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대삼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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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삼림이 무엇이냐,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나무가 존나 많은 곳이다.
이 나무가 그냥 나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대삼림에 존재하는 나무는 몬스터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조 하는 마목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게이트를 타고 우리 세상에 건너온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오래 살지 못 한다.
등급마다 다르긴 하지만 짧으면 일주일 정도, 길어봤자 몇 년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소멸해 버렸다.
왜 사라지는 건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인간들이 작은 문명이라도 유지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국토의 대부분을 몬스터한테 점령 당해도, 몬스터의 양이 계속 늘어나지 않고 유지 되니까.
마목 얘기 하다 말고 왜 갑자기 몬스터의 수명에 대해 얘기하고 있냐고?
마목은 몬스터의 수명을 늘려준다.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마목의 주변에 있는 몬스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랜 관찰로 얻어낸 결론이니까 아마 틀리지 않겠지.
이러한 마목의 위험성 때문에 도시 근처의 마목을 주기적으로 정리한다는 말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도시의 힘으로도 정리를 못 하는 구역이 있으니,
"그게 바로 대수림이에요."
장장 1시간에 걸친 연하의 설명이 끝났다.
"왜 정리를 못 하는데?"
"조금 정도 자르는 건 문제가 없는데 대규모로 벌목을 하려고 하면 몬스터들이 난리를 부리거든요."
"솔에 S급 각성자만 두 명이 있는데도 안돼?"
"네, 대수림 중앙 부근엔 S급 몬스터도 다량 살고 있다는 게 확인 됐으니까요. 함부로 벌목하다가 그놈들이 도시까지 습격해버리면 답도 없어요."
한 마리만 있어도 솔의 존위가 위협받는다는 S급 몬스터가 다량 존재한다고?
이건 좀 충격인데...
"그래서, 오라버니는 못 데리고 가요."
"진짜 안돼?"
"네, 안돼요. 애초에 길드장님이 저랑 하연 언니한테 일을 맡겼다는 건 정말 중요하고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에요. 그런 임무에 오라버니를 모시고 갈 순 없어요."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연하의 얼굴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곳엔 위험한 것이 있다고, 마주쳤다간 되돌릴 수 없는 위험이 잠들어 있다고,
"외곽만 탐사하는 거잖아. 어지간한 몬스터는 나도 처리할 수 있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오라버니는 비각성자잖아요."
어? 이거 잘 하면 설득시킬 수 있겠는데?
"하연이한테 못 들었어? 나 비각성자 치고는 겁나 세거든?"
"아레나인가 뭔가에서 인간 수십 명을 혼자서 제압했다는 거요? 그래봤자 몬스터한테는 안돼요."
"D급몬스터 까지는 잡을 수 있어."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딱딱하게 굳어 있던 연하의 표정이 풀렸다. 완전히 비웃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오라버니가요?' 라는 느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못 믿는 게 당연하지, 아무리 잘 단련된 사람이라도, 각성자가 아니라면 F급 몬스터를 잡는 게 고작일 테니까.
'C급 몬스터까지 잡을 수 있다고 했었으면 대놓고 웃었겠다?'
모든 C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준비 과정이 길긴 하지만 몇몇 몬스터들은 나 혼자서 잡아 낼 수 있었다.
D급 몬스터는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 상대가 누구든, 최소한 D급 몬스터한테 죽을 가능성은 없었다.
D급 몬스터와 싸우다가 주변에 있던 B급 몬스터한테 죽는 건 D급 몬스터한테 죽는 게 아니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알죠? 적당히 F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고 했으면 믿었을 텐데..."
"진짜야. 의심되면 게이트 들어가서 확인해 볼래? D급 정도 되는 게이트는 하루에 한 개 정돈은 꼭 생기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눈빛으로 연하를 바라봤다. 문제는 내가 거짓말을 할 때도 이런 눈빛을 할 수 있다는 거고, 연하도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다는 것.
"위험할 것 같으면 네가 구해줘도 되잖아. 만약 내가 못 잡아내면, 네 소원 하나 들어줄게."
"좋아요!"
즉답이네, 자신이 무조건 이기는 내기라는 걸까?
"대신 내가 이기면, 대산림에 가는 거 나도 데려가 줘."
"좋아요. D급 각성자 한 명 데려가는 느낌으로 가면 되니까요."
"그러면 바로 이동할까?"
연하와 나 단 둘이서 이동했다.
하연이는 도시를 며칠동안 비워 놔서 밀린 일도 있고, 슬슬 도시에 자신의 영향력을 늘리겠다고 작업을 친다고 바빴고, 월하도 암흑가의 모든 조직을 완전히 자신의 발밑에 둔다고 바쁜 상황이었기에 긴 말 없이 이동했다.
"오늘 터진 D급 게이트에요. 닫힐 때까지 아직 시간도 여유롭고, 아직 게이트 안에 있는 D급 몬스터들도 충분히 있을 테니까, 만약 억울하게 졌다고 느끼시면 리트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됐어. 한 번이면 충분해."
도시 외곽부근이었지만, D급 게이트라는 위험도 때문인지, 관리를 위한 경비대원 한명이 지키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최고 상관인 하연이의 가족들이 게이트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바로 비켰지만.
"오크 주둔지인가 보네?"
"그런가봐요. 아주 초록초록 하네요."
"오크 주둔지면, D급 몬스터 찾기 힘든 거 아냐?"
오크의 D급 몬스터라고 하면 전사 정도 되는 위치인데, 오크 전사는 게이트가 열리면 가장 앞장서서 침공해 오기 때문에 게이트 내부에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뒤져보면 나올거에요. 아무리 오크 주둔지라고 해도 몬스터가 오크밖에 없진 않으니까요."
연하의 몸이 하얀색으로 빛나더니 곳 게이트 내부 전체로 퍼졌다.
"찾았다. 따라 오세요."
연하를 따라간 곳에는 거대한 동굴이 있었는데 동굴 깊숙한 곳에서 푸른 눈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이언트 스네이크 인것 같은데 잡으실 수 있죠? 위험해 보이면 바로 구해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구나.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한 번 보자고.
단검과 총을 꺼내들었다.
D급 각성자와 D급 몬스터, 어느쪽이 잡기 힘들까?
일반적으로 동급의 각성자와 몬스터가 붙으면 몬스터가 우위를 점한다. 인간에겐 정보도 있고 무기도 있지만, 단순한 1대1 승부라면 몬스터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인간의 지식과 무기로 다대다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해가며 작은 문명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나한테는 인간보다는 몬스터가 훨씬 상대하기 쉬웠다.
각성자용 탄환은 함부로 쓰면 잡혀가지만 몬스터용 탄환은 비싸다는 걸 제외하면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타앙!!
나를 바라보고 있던 뱀의 오른쪽 눈에 탄환이 박혔다.
괜히 D급이 아니라는 듯 피해내려는 움직임은 보였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으니까.
"오라버니? 그거 몬스터용 탄환이에요?"
"응, D급 몬스터한테도 통할 만큼 고급품이지. 하연이가 그건 얘기 안 했나보다? 오빠 총포상에서 일했어."
"무효! 멀리서 총만 써서 잡는 건 의미 없잖아요! 탄환이 무한대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짧게 짧게 조사한다면서? 그리고 전투는 너희가 다 할 테니까 탄창 하나도 다 못 쓸 걸?"
붉어진 연하의 얼굴은 꽤 볼 만했다.
"알았어. 육탄전으로 잡으면 되잖아."
안 그래도, 자신의 눈을 터뜨린 존재가 누군지 알아챈 뱀 한 마리가 남은 한쪽 눈으로 나를 사납게 노려 보고 있었으니까.
타이밍을 맞춰서 옆으로 몸을 구르니 거대한 입이 내 바로 옆을 지나갔다.
입안에 내가 들어오지 않아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뱀의 꼬리에 단검을 강하게 박아 넣었다.
워낙 튼튼한 외피라서 어지간한 힘으로는 뚫리지 않아야 정상이었겠지만 검이 워낙 좋다 보니, 가볍게 뚫어낼 수 있었다.
꼬리를 공략하라,
자이언트 스네이크를 잡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화가 나서 날뛰는 놈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그 큰 몸으로 나를 향해 똬리라도 틀었다면, 내가 꼬리를 노리는 걸 알고 온 몸으로 꼬리를 감쌌다면 꽤 어려운 승부가 될 법도 했지만 아쉽게도 놈은 그렇게 지능이 높지 못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엑!!!
지속 된 공격으로 녀석의 꼬리가 너덜너덜해 지자, 이젠 가만히 있어도 공격을 성공시키질 못했다.
D급 게이트에서 나타나는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기본적으로 최상위 포식자니까, 자신의 밀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다.
바보같이 입을 열고 달려들어 무는 것 밖에 할 줄 모른다.
때문에 균형을 맞추는 꼬리에 큰 상처를 주면 쉽게 처리가 가능하다.
"이 정도면 됐지?"
녀석의 머리에 탄환을 박아 넣은 후 연하를 바라봤다.
"오빠, 그 검, 어디서 났어요?"
얘는 왜 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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