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 사이비­3 (57/265)

〈 57화 〉 사이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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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에 당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납치 된 사람들 까지 모두 데려오는 데에는 불과 3분이 걸리지 않았다.

하연이가 손을 대면 두 세명씩은 한 번에 나를 수 있었으니까. 분명 빠른 걸음으로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는데 정신차리니 모든 인원이 월하네 건물 지하까지 옮겨져 있었다.

"...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일 잘하고 있다가 끌려온 월하는 굉장히 난처해 보이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하연이는 사람들을 옮기자마자 화 좀 식히겠다고 떠나 버려서, 나와 연하 둘이서 이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저희가 근래에 대삼림으로 조사를 나간 건 아시죠?"

"알죠. 서로 말은 잘 안 하지만 그래도 한 지붕 안에서 지내는 사이니까요."

"그 조사의 결과물입니다."

연하는 조곤조곤한 어투로 대삼림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까지 무엇을 알아냈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평소의 텐션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어색함을 느꼈다.

그 와중에 내가 세뇌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고의로 밝히지 않은건지, 아니면 단순하게 전달할 필요가 없는 정보라고 느꼈는지 까지는 내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네, 월하씨의 권능이 꼭 필요 합니다."

"제가 왜 연하씨를 도와드려야 하죠?"

월하가 팔짱을 딱 끼고 연하를 내려다 봤다.

'저렇게 보니까 진짜 여왕같네.'

눈매도 매서운 것이 왜 월하가 달빛 아래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지 잘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도시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사안이니까요."

"이 도시가 아무리 위험해 져도, 제 몸 하나는 무사히 간수할 수 있는데요?"

연하가 난처하게 웃었다.

저래 봬도 솔의 경비 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인데 거래처 사장을 대하는 신입사원 마냥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게 굉장히 안쓰러웠다.

"도와드릴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태양길드장이랑 합의해서 제가 만족할 만한 보상을 내 놓는다면, 군말 않고 도와드릴 수 있어요."

"무슨 보상을 원하시나요?"

"그건 연하씨가 생각해보셔야겠죠?"

싱긋 하고 웃는 월하의 모습이 정말로 얄미웠다.

'나라면 한 대 쳤다.'

'나는 못 치는데.'

"그러면, 일단 사람들을 옮겨 놓은 지하실은 계속 빌리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그건 괜찮아요. 어차피 남는 방이니까요. 대신 관리는 연하씨가 직접 하셔야 해요."

동굴 안에서 데려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각성자였다.

리더만 해도 B급 각성자였고 D급 각성자도 여럿 있었다.

지금은 기절 시켜 놓고 있어서 큰 문제가 없지만 깨어나면 어떤 난리를 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저는 이제 솔에 가서 길드장님한테 보고를 드려야 하는 데..."

"그러면 하연씨한테 부탁하시면 되겠네요."

"하연 언니가 지금 바쁘셔서요."

연하야 너 이 악무는 소리 들린다.

"경비대에 고작 빌런들 관리할 인원도 없나요? A급 각성자 한 명이면 충분하잖아요."

"월하씨도 아시다시피 이 도시가 솔에 비해서는 엄청 작은 도시잖아요? 그래서 경비대에 A급 각성자가 딱 한 명 밖에 없는 데 그분도 굉장히 바쁘시답니다."

말에 비꼼이 들어가는 데?

'팝콘 없냐? 재밌을 것 같은데?'

'있어도 못 먹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어떻게 한가롭게 팝콘을 뜯고 있어?'

"아시다시피 저도 바빠서요. 지금도 겨우 시간을 내고 있는 거에요. 어차피 이 도시에 저 빌런들을 관리 할 수 있는 사람은 4명밖에 없잖아요? 4명 다 바쁜 상태면 관리 못 하는 거죠."

"알았어요. 일단 하연 언니가 시간이 나실 때 까지 제가 관리하고 있을 게요."

'삐진 것 같은데?'

가시가 가득 담긴 말투였다.

"저는 지하실 가서 빌런들이나 감시하고 있을게요."

"그러면 저도 제 일을 마저 하러 가볼게요."

그렇게 두 사람 모두 떠나 버리고 집에는 나 밖에 남지 않았다.

애들은 한참 훈련 할 때고 하연이는 분노를 풀고 있다.

'뭐 하지?'

오랜만에 밖에 나갈까? 월하가 걱정하긴 하겠지만, 나가고 싶다고 말하면 내 보내 주긴 하겠지. 아마 몰래 경호원도 붙여줄거다.

'일단 사장님한테 찾아가 볼까?'

아까는 월하가 주도적으로 얘기해서 사장님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2층이었지?'

2층에 남는 방이 있다고 해서 직접 배웅했던 것이 기억났다.

굳이 지체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띵동

"누구쇼?"

초인종을 누르고 10초만에 안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수현이에요."

"아 너였냐?'

곧 바로 문이 열렸다.

시간적인 여유가 꽤 있었는데도 씼지는 않으셨는지 상당히 꾀죄죄한 꼴로 나를 반기셨다.

"마침 잘 됐다. 납치 됐던 사람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

사장님을 따라 거실 쪽으로 향하자 대삼림의 동굴에서 봤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방을 안내해드리자마자 바로 모이신 거에요?"

"그렇지, 나야, 너랑 아는 사이니까 걱정할게 없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너희나 광신자 놈들이나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이 사람들은 뉴스도 안 보고 살아요? 연하야 옆 도시 사람이라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 하연이는 이 도시의 경비대장이잖아요."

"경비 대장이라는 직위가 꼭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

굉장히 강한 인상을 가진 여자가 낮은 어투로 말을 걸었다.

"입막음을 위해 우리를 죄다 죽여버릴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어?!"

"ㅇ... 언니..."

말이 험악하시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동굴에 감금되어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걸 감안해도 그녀의 말투는 굉장히 험악했다.

"얘가 원래 말이 험해, 나쁜애는 아니니까, 수현이 네가 이해해라."

사장님이 굳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언급할 정도면 착한 사람이라는 의미겠지.

"일단 지금으로서는 걱정 말고 편히 쉬시라는 말 밖에 못 해드리겠네요. 건물 내에선 자유롭게 다니셔도 되니까, 푹 쉬고 계세요."

"따로 관리하는 인원은 없냐?"

"없을 거에요. 지금 납치범들도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연하... 그러니까, 여러분들께 존댓말을 쓰던 여자가 관리하고 있거든요."

순간 여자의 눈이 험악하게 빛났다.

천천히 일어나는 그녀의 눈빛엔 투기가 담겨있었다.

"아서라, 수현이 이놈, 괴물이야.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래봤자 비각성자 아니에요?"

나를 쓰러뜨리고 탈출할 속셈인가? 확실히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와 마력을 읽어보면 E급 각성자는 되어보이는 듯 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지금의 나는 C급 각성자 까지는 무난하게 때려 잡을 수 있었으니까.

"싸우면 네가 져."

사장님이 확신을 담은 어투로 여자를 노려보자, 여자는 혀를 한 번 차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죄송해요. 너무 오래 납치되어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네요."

"괜찮습니다."

여자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곧바로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이 빤히 보이는 여자네.'

"아까 건물내에선 자유롭게 이동해도 된다고 했죠?"

"네,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될 거에요. 출입이 통제되는 곳만 빼고요."

"여기에 싸울 수 있는 곳도 있어요? 한 동안 쌈박질도 못 하고 망치만 두들겨 대다 보니까, 좀이 쑤셔서 말이에요."

싸움을 못 한다고 좀이 쑤셔? 신기한 여자일세.

"싸울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싸울 사람이 없을걸요?"

"없기는 왜 없어요. 당신이 있잖아요. 안내해요. 지금 당장 힘을 쓰지 않으면 더 날카로워 질 것 같으니까."

사장님이 절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어지간하면 저런 표정 지으실 분이 아닌데, 이 여자가 날카로워 지면 어지간히 피곤한게 아닌 모양이다.

"알았어요. 따라와요."

"그러면 놀고 올게요."

적당히 비어있는 수련장으로 들어왔다. 대련용으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지만 E급 각성자랑 비각성자가 싸우는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몇살이에요?"

"25살이요."

"나는 27살 내가 누나니까 편하게 말한다?"

화끈하신 누님일세.

"일단 마나 안 쓰고 공격한다? 각성자의 육체는 비각성자보다 강하니까, 방심하다간 크게 다칠 거야."

그렇게 싸우고 싶었던 걸까? 말이 끝나자 마자 무서운 속도로 나에게 달려왔다.

힘조절을 하고 있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는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쾅!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잡아서 바닥에 매쳤다.

아무리 E급이라고 해도 각성자인데 고작 이 정도로 리타이어 되진 않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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