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이수현-6 (41/265)



〈 41화 〉이수현-6

눈동자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일단 걱정하는 표정인 건 확실한데.

"기억을 잃으셨어요. 기억 안 나시는 거에요?"
"어, 아무것도 기억 안나..."


월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사라졌다는 게 그렇게 기뻐?

아쉽지만 아직은 아니야. 과거의 기억부터 차근차근 돌아오는 게 느껴지는  보니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너희들 교육해 줄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기억을 잃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있던 거야?"


하연이를 바라보고 물었다. 월하는 옆 도시의 인물이라고 했다. 아마 내가 기억을 잃을 당시에 옆에 있지는 않았을 테지, 기억을 잃기 전의 상황을 최대한 상상해가며 행동했다.

"오라버니한텐 아픈 기억일 거에요... 빌런한테 당한 거거든요."

하연이가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연하는... 안 보이네.

 떠볼까?

"내가 기억을 잃은 동안, 이상한 짓 한 건아니지?"
"아니에요. 이상하지 않았어요."

내 물음이 끝나자마자 월하가 대답해왔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름을 모르기에 부를 수는 없지만, 그저 지긋이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었다.

"자살하시려고 했어요..."
"사현이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연이가 급하게 남자아이의 입을 막았다.

"자살을 하려고 했어? 대체 왜?"
"오라버니는 모르셔도 돼요!"
"내가 자살을 하려고 했다며 몰라도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사현이를 바라봤다.

"더 얘기해줄 수 있어?"
"으으읍!!!"

하연이가 사현이의 입을 꾹 막은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달라진 건 없구만,


"하아, 병신들..."


이수현을 연기하던 모습을 벗어던졌다.
S급 각성자 둘 모두 눈치 챘는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하긴 대놓고 욕설을  뱉었는데 못 알아차리면 그게 이상한거지.

"우리를 속였구나?"
"그래 속였어, 슬슬 사라질 것 같은데, 이수현이 앞으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겄냐."
"우리 기사님이 행복하게 사시는  우리가 관여할 일이지  알바가 아니야."


어이구 무서워라

"그래  잘했다. 이수현이 행복하게  수 있게 너희가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허구한 날 괴롭히냐 이거야. 그것 때문에 나도 마음을 못 놓고 있잖아."
"읍읍!"


 좀 놔줘라 저러다가 숨 막혀 뒤지겠다.

"더 이상 내가 말 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부탁 몇가지만 할게. 이수현이돌아오면,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설명해, 그게 맞는 거야. 자기 일인데 그걸 속이려고 드냐."

저거저거 손에  마력 모으는 거 봐.

"그리고 셋이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시간을 가져봐, 내가 너희 한테 화내는 이유가 괜한 게 아니야, 이수현이 너무 불쌍하게 사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지, 셋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 좀 해봐, 내가 말하는 것 보다는 그놈이 직접 말하는 게, 아무래도 더 효과가 좋겠지."

거대한 마나가  내 머리를 때려왔다.

'아, 이번엔 못 버틸 것 같은데.'

 다시 시야가 암전 됐다.

***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떤 무게감도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마치 귀신이 된 것처럼 그 어떤 저항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또 여기야?'

한 번 와본 공간이었지만 이전에 왔을 때와는 천양지차로 달라져있었다.


흐릿한 곳 하나 없이 모든 곳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 기억이 완전히 돌아온 것이겠지.
시야를 넓혀 찬찬히 둘러보니, 내가 경험한 일 또한  공간의 일원으로서 빛을 내고 있었다.

"수고 많았다."

나랑 완전히 같은 목소리였지만, 나랑은 다른 목소리였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 싶겠지만 이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같은 사람이 내는 목소리라도 감정마다 목소리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아예 다른 기억을 가진 우리가 조금은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이상한 것은 아니니까.

"다 보고 있었냐?"
"깨어난 지 얼마 안 됐어. 실시간으로 보진 않았는데, 일단   훑어보긴 했고."

다행이네, 그년들 절대로 얘기 안 해줬을 텐데.


"묻고 싶은  많아."
"천천히 말해봐, 시간은 많으니까."

나랑 대화 하다니, 정말 신기한 기분인걸? 하하, 너무 즐겁다~


"너 병신새끼냐?"
"...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뭐가 없어 그냥 맞다고 하면 되지."

주변 여자들, 심지어 자신이 구해준 여자애들을 제어하지 못 하다니, 뭐하고 사는 거야?


"너도  못된 관계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왜 그냥 참기만 한 거야?"
"애초에 반항 할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니까."
"그러면 그냥 죽어버리지 왜 살아?"

빈정거리는 의미로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곧 나고 나는 곧 그였으니, 내 맘대로 살지 못하고 붙잡혀서  바에야 죽어버린다는 가치관은 그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죽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서 말이야."
"나는 모르는 기억 속의 일이야?"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말이 없는데?


"그래도 대화도시도해 보지 않은  너무 쫄보 아니야? 분위기 딱 깔고 진짜 진지하게 대화해보면 상황이 더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나빠질  같진 않은데?"
"안 그래도 요즘엔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어,  모습을 보니까 너무 과거에 얽매어 있던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그렇다면 다행이고, 형이 네가 걱정돼서 짧은 인생 동안 네 근처 여자들 교화시키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해봤거든? 그런데 역시 네가 아니라서 그런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
"결국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 이제 좀 괜찮은 표정을 짓는 구만.


"근데 형은 나 아니야? 네가 나보다 늦게 태어난 인격이잖아."

능글 맞게 웃어주는 면상에 주먹을 꽃아주고 싶었다. 내가 웃으면 저런 느낌이구나?


"그래서 형이라고 불러줘?"
"됐어,  얼굴로 그런 소리 들으면 징그러워서 못 버틸  같아."

한  불러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역시 하지 않기로 했다. 못 버티는 건 이수현 뿐만이 아니니까.

"잘할 수 있지?"
"당연하지,  해낼  같지 못하면 그냥 죽어야지."
"거짓말 죽을 생각은 하나도 없으면서."
"진짜야."


안색하나 안 바꾸고 거짓말을 한다.
하긴 나도 거짓말 할 때 표정 숨기는정도는 쉽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너한테 믿고 맡기고 사라진다?"
"사라지긴 어딜 사라지려 그래? 그냥 남아있어. 가끔 심심하면 말 동무도 해주고 내가 너무 힘들 때는 대타도 뛰어주고."
"무슨 이중 인격도 아니고..."
"그냥  의식 속에 남아 있어 달라는 것 뿐이야."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그냥 기억상실증으로 탄생한 인격일 뿐인데,
당연히 없어지는 게 맞는 인격이다.

"너도 더 살고 싶잖아? 내가 아는 이수현은 이렇게 사라지는 거, 싫어할 게 분명하거든,"
"이수현은 넌데 무슨 소리야."
"너도 이수현이지, 네가 이수현이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단어로 너를 설명할 수 있는데?"


"기억 없는 이수현, 앞에 네글자만 붙이면 완벽하게 설명할  있는데 왜."


"그러면 기억이 생긴 다면 너는 완벽한 이수현이  수 있는거야?"
"그건 아니지, 나는 너의 기억을 볼 뿐이지 직접 경험하는  아니니까."
"그래도 불완전한 이수현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어?"

네가 입 터는 건 다른 사람들 한테나 통하는 거지 나한테는 안 통한단다.

"아무튼, 너도 사라지긴 싫잖아? 가끔 세상 구경도 시켜 줄테니까 그냥 닥치고 남아있어 병신새끼야."
"지가 더 병신이면서 뭐래 개새끼가."


내가 나를 욕하고 있으니 이것은 자기혐오인가 아닌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닥치고  기억이나 구경하면서 지낼 거거든? 그러다가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그냥 사라진 거고."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럼 슬슬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지, 그러면 나중에 봐."


이수현의 몸이 흐릿하게 변하면서 천천히 사라졌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바로 일어나지는 않을 모양이다.

'무슨 기억 부터 구경할까.'


이젠 흐릿하지 않고 밝기만 기억들 속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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