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대삼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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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각성하면 어떻게 될까? 비각성자인 지금도 D급 몬스터를 가볍게 잡는 인재니까 C급 정도만 되도 A급 몬스터도 막 잡고 그럴까?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쌓아올린 강함은 마력이 없는 내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만들어낸 강함이다.
각성자를 상대로는 마력을 천천히 깍아내다가 마무리 일격을 넣고, 몬스터를 상대로는 지식을 기반으로 약점을 공략한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각성자의 마력을 깍아내고 몬스터의 외피를 뚫을 수 있는 단검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의 실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단검이 없었다면 이런 실력을 내지는 못 하겠지.
하연이나 연하까지 갈 것도 없이 평범한 A급 각성자만 해도 나와 같은 장비를 착용시키면 마력 없이 D급 몬스터를 잡는 것은 무리 없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지금 당장 내가 A급 각성자로 각성한다고 가정해도 내가 기존의 A급 각성자 보다 나은 점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각성한 권능에 익숙해 지기 전엔 당연히 기존의 각성자한테 밀릴 것이고 내 권능에 익숙해 진다고 해도 그냥 싸움을 좀 잘 하는 선에서 끝나겠지.
나는 각성자들이 다루는 마나에 대해선 한 없이 무지하니까.
"오라버니도 각성하고 싶으세요?"
옆에서 들리는 연하의 소리에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어?"
"갑자기 강해지고 싶다. 하는 눈빛을 하셔서요. 정확히는 저랑 언니가 부럽다는 눈빛이요."
얘 눈치 엄청 빠르네, 그걸 알아봤어?
아니면 내가 너무 티를 낸 건가? 잡생각만 3초는 하고 있던 것 같으니까.
"당연히 각성하고 싶지. D급 각성자 정도만 돼도 너희한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왼쪽에 있던 하연이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D급 각성자라니 전혀 상상이 안돼요."
"그렇지? 나 주제에 무슨 각성을 한다고."
"아니요. 고작 D급에서 끝나실 오라버니는 상상이 안된다고요. 오라버니의 재능이라면 F급으로 각성하셔도 금방 S급으로 올라오실 거에요."
확신에 가득 찬 채 나를 바라보는 하연이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각성을 하는 건 운이지만, 한 번 각성한 이후에 상위등급으로 올라오는 건 재능과 노력의 영역이에요. 저는 절대로 오라버니가 하위각성자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뭐가 잘났다고 저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걸까?
그리고 애초에 각성을 하지 못한다면 하연이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지.
"일단 각성을 한 다면 말이지."
너무 어둡게 말한 걸까? 한탄하는 듯한 내 말에 두 자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하지? 꽤 즐거웠던 분위기를 너무 단 번에 깨버린 것 같은데?
일단 텐션을 올려보자.
"괜찮아, 오빠는 각성 같은 거 안 해도 돼,"
텐션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도 분위기가 회복되지 않았다.
"대수림 너머에 있는 도시에 인공각성을 연구하는 기관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한 번 모셔가볼까요?"
나의 발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억지로 올려놨던 텐션이 뚝하고 떨어졌다.
진정하려고 애를 써봐도 심장은 쿵쿵 뛰고 표정은 저절로 굳어갔다.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내 어린 시절은 꿈 같은 것이 아니야. 실제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고 어릴 때 살았던 시설도 한반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겠지.
그리고 97호, 나에게 이름을 지어준 이수아도,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겠지.
살다 보면 다시 만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히 대삼림에 따라온 것도 혹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따라온 것이다.
내 본능에 이렇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존재는 그녀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까.
확실한 건 슬슬 대비를 해야 할 때가 됐다는 거다.
그녀와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 건지, 그녀의 능력에 어떻게 대항할지.
평생 이수아와 만나지 못해 내가 세운 모든 계획이 쓸모 없어지더라도, 반드시 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인공 각성 같은 건 관심 없어."
신경이 날카롭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투가 차갑게 나왔다.
텐션을 올릴 여유도 없었다.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이해해 주기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 내 감정이 컨트롤 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체인지 해줄까?'
'아냐 아직은 괜찮아.'
아직까지는 또 다른 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충분히 멀쩡하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그러면...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해 볼까요?"
"그러자."
조사라는 건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그냥 하연이의 능력으로 이리저리 마구 이동하면서 연하의 능력으로 주위를 탐색할 뿐이었다.
나는 도움을 주기 보다는 구경꾼으로 온 것이다 보니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심기가 그렇게 안 좋기도 했고.
그래도 하연이의 능력으로 이리저리 순간이동하고, 연하의 몸이 번쩍번쩍 빛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차차 풀려갔다.
나,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인게 아닐까?
"딱히 사람은 안 보이는데요?"
"그런데 몬스터가 잠잠해 졌다는 이유로 탐색을 온 거 아니야? 아까 부터 계속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서."
"대산림은 거대한 만큼 생태계가 잘 잡혀 있어요. 일시적인 변화도 늘 계산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요. 그런데 갑자기 몬스터들이 잠잠해 졌다면, 그건 반드시 사람의 손을 탔다는 이야기 밖에 안 돼요."
그런 건가?
애초에 대산림에 생태계가 존재할 거라는 생각자체를 안했다.
하긴, 게이트에서 방금 막 나온 몬스터도 아니고 대산림 안에서 얌전히 살아가는 몬스터들은, 동물이랑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일단 몬스터의 수는 확실하게 줄었어요. 제대로 분석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엄청난 강자에 의해서 쓸려 나간 모습은 아니네요."
"그런 것도 분석할 수 있어?"
"네, 보통 고위 각성자가 깽판을 부린 상황이면 일정 구역의 몬스터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외곽 생태계 자체가 엄청나게 흔들리거든요. 그런데 전체적인 개체수는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비율이 크게 깨진 건 아니거든요? 아직 분석이 확실히 끝난 건 아니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하위 피식자가 많이 죽은 걸로 추측돼요. 최상위 포식자에 위치한 몬스터들은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개체수 감소가 적어보이거든요."
연하가 굉장히 똑똑해 보이는 군!
억지로 텐션을 높여서 연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실히 마음이 진정 됐는지 평소의 텐션 정도는 회복한 것 같았다.
"대단한데?"
"이 정도는 상식인 걸요."
배시시 웃는 연하를 보니 날카로웠던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상식도 못 하는 바보라는 거야?"
"네!!"
"이게!!"
연하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하연이가 꿀밤이라도 때리려는 듯 주먹을 들었지만 연하는 금세 내 뒤로 숨어버렸다.
체구가 작은 게 이럴 땐 도움이 되는 건 어떻게 해도 각도가 나오지 않아.
"악!! 아프잖아요!"
"난 때린 적 없는데?"
설마 권능까지 써서 때린건가?
각성자들은 자매 싸움까지 대단하게 하는 구나.
"부우... 아무튼 당장은 더 조사한다고 해서 큰 소득을 얻을 것 같진 않아요. 대산림은 워낙 험한 곳이어서, 적당히 뒤처리만 해도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은 거의 남지 않거든요. 흔적을 따라서 조사하는 것 보단, 매일 달라지는 몬스터의 분포를 보고 추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게 돼?"
"네, 돼요. 저는 백연하니까요."
자존심 엄청난데?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저런 말도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래, 분석은 너한테 맡겨도 되는 거지? 언니는 아무것도 안하고 편하게 있는다?"
"네, 분석 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추가 업무에 대한 보상은 길드장한테 요구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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