 받은 거야. 능력이 없는 머저리들이니까. 각성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버린 게 아니다. 도시 전체에 빌런들이 날뛰고 있으니, 그들을 막기 위해 인력을 차출하다 보니 대피소를 지킨 여력도 부족했던 거겠지. 대피소 안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말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빡치지?`


경비 대원 둘은 벌써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상당히 능숙한 D급 각성자인 모양이다.
아무리 자기보다등급이 낮다고 해도 각성자 둘을 이렇게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아니야, 두려움을 조장하기 위해 무리한 거야.`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태연하게 협박하는 듯 보이지만 숨도 거칠었고 마나도 불안정했다.

`그러면 할만하지.`

암흑가에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썼던 로브의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도대체 왜 나서려 하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냥 조용히 저 각성자의 협박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위협용으로 사람 한두 명 죽이는 것 외에는 큰 위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빌런이었지만 나름의 신념이 있었으니까.
각성자가 비각성자를 지배하려면 지배를 당할 비각성자들을 살려 놔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죽을 일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죽지도 않을 테는 데 나는 왜 나서고 있는 거지?

`그냥 그런 사람이니까.`


먼 곳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은 애써 외면해도 가까운 곳에 지킨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는 위선적인 모습.
그게 나니까.

그런 오지랍 덕분에 하연이도 구하고, 월하도 구했으니, 좋은 성격 아닌가.


"넌 뭐야?"
"닥치고 덤벼."

오랜만에 경험하는 긴장감 넘치는 싸움에 심장이 뛰었다.
어쩌면 그냥 싸우고 싶어서나선 거 아닐까?

"비각성자 주제에, 각성자한테 덤비려는 거냐? 주제를 알려줘야 겠군."


본보기로 나를 먼저 죽이고 시작하려는 걸까?
불안정한 마나를 모아서 나에게 마탄을 던졌다.

`안 되지. 이 정도로는.`

마탄이 날아오는 속도는 너무 느렸다. 빠르게 날아오면몰라도 이렇게 느리게 다가오는 마탄은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하면 안 되지.`


내 등 뒤에 있는 사람이 몇명인데.  100명 쯤 되나? 마탄 한 번에 다 죽진 않겠지만  명이라도 피해를 줄여야지.

단검을 들어 마탄을 흘렸다.
일반적인 단검이었다면 아마 마탄의 위력을 견디지 못 하고 깨져버렸겠지만 이 단검은 일반적인 단검이 아니다.


`엄청 특별한 단검이지.`

마탄이 깨지지 않게 조심하며 바닥으로 흘려내자 나무로  바닥이 크게 패였다.
저런 게 내 몸에 명중했다면 아마 즉사했겠지.


`짜릿하네.`


경악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뭐해?  덤빌거야?"
"이 새끼가!"


놈이 팔에 마나를 두른 채 나에게 뛰어왔다.
마탄같이 비효율 적인 공격이 아니라 매우 효율이 좋은 공격이었다.
외부로 마나를 배출하는 게 아니라 몸에 두르기만 하는 것이기에, 마나 소모는 비약적으로 줄어든다.
공격력이 마탄에 비해 약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차피 비각성자를 상대하는 데에는 마나를 두른 육체면 충분하다.


`상대가 나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흥분해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카앙!!


사람의 팔과 금속이 부딪힌 거라고는 믿을  없이  소리가 대피소 전체에 울려퍼졌다.

순수한 육체능력은 상대가 몇 수위, 적당히 맞대다가 가볍게 흘렸다.

`잡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E등급 이상의 각성자를 잡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몸에 씌울 마나가 남지 않을 때까지 버텨가면서 공격을 해야 하니까. 아무리 마나를 헛되게 쓴 상대라도 최소 15분은 걸릴 것 같았다.


`15분? 너무 긴데?`

그 사이에 다른 빌런이 합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D등급 한 명 정도 더 붙는 다고  잡는  아니지만 한 명이 내 시선을 끌고 다른 사람을 인질로 잡으면 비각성자인 나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내 또 다른 무기인 권총을 꺼네들었다.


"각성자를 상대로 총을 사용하겠다고? 너 바보냐? 각성자한테는 총이 안 통해."
`그건 네 생각이고.`

제대로 발사되는지 확인 하기 위해서 녀석의 명치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묵직한 반동이 왼손을 타고 전달됐다.
오랜만에 당겨보는 방아쇠인데 다행히  작동되는 듯했다.

-퍽!


묵직한 돌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한 발자국 정도 물러났지만,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각성자용 탄환도아니고, 몬스터용 탄환이었으니까, 아마 체내의 마나에 의해서 막힌 거겠지.

`근데 결국 소용이 없는  아니잖아?`

한 발자국 밀려났다. 나를 상대로 그 정도 빈틈을 보일수 있겠어?

권총이 잘 작동되는 걸 확인한 나는 바로 놈을 향해 뛰었다.

녀석도 양팔에 마나를 감싼 채 나를 향해 뛰었다.

-탕!


왼쪽 팔을 노리고  일격에 녀석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비어버린 녀석의 복부를 향해 칼을 찔러넣었다.

-캉!!


`반사신경은  쓸만한가 보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마나로 복부를 감쌓다.
 정도는 돼야 싸울 맛이 나지.

휙 하고 수그리니 녀석의 팔이 내 머리를 스쳤다.
지나치게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의 전신이 마나로 둘러싸였다.


마나로 보호받지 않는 각성자의 육체는 가볍게 밸 수 있는 좋은 검이었지만 정작 내가 마나를 쓸  없었기에 저렇게 전신에 마나를 둘러버리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심지어  상태에선 총을 쏴도 큰 타격이 없으니, 비각성자는 각성자를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물론 그건 각성자의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틸 수 없는 놈들한테나 해당하는 소리고 나한테는 통용되지 않는다.
결국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니까.
각성자들의 마나는 유한하지만, 내 단검은 절대로 부러지지 않으니까.
그 뒤로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녀석은 분명 나보다 빠르고, 나보다 강했다. 심지어 나는 단검 외의 다른 부분이 녀석의 몸에 닿으면 바로 그 부분이 박살이 난다는 패널티 까지 있었다.

하지만 놈은 나에게 단 한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했다.

"미친 새끼,  정체가 뭐야."


어느새 마나가 다 떨어졌는지 녀석의 몸을 감고 있던 푸른 기운이 깜빡거렸다.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뭐 하려고."


 대사를 치니까 마치 내가 빌런이 된 느낌이었다.
설마 빌런을 죽였다고 나에게 불이익이 가해지진 않겠지? 시민을 지키기 위해 내 몸 희생해서 막아낸 건데, 설마 벌을 받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녀석을 둘러싸고 있는 마나가 옅어지는 틈을 타서 녀석의 어깨쯤에 칼을 박아넣었다.
아무리 마나로 보호받고 있지 않은 육체라도 일반적인 칼은 들어가지도 않아야 정상인 각성자의 육체가 평범한 인간의 육체인 것 마냥 쉽게 뚫렸다.


"끄아아아아악!!!"
"잠시 기절해 있으라고."

빌런이라는 놈이 고통에 내성도 없는 지 금방 기절해 버렸다.
하긴, 고통에 내성이 있는 놈이었다면 상처 한 두 개 정도는 달고 있었겠지.

놈을 묶을 만한 밧줄이 없나 하고 둘러보려고 고개를 들었는 데 시민들이 굳은 얼굴로 있는 게 느껴졌다.


`이런 싸움은 처음 본 사람들일테니까.`


조금 씁쓸하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은 이런 살육과 폭력엔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는데, 뭔가 사람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나에게 맞춰져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것은 나도 아니고, 방금 싸운 빌런도 아니었다.
 등 뒤에 있을 것이 분명한 대피소의 입구,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빌런이오,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여성이 서 있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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