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 미르­4 (69/265)

〈 69화 〉 미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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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얜 또 왜 이래?'

문을 여는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이수아를 가볍게 건드렸다.

"갑자기 왜 그래?"

"아냐,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

옷이 잘 어울려 봤자지.

내가 나름 옷 빨을 받는 체격이긴한데 보자 마자 굳어 버릴 정도일리는 없잖아? 아마 장난 이겠지.

"저희도 보여줘요!"

이수아의 뒤에 있던 연하에 의해 문이 열렸다.

연하와 하연이의 반응은 이수아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 모두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어 버렸다.

"너희들 나 없는 동안 짰지? 어떻게 3명이 반응이 다 똑같냐?"

"그야 그만큼 잘 어울리니까 그렇지."

"맞아요! 진짜 잘 어울려요."

하연이의 말에 연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옷이 그렇게 예쁜가?'

방 한 구석에 배치되어 있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살펴봤다.

상의는 특이할 것 없는 푸른색 후드티였다.

표면이 살짝 거친감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티가 나진 않았다.

바지 또한 그렇게 특이할 것 없는 청바지였다. 후드티와 마찬가지로 표면이 살짝 거칠었지만, 마땅한 특이점은 없다고 해도 되겠지.

'별로 잘 어울리지도 않는...'

고개를 들어 올려 내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다른 애들처럼 무의식적으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개 잘 어울리는데?'

옷 자체는 평범한 옷이었고 내 외모도 평범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둘이 이뤄내는 시너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 외모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를 부각하는 듯 한 옷이었다.

약간의 시크함, 약간의 야생성, 그리고 무심한 듯 보이는 외관 왜 월하가 나를 보고 고양이 같다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세뇌 건거 아니야?'

어떻게 옷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사람이 바뀌어?

'얘는 각성 안 했어도 잘 살았겠네.'

어디가서 코디 했으면 때 돈을 벌었을 거다.

"어때? 진짜 잘 어울리지?"

"그러게, 진짜 잘 어울리네."

거울을 더 바라보고 있다간 근거 없는 자신감만 생길 것 같아서 동생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역시 귀여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대로 나가도 되는 거야? 제복을 입은 모습보다 더 시선을 끌 것 같은데?"

나나 연하는 그렇다고 치고, 하연이 한테 쏠릴 시선의 양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괜찮아, 중심구역의 잘 사는 동네가 아니면 미르의 사람들은 남들한테는 관심 잘 안 가지니까, 설령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몇 초 정도 바라보고 시선을 돌릴걸? 정 답이 없다고 생각하면 내가 가볍게 권능을 발휘해도 되고."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현지인의 말을 들어야지.

"그러면 바로 이동할까?"

"좋아."

이수아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오자마자 거대한 시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여긴 시장이 참 크네."

우리 도시에는 시장이 없다.

대격변 이전에 지어진 도시를 재활용하여 만든 도시다 보니, 중심부로 갈 수록 건물이 꽤 들어차 있어서 시장을 만들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건물을 부숴서 까지 만들만큼 시장의 가치가 큰 것도 아니지.'

가끔 노점상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상가들에서 소비활동을 진행했다.

암흑가엔 시장이 있다고 들었던 것도 같은데, 직접 가본 적은 없으니 잘은 모른다.

'어렸을 땐 시장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도시가 정립되기 이전에는 거대하게 장이 널리는 날이 많았다.

몬스터 사체도 팔고 맛난 것도 사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미르 사람들 대부분의 소비 활동을 책임지는 곳이니까. 당연히 넓을 수 밖에 없지."

"생각보다 평화적으로 돌아가나 보네? 나는 독재자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보상만 받고 독재자를 위해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런거 맞아. 미르의 모든 사람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전부 공무원들이거든, 도시에서 정해준 일을 하고 정해진 보상을 받는, 시장도 말이 시장이지, 아무리 많이 팔아도 자기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늘어나지 않아."

"그래서 시장 특유의 흥정이나 호객행위도 없던거구나?"

"그렇지, 시장에서 사는 모든 물건은 도시에서 정해준 가격대로 사고 팔아야 하니까, 흥정을 할 필요가 없지, 많이 팔아봤자 의미가 없으니까 호객행위도 안하고."

생기가 없는 시장이라,

'별로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네.'

"그래서, 신전은 어디야?"

"시장을 통해서 가야 하는데 길이 꽤 복잡하니까 잘 따라와야 한다?"

"알았어."

이수아를 따라 걸어가면서 주위를 계속 훑었다.

시장 안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노점상들이었고, 가끔 가다가 작은 건물 한 두 개가 있을 뿐이다.

"미행이 붙은 거 같은데요?"

"응, 나도 느끼고 있어."

아까부터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느껴졌다.

어쩌다가 미행을 당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연이와 연하 모두 제대로 마나를 숨기고 있었고, 나한테는 굳이 특이점이 없었으니까.

'아니면 단순히 외모 때문인가?'

이수아는 지금 상당히 수척해진 상태지만, 연하와 하연이의 외모는 발군이었으니까.

외모 하나만 보고 우발적인 미행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

"몰래 처리해 버릴까요?"

"일단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자."

이수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는 없었지만 알아서 잘 하겠지.

10분 가까이 걸어 가서야 이수아가 멈춰섰다.

사람 세 명 겨우 지나갈 법한 작은 골목, 시장을 빠져나왔는지 근처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누구야?"

하연이가 낮지만 매서운 목소리로 소리치자, 남자 둘, 여자 둘로 이루어진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형씨들, 우리를 따라와 줘야겠는데?"

"맞아, 얌전히 따라오라고."

뭐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어색했다.

말투자체는 그럴싸하게 연기하는 것 같은데 표정이 너무 간절했다.

뒤에 있는 여자들한테 협박이라도 당하나? 하는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니, 여자들도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사람한테 협박 당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저들의 눈엔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 대신에 다른 사람이 희생하는 것에 일말의 미안함도 가지지 않을 만큼 쓰레기들인가?'

"따라가면 뭘할 건데?"

"일단 따라오면 그 때가서 알려줄게."

일단 따라 가볼까? 따라간다고 해도 위험할 것 같지도 않고, 누구의 명령으로 길가던 사람들을 갑자기 끌어들이는 지에 대한 정보를 캐려면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공간이 필요하니까.

"그래, 안내해봐."

내가 말하기도 전에 하연이가 차갑게 말을 내 뱉었다.

분명 옷 때문에 귀여움 모드에 돌입한 하연이였지만 차가운 얼굴로 낮게 읍조리니, 하연이의 카리스마가 그대로 느껴졌다.

분명 마나 하나 내뿜지 않았지만, 남자들이 무심코 뒷걸음질 칠 정도 였으니, 그 압박감은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

"그래, 따라오라고."

남자들이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고, 여자들은 조심스럽게 우리들에게 다가와서 아주 작은 소리로 속닥였다.

"위험한 곳 가는 거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모기랑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이 작은 소리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 갔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빈민가 근처의 작은 판잣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판잣집 아래에 있는 비밀 공간이었다.

"따라와."

이 사람들의 기술력으로 만든 건지, 아니면 대격변 이전에 만들어진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하실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후우, 미안해, 다짜고짜 불러서, 놈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같은데?

헷갈리니까 사람들한테 별명을 지어주도록 하자. 키 큰 남성은 대머리, 키 작은 남성은 땅꼬마,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한 여자는 덩치, 키 작은 여자는... 키작녀로 하자.

"그래 대머리, 왜 우릴 부른거지?"

역시 하연이야, 나는 머릿속으로만 별명을 짓고 있는데 저렇게 당당하게 대머리라는 말을 입에 올리다니.

"... 당신네들, 이 동네 사람이 아니지?"

뭐야 시밤? 다른 도시에서 올 걸 알아차린 건가? 이수아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하고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내가 이 구역에서 지낸 것만 벌써 10년이 넘어가는데, 당신네들 같은 얼굴은 본 적 없거든."

"우연히 마주치지 않은 거 아냐?"

"형씨들 같은 외모의 사람이 설마 소문이 안났겠어?"

여기 사람들 남의 외모에 관심 없다며?!

"그래서, 우리는 왜 부른 거냐니까?"

"우리랑 같이 싸우자."

땅꼬마가 갑작스럽게 대화에 참여했다.

아까는 그렇게 어색하게 말하던 놈이, 지금은 굉장히 진지해 보였다.

"같이 싸우자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들의 눈빛에서 미르에 대한 불만을 읽었어. 다른 사람들은 축 늘어진 채 그저 위에서 명령을 내리는 대로 움직였는데, 너희는 달랐어."

뭐? 눈빛에서 불만을 읽어?

우리는 남들이랑 달라?

'도대체 뭘 보고...'

음, 아예 부정은 못하겠네. 확실히, 남들이랑 비교하면 티가 나긴 했지.

"너희가 누군데 갑자기 같이 싸워?"

"우리는 지금 미르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자를 몰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혁명단이야."

지배자를 몰아 낸다라... 이수아를 가만히 살펴보니 고개를 도리도리 하는 게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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