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대삼림8
* * *
'이게 진짜 되네.'
무려 B급 각성자의 마나 보호막을 뚫어냈지만 결점이 많았다.
일단 지속시간이 극단적으로 짧았다. 내 몸의 모든 마나를 전부 사용했는데도 불과하고 단검의 끝에 마나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0.1초가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단검의 모든 마나를 전부 밀어낸 것도 아니라, 재대로 된 방어 능력은 뚫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분명 의미 있는 기술이지.'
아직은 아주 짧은 시간 밖에 사용하지 못 하는 데다가 단순히 단검의 끝부분만 강화할 수 있지만, 꾸준히 단련 하다보면 조금씩 사용시간을 늘려갈 수 있겠지.
물론 마나를 이용한 기술인 만큼, 아무리 노력해도 실질적인 위력은 향상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기술을 전투에 더 잘 녹여내기 위해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겠지.
"형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단검을 거한의 어깨에서 빼내자 상처가 순식간에 치료됐다. 가만보면 얘도 참 괴물이라니까.
"각성자였어?"
"그렇게 보여?"
거한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분명 마나는 하나도 안 느껴졌어. 틀림없이 비각성자인데..."
"이 검이 엄청 특별한 검이거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거한.
"확실히 단검의 끝 부분에서 강한 마력을 느끼긴 했는데, 아까 싸울 때는 그런 거 없었잖아."
"쿨타임이 좀 긴 기술이거든."
단검을 허리춤에 걸려있는 검집에 넣었다.
"형님은 이만 가본다. 비밀은 잘 지켜줄거라고 믿어."
아무리 빨라도 내일은 돼야 대삼림에 다시 들어갈 것이다.
그 전까지 최대한 이 기술에 익숙해 져야지.
***
밤새 연구한 결과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파악은 전부 끝났다.
솔직히 굉장히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일단 실전성이 없었다.
일단 쿨타임이 2시간이나 됐다. 몸 안의 모든 마나를 털어 넣어 사용하는 기술인 만큼 다시 사용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2시간은 너무 길었다.
그리고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단검 끝에 마나가 몰리는 시간이 0.1초도 안되는 데 그 짧은 시간에 상대의 몸에 단검을 꽂아 넣는 다는 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웠다.
가만히 있는 대상을 상대로는 할 만했다. 어제 내내 실험해 본 결과 4번 중에 4번 모두 정확한 타이밍에 공격을 성공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대상이 움직일 때였다.
대상의 표면에 부딪히는 순간에 마나를 흘려보내야 하는데 타이밍 맞추는 게 미치도록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마나를 넣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늦게 마나를 넣으면 보호막 정도는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물리력이 부족했다.
어제 밤새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연습해 봤지만 마지막 단 한 번만 성공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미친 난이도인지는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실상 권총을 쓰는 것의 하위호환이라는 것이다.
몬스터를 상대로는 총을 마음껏 쓸 수 있는데 단검으로 찌르는 것 보다 리치도 넓고 위력도 확실했다.
다수의 몬스터와 상대할 땐 탄환이 부족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단검으로 싸우는 것 보단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결국 사람을 상대할 때만 의미 있는 기술이라는 거지.'
그래도 계속 단련해 나가긴 할 거다. 아무리 실전성이 없어도 비장의 수 하나가 추가된 거니까.
"찾아냈다!!"
연하의 방 쪽에서 큰 비명이 울려퍼졌다. 어제부터 내내 조사해 온 정보를 분석하고 있던 것 같은데 이제야 전부 분석이 완료 된 모양이다.
'슬슬 아침 먹을 시간이 되기도 했으니 나가볼까?'
내 방을 나서서 주방으로 향하자 아이들 세 명이 아침을 하고 있었다.
기특하다면 기특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어른들이 챙겨줘야 할 나이인데 오히려 집안일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
여자애 두 명은 사현이한테 점수딴다고 자의로 하고 있는 거고 사현이도 월하의 명령이라고 즐겁게 따르고 있긴 해지만, 양심에 찔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일어나셨어요?"
"그래 일어났다."
숟가락이랑 젓가락을 놓고 있다보니 연하가 실실 웃으면서 식탁으로 와서 앉았다.
"결국 찾아낸 모양이다?"
"네, 쥐새끼 마냥 숨어있는 걸 찾아내느라 고생 좀 했어요. 언니한테도 연락 했으니까, 오늘이 지나기 전에 일을 끝낼 수 있을 거에요."
"그래 수고 많았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연하가 고생 많이 했지, A급 각성자라 그런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없었지만 일주일 내내 3시간도 안 자고 분석에만 매달렸으니까.
"일 끝나면 오빠 품에 안겨서 푹 잘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이거 어떡하죠? 기사님은 지금 밀린 약속이 굉장히 많으시거든요?"
"밀린 약속이라뇨?"
"제가 지금 가만히 참고 있는 건, 기사님과 저의 계약 때문이잖아요. 저는 계약을 잘 이행하고 있으니 기사님도 계약을 이행해 주셔야죠."
아, 벌써 때가 다가온건가...
"어차피 밤에 할 거잖아요? 낮에 잘게요 낮에."
"뭐, 그러면 상관 없고요."
싱긋하고 미소 지으며 내 옆에 앉는 월하가 무서워서 무심코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 걱정은 일단 미래의 나한테 넘기자...'
식사시간은 꽤 평화로웠다. 아리와 가연이가 사현이한테 밥을 못 먹여서 안달이 나 있긴 했지만 어른들은 평화롭게 밥을 먹었으니까.
하연이가 바쁜 업무 때문에 도시 중심부의 집으로 돌아간 후론,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 조용했다.
하연이와 월하는 나름 친해져서 둘이서 얘기를 잘 나누는 데 연하와 월하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대화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그 어떤 이야기도 오가지 않았다.
애들만 시끌시끌한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현관 문이 열렸다.
건물 안에 있는 만큼 현관문 밖도 실내였지만 초인종도 안 누르고 이 집에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언니 오셨어요?"
"어, 오늘 하루 휴가 내고 왔다. 명령체계 정립하는 것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돼서 앞으로는 자주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
"잘 됐네, 그러면 오늘 부터는 여기서 같이 지내는 거야?"
"네, 오라버니한테 받아야 할 것도 받아야 하고요."
하연이가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받아야 할 거라니?"
"오라버니가 기억을 잃으셨을 때, 무슨 말을 하셨는지 기억 안 나세요? 그 때는 오라버니한테 죄송해서 참았지만, 지금까지 저, 잘 참았잖아요."
업보 청산의 시간이구나...
"ㄱ... 그렇지..."
"오늘 밤엔 각오하세요."
"오라버니! 언니! 일단 제가 분석한 것 좀 들어주세요. 제가 얼마나 힘들게 조사한 건데!!"
연하가 하연이의 뜨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크게 소리쳤다.
아닌가? 그냥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리고 싶었을 뿐인가?
"아, 그래."
하연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연하를 바라봤다.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대삼림으로 숨어 들어간 집단인 것 같아요."
"대삼림으로 숨어들어갔다고? 대체 왜?"
"그건 저도 모르죠. 제가 알아낸 건 그놈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대삼림의 몬스터의 수를 줄였는지 밖에 없어요."
솔직히 몬스터의 수를 줄여내는 방법 따위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어떻게 알아냈는지 물어봐 달라고 간절히 바라보는 연하의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아냈는데?"
"대삼림에서 최하위 피식자가 누군지 아시죠?"
"엘레보어였나?"
사실상 멧돼지랑 크게 차이나지 않는 F급 몬스터, 질보단 양으로 승부 하는 놈들이라, 대규모 집단이 아닌 이상 다른 몬스터들의 먹잇감이 되는 녀석이었다.
"네, 지난 일주일 동안 저희가 조사한 구역 중 일부분에서 엘레보어의 개체수가 규칙적으로 줄어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지난 일주일동안 매일 다른 시간에 대삼림으로 갔잖아요?"
"응 그랬지."
당장 그저깨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가서 꽤 힘들었다.
"시간대별로 어디의 엘레보어가 줄어드는 걸 측정하고 분석한 결과 놈들이 엘레보어를 없애러 출발하는 곳을 알아냈어요!"
"뭔가 이상한데, 우리가 조사하고 있을 때도 녀석들이 엘레보어를 없애고 있었다면 당연히 네 능력에 걸렸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제가 사용한 능력은 마나를 탐지하는 거라서요. 마나가 없거나, 마나를 차단하는 모종의 수법이 있다면, 단순한 방법으로 찾아낼 수 없어요!"
네 능력의 약점을 뭐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
"아무튼, 위치는 찾아냈다는 거지?"
"네! 당장이라도 처들어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바로 가자."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하긴 S급 각성자와 A급 각성자가 있는데 누가 상대여도 도망은 칠 수 있겠지.
그런데 왤까?
내 심장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평범한 박동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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