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혁명단6
* * *
"뭘 봐!?"
소녀의 목소리는 생긴 것 처럼 굉장히 어리고 귀여웠다.
'에이, 설마... 아니지?'
애써 부정해 봤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능성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없던 사람이 갑자기 생겨날 일도 없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일도 없으니까.
'둘이 동일인물이라고?'
엄청 난 갭차이에 정신이 아찔해 졌다.
"시간 되게 잘 끄네. 인정해 줄게. 넌 진짜 센 거 같아."
아까처럼 큰 상태에서 말했으면 엄청 위엄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 처럼 작아진 상태에서 말하니 조카랑 놀아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지마."
낮게 그르렁 대는 데 여전히 귀여운 모습이었다.
"능력의 부작용이에요?"
부작용이 있는 능력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부작용이 있을 정도의 능력이었다면 유지 시간이 더 길었겠지.'
"나도 부작용이면 좋겠다."
"아, 원래 키가 그 정도시구나."
"굳이 말할 필요 없잖아."
키는 작고 목소리도 귀엽고 생긴것도 귀여운 사람이 위엄 있는 말투로 입을 여니 어마어마한 갭이 느껴졌다.
분명 자기딴에는 익숙한 어투로 이야기를 한 것일텐데 일부로 위엄있는 말투를 연기하는 어린이 같았다.
"금방 다시 돌아갈 수 있어, 능력을 발동할 마나가 부족해서 이러고 있는 거지 유지하는 건 마나 재생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거든."
"아, 네."
일단 대화 주제를 바꿔보자. 이 주제로 계속 이야기 하다가는 귀엽다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나와버릴 것 같아.
"아무튼 제가 이겼으니까 제 지시에 따라 주시는거죠?"
"넌 양심도 없어?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틀린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공격에 직격당한건 마지막에 땅바닥을 쓸듯 움직인 발에 맞은 것 밖에 없었지만 그것 만으로도 온몸이 계속 떨릴 정도로 아팠으니까.
이런 상태라면 아무리 마나가 부족해도 C급 씩이나 되는 각성자를 잡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내기 내용이 능력 풀릴 때까지 버티는 거 였잖아요."
"괜히 장난 친다고 안 끝내서."
그녀를 혀를 차며 말했다.
"한 번만 잡으면 끝나는 건데 쥐새끼 처럼 잘만 돌아다니더라. 보기에 기이할 정도로 몸이 꺾이던데?"
"그렇게 움직이면 몸 겁나 아파요."
"나한테 부딪히면 더 아팠을 텐데,"
그것도 맞지. 그녀가 힘조절을 전혀 안 한다는 가정하에 내가 그녀에게 정통으로 부딪혔으면 아마 펑하고 터져버렸을 테니까.
"근데 어차피 지금은 교육이고 뭐고 못 받을 것 같은데?"
"그러게요."
E급 각성자 하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쓰러져 이었으니까.
'20대 1을 이긴거네.'
큰 감흥이 들진 않았다. 그렇게 강한 상대들도 아니었으니까.
"싸움 잘 봤어. 멋지더라."
계속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식스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보기에 너는 괴물이 맞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도 괴물이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삼진 괴물로 승인 되는 건가?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여자의 키가 다시 커졌다.
싸울 때는 큰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옷도 같이 커지는 걸 보면 꽤 편리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시야가 높으니 편하군."
"윽."
여자가 내 머리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기댔다.
솔직히 꽤 무거웠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기에 가만이 있었다.
"교관은 이름이 뭐지?"
"이수헌이라고 해요. 댁은요?"
"레아라고 불러."
일단 본명은 아니겠네. 어떻게 사람 이름이 레아야. 누가 봐도 가명이잖아.
"레아씨 부하들 깨어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강하게 키운 애들이니까 점심시간 지나면 다 일어날 것 같아."
그래도 오전 시간이 텅 비네.
"내가 달리 할 일은 없어?"
"다른 곳 어떻게 수련하는지 구경하러 갈래?"
"좋지."
하연이랑 연하가 어떻게 사람들을 훈련하는 지 궁금해졌다.
특히 하연이는 경비 대장인 만큼 사람들을 다루는 엄청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식스를 따라서 하연이가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레아씨도 달리 할게 없었는지 우리를 따라왔다.
"방해 안되게 조용히 들어가자."
사람용 작은 문을 열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들어온 걸 바로 눈치 챘겠지만 하연이는 굳이 내색하지 않은 채 교육을 계속 진행했다.
"그런 정신 머리로 어떻게 혁명을 성공시키겠다는거지."
""죄송합니다!!!!""
"좌로 굴러."
'겁나 무섭네.'
진지를 한 아름 안고 사람들을 교육하고 있는데 하연이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가 더해져서 내가 교육 받는 입장이 아닌데도 몸이 오싹해졌다.
'그래도 가르치는 건 잘하나보네.'
기준이 너무 높아서 과하게 몰아붙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배우기 적절한 수준으로 잘 가르쳐 주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나태해지는 순간 엄청나게 무서워지긴하는데, 저 정도면 선방한거지.
"다른 사람 구경갈까?"
"그래."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연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조심히 문을 열고 들여다 보니 사람들이 전부 머리를 박고 있었다.
"본 조교는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긴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사람들이 머리를 박고있어?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여러분이 자꾸 제 말을 안 들으시면 저는 악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세히 보니 몇몇 사람들의 옷에 발자국 같은 것이 남아있는 게 아마 연하한테 반항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연이 때보다도 훨씬 더 살벌한 분위기에 조심히 문을 닫고 다시 나왔다.
'나는 저렇게 무섭게 하지 말아야지.'
***
"앉아, 일어나. 앉아."
내 말 한마디에 한마디에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나길 반복했다. 나름 말을 잘 듣는 모양새였지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는데 일부러 미적거리는 거잖아.'
얼차려라고 무시하고 대충 움직이는 거 같은데 이런 세세한 곳에서 기강이 잡혀 있지 않으면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법이다.
"형ㅆ... 교관님!!"
사석도 아니고 누가 훈련 받을 때 교관을 형씨같은 호칭으로 불러?
사납게 한 번 노려봐 주니 금방 알맞은 단어를 내뱉었다.
"저희는 싸움을 배우고 싶은 거지 얼차려나 받고 싶은 게 아닙니다!"
"맞습니다!"
한 놈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너도 나도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너희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얼차려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
"솔직히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놈들 당당한 거 보소.
상상을 초월한 당당함에 이것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좋아 내가 내는 시험을 바로 통과한다면 군말 없이 본 교육을 진행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반드시 통과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긴 한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5열 종대."
잠시 동안 내 눈치를 보더니 잠시의 소란이 지난 후 5열 종대로 섰다.
"너 중심으로 거리 벌려."
오른쪽 앞에 있던 머저리를 가르키며 말하자 머저리들이 거리를 벌렸다.
간격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른들이라 그런지 사각형으로는 보이게끔 섰다.
"지금 이런 마음가짐으로 싸움을 배우겠다는 거야?"
"저희가 뭐 잘 못한 거 있습니까?"
"잘못한 거? 아주 많지. 너희들 정신 상태가 너무 해이 해, 10살 먹은 어린애들을 데려놔도 너희 보단 잘하겠다. 내가 어려운 거 시켰어? 고작 줄맞추고 거리 벌리라고 시켰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슬슬 불만이 쌓이는 지 나를 향한 눈빛들이 날카로워져 갔다.
"내가 화난 이유는 너희가 못해서가 아니야, 너희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아서지. 너희들이 내 말에 집중하고 제대로 움직였으면 방금 걸린 시간에 절반도 걸리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늦어진 건 너희들의 정신머리가 빠져 있기 때문이야."
"저희는 싸움을 배우려고 여기 서있는 겁니다. 정신 교육 같은 걸 받으려고 서 있는 게..."
"너희는 싸움이 아니면 진심이 되지 못해? 집중력이 딸려서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면 집중을 못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묵직한 정적이 방 안에 감돌았다.
"우리는 혁명단이야. 현재 기득권 층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반란군이라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도 모자란 판국에 너희가 싸움을 하고 싶다고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변명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나?"
계속 나에게 말대꾸를 한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싸움이 아니라 정보 전달을 위해 달려야 할 때 진심으로 달리지 않을 거야?"
"아닙니다!"
"지금 너희 꼴을 보고 있으면 그럴 것 같아. 싸움에 미쳐서 다른 것들은 중요하게 보지 않을 것 같다고, 일단 너희 정신 머리를 고치는 게 먼저야. 전투를 알려 주는 건 그 이후의 일이고."
다시끔 침묵이 감돌았다.
"대답 안 해?"
"알겠습니다!"
좋아 이제야 어느 정도 군기가 잡힌 것 같네.
가볍게 시선을 돌려보니 식스와 레아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