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루시아-4 (35/265)



〈 35화 〉루시아-4

나는 약자였다.
작은 도시에 빈민가 위치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약자.


아득바득 기어가며 살아왔다.
돈도 얼마  주는 공장에서 하루 20시간씩 일했다. 그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고, 지켜봐 주는  없는 빈민가에서 20년을 살아왔다.

약자로서 20년을 살아온 나에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보다 강한 사장이 나를 지배하고 일을 시키는 것은 당연하며 약자인 나는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나보다 강자인 각성자들이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아도 그냥 참아야 했다.
왜? 나는 약자니까. 그게 `당연`한거다.


그래, 약자는 강자한테 굴복하는 게 당연한 거야.  반항하려 해?  힘들어질 뿐일텐데.


 때쯤이었을 거다. 그를 만난 게.


막 20살이 된 나는  각성자무리한테 찍혀있었다.

도시에서 키우는 유망주들이라고 하던데, 오냐오냐 커서 그런지 성격이 뒤틀려버린 년들이었다.

어쩌다가 찍혔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았다. 아마, 달라는 돈을 안 줘서 그랬던  같았는데, 돈이 없던 내가 잘못을 한거니까 악감정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 때는 진짜 살기 힘들었다.
일도 못 가게 하고 게이트 안까지 끌고 가서 괴롭혔으니까. 도대체 그년들이 나한테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내가 곧 죽겠다 싶은 공포감이  정도였다.

"그만하시죠? 각성자들이 비각성자를 며칠 동안 학대하는 거, 그렇게 명예스러운 일은 아닐텐데?"


주변에 사는 빈민가의 남성이었다.
그년들이 나를 끌고 가는 동선과 그의 출근 동선이 겹쳤기에 몇  그를 마주쳤는데 이 멍청한 작자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강자한테 대들었다.
도대체 왜?
그년 들이 나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항해 봤자 힘들어지는 건 나였다. 그리고 이제 그도 괴로워지겠지.

"뭐야? 이 년 알아?"
"그냥, 같은 동네 사람인데요?"
"그럼 그냥 꺼져라. 너도 이렇게 되기 싫으면."
"그럴 순 없죠. 사람이 저렇게 고통 받는  그냥 두고  없잖아요?"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지금으로서도 믿기 힘들 만큼 놀라웠다.
분명 D급 각성자 3명이 덤벼들었음에도, 검 하나와 총 하나로 그 년들을 몰아세웠다.
정신을 차린 이후엔 이미 각성자년들은 도망갔고, 그 하나만 남아서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괜찮아요?"
"왜 그랬어요?"
"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당연한건데? 왜 도와줬냐고요?! 저는 약자라서, 그냥 지배당해야 하는 운명인데!"
"... 우리,  얘기나 할까요?"


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총포상이었다.
여기서 일하는 걸까?

"다행이도 사장님이 출장 중이셔서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주 한 병과 소주잔  잔을 꺼네왔다.

"죄송해요. 제가 맨정신으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혹시 몰라서 잔은   꺼네왔는 데 같이 드실래요?"
"네, 주세요."


나도 정신으로 내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용기는 없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깡 소주  병을 통째로 비워내서야 우리의 대화가 시작됐다.

"저는 이수현이라고 하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박정아라고 해요. 나이는 20살이고요."
"동갑이네,  편하게 해도 돼?"
"그렇게 해."

그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기분 나쁠 법도 했지만 그의 표정이 워낙 진지하고 진심어린 걱정이 담겨있었기에 기분이 크게 상하진 않았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왜? 스스로가 약자잖아."
"내가 약자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어차피 반항해봤자 나만 힘들 뿐이잖아? 도대체 왜 반항해야 하는 데? 그냥 닥치고 지배에 따르는 게 편하잖아."
"약자라고 해서 강자한테 복종할 의무는 없어."
"그래, 의무는 없지, 하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이야."

내 신념은 확고했다. 수현이가 몇 번이고 깨부수려고 덤볐지만 절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너보다 강자니까, 지금부터 내 노예가 되라고 하면 들을 거야?"
"당연하지, 너는 강한데다가 일면식도 없는 나를 구해줄 정도로 착하잖아? 지금 당장 벗을까?"
"아니, 그런말이 아니거든?!"


그의 얼굴이 새빨게지는 걸 구경하는 건 나름 재밌었다.
그 말을 끝으로 서로의 사상에 대한 논쟁은 그만뒀다.
나와 그의 신념은 수평선과 같아서 아무리 말을 해봤자 서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그와는 썩 잘 맞았다.
사상을 제외하면 죽이 매우  맞아서, 진짜 친구를 얻게 된 느낌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와는 친해지지 못 했다.
더 이상 그와 얼굴을 마주 보며 지낼 자신도 없었고, 각성자년들의 보복도, 조금은 무서웠으니까.


그 때엔 이름도 존재하지 않던 태양길드의 수도로 향했다.
 때는 인력이 많이 부족해서 나 같은 빈민가의 사람도솔로 향할 수 있었지, 물론 도시만 달라질 뿐 여전히 빈민이라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다음의 이야기부터는 정말 시시한 이야기다. 운이 좋아서 A급으로 각성했고 그대로 태양길드에 들어갔다가, 사람 하나 마음대로 못 죽이다는 걸 깨닫고 루시아로 개명한 뒤 빌런으로 전향, 붉은 달이라는 빌런 조직을 만들어서, 각성자가 비각성자를 지배하는 사회를 외치다가 5년만에 제압되고 감옥에 갖혔다.
길드장 새끼, 나 같은 년도 필요한  아는지 절대 죽이진 않더라.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제 그는 내 손안에 들어왔다.
이제는 명백하게 나보다 약자인 그, 약자라고 해서 강자한테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과연 그럴까?


그에 대한 뒤틀린 욕망과 나의 비틀린 사상이 그를 완전히 지배해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그를 지배하는 건 너무 쉬웠다. 비각성자의 기억을 완전히 날리는 데엔 단 한 번 마력을 전부 소모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주기적으로 망각독을 주입하지 않으면 천천히 기억이 돌아오겠지만 어짜피 그의 곁에 항상 같이 있을 테니까,  부작용은 아니었다.

"일어났어? 아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거야."


너무나 기뻤다, 한때는 자신보다 강자였던 그를 이렇게 내 손안에 옭아맸다는 사실이.

"누구…. 세요?"
"나? 네 주인님이지. 설마 다 잊어버린 거니?"
"어제도 제가 노예였나요?"
"그래,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너는 줄곧 내 노예였어."

기억을 잃었어도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닌 걸까? 감히 자신의 처지를 의심하다니….


"그런데 우리 노예, 왜 주인님 눈을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니?"


그의 호흡기를 통해 독을 주입했다.
치사성은 없지만, 극한의 고통을   있는 독,

비명을 지를 여유도 없이 바닥을 뒹구는 그를 보니 잊혀져 있던 욕구가 충족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게 감히 주인님께 반항하래?

***

"일어났어?"


어제 종일 단단히 교육을 해서 그런가? 조금 날카로웠던 어제와는 다르게 순종적인 느낌이 들었다.


"주인님, 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떤 사람이었냐고? 당연히 노예였지!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말 잘 듣는 노예였지, 지금처럼 멋대로 질문하지도 않았고. 아주 착했어."
"처음 만났을때부터 그랬나요?"
"처음 만났을 때?"

그 때의 그를 떠올렸다.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남의 일에 껴들었지만, 강하고 멋졌던 그 모습을...


"듬직하긴 했지, 비각성자라고 하기엔비정상적으로 강했어. 그리고 오지랖이 넓었고 착한 사람이었지."



내가 무슨 소리를  걸까. 노예는 강할 필요도, 오지랖이 넓을 필요도, 착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방금 말한 건 그냥 잊어."


가볍게 망각독을 만들어 흘려보냈다.

이런 단 시간의 기억을 흩어내는 건 적은 마력을 사용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눈이잠시 동안 몽롱해지더니, 천천히 빛을 찾았다.

"주인님, 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뭐?`

당혹감이 몸을 덮쳤다. 기억을 잃지 않은 건가?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하필 기억이 사라진 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묻기 바로 직전에 잘린 건 걸야.


"주인님?"
"어….  잘 듣는 노예였어. 멋대로입을 열지도 않고 아주 착한 노예였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나요?"
"응, 처음 만났을 때부터 충직한 노예였어."

어색한 침묵이 방안을 감쌓다.

제길, 노예 따위한테 겁먹고, 아직 주인님이 되기엔 내 성격이 너무 여린 모양이다.


"나는 식량 구해 올테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독을 고체화시켜서 수현이를 구속했다. 같은 A급 각성자도 풀어내려면 한참은 걸리는 독이니까, 아마 수현이는 절대 풀지 못하겠지.

밖에서 주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고 와야지. 노예한테 흔들려서 어쩌잔 거야.

한참을 걷다가 적당히 먹을 구해서 돌아왔다,

"노예야, 나 왔어."
"주인님, 갑자기 질문해서 죄송한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젠 노예한테 휘둘리지 않겠다고 결심 했건만 이런 무례한 질문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주고 말았다.

"응? 그냥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아?"
"성함이 궁금해서요."
"음,  이름은 박정아야, 다른 사람한테는 루시아라고 말하고 다니니까 절대 내 이름을 밝히면  된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름을 말해줬으면 안 됐을 같은기분이 드는데?


"정아야, 나한테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어?"

방금…. 뭐라고?

5년 전 그의 말투와 똑같은 말투였다.

너는 내 노예야. 그런 말투를 쓰면 안 된다고!

스트레스가 팍 치솟았다.


기억이 돌아온 건가? 어떻게? 그게 말이 돼?


"말도 안 돼, 수현이는비각성자라고, 내 망각독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그래, 어떻게 비각성자따위가 망각독을 이겨내? 그건 말도 안 돼….

"내가 싫었어?"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내 심장부로 날아와 꼽혔다.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조용히 해!!!"

망각독을 사용해서 그의 기억을 날렸다.

이제 괜찮아. 설령 기억이 돌아왔었다고 해도 이젠 다시 잊어버렸을 거야.




"나한테  그랬냐니까?"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말도 안돼.

"말도 안  말도  돼 말도 안 돼. 수현이는 비각성자라고, 나에게 지배당해야  약자에 불과한데……."
"나를 지배하고 싶어? 왜? 내가 너한테 해준 건 다 잃어버린 거야?"




닥쳐! 그건 네가 멋대로 간섭 한 거잖아. 애초에 왜 세계의 섭리를 거스르는 건데?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당연한 거야! 네가 간섭한 것부터가 잘 못 된 거라고!"



어떻게 물들인 머리가 다 하얗게 세게 생겼다.
온몸이 흥분과 스트레스로 바들바들 떨려왔다.

"이렇게 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어. 철저하게 교육하면 이런 일도 없겠지."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이번에는 절대로 빈틈을 보여주지 않겠어. 철저하게 고통과 괴로움으로, 네가 노예라는 걸 각인 시켜 주지.
모든 마력을 사용해서 망각독을 주입했다.
굳이 모든 마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게 확실하니까. 어차피 하찮은 비각성자 따위 마력 없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의 눈이 완전히 몽롱해졌다가 5분쯤 지나서야 천천히 밝아져 왔다.

"일어났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돼. 이번엔 상냥한 주인님은 없어. 전부 네가 자초한 일이야.
5분간 모인 마나를 끌어모아서 독을 만들어냈다.



"왜 나를 납치했어?"


말도 안 돼…. 진짜…. 말도 안 된다고….
너는 비각성자잖아! 기억하면  되는 걸 왜 기억하고 있냐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더 이상 스트레스를 참을 수가 없었다.
만들어낸 독이 멋대로 빠져나가면서 몸에 타격을 입었다.


차라리 기절해 버릴까? 그래, 이건 다 꿈일 거야…. 자고 일어나면, 노예가 되어있는 수현이가 나를 보고 있겠지.


사라져가는 의식을 굳이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가 꿈일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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