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사이비1
* * *
이쯤에서 나는 과거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왜 나는 연하의 반대에도 대삼림에 오고자 했는가.
왜 내 본능은 대삼림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렇게 경종을 울려댔는가?
지금도 대삼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 거린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수차례 대삼림에 들어갔음에도 단 한 번의 위험도 없었다.
지금 당장 대삼림에 숨어든 사람들에게 찾아간다는 말을 듣고서도, 내 심장박동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주 조금 두근 거리긴 했지만, 처음 대삼림을 떠올리고 받은 긴장감에 비하면 없는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다른 곳에 숨어있어.'
연하가 찾아낸 집단은 나에게 긴장을 가져다 준 존재와는 다른 집단이다.
관련이 있다고 해도 미약한 수준이겠지.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위험과 맞닥뜨리지 않는 건 좋은 일이잖아?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내가 그 위험과 마주할지 말지는 나의 운명이 결정하겠지.
"그러면 바로 출발하는 거야?"
"그럴려고요. 애초에 길드장이 내린 지시는 대삼림에 생긴 이상현상을 조사하는 거지, 그 근원을 뿌리 뽑는 게 아니니까요. 녀석들이 도망친다고 해도, 크게 상관 없어요."
네 눈동자를 보면 도망도 못 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이동한다."
하연이가 연하와 나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이 내 몸을 휘감았고, 정신을 차리니 작은 동굴 앞에 있었다.
연하의 몸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역시, 마나를 차단하는 각성자가 있는 모양이에요. 솜씨가 제법 좋은데요? 강제로 마나를 차폐시켜놨는데, 어색함이 없어요."
"그냥 베어 버리면 되는 거지?"
우웅!
하연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공이 베어졌다.
허공이 갈라지는 모습은 나름의 장관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하얀실선이 생겨버린 모습이, 현실감 없었다.
계속 저 상태로 갈라져 있는 걸까? 싶을 때 베어진 허공 위로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쨍그랑
한 번 생긴 금은 빠르게 기세를 확산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창 처럼 깨져버렸다.
"ㅁ... 뭐야?!"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병인걸까? 총을 한 자루씩 든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주변 도시 경비대에서 나왔다. 내부를 조사할테니 비켜."
'이 목소리는 오랜만에 듣는데?'
하연이와 내가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의 어투 그대로였다. 기세를 가득 담은 하연이의 말에 두 남자 모두 주저 앉았다.
쓰러진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걸어가는 하연이의 뒤를 따라 들어가 보니 꽤 넓은 공간이 나왔다.
동굴 안치고는 굉장히 깔끔한 곳이었다. 조명도 잘 박혀있어서 시야가 방해되지도 않았고, 건물들도 많이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사람도 꽤 돌아다녔기에 작은 도시를 연상시켰다.
"누구냐?!"
우리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내부의 모든 인원이 우리를 경계했다.
대략 세어본 인물의 수는 20명 남짓 그렇게 큰 집단은 아니었다.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데? 너희는 누구인데 대삼림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우리는 위대한 여신님의 종들이다."
"뭐? 이것들 완전 또라이들 아냐."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위기감이 내 몸을 덮쳐 왔다.
"쏴! 죽여버려!"
탕!!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총을 겨누고 있던 남자의 총구에서 푸른 빛이 번쩍하고 빛났다.
"뭐야."
하연이를 향한 공격이었지만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각성자용 탄환은 아무리 높아봤자 A급이 최대였으니까. 인간의 화기로는 S급 각성자한테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그런데 저 놈들이 저걸 왜 가지고 있어?'
각성자용 탄환은 불법이다.
제작하는 것, 사용하는 것, 소유하는 것, 모든 것이 다 불법이다.
태양길드가 워낙 강력하게 제재하는 바람에 각성자용 탄환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이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마 단순히 고위 각성자가 무식한 방법으로 제작하는 게 아니라, 정통 방법으로 각성사용 탄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은 솔과 우리 도시를 다 합쳐도 10명이 되지 않겠지.
"할 얘기가 아주 많을 것 같은데?"
남자가 들고있던 총, 정확히 말하면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총이 잘려나갔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너희는 누구지? 이번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불편하게 말로 하는 협상은 끝낼 것이니 그렇게 알아두도록."
"우리는 위대한 여신님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종일 뿐이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크게 외쳤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B급은 넘어 보이는 고위 각성자같은데, 왜 저러는 걸까?
"그 여신이 누구지?"
"너희 같은 것들한테 말해줄 만큼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철퍽..
남자의 오른팔이 잘려서 바닥에 떨어졌다.
"고작 이 정도에 내가 굴할 것 같으냐?!"
"언니 제가 할게요."
남자의 몸이 하얀색으로 빛났다.
연하가 남자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의 표정을 보니,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보였다.
"어때 이제 말할 생각이 좀 들어?"
"고작 이 정도로 굴하지 않는다!!"
"진짜 미친놈인가? 그래 굳이 너한테 들을 필요는 없지."
동굴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몸이 햐얗게 빛났다.
1분 정도 지난 뒤 연하가 능력을 푼 듯 빛이 사라졌지만, 여신에 대해 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래도 세뇌능력에 당한 것 같은데요?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부 제 능력을 견뎌낸다는 건 말이 안돼요."
세뇌, 그 한 단어에 내 심장이 다시 뛰었다.
심장을 옥죄여 오는 압박감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셨다.
"오라버니? 괜찮은 거 맞으세요?"
"괜찮아. 진짜로... 일단, 세뇌 능력으로 지배당하고 있는 거면, 월하가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내부 시설 조사를 끝내고, 이사람들을 월하한테 데려가 보자."
"좋은 생각이에요."
연하가 가볍게 손바닥을 치자,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면, 아마 납치된 걸로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러 갈까요?"
연하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건물 하나가 통째로 박살 났다.
정확히 말하면 건물의 외벽만 부숴버렸는데. 짧은 시간동안 휘날리던 먼지가 사라지자, 마치 대장간처럼 생긴 곳에서 일하고 있는 5명 정도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 중에 한 명은 내가 정말로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사장님? 왜 여기계세요?"
대장간 안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쪽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사장님도 금방 나의 존재를 알아봤다.
"아... 그게, 납치 당했다. 간만에 휴양이나 즐기려고 가게 문을 닫는 순간에 그만..."
그러면 내가 하연이와 데이트하러 가기 전 부터 계속 이곳에 계셨다는 건가?
너무 오래 문을 닫아 놓으셨다고 느꼈을 때부터 깨달았어야 했는데.
내 입 안에서 까득하는 소리가 났다.
"저희 오라버니랑은 무슨 사이신가요?"
"총포상을 하나 운영했는데, 수현이가 직원이었지."
나 자신에게 화가나서 참을 수 없는 나와는 다르게 사장님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별일 없었어. 내가 가장 처음에 납치 되고 이 사람들이 나중에 들어왔는데, 무기를 만들거나 탄환을 만들었지."
"그 탄환이라는 게 혹시 각성자용 탄환인가요?"
사장님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자용 탄환 제작은 중죄라는 거, 설마 모르시진 않겠죠?"
"그렇다고 그냥 죽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탄환을 어딘가로 옮기는 걸 본 적은 없으니, 여기서 폐기하면 문제될 것도 없을 거야."
"... 일단 지금 당장은 넘어가 드리죠."
그 뒤로 연하의 열렬한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다들 어디서 왔냐느니, 어떻게 납치 되었냐느니, 다들 기술자였냐느니, 하는 질문이 계속되다가 그냥 스쳐 들을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나왔다.
"혹시 이들이 따르는 여신이라는 사람,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 있어요?"
"저..."
딱봐도 소심해 보이는 표정의 여성이 손을 들었다.
"제대로 들은 건 아닌데, 이수아 여신님이라고 불렀던 걸, 들은 것 같아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