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혁명단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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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울했다. 내가 연하랑 하연이 처럼 애들 군기를 잡은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이들한테 필요한 걸 말해 줬을 뿐인데 저런 시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정말 억울했다.
정말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겹쳐서 사용할 정도로 내가 억울하다는 걸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젠 좀 빠릿 해졌네.'
내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걸까? 아니면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빨리 싸움을 배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걸까, 확실히 이전보다는 집중해서 움직이는 게 눈에 보였다.
'이렇게 굴리면 그래도 내일 부터는 제대로 진도를 나갈 수 있겠네.'
나도 이렇게 말로 굴리는 것 보단 치고박고 싸우면서 몸 쓰는 게 좋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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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가르치고 개인 수련시간도 갖고 하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일주일 정도는 진짜 훅하고 지나가 버린 거 같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면 길드장이 걱정을 하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특수한 방법으로 하연이랑 연락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삼림을 지날정도로 먼 거리에서도 연락이 될 정도면 아주 대단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거겠지.
'인줄 알았는데, 사실 그냥 텔레포트를 왔다갔다 한거였답니다.'
이수아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신도들과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쪽 신도 입장에선 어이가 없겠네.'
지원군이 온다고 들었는데 정작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시간만 흐른거니까.
지난 일주일은 정말로 평화로웠다. 미르가 아무리 지배자에 의해 통제당하고 억압당하는 도시라곤 하지만 내가 하는 거라곤 혁명단에서 머저리들을 가르치는 것 밖에 없으니 실질적인 위협은 하나도 당하지 않은 채 편하게 지냈다.
"식스, 그래도 슬슬 계획을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검성님이 있으시면 언제 거사를 치르든 큰 문제 없잖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단순히 지배자를 잡아낸다고 끝이 아니잖아. 사후 처리를 확실하게 하려면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그래."
"너무 완벽한 걸 추구하는 거 아니야? 일단 지배자를 몰아내고 혁명단이 확실히 중심을 잡은 이후에 일처리를 시작해도 그렇게 늦진 않을 것 같은데."
"미르의 지배자는 단 한 명이지만 권력자들은 여러 명이니까 도망가는 건 상관없는 데 괜히 시민들을 선동하거나 거짓 정보를 뿌리면 일처리가 곤란해져."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외부인인 내가 더 신경을 쓸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나저나 너희 덕분에 혁명단원들의 평균 전투력이 많이 올라갔어, 도대체 너희 같은 인재들이 어디에 숨어있던 거야?"
"숨어있긴, 그냥 평범하게 산 거지. 내가 얼마나 강하든 겉으로 들어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이래서 내가 외부 시찰을 못 끊는 단 말이지? 언제 어떤 인재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자만심에 가득찬 식스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식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찌른 후 밀었다.
"우악! 뭐 해?"
"난 이만 머저리들 교육하러 간다."
"아, 맞다. 너희 쪽에 신입 한 명 들어갔을 거거든? 가서 확인해 봐."
'신입이라, 잘 섞일 수 있으려나?'
머저리들도 일주일 동안 꽤 많이 바뀌었다.
뱡향성 없이 싸움만 원하던 놈들이 제대로 지배자를 몰아내겠다는 방향성이 생겼다.
'문제는 정작 내가 알려줄게 없다는 거지.'
내 싸움의 근본은 어렸을 때 배웠던 체술들이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무기인 단검을 비롯해서, 장검, 창, 방패, 맨몸 무술까지 배운 것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실전을 경험하면서 내 전투 방식은 내가 배웠던 체술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달라진 전투 방식 그대로 알려줘도 괜찮지 않냐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내 싸움 방식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다. 일단 나 정도 되는 신체능력이 뒷받침 되어주어야 하며 내 반사신경과 순발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다 보면서 싸우니까.'
미리 몸에 익혀 뒀던 형식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싸움을 분석하면서 몸을 움직인다.
때문에 머저리들한테는 가르쳐 주고 싶어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렸을 때 배웠던 체술이나 계속 가르쳐 주고 있지.'
다행히 머저리들의 싸움 방식은 야생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에 기초를 가르쳐 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효과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머저리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근데 엄청 심심하네.'
한동안은 엄청 바빴던 것 같은데 오히려 미르로 오니까 더 널널해 졌다. 머저리들을 가르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보니 긴박감이 없었다.
'검성한테 뭔가를 가르쳐 달라고 해볼까?'
새로운 걸 배우면 이 무료함이 좀 풀어질 것 같다.
교육이 다 끝나면 검성한테 찾아가기로 마음 먹으며 문을 연 내 눈에 보이는 건 쓰러져 있는 머저리들과 방 중심에서 한가로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사람 이었다.
내가 그를 사람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깊게 눌러 쓴 후드 때문에 그의 얼굴 볼 수 없었고 체형이 거의 들어나지 않는 커다란 옷을 걸치고 있었기에 성별조차 유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는 말이 틀린 게 없다니까.'
그에게는 일말의 마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나와 같은 비각성자라는 의미인데 레아씨까지 능력이 풀린 상태로 벽에 쓰러져 있는 걸 보면 나보다도 더한 괴물이 틀림 없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나에게로 걸어왔다.
그가 걸어오면서 그를 정면에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얼굴에도 복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개 쫄리네.'
단검을 빼내 들고 대비를 하고 있을 때 그가 빠른 속도로 훅 다가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분명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폼 처럼 보였는데도 엄청 빨랐다. 비각성자라면 신체능력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닐텐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내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단검을 꺼내 막으려 했을 땐 이미 늦었다.
몸을 크게 움직인 것 같지도 않았는데 나는 어느새 엎어져 있었다.
'진짜 미친놈일세.'
내가 지금까지 만나봤던 사람 중 가장 강력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천마였다.
두 번째가 검성이었는데 저 놈은 그 검성과 비교해도 압도적일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이 강한 것도 아니고 민첩성이 뛰어난 것 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움직임에 반응 할 수 없었다.
검성과 싸울 때는 최소한 움직임을 분석해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 보기라도 할 수 있었는데 방금 전투에선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설마 천마가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그는 강했다.
'천마일리는 없겠지.'
내가 아는 천마의 성격이라면 이렇게 온몸을 꽁꽁 싸매지 않고 당당히 나타났을 테니까.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복면에 가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를 보고 웃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는 아무말 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와서 내쪽으로 손을 뻗었다.
철저한 건지 달리 이유가 있는 건지 손까지 검은 장갑을 껴서 그의 몸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래 손을 잡으니 손쉽게 끌어 당겨져서 일어났다.
"말 못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조차 어딘가 어색하고 기괴해서 몸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몬스터 아니야?'
고위 몬스터가 사람으로 위장하고 미르로 숨어 들어온 거라면 상당히 많은 의문들이 해소 될 수 있었다.
'식스 이놈은 이런 사람을 도대체 왜 데려온 거야?'
누가봐도 수상하잖아. 말도 안 하는 놈을 도대체 왜 데려 온거야? 얘가 지배자한테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안 가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그리고 이 정도면 소문이 났을 법도 한데.'
이사람... 복면이라는 호칭을 붙이자.
식스가 복면한테 이런 복장을 입힌 것이 아니라 그냥 길 다던 복면이를 데려온 걸 텐데 평소에 이런 차림으로 걸으면 너무 티가 나서 지배자도 얼추 알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소한 정보 파악에 심혈을 기울이는 혁명단 애들은 이미 알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미 소문을 충분히 들은 상태에서 복면이에 대한 평가까지 다 마친 다음에 대려 온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짓기도 애매했다.
'나혼자 생각해서 뭐하겠냐.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면 답이 나오겠지.'
식스에게 가서 직접물어보자.
식스에게 가기 위해 바삐 발걸음을 옮길 때 복면이 내 옆에 착하고 붙었다.
조금 소름이 돋긴 했지만 나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도 없어 보이고 혼자 방치하는 것 보단 같이 데려가는 것이 관리가 편할 게 분명했다.
괜히 혼자 내버려 뒀다가 하연이나 연하랑 시비가 붙으면 큰일 나잖아?
왠지 얌전해진 복면이를 데리고 식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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