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 대삼림­5 (51/265)

〈 51화 〉 대삼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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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얘기를 하라고 하셔도 딱히 할 이야기가 없는걸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원하는 건 굳이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직접 실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지."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지만, 저는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도시를 안정화 시키고, 몬스터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노력하는 건, 제가 해야하는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하연이 대견한데?

이렇게 보면 정신은 제대로 박혀있는 애인거 같은데 왜 나만 관련되면 애가 미쳐버리는 지 모르겠다.

하연이가 너무 대견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생각이야. 아마 너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솔이든 우리 도시든 존재할 수 있는거겠지."

"당연하죠. 우리 하연언니가 만약 빌런이었으면, 솔이고 나발이고 없었을 거에요. 하연언니는 길드장님도 제어 못 하는 강자니까요."

"아니, 부끄럽게 왜 그래요."

진짜로 부끄러운 건지 내 시선을 피하면서도,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나의 손길은 피하지 않았다.

"칭찬해줄 때는 확실하게 칭찬해줘야지. 오빠가 아무것도 못 해줬는데 이렇게 바르게 자랐으니까."

"저는 어린애가 아니거든요?"

뭘 어린애가 아니야, 웃음 꾹 참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 구만.

"저희 언니가 멋지긴해요. 빌런 잡을 때도 늘 가장 앞에 서고, A급 게이트가 터질 때도 엄청 열심히라니까요? 그리고 경비대장직에 오른 후 부터는 도시 복지에도 많이 신경썼고요."

"오, 대단한데?"

귀가 서서히 붉어지는 하연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장난기가 샘솟았다. 이럴 때 아니면 내가 언제 하연이한테 장난을 쳐보겠어?

늘 치고 있긴 하지만.

"악담 같은 건 없어? 고위 각성자라고 뻗대거나, 갑질을 한다거나 하는 거."

"없어요. 불합리한 대우에 화내면, 상대 쪽에서 과하게 길 때도 있지만 워낙 성격이 착하신 분이라서 말투만 반말을 쓰지 절대로 갑질은 안 하세요. 능력을 남용을 하지도 않고, 저도 하는 횡령도 안 하시고."

뭔가 이상한 문장이 끼어든 것 같은데?

그나저나 연하녀석, 입꼬리가 아주 귀에 걸렸군, 얘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슬쩍 하연이를 바라보니 귀가 아주 새빨게 진 게 볼만했다.

"부하들한테도 얼마나 잘해주시는 데요. 저는 애들 갈구고, 제일 미루는 악덕 상사지만, 하연언니는 부하들한테도 친근하게 대하주시고! 서로 장난도 치고, 얼마나 화기애애했는데요."

"그만해 제발."

하연이가 절규하듯 소리쳤지만, 진짜 힘을 담아서 소리친 것도 아니고 부끄러움에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친 소리라서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더 없어?"

"많죠. 하연언니의 미담을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끝이 없는 걸요. 빌딩하나를 인질로 잡고 있던 빌런의 손에서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구해낸 것도 있고, 솔 내부에 배신자가 나왔을 때 즉시 처분 하던 언니의 모습은 얼마나 멋졌는데요."

"그만... 제발 그만해..."

"어릴 때도 참 착했어. 연고도 없는 나를 오빠라고 잘 따라주고, 솔직히 내가 얘보다 훨씬 약해서 조금 무시할 법도 했는데 음식도 양보하고 그랬다니까? 진짜 기특했지."

그렇게 시작된 칭찬릴레이는 대삼림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거의 20분을 얘기해도 전부 듣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하연이의 인생이 얼마나 의미있는 삶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듯 했다.

"이제 그만해요... 도착했어요..."

'하연이의 라이프는 이미 제로인 것 같군.'

완전히 도착한 건 아니었지만 커다란 숲이 시야를 가득 매웠다.

일반적인 숲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실 숲이라는 걸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나무가 갈색 기둥과 초록색 잎을 가지고 있으니 얼추 상상은 됐는데, 대삼림은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마목의 경우 기둥과 줄기가 회색이었기에 멀리서 보면 칙칙하다는 느낌 밖에 안 들었고, 마른 잎이 달려있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기에 전체적으로 횡 해 보였다.

눈이 좋은 편인 나로서는 대삼림 외곽에 지나다니는 몬스터까지 보일 정도로, 횡했다.

'아, 이제 안 보인다.'

목이 잘려서 피가 솟구치는 걸 보니 하연이가 정리했나보네.

"그런데, 사람의 흔적이 있다고 해서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에요? 저렇게 죽여버리면 사람이 죽였다는 게 너무 티나지 않아요?"

"그런가?"

하연이의 가벼운 말 이후 땅에 쓰러져 있던 몬스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연이의 강함에 어느정도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진짜 헛웃음 밖에 안나왔다. 눈빛만으로 물질을 소멸시키다니...

"앞으로는 몬스터를 죽이는 건 최대한 자제하도록 할게요. 아무리 흔적 없이 없애 버릴 수 있어도,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몬스터를 없애 버렸다간, 바로 눈치 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저희랑 꼭 붙어 다니셔야 해요."

연하가 내 오른쪽으로 팔짱을 껴왔다.

"맞아요. 절대 떨어지시면 안돼요."

이번엔 하연이가 왼쪽으로 팔짱을 껴왔다.

"이렇게까지 붙어 있을 필요가 있어? 나도 내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다니까?"

"아예 전투가 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니까요. 오라버니가 전투는 D급 각성자 수준은 되도, 은신까지 완벽하게 할 줄 아시는 건 아니잖아요?"

"너희는 가능해?"

나의 물음에 연하가 가슴을 피며 말했다.

"당연하죠. 마나를 이용하면 저급 몬스터 따위는 저희를 알아채지도 못할 거에요. 근데 오라버니가 너무 떨어져 계시면 마나 소모가 커지니까 이렇게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거고요."

"... 연하 너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연이는 S급 각성자인데 나 하나 정도를 커버 못해서 이렇게 붙어있어야 한다고?"

하연이가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런거 못해요! 저 실력 없어요."

하연이가 진짜 착해지긴 했나보다. 예전이라면 눈에 약간의 기세라도 담았을 텐데, 지금은 감정을 담아서 빤히 쳐다보는 것 외에는 크게 힘을 주고 있지 않은 모양.

"그러면 둘 중 한명만 붙어있으면 되잖아. 왜 둘 다 붙어있는 건데?"

하연이의 얼굴에 그러네? 하는 감정이 새겨지는 찰나에 연하가 선수를 쳤다.

"그거야, 둘 중 한 명만 붙어있으면 다른 한쪽이 질투해서 그렇죠. 그리고 저희는 사이좋은 남매인데 이렇게 붙어서 가도 괜찮지 않아요?"

연하의 빠른 대처 덕분인지 하연이는 딱히 연하를 나에게서 떨어뜨릴 생각을 하진 않는 것 같았다.

연하가 눈치가 빨라.

"그래도, 진짜 바쁜 순간이 오면 제가 오라버니를 안고 다닐 거에요. 저희 말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모습을 숨기고 추적해야 하니까요."

여동생 한테 안겨다니는 오빠라... 뭔가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지. 위험하다는 거 내가 때쓰면서 데려와달라고 한 거니까.

'근데 하연이는 자기가 먼저 같이 가자고 그랬잖아?'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위기상황이 찾아오면 순순히 안겨야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목들이 빽빽한 대수림의 앞까지 와있었다.

'꽤 빨리 왔네.'

양 옆에서 애들이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발걸음이 늦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발 걸음 속도에 완벽하게 맞춰주는 하연이와 연하 덕분에 큰 시간 지연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진짜 못 알아보네.'

바로 앞에서 지나가고 있는데도 몬스터들은 우리를 눈치 채지 못했다. 둘 다 은신 계열 능력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역시 각성자는 등급이 높은 게 제일인 걸까?

'나도 각성하고 싶다...'

오랫동안 힘에 대한 갈망은 잊고 살았는데 바로 옆에서 강자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니, 정말로 각성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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