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사이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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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와 연하를 떠나보낸 뒤 2층으로 돌아갔다.
사장님의 방으로 직행하니 사장님과 여성 둘이 나를 기다리듯 앉아 있었다.
"일있다고 갔다면서 엄청 빨리 왔네?"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거든요. 근데 다른 분들은 안 가신데요?"
"어, 조금 더 쉬고 싶다더라."
"그러면 바로 이동하죠."
5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할 때 혜연씨가 내 옆으로 붙어 왔다.
"우리는 언제쯤 풀려날 수 있는 거야?"
"글쎄요?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수아가 곧 온다고 했으니까 직접 만나서 한 번 붙은 이후엔 아마도 돌아가실 수 있을 거에요."
"일주일이면 끝나겠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네가 알아야... 와아..."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식당까지 도착해 있었다.
애들이랑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몇 번 오지 않았던 식당인데 오랜만에 다시 봐도 꽤 멋들어진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맛있는 음식들과 그럭저럭 고급진 식기, 심지어 시간도 점심때가 아니라 사람들도 얼마 없어서 더 깔끔해 보였다.
"뭐야뭐야 시설 왜 이렇게 좋아? 여기 암흑가라고 하지 않았어?"
"암흑가라고 해서 혜연씨가 생각하는 것 처럼 막 어둡기만 한 곳은 아니에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은 채 음식을 마구 퍼 담고 있는 혜연을 보며 나도 접시 하나를 들고 이동했다.
"그래도 4명이라 편하네. 괜히 한 명 따로 앉지 않아도 되고."
"아까 까지는 엄청 날카로우시더니 왜 이렇게 텐션이 올라가셨어요?"
"한 번 싸우니까 기분이 확 풀리더라고."
참 단순한 사람이네.
하긴 아직도 기분이 다 안 풀려서 날카로운 상태로 있었으면 나까지 피곤해 졌을테니까 이편이 낫나.
"그쪽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ㄴ... 네? 저요?"
"네, 당신이요."
"최혜지라고 해요..."
"내 동생이지!"
언니 쪽이랑 다르게 엄청 소심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둘의 텐션을 더 해서 반으로 나누면 참 알맞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 한다는 게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자매가 참... 안 닮았네요."
"그런 소리 많이 들어. 내가 워낙 활달하잖니."
"오늘 처음 뵀는데요?"
"일일이 딴지 거는 거 아니다."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사이 사장님은 먹는데에만 집중하고 계셨다.
혜지씨도 꽤 빠른 속도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고 있는 걸 보면 납치 당했을 때 밥을 잘 못 먹었던 게 아닐까? 혜연씨도 나랑 대화하면서도 밥은 빠르게 먹고 있었고.
"밥 잘 못 먹고 다니셨어요? 다들 허겁지겁 드시네."
"아예 안 주진 않았는데, 내 위에는 꽤 부족했거든,"
"아아,"
"혜지야, 한 번 더 먹으러 가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접시 하나를 비운 남매는 바로 접시를 다시 채워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늘어 가는 접시에 원래 여자들이 이렇게 많이 먹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성인이 된 후 지금까지 같이 밥을 먹은 여자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당장 연하와 하연이도 꽤 많이 먹는 편이였고, 월하도 절대 적게 먹는 편이 아니었다.
통계적으로 따져보면 반 이상이 대식가인데 아무리 표본이 적다고 해도 합리적인 의심을 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으아, 잘 먹었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었네."
"근데, 납치 당하기 전엔 뭐하시는 분이셨어요?"
"대장장이, 각성자들이 쓰는 물건을 주로 만들어왔지."
"동생분도요?"
혜연씨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두 사람 모두 탄탄한 근육이 잡혀있는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수현이 너도 들어본 적 있을 텐데? 이바닥에선 나름 유명한 애들이었어."
"미녀 대장장이라고 이름 좀 날렸지!"
"미녀가 아니라 마녀겠지."
들어본 적이 있던가? 언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던 것 도 같긴한데...
한 문장에 들어간 의문문의 수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유명하신 분들이 납치 당했는데 어떤 소문도 안 났다는 게 신기한데요?"
"얘네가 장사를 그렇게 자주 하진 않거든, 주문제작만 받는데 지들이 하기 싫으면 연락 씹고 잠적타는 게 일상이야. 그러니까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지."
"실력이 뛰어나신 분들이신가 보네요?"
"당연하지! 당장 백하연이 오기 전에 경비대장이었던 사람이 쓴 무기도 우리가 만든거야."
"오, 대단하신데요?"
A급 각성자의 무기를 만들다니, 실력하나 만큼은 확실한 모양이다.
"나중에 네 무기도 하나 만들어줄게. 특별히 무료로 만들어줄테니까 감사하도록 해."
무기라... 그녀가 아무리 뛰어난 대장장이라고 해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단검 이상의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절하기는 아까운데...
"무기 말고 방패는 안 돼요? 되도록이면 각성자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걸로요."
"그게 말이 되냐. 비각성자가 어떻게 각성자의 공격을 막아?"
"아주 뛰어난 정도가 아니여도 괜찮아요. 한 두 번 정도만 제대로 막아낼 수 있으면 돼요."
"그 정도야 못 만들 건 없지만 무기 더 낫지 않아? 각성자랑 싸울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을 텐데, 그냥 몬스터한테 더 잘 먹히는 무기가 훨씬 좋잖아."
"제가 지금 쓰고 있는 무기가 너무 좋아서요. 혜연씨가 어떤 무기를 만드셔도 이것 보단 못할 것 같아요."
혜연씨의 얼굴이 우뚝 하고 굳었다.
질 낮은 도발이었지만 진심으로 화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얼마나 대단한 무기를 쓰시길래 그런 망발을 함부로 지껄여?"
"D급 몬스터의 외피 정도는 가볍게 꿰뚫을 수 있는 무기요."
"그 정도는 우리도 만들 ㅅ... 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어떻게 비각성자가 검만가지고 몬스터의 외피를 뚫어?"
"이게 있잖아요."
권총을 꺼내들었다. 단검을 꺼내 들 수도 있었지만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니까, 괜한 탐욕의 싹을 키우기는 싫었다.
"한 발 쏘는 데 수 십씩 깨지는 가성비 안 나오는 무기잖아."
"제 동생들이 좀 잘 나가서요. 탄환 값은 부담 안돼요."
"총알 다 쓰면 바로 무력화 되잖아."
"총알을 다 쓸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치루고 있으면 사실상 검은 전혀 도움이 안 돼요."
"근데 수현이 너 단검 하나 들고 다니지 않냐?"
"단검은 약한 애들 잡을 때 쓰는 거죠. 사장님"
혜연씨의 얼굴이 붉어지는 게 꽤 볼만했다.
"그래서 내가 만든 검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거지?"
"저는 검 같은 필요 없어요. 고성능 냉병기는 각성자들한테나 의미가 있지 저 같은 비각성자한테는 진짜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기껏 선물 받는 건데 일반 단검이랑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면 아깝잖아요."
저는, 에 악센트를 강하게 주고 말했다. 나름 부드러운 어투로 말한 것이 잘 통했는지 혜연씨의 얼굴에서 붉은 색이 빠져나갔다.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방금까지는 그렇게 화내고 있었으면서, 지금은 갑자기 온순해 졌다.
이 정도면 혜연씨도 나처럼 머릿속에 다른 인격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훅훅 변할 수가 있어.
"끝장나는 방패로 만들어 줄테니까, 받고 감동받아서 울지나 마."
"제가 애도 아니고 선물 받은 걸로 울지는 않거든요?"
"아무튼, 슬슬 다 먹은 것 같으니까 움직이자. 가만히 앉아만 있었더니 좀이 쑤시네."
얼마나 앉아있었다고 좀이 쑤셔, 5분먹고 1분 음식 퍼오는 루틴을 5번 반복했으면서...
"너 말고 다른 싸울만한 사람 없냐?"
시간이 널널하고 혜연씨랑 싸울만한 사람이라...
"암흑가 여왕의 경호대장을 맡으신 분이 있는데 아마 지금은 애들 훈련시키고 계실 거거든요? 가서 상대해 보시면 좋은 승부가 될 것도 같아요."
"그래? 당장 가자. 안내해!"
아마 좋은 승부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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