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미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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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의 반응을 보아 하니 이수아를 모시는 신도들이랑은 전혀 연관이 없는 단체인 모양이다.
"우리가 왜 너희의 일에 동참해야 하지?"
"너희도 지금의 미르가 싫잖아. 모두가 억압 받고 상층부에 강제된 생활을 하고 있어. 너희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우리랑 함께 지배자를 몰아내는 게 훨씬 좋지 않아?"
땅꼬마의 눈빛은 아주 강렬했다.
내가 미르의 사람이었다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아주 확고한 신념이 그 눈 안에 담겨 있었다.
"글쎄, 나는 이미 충분히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데? 일상에 불만이 좀 있다고 해서, 사회 전체를 바꾸어 버릴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애초에 어떻게 지배자를 몰아 낼 건데? 너희 혁명단에 S급 각성자라도 있어?"
"있어."
순간적인 정적이 찾아왔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세웠던 모든 계획이 무용지물이 된다.
이수아한테는 외세인 우리 보다는 혁명단이라는 더 안전한 선택지가 생기며, 지배자를 몰아낸 이후의 S급 각성자 전력도 3대 2까지 좁혀지니까.
'근데, 거짓말이잖아?'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서 그런가? 거짓말하는 것이 상당히 티났다. 눈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보였다.
'거짓말인 척을 하는 걸 수도 있나?'
나도 간혹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일부로 눈을 떠는 것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거짓말, 혁명단에 S급 각성자가 있었으면 진작 상황은 바뀌었겠지, 굳이 음지에서 활동하지 않고 양지에서 재대로 움직여도 되잖아. 지배자와 S급 각성자가 서로를 견제하면, 지금보다 운신의 폭이 훨씬 넓을 텐데."
"한 번에 처리해야만 해, 도망조차 갈 수 없이 확실하게 잡아서 처리해야 해."
"그게 1대1상황에서 가능해?"
"가능해. 혁명단의 S급 각성자는 일반적인 S급 각성자랑은 차원이 다른 존재거든."
이들은 이수아의 신도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비슷한 성향의 단체니까, 어느 정도 교류가 있을 법도 한데.
"누가 들으면 A급 각성자만 열 명씩 있는 대단한 단체로 들리겠어? 애초에 일반 각성자가 S급 각성자끼리의 싸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잔당 처리와 사회적 파장을 줄일 수 있지."
"근데, 지배자를 몰아낸다고 쳐도, 이후 관리는 어떻게 하게?"
이수아의 존재를 아는지 떠보는 것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만약 이수아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한가롭게 도시를 정비하고, 새로운 체계를 세운다는 말은 못할 테니까.
"말해줘도 되나?"
꽤 중요한 정보인지, 땅꼬마가 다른 일행들의 눈치를 물었다.
"괜찮을 것 같아"
"일단, 광신도 놈들을 처리해야지."
"광신도?"
"아마 정신계 S급 각성자한테 세뇌 당한 사람들 같은데, 그들도 우리랑 비슷한 일을 꾸미는 모양이야."
"그러면, 광신도라는 애들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절대 안돼, 상대를 사람들을 세뇌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않는 놈이야. 아마 그년이 도시를 지배했다간, 지금보다도 더 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라."
혁명단이라는 단체가 정보력이 대단한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수아의 신도들이 정보를 유출했다는 가정은 말이 안 됐다. 이런 작은 집단에게 유출 될 정보라면, 도시의 지배자 집단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도대체 뭐지?'
알 수 없는 것 뿐이었다.
"하연아 잠깐 나와 있어봐."
하연이를 밀어내고 땅꼬마의 앞에 섰다.
"일단 지금까지 네가 말한 내용의 모순점을 말해 볼게, 합리적인 대답을 내 놓지 못한다면, 혁명단에 들어가는 건 바로 없던 일이 되는거야."
"좋아."
"일단 첫 번째, 혁명단에 있는 S급 각성자가 그렇게 대단하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도 지배자를 제압할 수 있지 않아? 솔직히 그 각성자 한 명만 있으면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텐데, 왜 굳이 혁명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그 분은 혁명단에 가입하신지 얼마 안되셨어. 당장 지배자를 몰아낼 수는 있지만, 잔당까지 모두 처리를 할 수도 없고, 이후에 일어날 사회적 파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혁명단이 필요하지."
그건 더더욱 말이 안되는데? 그런 각성자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진작에 지배자의 목을 따버리고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 했겠지.
"두 번째, 너희 같은 작은 조직한테도 들킬 정도로 광신도들의 전력이 노출될 정도였다면, 왜 지금까지 지배자들은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지?"
"아까 말했던 S급 각성자 님이 알려주신 정보야."
진짜 있는 거 아니야?
이수아가 지배자의 눈을 피해 숨어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지배자의 주거지와 이수아의 주거지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혁명단의 S급이 이수아가 있던 곳 근처를 지나갔다면, 눈치 채지 못할 것도 없겠지.
'근데 그러면 이수아도 눈치를 챘어야 하잖아?'
도대체 뭐하는 집단이지? 사실 이수아가 우리를 두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사람들은 전부 미리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인 거지.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 각성자를 어떻게 믿지? 지배자를 몰아내고, 광신도들을 처리하고 나면, 결국 그 각성자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텐데, 그가 지배자처럼 독재자의 위치에 오르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너희도 만난 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면서."
"그건..."
"애초에 혁명단에 S급 각성자가 있다는 사실 부터 믿기 힘들어."
마음 같아서는 이수아한테 이 사람들을 세뇌시켜서 정보를 뽑아내고 싶었지만, 진짜로 혁명단 뒤에 S급 각성자가 있을 가능성이 0이 아니라서 함부로 행동할 순 없었다.
"그래도, 의도는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
역시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
"잠깐 우리끼리 이야기할 시간을 주겠어?"
"좋아!"
혁명단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여지를 보이는 내 모습에 가능성을 느꼈는지, 땅꼬마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러면 나가 있어줘."
"좋아, 얘기 다 끝나면 불러."
혁명단의 인원들이 모두 나갔다.
"수아야, 너희 신도들한테 찾아가는 거, 아주 바쁜 일은 아니지?"
"응, 지배자랑 싸울 때만 도움을 주는 걸로도 충분해."
"혁명단에 들어가시려고요?"
"응, 솔직히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아. 만약 놈들이 말한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면, 계획을 통째로 바꿔 버려야 하니까, 직접 들어가서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저는 오라버니의 말에 동의해요."
"저도요."
"나도 괜찮아."
일단 만장일치인가?
"그런데 저 놈들 말이 진짜면, 하연이랑 수아 정체도 바로 밝혀진다는 소리거든?"
"확실히 그런 위험이 있겠네요... 아무리 하연언니랑 수아씨가 기를 숨기고 있어도 지근거리에 있으면 들킬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강해봤자, 같은 S급 각성자 일텐데, 둘이서 힘을 합치면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러면 혁명단에 들어가자고 얘기하러 가자."
"좋아요."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타고 올라갔다.
"의견 교환은 충분히 했어?"
"그래, 혁명단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어. 우리도 지배자가 꼬라지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그럴 줄 알았어."
땅꼬마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볍게 쥐고 손을 흔들었다.
"지금부터 혁명단의 본거지로 이동할 건데, 일반 혁명단원들은 정보 보안을 위해서 본거지 밖으로 나설 수 없어."
"당연한 일이지."
정보란 건 아주 중요하니까, 이수아 처럼 세뇌로 관리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정보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외부와의 단절 뿐이겠지.
"대신, 간부 한 명을 포함한 4인 1조로 외부로 나갈 수 있으니까, 정 나가고 싶으면 나한테 부탁해."
"네가 간부야?"
"이래 봬도 창립 멤버라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점점 빈민가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끔찍하네.'
이곳이 진짜 사람 사는 곳이 맞는 걸까?
"빈민가는 처음 와보나 보네?"
"응..."
"이 사람들도 이 사람들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을 터득했으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우리가 지배자를 몰아내면, 이 사람들도 평범한 인생을 살게 해줄 수 있어."
글쎄 과연 그럴까? 한 도시의 경제를 살린 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텐데.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8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니 시선을 끌었던 걸까? 옷도 빈민의 옷은 아니었기에, 힘 좀 쓸 것 같은 형님들의 눈에 띄여 보였다.
"이봐 형씨들, 잘 사는 양반 같은데 여긴 뭐하러 온겨?"
"불만 있어?"
덩치가 앞으로 나섰다.
여자인데도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하다 보니, 형님들이 뒤로 움찔 하는 것이 보였다.
"여길 오갈 때마다 이렇게 시비가 걸리는 거야?"
"평소에는 빈민가 지나갈때 환복을 하고 지나가지, 오늘은 너희랑 같이 가느라 환복을 못한 것 뿐이야."
"다 처리했어."
대화 하는 데 10초도 안 걸렸을 텐데, 어느새 형님들은 떡이 되어서 쓰러져 있었다.
'존나 대단한 여자네.'
까불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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