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루시아-3 (34/265)



〈 34화 〉루시아-3

"야, 개새끼야. 내가 우리 오라버니 지키랬지 빌런 막으러 가랬어?!"

"ㅈ…. 죄송합니다!!"

빌런한테 당한 상처보다 내가 때려서 난 상처가 많을 때까지 두들겨 팼지만,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았다.
이 새끼 때문에 오라버니가 빌런한테 납치당했다고 생각하니 열불이 치솟았다.


"너무 화내지 마요. 걔가 안 막으러 갔어도 결국 결과는 똑같았을 거에요."
"무슨 소리야."


나와 비슷할 정도로 밝은 하얀색 머리, 마찬가지로 내 눈동자 색과 같은 황금색 눈동자, 누가 보면내 동생이라고 착각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머리는 염색한 거고 눈은 렌즈를 낀 거다.
옛날부터 언니언니 하고 따르더니 3년쯤 전부턴 나랑 색깔까지 맞추고 다닌다.
심지어 이름까지 나를 따라 하겠다고 연하로 바꾸어 버린 미친년이었다.

그래도 내가 솔에서 떠난 이후 경비대장직을 역임할 정도로 능력은 좋은 여자였다.

"애들을 써서 분석해 보니까, 저놈이 막으러간 빌런이랑, 오라버니를 납치해간 빌런이랑 동인 인물이에요."
"루시아 그년이 오라버니를 왜 납치해가?!"
"글쌔요? 오라버니의 동생이 하연 언니인걸 알아서 인 게 아닐까요?"


솔로 오지 말걸 그랬다. 그냥 도시에서 적당히 맛있는 걸 사 먹었으면 됐을 걸 왜 솔로 와서 이사단을 만들었을까.

"그러면 협상을 하러 와야 할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조용한데?"
"빌런 속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차피 협상을 해봤자 자기는 잡혀 들어갈게. 뻔히 보이니, 언니의 소중한 사람을 죽여버리려는 생각일 수도 있죠."

아니면 세뇌를 하던가.

`왜 하필 루시아년한테….`

고통으로 사람 하나 망가뜨리는 데 도가  년이다. 아무리 오라버니가 대단한 사람이라지만 루시아가 작정하고 덤벼들면 금세 망가져 버리고  것이다.
나를 못 알아보는 오라버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단 하나의 희망을 잡고 버텨냈다.


`월하라면 고칠 수 있을 거야.`

같은 등급의 권능이면 몰라도  차원 낮은 등급의 권능이다. 루시아가 오라버니에게 했던 모든 짓을 전부 무효화시킬 수 있을 거야.
루시아의 성격상 오라버니를 죽였을 리도 없다. 나한테 충격을 주겠다면서 분명 살려두고 있겠지.


"수색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아직 빌런에 의한피해를 수습 중이라서 더뎌요."


연하를 노려봤다. 억울하다는  나를 쳐다봤지만 그렇게 쳐다봐서 뭐 어쩌라고.

"언니도 아시잖아요. 진짜 아슬아슬했다고요. 언니가 우연히 솔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루시아가 오라버니한테 한눈 팔려서 중간에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마 저희가 졌을 거에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도시를 수습할 시간을 주세요. 딱 하루만 있으면 돼요.  능력이면 하루 만에 도시를 수습하고 수색에 전념할 수 있어요."

날 언니로 생각해서 조금 유하게 대해줬더니  년이 기어오르네.


"언니? 크헉!!"

연하의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A급각성자지만 전투에 특화된 능력도 아니었기에녀석의 반항은 나에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내가 물로 보이니? 도시 수습하기에도 바쁠 텐데 S급 각성자가 도시 한복판에서 날뛰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줄까?"
"ㅇ…. 언니…."
"오늘 솔이 끝장나는거 보여줄까? 재밌을 거 같은데 어때?"


주변의 각성자들이 나를 경계하는 게 느껴진다.
근데 너희가 경계해서 뭐가 달라져?

"딱하루 줄게. 그 안에 우리 오라버니 찾아내. 못 찾아내 내면 솔은 망하는 거야."
"ㅇ……. 이틀…."


이 정도 협박했는데도 시간을  달라는 걸 보면 진짜로 하루 안에는 못 하는 모양이다.

"그래, 딱 이틀 줄게,  찾아내면 알지?"

연하를 땅바닥에 던졌다.
목을 부여잡고 켁켁 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럴 시간 있으면 한 시간이라도 빨리 수색을 해야지.


"빨리 움직여."
"알았어요. 언니."

오라버니, 이틀만 버텨줘요. 제발.

***


나는 누구인가?
철학적인 질문의 대표주자격인 질문이었지만 내가 하는 질문하는 이유는 철학자들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근원을 찾고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지? 이수현인가? 이수현이라는 존재에 대한 어떤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나를 이수현이라고 할  있는 것인가?
듬직하고 오지랖 넓고, 착하다. 20자도 안 되는 짧은 문장으로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수현이었던 것이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 존재지만 그의 성격, 성향, 인격, 모든 것을 물려받았음이 분명하겠지. 그렇지 않다면 나의 성격, 성향, 인격은 어디서도 기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테니까. 그건 말이 안돼. 나는 아기가 아니고 성인이다. 이렇게 멀쩡하게 생각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내 성격은 이수현에게서 온 것이 분명하다.


그의 성격과 성향, 인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이수현  자체가 되지 않을까? 기억 하나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한 이수현이 되겠지.


머리가 깨끗해졌다.


"노예야, 나 왔어."


이름 모를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일단 이름을 물어보자.

"주인님, 갑자기 질문해서 죄송한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응? 그냥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아?"
"성함이 궁금해서요."
"음, 내 이름은 박정아야, 다른 사람한테는 루시아라고 말하고 다니니까 절대 내 이름을 밝히면 안 된다?"

박정아, 기억날 듯 말듯 간질간질한 이름이었다.
최소한 내가 아는 사람이긴  모양이다.

이수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는 사람이 자기를 납치한 상황이다.
비명을 지를까? 풀어달라고 소리칠까?

아니,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설득하겠지, 친절하게,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왜냐면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정아야, 나한테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어?"

나를 납치한 이후, 밥을 먹을 때, 일을 시킬 때, 벌을 줄 때,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미소가 단박에 깨져버렸다.


"말도  돼, 수현이는 비각성자라고, 내 망각독을 견뎌낼  있을 리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생각만 하면   입 밖으로 전부 내뱉고 있다.
좋은 신호네.


"내가 싫었어?"

목소리를 떨었다. 최대한 불쌍해 보이도록, 정아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조용히 해!!!"

묵직한 공기가 코를 통해 몸으로 돌아왔다.
기억이 흐려졌다.

정신을 차리니 이름 모를 여자가 바들바들 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데?
한 번 기억을 날렸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그러면 할 말은 딱 하나밖에 없지.


"나한테 왜 그랬냐니까?"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이 작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비명지르지 마, 내가 잘못  거 같잖아? 납치범은 너라고.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수현이는 비각성자라고, 나에게 지배당해야 할 약자에 불과한데……."
"나를 지배하고 싶어? 왜? 내가 너한테 해준 건 다 잃어버린 거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건 당연한 거야! 네가 간섭한 것부터가 잘  된 거라고!"


뭔가 일이 있긴 했나 본데?


"이렇게 된 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어. 철저하게교육시키면 이런 일도 없겠지."


한층  묵직해진 공기가 내 온몸을 휘감았다.

***

정신이 몽롱하다.


몸이 무거웠다.


천천히 눈을 떴다. 무겁기만 한 눈꺼풀이었지만 어떻게든 뜰 수는 있었다.
무슨 일이지?


천천히 기억을 되새겨봤다.
뇌에 구름이 듯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누구지?

`17호? 아니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을 지워버렸다.
흐릿한 기억속에서 잠깐 의식의 흐름을 놓아 버리는 것 만으로 과거의 이름 따위는 사라졌다.
이젠 기억할 필요도 없는 이름이었기에 아쉽지도 않았다.

`이수현,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이미 용이 되어 떠나간 내 옛 친구가 지어준 이름,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
정신의 일부분을 이름에 할당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정신을 놓았다간 언제 떠나갈지 몰랐다.




"일어났어?"


누군가의 말소리에 정신이 깨었다.
아직도 모든 기억은 흐릿했지만 사물을 구분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누구지?`




기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외모의 좋고 나쁨을 말하는  아니었다.
분명 인간의 몸이거늘 색의 배치가 기괴했다.


피부의 색은 분명 인간이었지만 오른쪽 동공은 붉은색이었고 왼쪽 동공은 보라색이었다.
머리카락도 하나의 색이 아닌 수십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어떤 통일성도 없이 난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눈에 정신을집중해 겉으로 드러난 부분을 자세히 바라보니 체모의 색조차 일정하지 않았다.



"왜 나를 납치했어?"

부드럽게,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가 쓰러졌다.
왜 일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움직이지 않은 건지 온몸이 무거웠다.


몸이 가는 데로 움직였다.
기억도 없는 주제에  아무생각 없이 움직이냐고 묻는 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그러고 싶었으니까.
마치 내 뇌의 깊은 곳에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라고 말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듯 강하게소리치고 있기에 나는 발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건물밖으로 나오자 보이는 건 빈민가로 추정되는 어지러운 거리였다.
도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기에 도시의 중심부 쪽으로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도시가 보였다.
전쟁이라도 터졌는 지 멀쩡한 건물이 없었다.
완전히 무너진 건물은 얼마 없었지만외벽에 잔 상처 정도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저 사람 아니야?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맞는 거 같은데? 허리에 검이랑 권총도 있고."

멀찍이서 나를 보고 속닥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둘이서 몇 마디 속닥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이수현씨 되십니까?"
"네, 제가 이수현인데요?"
"혹시 같이 가주실 수 있으십니까?"

갈까? 말까? 너는 어떻게하고 싶어?
무장 상태를 보면 비각성자는 아닌 거 같은데, 풍기는 기세로만 보면 E급에서 D급? 충분히 따돌리고 도망갈 수 있는 수준이다.
따라가지 말자.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니까.

"동생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동생이요?"


나한테는 동생도 있었구나?  번 만나보고 싶은데?

"네, 같이 갈게요."

나를 붙잡은 사람들이 검은 색 직육면체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입모양을 보고 해석해 보면, 찾았습니다. 네? 어디냐고요? 20-4 구ㅇ...

입모양이 끊겼다.
무전을 하고 있던 사람이 근처까지 왔는 데 굳이 무전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라버니!!!"


하얀색 머리를 한 여성이 나에게 안겨왔다.
아니 안겨 온게 맞나? 안아 온건가?

키가 비슷해서 어떻게 말해야   헷갈리네.

"걱정 진짜 많이 했어요. 괜찮으신거에요? 어디 아프신 곳은 없어요?"
"오라버니는 괜찮아,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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