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이수현-4 (39/265)



〈 39화 〉이수현-4

"흠, 제 눈에는 기사님이 훨씬 귀여우신  말이죠."


모르는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누구지? 루시아의 목소리도 아닌데, 누구지?


"누구야?!"

연하가  앞을 막아 섰다.분명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 했건만 시꺼먼 흑발을 지닌 여성이 이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솔의 경비대장쯤 되시는 분이라면 제가 누구인지는 금방 짐작하실 것 같았는데 말이죠."
"너구나? 언니가 말했던 월하 라는 여자가."

도대체 누구지? 도저히 추리가 되지 않았다. 느껴지는 기세나 아무런 전조 없이 방에서 뿅하고 나타난 걸 보면 틀림없이 S급 각성자 인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나를 기사라고 부르고 있다.
뭐지? 내가  사람 밑에 소속되어 있었나? 경호역할을 수행해서 기사라고 부르는 거지.

'근데 S급 각성자한테 경호원이 필요한가?'

설마 그 기사가 아니라 기사를 쓰는 기사인걸까? 아니 뭔소리야 기사를 쓰는 사람은 기자라고 하지 기사라고 하진 않잖아. 그렇다고 내가 무슨 바둑기사를 한  아닐테고.


정보가 없어서 추리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접점을 찾아낼 수가 없다 보니 정보가 더 늘어난다고 해서 추리가 잘 될  같진 않았다.

"기억을 잃으셨다는 게 정말이네요. 그런 표정으로 저를 바라 보는 기사님, 낯설긴 하지만 귀여우시네요."


자꾸 귀엽다 귀엽다 하는 걸 보니 나보다 연상인 모양이다. 설마 다큰 남성을, 그것도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오빠를 귀엽다고 부르진 않겠지.


"누님은 누구십니까?"
"풉... 누님이요? 저 보고 하신 말씀이세요?"


여성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하긴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누님은 잘  어울리긴 하지.


"월하씨?"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월하님?"
"저희는 굉장히 친한 관계였어요."

설마? 아니겠지? 괜히 틀렸다고 맞진 않겠지.


"설마 월하?"
"빙고."


이수현 이새끼 뭐 하던 놈이야. 비각성자라는 놈이 S급 각성자 두 명한테 반말을 썼다고? 하연이는 여동생이라서 그렇다고쳐도 저런 누님한테도? 아니, 이름으로 부르는 시점부터 이미 누님이 아닌가?


"저희는 어떤 사이였나요?"
"기사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죠."

어릴  일이구나.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릴 때 얼마나 많은 양의 플래그를 꼽고 다닌 거지?


-똑똑

"들어가도 돼요?"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연하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를 찾아온 사람은 아닌 듯 하고 아마 월하를 따라온 사람이 아닐까?


"응, 들어오렴."
"하아..."

연하의 한숨이 땅을 꺼뜨릴 것 처럼 무겁게 뿜어져 나왔다.


부드럽게 문이 열리고 보인 것은 남자아이였다. 그런데  옆에 여자아이들이랑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아이가 불편하다는 듯 인상을 쓰고 있는 데도 여자아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아이의 팔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고 있었다.

"수현이 형! 저  도와주세요."


내가 아는 애인걸까? 당연히 아는 애겠지?
나를 알고 있고 어느정도 의지해야만 나올 수 있는 절박한 표정으로 간청하는 불쌍해 보였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고통받아라 핫하!

"미안 내가 지금 기억이 없어서..."


"사현이 너는 우리랑 붙어있는게 싫어?"
"바부! 오빠는 너랑 붙어있는  싫은 거거든? 네가 지금까지 우리 오빠한테  짓을 생각해봐."
"앞으로 잘 하면 되잖아!"


어린 애들이 살벌하네. 간절히 나를 바라보는 남자아이의 시선을 억지로 피했다.
네 인생은 네가 해쳐나가야 하지 않겠니? 남한테 도움만 바라다간 스스로 헤쳐나갈 실력을 기르지 못  거란다.


"월하,  데려온 거에요?"
"네, 같이 지내던 아이들이니까요. 기사님이 아프시다고 하니까 따라가겠다고 해서 데리고 왓죠."
"제가 아픈 건 어떻게 알았는데요?"
"다 방법이 있죠."

음습하게 웃는 걸 보니까 절대 정당한 방법으로 알아차린 건 아닌거 같은데?
일단 연하의 뒤에 숨었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쪼그리니 연하의 뒤에 완전히 숨어들어갈 수 있었다.
키 좀  커야겠다 연하야 너무 불편하다.


"오라버니?"
"기사님? 그년이랑 본  얼마나 됐다고 저보다 그년을 더 의지하시는 거죠?"
"얘는 본지 3시간 됐고 월하는 본지 3분도 안 됐는 걸요. 무려 60배의 차이라고요!"


연하의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가는 보였다.

"오라버니랑 솔의 경비대장은 아예 일면식이 없던 걸로 기억을 하는 데 말이죠. 그 년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믿지 않으시는 게 나아요."
"자기입으로 오늘 처음 만났다고 했습니다! 월하의 말과 일치하는 데 그러면 월하의 말도 의심해야 하나요?"


벌써 익숙해진 건지 텐션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아무튼 그년 뒤에 숨어 있지 말고 이리로 오세요. 그러다가 다쳐요."
"연하는 하연이가 저를 맏기고 간 동생입니다. 방금 처음 본 당신 보다는 연하가 훨씬 더 의심스러워요."
"아, 하연씨가요? 이건 계약 위반인데..."


계약?


"무슨 계약인데?"
"기사님은 모르셔도 돼요."


왜? 나랑 관련되어 있는 계약 아니야?

대충 예상이 갔다. 아마 나를 사이에 두고 압묵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 게 아닐까?
그런데 내가 왜 몰라야 하지? 나에 대한 계약이잖아.

"기억을 잃기 전의 저도 모르는 계약이었나요?"
"알 필요 없다니까요?"

이수현, 네가 참 대단한 놈이라는 건 인정하겠는 데 이건  아니지 않냐? 여동생이 자길 사랑하는 건 이해 할 수 있어 어차피 진짜 남매도 아니니까.
 마음을 확고하게 쳐내지도 못 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는 건 알겠어. 우유부단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이건 아니잖아? 자기가 없는 곳에서 둘이서 자신에 대해 멋대로 합의한 걸 모른 척하고 있었다고?


너 정도 눈치면 모를 수 없었잖아? 알고도 모른 척한거지?
왜? S급 각성자라서 무서웠나? 아니야. 단지 그 뿐이라면 지금 나도 월하한테 쫄아서 연하 근처에서 벗어났겠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

근데 뭐? 나는 그냥 이 상황이 짜증나거든?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가지고 멋대로 합의하고 나를 맘대로 다룬다? 참는 게 병신이지.
기억이 돌아오면 또 이런 상황이 반복 될 거 아니야. 이수현을 위해서라도 이 관계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아까 날아갔던 총을 찾아서  손에 쥐었다.

"기사님? 뭐 하시는 거에요. 진짜 저한테 반항하시려는 거에요?"


또 그래? 하연이나 월하나 내가 뭐만 하면 기세부터 흩뿌린다. 이수현도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참아준 것일테지만 절대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잘 알잖아?

"아니, 이렇게 살바에야 그냥 죽으려고."


관자놀이에 총을 가져다 댔다. 이 짓만오늘로  번째 하는 것 같은데? 아이들도 서로 싸우는  멈추고 숨을 죽인  내 쪽을 바라봤다.
애들한테는 미안하네, 어쩌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와서 얘들아 형이 곧 자살  건데 좀 비켜주지 않겠니? 하고 부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정말 많은 데 딱  마디만 할게."

월하의 표정은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내가 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쏴도 막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월하의 표정은 화난 채 나를 노려보는 모습 그대로였다.
진짜 미친년일세 하연이도 조금의 동요는 보여줬는데 저렇게까지 평정을 유지한다고?

"나는 너희들 장난감이 아니야."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분명 관자놀이에 대고 총을 쏘았음에도 총소리는 뒤에서 울려퍼졌다.
역시 S급 각성자, 막을  있을  알았어.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코 앞까지 다가와 있는 월하. 시큰 하게 아파오는 손목.

'많이 급했나보다?'


저렇게 창백한 표정을 하다니, 아무리 S급 각성자여도 이런 자살까지 막는  힘들었던 걸까? 아니면 진짜로 할 줄은 몰라서 당황한 것에 불과할까?

어찌되었건 내가 원하는 반응은 200% 이상 끌어낼 수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이 썅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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