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대삼림4
* * *
"다들 준비는 했죠?"
"그래 다했다."
일주일 후에야 시작하기로 한 대삼림 조사는 이틀만에 계획을 바꿔서 오늘 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여유를 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급한 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계속 조사를 미루는 건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로 예상 날짜보다 5일이나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오래 떠나는 것도 아니고 잠깐 갔다 오는 것이니 만큼 갑자기 예정이 바뀌었다고 해도 크게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연하한테 내 동행을 허락받는데에는 D급 몬스터 하나를 혼자 쓰러뜨려야 하는 퀘스트가 존재했지만 하연이는 자기쪽에서 먼저 같이 가자고 하더라.
안 그래도 바쁜데,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같이 있고 싶다고,
나를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강함을 가지고 있기에 하는 소리겠지만, 연하에게 허락을 맡기 위한 나의 노력이 무색해 지는 기분이었다.
'이럴 거면 D급 몬스터 안 잡았지.'
가만히 있어도 가는 걸 왜 그렇게 고생했는지 모르겠다.
"오라버니는 힘 빡세게 주셨네요. 전투복 까지 입으시고."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거잖아. 아무리 동생들이 잘 나가는 각성자라고 해도 내 몸 하나는 간수할 수 있어야지."
월하가 각성자까지 고용하며 만들어준 전투복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도 검은색과 하얀색이 적절히 배치된 코트 같은 느낌이어서 보기에 불편하지도 않았고, 튼튼하면서도 질깃한 느낌은 없어서 움직이기 편했다.
게다가 수납공간도 따로 있어서 대충 허리에 걸치고 다녔던 권총과 단검을 안정적이게 휴대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처음 입었을 때 애들이 멋지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친한 걸 생각하면 남이 봐도 멋진 모양이고,
"그러면 슬슬 출발해요. 오늘은 첫날이기도 하고 오라버니도 길을 아셔야 하니까 천천히 걸어갈 건데, 내일부터는 오라버니랑 연하는 제가 들쳐메고 바로 이동할 거에요."
걸어서 30분씩 걸리는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할 수 있는 하연이니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조금 이상한 자세여도 하연이가 나랑 연하를 들고 이동하는 게 빠르겠지.
"길 외우면서 가셔야 해요.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혼자서 대삼림에서 도시까지 오셔야 하니까요."
"알았어 철저히 외우고 갈게."
두 사람이 같이 외우고 있으니까 한 놈은 제대로 외우겠지.
'그게 너야 임마.'
'둘 다 잘 외우면 좋지 뭐가 문제야.'
지금까지 기억만 계속 훑고 있던 든든한 지원군도 합류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이게 도시 밖이구나.'
얼마만에 나온 걸까. 솔에 가는 길은 관리가 되어 있어서 완전히 도시 밖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마목도 하나도 없었고 몬스터들도 길에 없고 멀찍히에 떨어져 있었으니까.
어린시절의 기억이 잘 나진 않았지만, 대삼림에 떨어져서 아무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그 때보다는 깨끗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이런 길에도 마목이 꽤 많이 박혀 있었으니까. 지금은 가끔 한 두개씩 나오는 거 볼고는 일부러 찾아보려고 해도 잘 안 보였다.
그나마도 하연이가 금방 배어 버려서 땅에 쓰러져 버렸지만
"근데 하연이 너는 권능이 뭐야?"
"오라버니, 각성자의 권능은 함부로 물어보는 게 아니랍니다. 약점이 될 수 있어요."
"우리 사이에 무슨 약점이냐."
하연이 좋으라고 한 얘기일텐데 당사자인 하연이가 반박하고 나섰다.
"대충 짐작은 하고 계시겠지만 제 권능은 베기에요."
"베기? 네가 검 들고 다니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검 같은게 필요한 수준은 아니니까요."
하긴 눈빛만으로 몬스터를 썰어버리는 네가 검이 왜 필요하겠어.
"정말 뛰어난 검이라면 네 권능과 시너지를 낼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검을 들고 제대로 배려 해봤자 검까지 같이 깨져 버릴거에요."
하연이가 정말 뛰어난 검, 이라고 말하는 순간 연하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 단검을 하연이가 휘두르면 버틸 수 있을까? 괜히 시험하려 해봤자 실패해서 깨져도 낭패고 성공해서 하연이가 뺏어 가는 것도 싫었기에 굳이 입을 열진 않았다.
"애초에 S급 각성자쯤 되면 무기가 필요 없어요. 무기를 드는 게 더 나을때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 보조의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니까요."
"그렇구나."
어차피 걸어가는 시간도 긴데 궁금한 것들 다 물어볼까?
"혹시 우리 나라 말고 다른 나라의 사정, 들어본 적 있어?"
"있어요. 몬스터 때문에 나라간의 연결이 끊기는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 있거든요."
"그 사람이 1년에 한 번 정도 솔에 방문해서 다른 나라의 사정들을 말해줘요. 그래봤자 동아시아 지역 한정이지만요. 그마저도 일본 같은 섬나라에 대한 정보는 알 수가 없거든요."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떠다닌다고 해서 방랑자라고도 불려요."
대단한 사람이네, 다른 사람이 시킨 것도 아닐텐데, 스스로 그런 고생을 자처하다니.
"혹시 중국은 어떻게 돌아간데? 우리랑 비슷하려나?"
"우리보다 상황이 심각해요. 우리나라만 해도 대산림이 국토 중앙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잖아요. 그런데 중국에는 대산림보다 훨씬 커다란 마목 밀집구역이 5개도 넘게 있어요. 사실상 나라 전체가 완전히 쪼개져 있는 거죠."
"마냥 심각한건 아니지, 중국엔 마교가 있으니까."
마교, 왠지 모르게 그 익숙한 단어에 몸이 살짝 떨렸다.
"그렇긴 하죠. 천마 그 인간이 워낙 강하니까요."
"천마... 가 누구야?"
"방랑자가 말하기를, 최소한 아시아권에선 가장 강한 인간이라고 하더라고요. 거짓말을 하는 양반은 아닌데, 대수림 사이즈에 마목밀집구역을 혼자서 밀어버렸다는 말을 들으면 그게 가능한 건가 싶어요."
그녀라면 가능할지도... 천마의 모든 능력을 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의 천마 조차 가벼운 주먹질로 1미터가 넘는 벽을 깨부술 수 있었다.
지금 S급 각성자에 다다른 하연이도 어릴 땐 그만한 위용을 보이지 못 했다는 걸 생각하면, 아마 천마가 아시아권에서 가장 인간이라는 건 틀림없는 진실일지도 모르지.
"다른 구역은 상당히 개판인데, 천마가 직접 다스리는 구역은 상황이 엄청 좋데요. 우리나라만한 땅을 안정화 시키고 지배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대단하네."
천마라는 사람, 내가 아는 1호랑 동일인물이겠지?
그렇게 대단한 천마조차 중국의 모든 땅을 안정화 시키지 못 하는 걸 보면, 대격변의 여파가 어지간히 큰 게 아니구나 싶었다.
되도록이면 평생 중국 지배만하다가 늙어 죽었으면 좋겠다. 1호랑 마주치기 싫으니까.
설마 자기가 한 말이 있는데 중국을 제패하기도 전에 나를 찾아오겠어? 천마라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암.
"천마가 우리나라 태생이면 얼마나 좋았을 까요. 대산림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리고 우리나라를 다 통일했을 텐데,"
우리 나라 태생 맞아. 걔 중원 정복한다고 중국으로 간거야.
"그러면 그냥 새로 나타나는 게이트만 제어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하연이의 눈빛이 상당히 아련해 보였다.
이런 표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한 번 떠볼까?
"하연이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거야?"
"당연하죠. 제가 오라버니 찾는 일에 전념하지 않고, 솔에서 각성자 생활을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인걸요. 막장이 된 생활을 빨리 끝내고,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요."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있어?"
내가 모르는 하연이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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