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 미르­3 (68/265)

〈 68화 〉 미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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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뭘 도와주면 돼?"

"본격적으로 성전이 벌어지기 전까진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대기하면 돼, 이미 준비는 거의 다 됐고, 그나마 변수가 있는 게 전투 부분이었는데, 하연씨가 왔으니까 쉽게 해결되겠지."

2대 1로 붙는 거니까 큰 변수는 없겠지.

'그런데 아까 외뿔이랑 붙은 것 처럼 한참 싸워야 하는 거 아니야?'

인간대 인간의 싸움은 몬스터와 인간의 싸움과 다른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하연이를 가볍게 바라봤다.

미리 상의 해놓은 신호를 보내자 하연이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진짜 반성했나 보내.'

이수아가 나를 세뇌하려고 들면, 그걸 풀 수 있는 사람은 월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월하는 바빠서 우리와 같이 미르에 오지 못했다.

때문에 내가 세뇌를 당했는지 안 됐는지 파악하는 건 전적으로 하연이가 판단할 영역이었다.

나는 내가 세뇌를 당했어도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할테고, 이수아가 작정하고 세뇌를 펼치면 연하의 수준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을 테니까.

하연이가 나에게 걸린 세뇌를 없애지는 못해도 세뇌가 됐는지 안 되었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기에 미리 신호를 정해 왔다.

"네 신도들이랑 얘기라도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 입장에선 갑자기 조력자랍시고 옆 도시의 사람들이 찾아온 거나 마찬가지인거잖아?"

"미리 말을 해 놨지, 계시를 내려 놨으니까, 아마 극진히 모실 거야."

"그러면 지금 바로 찾아가볼까?"

이수아의 눈이 땡글땡글 굴러갔다.

'신도들한테는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 다고 했지?'

왜 그렇게 여신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걸까?

"굳이 지금 바로 가야 해? 조금만 있다가 가자."

"너도 같이 갈 거 아니야? 어차피 몸만 숨기고 세뇌를 조금 섞으면 바로 앞에 있어도 못 알아차리게 할 수 있다면서? 같이 가서 우리만 네 신도들이랑 얘기 하면 되지."

"그래도... 너랑 좀 더 대화하고 싶단 말이야."

"가서도 몰래 대화할 수 있잖아."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 가면 사도 한 명이랑 신도 몇 명 정도 밖에 없을 거야. 대규모 인력이 모이면 아무래도 시선이 끌리니까."

"어떻게 지금까지 비밀을 유지했데?"

"내 권능 덕분이지, 작정하고 사용하면 이 도시의 지배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으니까. 사도들은 A급 각성자라서 움직이면 추적을 당할 여지가 있긴 한데, 지배자가 도시를 완전히 먹어 버린 이후엔 정말 나태해져서, 도시 관리를 부하들한테 맡겨버렸거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엔 내 권능으로 처리할 수 있어."

"신전에 가면 있다는 사도랑 신도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

"기도를 하고 있지."

"너한테 기도하는 거야?"

"당연하지! 기도는 굉장히 중요하니까."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소리쳤다.

"왜 중요한데?"

"신도들의 기도를 받으면 마나가 회복 되고 권능이 아주 조금씩 강화되는 걸."

얘가 스스로 한테 세뇌를 걸더니 플라시보 효과에 제대로 걸렸나 보다.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건데 어떻게 자신의 권능이 강해져?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이수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하연이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하연아? 진짜야?"

"진짜라니까? 내 말 못믿어?"

"진짜 맞아요. 도대체 무슨 원리로 동작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S급 각성자한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면 정말 미약하게 권능이 강해지더라고요. 크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지만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요. 차근차근 모아서 강해지다보면, 진짜 여신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진짜 여신이라...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걸까?

적어도 지금은 여신이 아니라는 뜻이잖아,

"아무튼 이동하자. 신도들한테 계시 내려놨다며? 기다리고 있겠다."

"알았어."

이수아가 볼을 크게 부풀렸다.

"이동 할 때는 정체를 가리고 움직일 거야? 아니면 하연씨랑 내 마나만 최소화 시켜 놓고 평범한 시민인척 이동할까?"

"후자가 낫지 않을까? 결국 성전때는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 할 꺼니까 이 도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게 좋잖아."

"좋아, 그러면 복장부터 미르에 맞게 바꿔야 겠네, 우리 도시에서 그렇게 멋진 제복을 입을 수 있는 건 지배자 휘하의 인물이거나 나처럼 잘 사는 사람들 밖에 없다고,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 하는 미르를 제대로 체험해 보고 싶다면, 그런 복장으로 밖으로 나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더니 안방으로 추정 되는 곳으로 들어가서 상당히 누더기스러운 옷들을 들고 나왔다.

"이건 미르에서도 최하층을 차지 하고 있는 빈민들이 입는 옷이야. 빈민들은 다 빈민가에서 사니까, 신전에 갈 때까지 입기엔 적당하지 않은 옷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꺼냈어?"

"그냥 보여주고 싶어서 꺼냈지! 꺄핫!"

얘가 진짜 미쳐가는 건가? 텐션이 왜이렇게 높아?

"옷은 많으니까, 방에 들어와서 골라, 일단 여자들부터 고를 테니까 수현이 너는 거실에서 기다리고있어."

대꾸를 할 여유도 없이 하연이와 연하의 팔목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맞는 옷은 있나?'

연하야 나름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평범한 여성체격이라서 괜찮을 것 같은데, 하연이는 키가 180근처일 정도로 장신에 몸매도 평범한 여성의 체격은 아니다.

평범한 여성복을 입히면 키 때문에 문제고 그렇다고 남성복을 입히자니 흉부가 문제가 된다고 할까?

어떻게 입고 나올지 굉장히 궁금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방의 문이 열렸다.

"오라버니? 저 어때요?"

연하는 입은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 예쁜데?"

가난하네 어쩌네 하더니 연하가 입은 옷은 상당히 예뻤다. 우리 도시의 평상복보다 살짝 더 두껍고 낡은 티가 나는 느낌의 옷이었는데, 입고 있는 사람이 연하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정도로 미르 답다. 라고 할 만한 복장은 아니었다.

'이수아는 우리 도시가 되게 잘 산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긴, 태양길드 산하에서 굉장히 안정화 되어 있으니, 여기 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긴 하지.

"그렇죠? 그런데 저보다는 언니가 훨씬 귀엽고 예쁘니까, 기대하셔도 좋을 거에요."

도대체 얼마나 잘 어울리기에 이렇게까지 기대를 넣는 걸까?

"언니 빨리 나와봐요!"

"가고 있어."

거실로 나온 하연이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하연이의 그 어떤 모습과도 달랐다.

내가 하연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연이는 대개 제복을 입고 있었다. 가끔 로브를 뒤집어 쓴 모습이나 잠옷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성격을 제외한 하연이의 외관은 기본적으로 아름답고 멋지다는 이미지에 치중되어 있었다.

잠옷을 입고 있을 때도 하연이의 체격 때문인지 귀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진 않았다.

"예쁘다고 할만 했네..."

평소랑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떻게 옷만 가지고 사람의 인상이 저렇게 바뀔 수 있는 걸까?

처음 봤을 때의 강렬한 아름다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귀엽고 예쁘기만한 소녀 하나가 눈 앞에 서 있었다.

"어때? 내 코디 끝내 주지? 옷만 바뀌어도 사람인상이 이렇게 바뀐다니까?"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나한테 세뇌라도 건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냥 강인해 보이는 체격을 숨기기 위해서 조금 펑퍼짐한 옷을 입힌 것 뿐인걸."

"고작 그정도로 이렇게까지 사람이 변한다고?"

"하연씨는 다른 사람들 앞에선 차가워도 네 앞에선 순둥 할 거 아니야. 그래서 귀엽고 예뻐보이는 거지, 평상시의 표정을 지으면 꽤 언 밸런스 할걸?"

"그래도 예쁠 것 같은데."

처음 입어보는 옷이 어색한건지, 아니면 계속되는 칭찬릴레이가 부끄러운 건지 하연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옷만 만지작 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워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줬다.

'그러고 보니, 하연이는 칭찬에 참 약하단 말이지.'

대삼림에 처음 갈때도 나랑 연하의 칭찬 공격에 맥을 못 추렸지.

성장기에 애정을 덜 받아서 생긴 성격인 걸까?

마음이 무거워 졌다.

'지금부터라도 애정을 주면 되지뭐.'

되도록이면 순수한 남매간의 애정으로.

"자, 이제 수현이 차례, 남자 옷이 그렇게 많진 않은데,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옷으로 찾아줄게."

이수아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는데 연하와 하연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응? 왜 따라오세요?"

"어차피, 오라버니가 갈아입을 때는 다 나갈거잖아요? 저희도 같이 골라보려고 들어왔죠."

이수아의 방은 상당히 난잡했다.

이미 연하와 하연이의 옷을 고르기 위해 한차례 뒤적거려서 그런지, 각종옷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이리와봐!"

애들의 손에 이끌려 이런저런 옷들을 몸에 대보여지기도 5분, 드디어 선택을 했는지 옷만 건네받고 거실로 내쫓겼다.

"다 입으면 노크해!"

옷을 갈아입는 데에는 그리 긴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복을 입고 다닌 지도 꽤 돼서 이젠 혼자서도 편하게 벗을 수 있었으니까.

이수아가 준 옷을 다 입고 방문을 두 번 두드렸다.

"어, 다 입었..."

이수아가 문을 여는 자세 그대로 굳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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