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 사이비­10 (64/265)

〈 64화 〉 사이비­10

* * *

어제 이수아가 우리 도시에 왔다고 한다.

정확히는 대삼림의 동굴로 찾아오는 걸 하연이와 길드장이 발견해서 한바탕 싸웠다는 모양이다.

"그런데 왠 일이야? 난 절대로 못 만나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월하가 있어서 안전하기도 하고, 오라버니도 보고 싶으시잖아요?"

"그렇지, 각성하기 전엔 진짜로 친했으니까."

괜히 능력만 사용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사이가 비틀릴 일도 없었을 텐데,

"진짜로 용서해 주실거에요?"

"어렸을 때 있던 일이니까. 정신 못 차리고 또 내 정신을 세뇌하려고 들면 어릴 적 친구고 뭐고 잊으려고 했는데 사과하면 용서해 주려고 했어."

"근데 이수아라는 여자, 오라버니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를지도 몰라요."

"왜?"

"자기를 여신이라고 지칭하던데요?"

"다른 도시에서 자신을 여신이라고 세뇌하고 다녔다면서? 그래서 그런거 아니야?"

"진심으로 자기가 여신이라고 생각 하는 것 같던데요?"

도대체 내가 시설을 탈출하고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직접 대화해보면 알게 되겠지."

"네, 거의 다 도착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공간이동 안 해? 요즘엔 어디 갈 때마다 공간이동으로 움직였잖아."

"걸어가야 오라버니랑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너 다운 이유다...

"안에 월하랑 이수아가 대기하고 있어요."

"그래, 갔다 온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감옥처럼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거실을 슬쩍 바라보자, 월하는 공책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들고 일을 하고 있었고, 이수아로 추정되는 여자는 입을 틀어 막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오랜 만이야."

"수현아!!!"

나에게 달려오는 이수아를 월하가 잡아챘다.

내 동체시력으로도 이수아가 다가오는 걸 간신히 눈치 챘을 정도였는데, 월하가 가볍게 잡아채는 걸 보면, 역시 S급은S급이라고 느꼇다.

"반경 1미터 내로 접근 금지."

내가 세뇌 된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월하의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 보였다.

"많이 달라졌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이수아도 엄청 달라졌다.

어릴 때의 얼굴형이 어느 정도 남아 있긴 했지만 지나가다가 마주쳐도 설마 걔인가? 라는 생각 정도만 들 정도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머리카락 정도는 각성한 이후에 밝은 갈색 계열로 바뀌었기에 익숙한 머리카락이었고, 눈동자 색도 내 기억과 동일했기에, 이수아라고 생각하고 보니, 이수아라고 느껴지긴 했다.

"어릴 때는 나보다도 작았던 것 같은데 많이 컸어."

"뭐래, 내가 더 컸었거든?"

"장난이지 장난."

그래도 발랄한 웃음 하나 만큼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기억 속의 이수아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한 동안 못 봤던 모습인데 이렇게 보니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 했다.

"요즘엔 어떻게 지네?"

"얘기 전해 들었을지 모르겠는데, 신도들이랑 성전을 준비하고 있어."

들었다. 독재자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킨다고 했었나?

어릴 땐 나에게 의지하던 애가, 도시의 지배자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니... 믿기진 않지만 아마 사실이겠지.

"여긴 네 신도도 없는데 꼭 신도라고 말해야 해?"

"신도 맞는 걸, 나는 여신이니까."

그리 말하는 이수아의 눈에는 일말의 의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물론 S급 각성자인 만큼 나를 속이려 들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겠지만, 굳이 이런 걸로 나를 속일 필요가 없잖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사이인데, 나는 여신이다. 하고 다가오는 것 보다는 나는 인간이야 하고 다가오는 게 훨씬 다가오기 편할텐데

'자기 자신한테 세뇌라도 건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이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여신? 어릴 땐 분명히 인간이었던 것 같은데?"

"당연하지, 수현이랑 같이 지냈을 땐 내가 엄청 약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내가 S급에 다다른 순간 느껴지더라, 내가 신이 되었구나, 하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희열만으로도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었다.

얘도 어딘가가 망가져 있다는 걸...

정상적인 애가 스스로 여신이라고 지칭할 리가 없잖아? 안 만나던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음... 그러면, 월하나 하연이... 그러니까 너랑 싸운 사람들도 신이라는 소리야?"

"당연하지,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 사실상 신이랑 다름 없다고."

월하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수아야, 너 혹시 너 스스로에게도 세뇌를 걸 수 있어?"

"당연하지, 자주 이용하는 방법인걸, 잘만 써먹으면 고통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내 감정도 조절할 수 있어."

어디서 부터 건드려야 할까? 고칠 수 있을까?

'아니, 굳이 고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아무리 어릴 적 친구라도 하더라도 지금에 있어선 남보다도 못한 사이다.

평범하게 대화하면서 좋은 방법이 생각난다면 도움을 줄 생각은 있지만, 특별한 노력을 덫 붙이고 싶진 않았다.

"그렇... 구나..."

"혹시 내가 불편해?"

"응?"

"어렸을 때 일은 내가 잘못했어.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움직였어. 어리다는 이유로 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너와 다시 친해질 기회를 주면 안될까?"

어릴 적의 일보다는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더 충격스러워서 당황한 거지만, 이 친구의 눈에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내가 자신을 피하는 것 처럼 보인 모양이다.

"일단 나한테 권능을 쓸 생각은 없는거지."

"당연하지!"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튀어나온 대답이긴 했지만, 고작 이 정도로 진위 여부를 확인 할 순 없다.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인데?"

"앞으로 너 스스로한테는 권능을 사용하지 마."

"왜?"

이수아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 봤다.

"세뇌에 후유증이 있는 걸 알고 있지?"

"후유증?"

"세뇌가 풀린다고 해서, 완벽하게 이전으로는 못 돌아 가잖아."

"아, 그렇지. 근데 그게 왜?"

"너한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안 같아서."

"나는 멀쩡해."

방금 전까지 자기를 여신이라고 지칭해놓고 이제 와서 멀쩡하다고 말하다니,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걸?

"내 권능 정도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어."

"그러면, 네가 여신이 아니라는 세뇌를 너한테 걸고 풀어봐."

"어? 왜?"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면서, 그러면 충분히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안돼, 나는 여신이라고, 잠시라도 내가 여신이 아니라고 믿고 있을 순 없어."

네가 뭘 모르는 구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수아의 모습에 가볍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너한테 권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전에는 다시 친하게 못지네."

"아니 이상한 거 아니라니까?"

너도 한국인인가 보구나, 아니라는 단어가 먼저 나오네.

"내가 찝찝해서 그래, 그리고 너 정도 되는 각성자면 굳이 권능에 의존하지 않아도 잘 참아 낼 수 있잖아."

"하지만, 더 편하게 버틸 수 있는 걸 굳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걸?"

"나는 타협 안 봐, 약속 받아 내기 전까진, 절대로 너 용서 안 해줘."

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이수아를 보고 있자면, 얘가 이미 엇나가도 함참 엇나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랑 다시 친해지기 싫어? 그냥 평생 남으로 살까?"

"아니야! 줄이도록 노력해 볼게. 그러니까 다시 친구 해줘."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는 이수아의 모습에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절대로 너 스스로에게 최면 걸지마, 한 번이라도 세뇌를 걸면 그 즉시 이 관계는 깨지는 거야."

"어, 고마워."

이수아가 내 손을 잡아왔다.

월하의 경계심이 엄청나게 커지는 게 눈에 보이는 듯 했지만, 뭐 어때 이 정도는 괜찮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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