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미르2
* * *
누군가가 자신에게 부탁을 할 때는 어떤 일인지 정확하게 알고 수락하도록 하자.
무지성으로 한다고 했다가는 내 꼴이 날 수도 있으니까.
쐐애애애애애애애액!!!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내 몸에 공기들이 부딪히면서 나는 파공성이 계속 내 귀를 자극했다.
분명 하연이가 마나로 내 몸을 보호 해 주고 있음에 분명한데도 귀가 아릴 정도로 큰 소리가 계속 귀에 맴돌았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어떻게든 주변 상황을 파악해 보려 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1초에서 수십 번씩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졌으니까.
비각성자인 나로서는 물리적으로 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는 아무리 정보를 수집해 봐야 올바른 이동 경로를 만들어 내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눈을 감았다.
들려오는 소리와 몸을 때리는 충격에 유의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하연이가 나를 들고 외뿔이를 유인하며, 길드장이 수월하게 딜을 넣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일이 다 끝나기 만을 기다리기엔 심심하잖아? 이런 거라고 하고 있어야지.
그어어어어어어어어!!!!!
외뿔이의 울음소리가 몇 번이고 터져 나왔다.
아파서 내는 울음 소리인지, 아니면 분노에 의한 울음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힘이 많이 빠졌구나.'
처음 들었던 울음소리에 비하면 많이 약해진 울음 소리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거의 30분째 길드장이 외뿔이에게 프리딜을 넣고 있으니까.
길드장이 일으킨 불꽃이 수백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던 나한테까지 후끈한 열기를 가지고 왔음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S급 몬스터인 외뿔이라도 슬슬 버티기 힘들 때가 됐지.
그르르르르르륵
내 몸을 때려대던 바람이 잠잠해졌다.
허공에 떠 있던 발이 바다에 닿았다.
슬며시 눈을 뜨니 온몸이 화상 자국으로 도배가 돼 있는 외뿔이가 숨을 몰아 쉬며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어?"
"외뿔이 상태를 보니까 금방 끝날 것 같아요. 이제 외뿔이가 육체를 다 재생할 때까지 기다리고 한번에 숨을 끊는 과정만 진행하면 돼요."
"굳이 재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괜히 시간을 주는 거 아니야?"
"외뿔이는 재생에 관련된 권능이 따로 없거든요. 어차피 재생도 마력을 소모하는 행위라서 상관없어요."
외뿔이는 가만히 서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나갔다.
재생을 하면서도 나에게서 눈을 때지 않는 모습은 꽤 소름돋는 모습이었다.
'도망갈 법도 한데...'
자신과 최소 동급 이상의 적이 두 명이나있고, 이미 많은 마력을 사용한 상태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다고 아직도 도망가지 않고 나만 노려보고 있는 걸까?
'짐작이 되는 게 있긴 해.'
슈트 안에서 고이 몸을 감추고 있는 나의 단검.
어릴 때 천마가 지나가면서 몬스터의 뿔을 잘라다가 만들었다고 했는데, 아마 이 단검이 외뿔이의 없어진 뿔로 만든 모양이다.
과하게 정확하게 잘려 있는 외뿔이의 뿔을 봤을 때 쯤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설마 진짜일 줄은 몰랐지.
'그런데 저렇게 커다란 뿔을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잘라서 단검으로 만든 거야?'
단검 모양으로 자르고 남은 부분은 또 어떻게 했고?
외뿔이의 남은 뿔 하나는 십미터가 훌쩍 넘어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단검 정도는 수백개는 만들어도 한참은 남을 것 같은데...
'자기가 가져갔나보지 뭐...'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몸을 전부 회복한 외뿔이가 하나밖에 없는 뿔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겉으로 봐도 명확하게 느껴지는 푸르른 마나에 하연이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저것만 막아 내면 아마 끝낼 수 있을 거에요."
"광선이라도 쏘려나?"
멋진 몸과 더불어 광선을 쏘아 낸다니, 역시 남자들의 로망 외뿔이!
"아마 그럴 것 같은데요?"
하연이 말의 끝나자마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광선이 발사됐다.
정확히 말하면 광선을 본 게 아니라 그 광선을 막고 있는 하연이의 뒷모습을 본 거지만.
나름 최후의 일격이라고 날린 걸텐데, 하연이도 나름 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꽤 수월하게 막혔다.
'그러고 보니, 주변 풍경이 꽤 익숙한데?'
연하와 하연이와 함께 대삼림을 돌아 다녔을 때 본적이 있는 곳이었다.
하연이가 실수로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태니 아마 외뿔이를 죽인 후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
외뿔이가 마지막 울음소리라도 내듯 구슬프게 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뿔이의 뒷목 쪽에 큰 자상이 생겼다.
하연이가 몇 번 더 권능을 발휘하자, 외뿔이 머리는 육체와의 이별을 선언 하게 되었다.
***
결국 우리가 미르에 도착한 것은 점심시간마저 지나버린 오후였다.
분명 아침 일찍 나온 것 같은데...
심지어 길드장은 외뿔이의 뒤처리를 한다고 같이 오지도 않았다.
간만에 횡재했다는 듯 입꼬리가 귀에 걸린 길드장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하루 종일 걸릴 걸 1시간으로 줄여줘서 감사하다면서 나를 껴안으려 하던걸 하연이가 말리느라 고생 좀 했지.
나를 껴안으려 하면서도 장난스런 표정으로 하연이를 계속 쳐다보던 걸 생각하면 아마 하연이를 놀리려고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몰래 들어가야 겠지?"
"다른 도시에 들어가는 건데 당연하죠. 당당히 들어가면 금세 총이 쏘아질 걸요? 물론 언니나 저나, 총알이 먹힐 수준은 뛰어넘긴 했지만 지금까지 세워놨던 전략이 전부 무용지물이 될거라고요."
"알았어.내가 몰라서 물어봤겠니? 그냥 확인 차원에서 물어 본거야."
하연이가 나와 연하를 잡고 점프했다.
미르의 성벽은 높았다. 성벽의 곡면으로 유추한 도시 자체의 크기는 솔은 커녕 우리 도시보다도 작아보였는데, 성벽만큼은 솔보다도 높았다.
성벽 위에는 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를 눈치 채진 못 한 모양이다.
'당연하지. 하연이가 옆에 있는데.'
A급 각성자라도 데려 오지 않는 이상 이렇게 당당히 성문을 통과한 다고 해도 알아차릴 방법은 없다.
어느 도시든 빈민가는 외곽에 있는 것이 정석인 듯, 성벽 너머로 보이는 건 빈민가였다.
'꽤 끔찍하네.'
우리 도시는 대격변 이전의 도시를 기반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빈민가라고 해도 무너진 건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빈민이라도 빈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게 보통이고, 아무리 끔찍한 일이 빈민가에서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건물에 가려져 있기에 겉으로 보기엔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월하가 암흑가를 완전히 관리 하고 있었기에, 빈민가의 사는 사람은 단지 가난할 뿐, 범죄에 쉽게 노출 되지 않았다.
물론 지나가면서 무서운 형님들한테 돈을 뜯기는 일이 가끔 있긴 하지만 진짜 무거운 범죄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애초에 빈 땅에서 지어진 도시인지, 아니면 있던 건물을 무너뜨리고 만들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성벽 너머의 빈민가는 수많은 판잣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굶어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이 한 눈에 담겼다.
건장한 남성한테 끌려가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관리 상태가 심각한데?"
"그러게요. 아무리 빈민가 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데요? 아무리 거지들만 사는 곳이라도 적당한 관리만 있어도 훨씬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곳인데..."
"일단 이수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약속보다 한참은 늦게 왔으니까, 걱정하고 있을지도 몰라."
이수아가 그려준 약도를 따라 이동했다.
하연이의 손에 들려 이동한 곳은 평범한 집이었다.
얼마나 평범했냐면 주택조차 아니라 아파트였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도 많이 사는,
"여기 맞아요?"
"몰라, 약도에는 여기라고 적혀 있었어."
덜컥
우리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왔어?"
헤어진지 얼마 안 됐음에도 이수아의 인상은 이전과 상당히 달랐다.
일단 안색 부터 상당히 쾡했으며 불안한듯 눈빛이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일단 들어와."
이수아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정리는 물론이고 청소까지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여신이라는 작자가 이런데서 살아도 되는 거에요?"
"여신은 원래 실체가 없으니까요. 신도들한테 육체를 내 보이면 안돼요. 성전이 끝나고 강림의식을 치루면 저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 거에요."
목소리가 완전 잠겨 있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
이수아가 나를 보고 말했다.
사실을 그대로 말할 필요는 없겠지?
"대삼림에서 일이 좀 생겨서."
"그렇구나, 나 너랑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나한테 능력 쓴 적 없다?"
칭찬해 달라는 듯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 잘 했어. 앞으로도 쓰면 안된다?"
"응!!"
웃으니까 안색이 훨씬 낫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